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생애를 통하여 선(禪)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하였다. 산중에서 은거하는 독각선(獨覺禪)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선의 혁명가로 평가받고 있다. 법상(法床)에서 행한 설법뿐만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서도 언제나 선을 선양하였고, 문자의 표현이나 특이한 행동까지도 선으로 겨냥된 방편이요, 작용이었다. 그의 이와같은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선풍은 새로이 일어났고, 문하에도 많은 선사들이 배출되어 새로운 선원들이 많이 생겨났다. 오늘날 불교계의 선승(禪僧)들 중 대부분은 그의 문풍(門風)을 계승하는 문손(門孫)이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의 선풍은 대략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① 무생(無生)의 경지를 이상으로 삼는다. 무생이란 생기지 않음을 뜻한다. 인간의 참모습을 그는 ‘생김 없고, 없어짐 없는’ 근원적 예지에서 비롯된다고 본 것이다. ② 무상(無常)을 초극(超克)하는 길은 오직 선(禪)에 있다고 보았다. 스스로 무상을 체험하였고, 또 선의 참구(參究)를 통해서 이것을 극복하였다. 따라서, 그의 가치관은 선의 수행과 선의 생활화를 통한 무상의 초극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③ 선(禪)과 교(敎)는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그에 의해서 독창적으로 제기된 교설은 아니지만, 그는 이 두가지가 마치 지혜와 자비의 양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하나만을 고집할 때 궁극적 경지의 증득(證得)이 불가능함을 역설하고 교선겸수(敎禪兼修)를 강조하였다. ④ 간화선(看話禪)과 염불선(念佛禪)을 궁극적인 면에서 하나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선과 염불은 방법상의 차이일 뿐 구경(究竟)의 완성된 경지에서 볼 때는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다. 선문에서 정혜(定慧)가 원만히 갖추어져야만 견성(見性)이 이루어진다고 하듯이, 염불문에서도 일심(一心)이 불란(不亂)한 삼매경에서만 정불국토(淨佛國土)가 실현된다고 보았다. 견성과 불국토의 실현, 그리고 선정삼매(禪定三昧)와 염불삼매(念佛三昧)는 같은 경지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근대불교사에서 큰 공헌을 남긴 중흥조이다. 승려들이 선을 사기(私記)의 형식으로 기술하거나 구두로만 일러오던 시대에 선을 생활화하고 실천화한 선의 혁명가였으며, 불조(佛祖)의 경지를 현실에서 보여준 선의 대성자이기도 하였다. 근대 선의 물결이 그를 통하여 다시 일어나고 진작되었다는 점에서 그는 한국의 마조(馬祖)로 평가된다.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