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일기358. [이제 쑥쑥 자라면 된다.]
요한복음 설교를 끝내고 새로운 말씀 앞에 선다.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여전히 “잘 전할 수 있을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이 있다. 아마 여전히 잘 전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성경이 내게 해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설교를 쉽게 준비하고 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1년간 수고한 농사를 추수하고 있다. 그럭저럭 고추도 따먹고, 호박도, 가지도, 상추도, 오이와 토마토, 수박까지 덕분에 맛보았다. 돌아보면 비닐을 씌우지 않고 길러보겠다는 호기로움으로 풀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세를 올려 백전백승이었다. “별거아니구만~!”하지만 장마가 시작되고 떨어지는 빗소리는 세상 스스로 살아내는 무엇인가를 향한 응원과 박수처럼 우리의 기세를 밀어냈다.
순식간에 밭을 장악한 풀들의 위용은 뽑아낼 수 없는 단단함과 질김이었다. 예초기를 동원해 휘둘러대는 칼날조차 온몸으로 엉겨붙는 풀들에 묶이기 일쑤였다. 대단했다. 그렇게 밀리기 시작한 하루하루를 지나 드디어 우리가 백기를 들었다. “될대로 되라...ㅠㅠ”는 자포자기와 “힘들었는데 잘 됐다.”는 은근한 안심과 다행스러움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렇게 기세를 올리던 풀도 밀어내듯 그 다음 순서를 차지한 날씨 앞에 꼼짝을 못한다. 고개를 숙이고 더 나대지 못하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한지. 정말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진리다.
그렇게 흥망성쇠를 지나 여전히 살아남은 것은 땅속에 보물을 감추듯 꽁꽁 숨겨 품고 있는 고구마이다. 그 속을 알 수 없어서 잘하고 있는지? 자라고 있는지? 혹은 완전 망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속을 드디어 뒤집어 내었다. “우와~”, 혹은 “하...”크고 작은 크기의 고구마가 쏟아져나왔다. 그 많은 풀과의 전쟁을 지나, 뜨겁고 뜨거웠던 여름과 밤마다 쏟아붓던 장마, 어느덧 잎이 말라가는 이상한 가을을 지나 자신만의 실력을 주렁주렁 달아낸 고구마를 꺼내 보여준다.
누군가 그랬다. “지금 실력이 안 느는 것 같지? 아니야~ 지금 네 몸속에 뿌리를 내린다고 시간이 걸리는 거뿐이야~ 뿌리가 다 자라잖아? 그러면 네 실력도 이 모죽처럼 눈에 띄게 쑥쑥 자랄거야”
늘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나와 너를 채찍질한다. 하지만 그 어떤 기세도 자기다움을 품고 땅속으로 뿌리내려 오늘도 자기의 할 일을 하는 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호기어린 마음도, 머리를 들고 기세를 내뿜던 풀도 다 마찬가지이다. 뿌리가 자라는 시간을 견디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여전히 살아, 그 자리를 품고 사는 것. 이제 쑥쑥 자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