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木橋(독목교)외나무 다리---梅月堂 金時習
小橋橫斷碧波潯(소교횡단벽파심) 푸른 물 가로지른 작은 외나무다리
人渡浮嵐翠靄深(인도부람취애심) 사람들은 그 다리타고 푸른 아지랑이 속을 건너네
兩岸蘚花經雨潤(양안선화경우윤) 양쪽 물가에 핀 이끼꽃은 비맞아 빛나고
千峰秋色倚雲侵(천봉추색의운침) 천 봉우리 가을 빛은 구름 기대어 다가오네
溪聲打出無生話(계성타출무생화) 시냇물 소리는 무생의 법문을 자아내고
松韻彈成太古琴(송운탄성태고금) 솔 바람은 먼 옛날 거문고 소리 이루네
此去精廬知不遠(차거정려지불원) 절은 여기서 멀지 않으리니
猿啼白月是東林(원제백월시동림) 잔나비 울고 달 밝은 거기가 바로 동림이네
(감상)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이자 승려이다.
그의 본관은 강릉, 자(字)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불교 법명은 설잠(雪岑)이다.
5세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났다.
수양대군의 단종에 대한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은둔생활을 하다 승려가 되었으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일설에는 그가 사육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경기도 노량진에 암장했다고도 한다.
생육신으로서 단종에 대한 절개를 끝까지 지키며 유랑인의 삶을 살다 충남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근본은 유교에 두고 불교적 사색을 병행했으며, 선가의 교리까지 포괄하려고 시도하는 등 다채로운 면모를 보였다.
주요저서로 『매월당집』·『금오신화』·『만복사저포기』 등이 전해온다.
이 시는 김시습이 1483년 탁발승의 모습으로 관동지방을 여행할 때 쓴 글이다.
이끼꽃, 시냇물과 솔바람소리,아지랑이 속을 걷는 사람ᆢ한점 티 없는 청정한 그림이라 해야할까?
조선시대 제일의 비평가로 이름난 허균은 이 시를 두고 "초탈의 경지가 얼마나 드높은가?"라 평했다한다.
[출처] [한시감상]외나무다리에서|작성자 운장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