신윤복의 「아기 업은 여인」
석야 신웅순

신윤복의 「아기업은 여인」1758년 종이에 담채, 23.3×24.8㎝ 국립중안박물관
-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kalsanja/220497299915
신윤복(申潤福, 1758년, 영조 34 -?)의 풍속화「아기 업은 여인」이다.
여기에는 배경이 없다. 오른쪽 아래에 호 혜원, 臥看雲 낙관이 있으며 여백에는 부설거사(扶辥居士)가 그림을 보고 쓴 제화글이 있다. 부설거사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신윤복의 다른 그림에서도 부설거사의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혜원과 가깝게 지내던 인물로 보인다.
신윤복의 그림 중에서 「아기 업은 여인」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그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구입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 일본인 곤도 고로로부터 일괄 구입한 화첩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 화첩에는 김두량, 김득신, 김후신, 이인문, 변상벽 그리고 강세황 등의 화가가 그린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신윤복의 그림으로 알려진 것은 「두 장닭」과 「아기 업은 여인」이다. 이 두 그림에는 모두 흥미롭게도 ‘부설거사’라는 사람이 쓴 글이 있다.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80쪽)
「아기 업은 여인」에 붙어있는 작은 쪽지에는 ‘혜원 신윤복 자 덕여 蕙園申可權字德如’라는 글귀가 적혀있어 혜원의 본명이 ‘신가권’이며 ‘덕여’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설거사의 제화글 내용이다.
동파(소식) 옹이 주방(周昉)이 그린 ‘얼굴을 돌리고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는 궁녀의 그림’ 을 보고 심취하여 되돌아 와서는 ‘속여인행’을 지었으나 지금 이 네 수를 보지 못하는 게 한스러 웠는데 아름다운 자태가 다시 제작되니 주방의 ‘여인행’과 같네. 또한 아이가 등에 업힌 모습은 주 방의 그림에도 없으니, 풍취가 깊고 그윽한 붓놀림이 있어 밖으로 기품이 드러나네.주방의 그림 과 이것을 다시 비교하면 어떨지 아직 모르겠네. 부설거사가 보다.
혜원
坡翁見周昉畫背面欠伸內人, 心醉歸來, 賦續麗人行, 恨不今見此四首, 嫣然之態, 復作麗人行如昉畵 也. 況又背上小兒, 昉畫之所無, 而風致幽婉, 有筆外神韻.未知昉畵較此,復何如.扶辥居士觀.
蕙園
낙관 : 臥看雲(와간운)
부설거사는 신윤복의 「아기 업은 여인」을 당나라 궁정 화가인 주방의 미인도와 대비시켰다. 소식의 「속여인행」은 주방의 그림들 중에서 ‘얼굴을 돌리고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 궁녀’의 그림을 대상으로 해서 쓴 시이다.
깊숙한 궁궐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봄날은 긴데
침향정 북쪽에는 온갖 꽃향기 만발하네
아름다운 여인 잠에서 일어나 가벼이 머리 빗고 세수하니
제비 춤추고 꾀꼬리 지저귀어 부질없이 애간장 끊네
화공 그리려 한 것이리, 끝 없는 뜻까지
봄바람 등지고 막 잠에서 깨었다네
머리 돌려 살포시 웃게 한다면
양성과 하채에서 모두들 넋을 잃으리
두릉의 주린 나그네 눈빛 오래도록 가난했고
절름발이 나귀에 해진 모자 쓰고 금안장 위에 앉았다가
꽃가지 건너 물가에 있는 모습 때마침 한 번 보았으나
다만 허리와 사지 등 뒤로 본 것 뿐이라네
마음에 흠뻑 취하여 초가집으로 돌아와서는
비로소 믿게 되었네. 인간 세상에 서시같은 미인 있음을.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맹광이 밥상을 들 때 눈썹과 나란하였던 것을
어찌 얼굴 돌릴 수 있으리요?
봄에 마음을 상해 눈물 흘리는 것을
- 소식의 「속여인행 續麗人行」
「속여인행」 서문에는 ‘이중모의 집에 주방이 얼굴을 돌려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 궁녀를 그린 그림이 있는데 지극히 정묘하여 장난삼아 이 시를 짓는다’ 라고 되어 있다.
이 시는 두보의 「여인행」을 본 받아 지은 것으로 두보의 「여인행」은 곡강에서 노는 귀족 여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데 반해 소식의 「속여인행」은 막 잠에서 깬 흐트러진 여인의 뒷모습을 그렸다. 두보 「여인행」의 여인보다는 주방 그림의 막 잠에서 깨어난 흐트러진 여인이 더 아름답지 않느냐는 것이다.
두보의 「여인행」은 혼란한 시대 현실을 풍자하여 지은 시인데 반해, 소식의 작품은 막 잠에서 깨어나 흐트러진 매무새로 기지개를 켜는 미인의 모습이다. 소식은 두보와는 달리 의미와 시상을 전환시켜 묘사했다.
잠에서 막 깨어난 미인의 자태를 소재로 한 미인도는 많다. 그러한 그림을 보고 감상을 적은 문인들이 제화시 또한 문집에서 간간히 보인다. 이규보는 「서학록이 화답한 시에 다시 차운하여 답하다」에서 “그대 보지 못했는가, 꾀꼬리 울고 제비 춤추는 깊숙한 궁 안에서, 미인이 기지개 켜며 잠에서 막 깨어난 모습을”이라고 하였다.(한국학 그림을 그리다,84쪽)
이러한 배면 미인도는 당나라 때 처음 등장하는데 이후 주방의 그림과 소식의 「속여인행」의 영향을 받아 ‘배면 미인도’ 에 붙인 제화시들이 다수 창작되었다. 고계의 「배면 미인도」, 사진의 「제배면 미인도」, 청나라 때의 시인 조익의 「제주방배면미인도」등이 그것이다.(한국학 그림을 그리다,85쪽)
불러서 돌아보게 하려도 이름을 모르는데
봄바람 등지고 서 있으니 그 정 어느 만큼일까?
화공은 앞모습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마라
미인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그리기 어렵다네
고계의 「배면 미인도」제화시이다. 고개를 돌린 모습이나 뒷모습은 감상자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화공은 앞모습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마라. 미인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그리기 어렵다네’ 이럴 때 보이지 않는 앞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독자들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부설거사는 소식의 「속여인행」을 본 떠 혜원의 아기업은 여인이 주방의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 여인에 빗대어 제화글을 썼다. 주방의 여인에게는 등에 업힌 아이는 없으나 얌전하고 기품이 있는 혜원의 이 여인이 어찌 신운이 없다하겠느냐며 이 여인을 주방의 여인과 비교하면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소식의 시에서 두보의 여인보다 주방의 여인이 더 아름답듯이 혜원의 어린아이를 업은 여인이 주방의 여인보다 더 아름답지 않느냐는 투로 은근히 말하고 있다.
눈꼬리 삐친 검은 눈이며 갈고리 형의 코에 야무지게 다문 작은 입술을 한 이 여인은 가녀린 몸매와 훤칠한 키, 부풀려 입은 넓은 치마에, 풍성한 가채 머리를 하고 있다. 젖먹이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있으며 짧은 저고리 밑으로는 젖가슴이 착 달라붙어있어 관능미와 함께 강한 모성애가 느껴진다.
어미의 사연을 알 리 없는 등에 업힌 천지난만한 아이는 그저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다. 여인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기녀로서 피붙이를 길러야만 하는 다부진 의지와 함께 험난한 인생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수심에 찬 듯한 이 젊은 여인에서 연민의 정이 느껴져 오히려 애처롭기까지 하다.
흥미로운 감상문이 있어 소개한다.
등 뒤로 아기를 업고 있으면서 가슴을 드러내고 있으니 이는 아기가 아들이며 어떤 사대부집안 의 대를 이을 후손을 낳았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신분이 기녀이다 보니 등에 업은 아기 또한 천민의 신분으로 살아가야할 운명이라 엄마와 아기 모두 어두운 그림자가 눈가에 드리워져 있는 모습으로서 작가 신윤복은 이러한 모순적인 신분 사회를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 다.(http://blog.naver.com/kalsanja/220497299915)
월간서예,2016.10월호
첫댓글 즐감하며...감사하는마음 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