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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 의병과 홍주성 전투, 의병들이 구식 대포 5문에 무려 신형 소총탄을 산탄마냥 집어넣고 쏴대는 통에 피해만 입고 패퇴하니 매뉴얼을 벗어난 코리언의 대응력은 대단, 사진 홍성군
中原과 倭가 코리아(高麗亞)를 끝내 완전 병탄하지 못한 이유를 전쟁 기법의 분석을 통해 알아보자.
중국의 역사 속에서 한족이 아닌 민족들, 특히 한국의 고대 국가들(고구려, 백제, 신라)과의 관계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중원, 즉 중국의 중앙 평원에서 출발한 군사적 진출은 한때 고구려와 고려를 병탄하려 했으나, 이들 국가가 중원의 확장을 저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또 무력으로 왕조를 개창한 조선왕조는 이를 두려워하여 문약하게 되어 조선조 초반 왜란,호란을 겪게 되지만 이를 격퇴하고 국체를 유지했다. 중원이 한국을 병탄하지 못한 이유와 전쟁 기법 및 특성에 대해 살펴보면서 전쟁 韓流에 대하여 알아본다.
제2차 평양성 전투를 그린 ‘평양성 전투도’. 1593년(선조 26) 1월 명나라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과 조선군은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지리적·전술적 장점
산악 지형의 방어적 역할
한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쟁에서 중요한 방어적 장점을 제공했다. 특히, 한국의 산악 지형은 전투에 유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중원 지역의 평야와는 달리, 한국의 산악 지형은 적의 대규모 군사 작전을 어렵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고구려의 국내성(환도산성)과 같은 산성은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산성은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고려는 숫제 하이브리드형 만월대 왕궁자체가 산성 역할을 하도록 했다. 동대문의 옹성도 그런 원리의 축소판이다. 끌고 들어와서 견디다가 격멸하는 것이다.
비대칭 전쟁과 게릴라 전술
한국의 고대 국가들은 비대칭 전쟁을 통해 중원의 대군을 효과적으로 견제했다.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군대는 적의 대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으로도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들은 주로 산악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하고, 게릴라 전술을 통해 적의 군사적 우위를 상쇄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민병 게릴라는 가장 우월한 무력이었다. 일본의 무사와 평민이 구분된 체제에서 일반 농민이 전사가 될 이유가 없다. 그냥 이기는 편에 속하면 그만이기 때믄이다. 그러나 조선은 비록 반상의 차별이 있어도 내가족,내고향은 내가 지킨다!는 정신이 뇌리에 박혀있고 비록 무기는 상대가 안되지만 지형 지물 운용에 능숙하니 유리하고 선천적으로 특공대 체질이고, 중과부적에서 최고의 전술은 ‘치고 빠지는 것이다.’ 라는 것이 정설이다. ‘밤길의 짱돌이 대포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원리이다.
가토의 울산성에도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성안에는 우물이 없었다. 열흘간의 조명(朝明) 연합군의 포위공격에 식량이 고갈되고 식수까지 끊긴 가토 기요마사 왜군은 거의 탈진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전쟁 기법과 전술적 특성
화포와 화력의 우위
고려 시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화포였다.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때,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화력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는 적군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조선의 화포, 특히 천자총통과 같은 대포는 적의 군사력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는 조선이 전술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사거리가 길고 반동을 흡수하는 판옥선의 견고함등이 절대우위이고. 비격뢰 같은 지연 폭발물은 대단했다. 여기서 활(弓)의 위력은 백병전 전에 적을 피로화하여 접근시 매우 유리하고 그 활의 성능도 우월했다.
전략적 후방 산성의 활용
한국의 고대 국가들은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후방 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러한 산성들은 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막 역할을 하였으며, 적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신라의 남산 신성이나 고려의 평산성은 왕경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적군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지를 제공했다. 아프카니스탄이 대국의 무덤이라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어느 산골짜기, 봉우리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고. 산성도 물과 식량을 저장하는 시설이 대단하고, 적의 퇴각시 후방을 치는 기법은 절대유리하다.
夷! 大人,大弓의 민족, ‘최종병기 활’은 청나라 정예부대에게 소중한 누이를 빼앗긴 조선 최고의 신궁이 활 한 자루로 10만 대군과 활의 전쟁을 치루니, 활은 총이전 냉병기 시대의 효과적인 비접촉 살상무기이다. 그 성능이 코리아 활이 언제나 최고였다. 사진 네이버
문화적 및 군사적 자원의 차이
문화적 자원의 차이
중원의 문화적 자원과 한국의 전통적인 전쟁 문화 간의 차이도 병탄 실패의 원인 중 하나다. 중원에서 오는 군대는 한국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그에 따른 전술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는 군사적 작전에서 큰 장애물이 되었다. 한국은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바탕으로 강력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전쟁에서 중원 군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 문화는 바로 ‘너죽고 나죽자 이다.’ 이 보다 무서운 전투 정신은 없다. 중동의 자살 폭탄 테러, 베트콩의 전술도 이와 유사하고, 현재 한국군의 전술도 ‘절멸작전’이다. 이제 현대전은 상호 절멸로 끝나기 때문에 전 유럽의 포병보다 더 많은 화력으로 침력자와 함께 운명을 다한다는 전략이니 이것이 전쟁 韓流의 핵심이다.
군사적 자원의 효율적 운용
한국의 전쟁 민족으로서의 특성은 전투에서의 효율적인 자원 운용을 가능하게 했다. 예를 들어, 고구려는 상대방의 기병과 보병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전술을 개발했고, 고려는 유목민들에 비해 자원의 효율적인 운용을 통해 방어적인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군사는 인적자원과 무기체계인데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에 결국 침략은 못하고 침략을 당할 때 ‘민병대의 유격 전술’이 가장 효과적이었고 ‘실 제 이 땅을 지킨것은 관군이 아니라 의병이다.‘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렇듯, 중원과 왜가 쉽게 코리아를 병탄하지 못한 이유는 지리적, 전술적,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다. 한국의 산악 지형과 후방 산성, 비대칭 전쟁 기법, 그리고 문화적 자원은 중원의 대군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전쟁 문화와 전술적 우위는 중원의 군사적 압박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방어력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한국이 중원에 의해 병탄되지 않은 주요 이유로 작용했으며, 그 전쟁 기법과 특성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글 권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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