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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2일 초희길 출발지 강릉 시청 종각 앞에서.....(09:32)
강릉시청 江陵市廳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강릉시 관할 지방 자치 행정 기관.
강릉시의 행정 및 민원 등의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55년 9월 1일 법률 제369호로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병합하여 강릉시로 승격되었다.
당시의 강릉시 행정 구역은 38개 동 489개 반이었다.
강릉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강릉군은 명주 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1월 1일에는 강릉시와 명주 군이 도농 복합 형태의 강릉시로 통합되었다.
곧 입주 예정인 Lotte Castle...
바우길 제14코스 '초희길'
허초희(許楚姬)이며, 허옥혜(許玉惠)로도 전한다. 호는 난설헌(蘭雪軒)
초희는 허난설헌의 본명으로 이 길은 그녀의 시만큼이나 아름답고 많이 훼손되어 슬픈 길이기도 하다.
강릉 바우길 17 개구간 중 유일하게 시내 중심에서 출발하여 도심을 가로지르고
강릉의 도심을 들여다보며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과 야트막한 능선길을 따라
도심을 가로지르며 걸음을 옮기다 보면 허난설헌이 태어난 초당 생가터 앞 솔밭을 지나고
경포천 끝자락 강문 바닷가까지 걷는 길이다.
오늘의 완주자...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완주 하시는 동안 맨발로 많이 걸으셨기에 닉을 몰라 '맨발의 청춘'이라고 올려 본다.
박종옥 (왕눈이), 김현경 (하니) 초희길 구간지기 부부님..
만나면 반가운 얼굴들....할 말들이 무척 많은가 보다.
국장님 인사말
사무국 씬씨아님....
완주자를 소개 한다.
이번에는 알바 없이 잘 걷겠다는 지기님....
터미널 앞 횡단보도(橫斷步道)를 건너간다...
강릉 솔올미술관 (Sorol art museum)
‘솔올’이라는 이름은 미술관이 자리한 지역의 옛 이름으로,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강릉시 교동7공원에 건립된 솔올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3221.76㎡ 규모로 조성되었다.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 건축 작품
솔올미술관은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의 건축 작품으로
현대건축의 거장인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건축 디자인과 철학을 보여준다.
자연의 빛을 활용한 흰색의 독특한 건물 건축가로 알려진 리처드 마이어는
건축계 노벨상으로 일컫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이자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1983),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1985),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1997) 등을 설계했다.
2015년에 씨마크 호텔도 설계하였다. 솔올미술관은 미술과 건축이 하나로 구상된 미술관이다.
형태와 재료, 구성의 단순함,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표현되었다.
또한 미술, 자연, 사람이 어우러지는 개방된 공간을 지향한다.
미술로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솔올미술관의 비전은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의 건축으로 조화롭게 시각화되었다.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하는 미술관
솔올미술관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하여 우리미술의 미술사적 맥락을 조명하는 미술관이다.
국내외 다양한 미술관 및 미술관계 기관과 소통하며 학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한다.
솔올미술관은 현대미술사 거장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조명한다.
나아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의 미학적 연결성을 찾아내어
우리 미술의 미술사적 가치를 세계미술계에 알리는 것이 미술관의 비전이다.
도시에 품격을 더하는 미술관
솔올미술관은 강릉의 새로운 문화예술 랜드마크이다.
강릉 시민과 강릉을 찾는 관광객들이 자연을 즐기고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도시에 예술의 품격을 더하는 미술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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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아파트 건설 시 기부채납으로 지어진 미술관이며 올 하반기부터는 강릉시에서 직접 운영하게 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려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음)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공원에서 내려다본.. 교동 택지 개발로 이젠 구 시가지가 된 풍경..
공원 숲에서 잠시 휴식을...(10:47)
원대로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터미널 오거리에서 교동 경포로에 이르는 도로.
원대로가 지나는 교동 택지 지구는 내부 교통망이 체계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외부 교통망 접근성이 매우 양호한 지역이다.
원대로는 교통 택지 지역을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도로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한 도로이며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과 강릉 대로와 직접 연결된다.
[명칭 유래]
원대로는 옛날 고을 원님이 고개를 넘어가다 쉬어 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원래 원대재, 원댕이재로 불리다 이곳에 도로가 정비, 개설되면서 원대로라고 이름하였다.
제일 고등학교를 지나 미술관 오르는 길...
강릉시립미술관
2006년 9월 8일 강릉미술관으로 개원
2013년 4월 18일 정식 인가 및 강릉시립미술관으로 재개관
강릉시립미술관은 지역작가의 예술 활동을 활성화하고
전시 다양화를 위해 ‘2024년 지역작가 전시 지원사업’을 시행한다.
관람 시간: 화~일요일 09:00 ~ 18:00
휴관일: 매년 1월 1일, 매주 월요일, 설 연휴 및 추석 연휴
셀카...
옛 이명고개 모습
이명 (임영)고개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고개.
이명고개는 ‘염양사(艶陽寺)가 있는 고개’란 뜻으로 ‘염양고개’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염양이 이명으로 변하였다.
염양사는 고려 충숙왕[1294~1339] 때 박종이 중건한 절인데,
조선조 성종 때(1457 ~ 1494)에 이르러 염양사의 승려들이 민가에 가
주민들을 괴롭히는 등 횡포가 심하여 나라에서 폐찰시켰다고 한다.
이명고개는 정봉(성산면 금산리 소재)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줄기에 있는데, 위쪽에는 원현[元峴], 아래쪽엔 화부산이 있다.
이명고개는 강릉의 북쪽지역인 경포와 시내를 잇는 고개로 율곡로, 화부산로, 임영로가 교차하며 지나간다.
율곡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율곡중학교가 나오고, 동쪽으로 가면 옥천 5 거리가 나오고,
화부산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강일여자고등학교, 영동초등학교가 나오고,
북동쪽으로 가면 강릉역이 되고, 임영로를 따라 시내로 가면 강릉제일고등학교가 나온다.
이명고개는 경포지역과 시내로 다니는 관문으로,
고개 주위에는 강릉 행복한 모루, 강릉향교, 강릉명륜고등학교, 향현사, 계련당, 화부산사 등이 있다.
무단 횡단하고 있는... 저렴하게 과태료 500원씩 모시겠다.
제대로 건너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
국장님 모교..大 명륜고등학교
江陵明倫高等學校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건학 이념은 ‘학문과 덕망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여 지역 발전을 선도할 창의적인 원동력과
민족 전통을 계승할 참다운 인간상을 길러 세계 속에 펼칠 명륜인을 육성한다.’이다.
교육 목표는 ‘1. 창의적 사고로 실력을 쌓아 가는 지식인을 기른다[실력 있는 지식인],
2. 예절과 겸손을 갖춘 정직한 도덕인을 기른다[정직한 도덕인],
3. 바르고 참되게 실천하는 행동인을 기른다[실천하는 행동인]’이다.
교훈은 ‘지(知): 지식을 넓히자. 인(仁): 인덕을 기르자. 용(勇): 용기를 돋우자.’이다.
[변천]
강릉명륜고등학교는 최준집에 의하여 설립되어 1963년 12월 14일에 6학급 360명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92년 8월 9일에 강릉명륜고등학교 출신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하였고
1998년 12월 28일에 황영조 체육관을 준공하였다. 2004년 10월 15일 도서관이자 기숙사인 명륜학사를 개관하였다.
2014년 10월 17일에 개교 50주년 기념 행사를 하였고,
2016년 2월 12일에 제50회 졸업식을 거행하여 총1만7,47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2015년 9월 1일 제12대 김창환 교장이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련당 桂蓮堂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마소(司馬所) 건물.
강원도 내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고제(古制)의 사마소(司馬所) 유적(遺蹟)이다.
[명칭유래]
당명(堂名)인 '계련(桂蓮)'의 '계'는 '계림(桂林)' 또는 '절계(切桂)'에서 따온 말로
'계림'은 문인 사회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이름이고 '절계'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뜻한다.
'연(蓮)'은 중국 송나라의 육현(六賢)의 한 사람인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가
“군자는 연(蓮)을 사랑한다.”는 애련설(愛蓮說)로 인하여 연을 선비의 청아(淸雅)한 성품으로 상징하여 왔다.
이런 의미에서 '계련'이라 하였다.
[건립경위]
생원, 진사에 합격한 사람들과 대과(大科)에 급제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주민의 교화에 힘쓰기 위해 건립하였다.
[위치]
강릉시 율곡로 2920-12[교2동 238번지] 현재 강릉명륜고등학교의 정문인 입구 향현사의 서측에 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조선 개국 초에 창건되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810년(순조 10)에 중건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과거제도와 함께 그 명맥이 단절되었으나 그 후 후손들이 모선계(慕先契)를 조직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계련당’ 현판 옆에 '모선재(慕先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형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익공양식 팔작 기와지붕으로 전면에는 툇간마루가 있다.
방의 앞면 창호는 두 짝 여닫이 세살문, 천정은 연등천정, 마루는 네 짝 분합문으로 되어 있다.
[금석문]
'계련당(桂蓮堂)' 현판과 함께 '계련당중수기(桂蓮堂重修記)'가 게판되어 있다.
[현황]
1973년 7월 3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옛 선비들의 고향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의미 있는 건물이다.
지역 출신의 최고의 지성인들이 우의를 돈독하게 하고 아울러 지역의 발전과
올바른 향토 문화의 정착을 위해 기여한 숭고한 정신이 스며 있는 유적이다.
이명고개를 지나 화부산으로 오르면서...(11:42)
엄청나게 높은 화부산에 올라서...(11:45)
화부산 花浮山
강원도 강릉시 교2동에 있는 산.
옛날 이 산에 꽃이 많이 피어 멀리서 보면
마치 꽃이 산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화부산(花浮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교1동 원뎅이재에서 내려온 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포남동의 바깥 뫼인 춘갑봉을 지나 초당을 거쳐 그 낙맥이 경포로 이어진다.
[현황]
화부산 기슭은 강릉시내와 포남·송정의 넓은 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예로부터 교육기관을 세우기 좋은 장소로 선호되어 왔다.
고려시대인 1313년에 이미 향교가 화부산 기슭에 건립된 바 있으며,
화부산 북쪽 마을인 당두에는 화부산 양지쪽 남향의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린 위치에 강릉향교의 명륜당(明倫堂)이 있다.
교동에 소재한 강릉향교를 기반으로 개화기 유림학자들에 의해 근대학교로 1909년 설립되었다가
한일병탄 이듬 해인 1911년에 폐교되었던 화산학교(花山學校)도 화부산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과거 화부산 아래에는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화부산사(花浮山祠)가 있었으나
강릉역 확장 때 현 위치인 교1동으로 이전되었다.
한편 수십 년 전에는 화부산 남쪽 산기슭에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민무늬토기, 석기, 석촉, 방추차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지기님이 식사와 후에 다시 모일 장소를 설명한다.
각자 흩어져 식사 후 다시 모이기로 한다.
도심속 화부산 길 ...걷기에 좋고 아름답다.
새롭게 개통된 당두터널
단절됐던 강원 강릉 도심을 연결하고 KTX강릉역 일대
원도심의 고질적 교통난을 해소할 '당두터널'이 11일 정식 개통했다.
당두터널은 2019년 최초 건립이 추진된 이후 약 240억 원을 들여 길이 305m, 폭 20.65m의 왕복 4차선 규모로 지어졌다.
해당 터널은 하루 최대 1만 8900여 대의 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터널은 강릉역 일대에서 종합운동장 방면으로 이어져,
원도심인 강릉역 일대와 비교적 신시가지로 분류되는 교동과 유천택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동안 원도심인 강릉역, 포남동 일대에서 교동과 유천택지로 이동하기 위해선,
먼 길을 우회해야 하고 혼잡한 구도심 상권을 지나야 해서 불편이 잇따랐다.
또 최근에는 동해북부선 공사까지 겹쳐 혼잡이 극심했다.
이에 강릉시는 해당 터널 개통으로 원도심과 신시가지가 연결되고,
KTX강릉선 개통 이후 철도로 유입되는 관광객의 유동경로가 한층 폭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터널명칭인 '당두'는 강릉향교 명륜당 뒤쪽 마을을 의미하는 당두라는 지역에 유래 돼온 향토 명칭을 사용해 확정됐다.
강릉시 관계자는 "당두터널은 수도권 철도 연결의 중심 강릉역 방면을 시점으로
강릉 스포츠의 메카 종합운동장 방면을 종점으로 둔 도심 내 확충된 간선도로 연결망으로
교통 체증이 크게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에서 인용)
식사 후 다시 모이는 가작다리 근처에서...(13:25)
가작다리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자연 마을.
가작다리[鵲橋, 假作橋, 假鵲橋]는 나무 가지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이
엉성하여 마치 까치가 집을 지은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 참판 벼슬을 지낸 사람이 낙향하여 이곳에 살면서 화부산 아래쪽에 있는
향교에 자주 다녔는데, 이때 집에서 길을 따라 향교로 가면 멀리 돌아가기 때문에
질러가기 위해 집 앞에 있는 도랑에다 나무로 다리를 놓고 건너 다녔다.
참판 벼슬을 지낸 사람이 손수 나무로 다리를 놓았는데,
그 다리가 서로 엉켜 너무 엉성하게 되어 마치 까치가 집을 지은 것 같다고 하였다.
다리이름이 나중에 마을이름으로 되었다.
가작다리의 남쪽에는 강릉의 주산(主山)인 화부산이,
뒤에는 산줄기가 포남동 소동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에는 옥천동, 송정동의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위치와 교통]
가작다리에서 아래쪽[북쪽]으로 내려가면 돈반골이 있고, 서쪽으로 가면 당두가 있고,
동쪽으로 가면 강릉역이 있으며, 남쪽에 있는 화부산 쪽으로 가면 향교가 있다.
서쪽으로는 구 7번 국도인 지방도 율곡로가 지나간다.
화부산 아래 동쪽으로 있던 강릉역은 최근 지하화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강릉역 부지를 질러가면 옥천동으로 바로 연결되는
도로와 교차로가 개설되어 도심으로의 연결성이 한결 좋아졌다.
따가운 가을 햇살이 두 남자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다.
엄마를 따라 바우길에 온 수정 어린이...
새롭게 개통된 당두터널을 처음 걸어 본다.
봉수대에 올라...(13:52)
소동산 봉수대
주연야화(晝煙夜火).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올린다는 뜻이다.
옛 봉수대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말이다.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전근대에 불과 연기는
위급한 소식 등을 빠르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봉화를 사용했고,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아이스킬로스(서기전 525~456년)의 작품인
‘아가멤논’에 봉화를 올린 내용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이미 봉화가 있었다고 하고,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에도 봉화가 언급되니
가장 오랜 기간, 범세계적으로 활용된 ‘레전드급’ 통신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서주(西周)가 봉화를 잘못 운영해 망국에 이른 일화도 유명하다.
서주의 마지막 왕 유왕(幽王)은 경국지색 미모를 타고난 포사가 웃음이 없어 애간장을 태우다가
어느 날 실수로 잘못 올려진 봉화에 제후들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을 본 포사가 박장대소를 하자,
그 뒤로 시도 때도 없이 봉화를 올리도록 했고,
오랑캐 견융이 진짜로 침입했을 때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아무도 달려오는 제후가 없어 결국 망하게 됐다는 고사다.
우리나라의 봉수(烽燧)는 조선시대에 특히 잘 정비되고 활용됐다.
평상시 1홰(炬)부터 전투가 시작되면 5홰까지 위급함의 정도에 따라 봉화 횃불의 개수를 달리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700여척의 왜(倭) 선단을 발견하고,
부산 황령산에서 봉화를 올린 지 12시간 만에 한양의 목멱산(남산) 봉수대에 도착했다.
평시에도 봉화를 올린 것은 적에게 점령당하는 등의 변고 없이 봉수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동쪽 바다의 안위를 맡던 강릉 ‘소동산 봉수대’가 최근 거화 의식을 갖고 옛 봉수의 면모를 재현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전하는 소동산 봉수대는 지난 2008년에 주민 노력으로 복원된 곳이다.
경포호와 바다를 조망하는 일출 명소로도 인기를 더하고 있다.
포남2동과 주민자치위원회는 앞으로 주기적으로 거화행사를 열고,
역사문화 교육 현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옛 봉수대가 민간의 노력으로 새롭게 불을 밝히고 문화관광 콘텐츠로 활용되는 모습이 흐뭇하다.
/ 강원도민일보. 최동열 강릉본부장
봉수대에서 바라 본....멀리 산우에 바닷길이 시야에 들어온다.
즐거운 담소....
휴식 후....춘갑봉으로 다시 발걸음을...(14:04)
딱 한송이 남아 있던 장미....질긴 생명력이다.
춘갑봉 아름드리 소나무 길...
무쟈게 높은 춘갑봉에 도착해서...(14:21)
에베레스트 높이가 8848m이다.. 근데 춘갑봉 높이가 55m이다
별반 차이가 없다...하여,춘갑봉 높이가 무쟈게 높은 산이다.
춘갑봉은 강릉시 포남동에 있으며 55m 낮은 봉우리로
예전에는 은퇴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해서 명퇴봉이라 불렀다 하는데...
명칭이 그다지 좋지가 않아... 후에 봄이 일찍 찾아온다는 의미의 춘갑봉으로 새 이름을 얻은 곳이다.
경포 호수와 숲에 가려 보이질 않는 모안이굼
모안이굼[慕顔洞]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모안이굼(慕顔洞)은 예전에 경포호의 물이 이곳까지 들어차서
‘못 안에 있는 굼’이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인데, ‘굼 ’이란 길게 내려온 산줄기 끝을 말한다.
[변천]
예전에는 모안이굼 앞에까지 경포호의 물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경포호가 많이 메워져 모안이굼과 경포호 사이는 넓은 논으로 되었다.
모안이굼은 포남2동 뒤에 길게 늘어진 춘갑봉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끝에 있고,
앞에는 경포호가 펼쳐지고, 그 사이에 넓은 논이 있다.
[위치와 교통]
모안이굼은 경포호를 바라보고 있으며, 초당동 안초당과 교동 수릿골 사이에 있다.
마을에서 동쪽으로 가면 춘갑봉이 돠고, 남쪽으로 가면 수릿골이 된다.
안초당에서는 당재를 넘어 서쪽이 되고, 포남동에서는 북쪽 끝이 되고, 경포호에서는 동남쪽 끝이 된다.
마을과 경포호 사이로 강문동·초당동과 교동·지변동을 잇는 난설헌로가 지나가고, 노선버스는 다니지 않는다.
[현황]
모안이굼의 남쪽에는 바둑골이 있는데, 옛날 이 골에 서당이 있었을 때 서당에서 공부하던 선비들이
글공부를 하면서 잠시 머리를 식힐 때 이곳에서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 바둑돌이 있고, 그 옆에 선비들이 마시던 우물도 있다.
모안이굼 산줄기 끝에는 환선등이 있고, 이곳에 환선정(喚仙亭)이 있다.
강렬한 햇살의 조명이 너무 강해... 세 여인네들을 이상하게 만들어 놓았다. (연초록, 미수기 키키)
키키,선화,칭런
바우길을 함께 걷고 있는 아들과 아버지의 아름다운 모습
(아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곧, 군에 입대할 예정.... 몸 건강히 잘 다녀오길...)
'태양이 싫어'...비의 노래를 부르면서....
허초희 기념관 앞 달빛 산책로...(14:50)
허초희 기념관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터는 조선 시대 최고의 여류문인
허난설헌의 예술혼과 문학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허난설헌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로 8세 때부터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하였으나 27세 때 요절했다.
섬세한 필치로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달래는 노래를 했는데
허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모아 '난설헌집'을 간행했다.
2001년 복원된 허난설헌 생가터는 아름다운 솔숲을 지나면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대부가 한옥의 형태이다.
솟을대문과 야트막한 담장 안에 대청과 사랑채, 안채 등이 있고
우물과 방앗간 옆으로 좁은 문을 두어 여성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하여 남녀의 구분을 두었다.
안에는 허균과 허난설헌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매화나무가 아름답게 자란다.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곳이다. 생가를 비롯해 허균·허난설헌 기념관과 기념 공원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난초처럼 살다 간 시인 허난설헌,..... 그녀의 시 [감우]와 그녀의 짧은 일생이 닮아 있다.
감우(感遇) / 허난설헌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기롭더니,
盈盈窓下蘭 (영영창하란)
枝葉何芬芳(지엽하분방)
가을 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西風一被拂 (서풍일피불)
零落悲秋霜 (영락비추상)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秀色縱凋悴 (수색종조췌)
淸香終不死 (청향종불사)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感物傷我心 (감물상아심)
涕淚沾衣袂 (체루첨의몌)
햇살에 비친 양산 색상이 이쁘다.
새치미, 레아..(사진 잘 올려야지... 잘못하면 새침미님이 바우길에서 강퇴시킨다고 했다...)
호수를 지키고 있는 조금은 외로워 보이는 홍길동....
월파정(月波亭)은 경포호 한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호수 가운데 있는 바위에는 각종 철새들이 찾아와 노는 곳으로 새바위라고 하며,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이 쓴 '조암(鳥岩)'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고 한다.
월파정은 1958년에 강릉지역의 기해생 동갑 계원 28명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계(契)의 도시 강릉
강릉은 계의 도시라고 한다. 다른 도시에 비해 유독 계가 많다.
강릉 사람치고 네다섯 개의 계에 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강릉 사람들의 유대관계는 계로 시작해서 계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영향으로 경포호수 주변에 있는 정자들이 예외 없이 계원들이 세웠거나 계와 관련되어 있다.
경호정 : 1927년 강릉 주민들의 '창회계' 계원들이 세운 정자
상영정 : 1866년 강릉 유림 16명의 '상영계' 계원들이 세운 정자
금란정 : 1466년 19명의 '금란반월계' 계원들이 인수하여 세운 정자
취영정 : 1893년 18명의 강릉 선비 모임인 '취영계' 계원들이 세운 정자
월파정 : 1958년 기해생 동갑계원 28명이 세운 정자
한국의 마리나베이샌즈라 불리는 스카이베이호텔 경포는
한국의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강릉 경포대 앞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다.
객실은 디럭스, 이규제큐티브, 스위트 타입으로 나뉘고, 객실 테라스에서 호수뷰와 오션뷰, 소나무뷰를 감상할 수 있다.
20층에 있는 호텔의 시그니처인 인피니티 풀은 유료로 이용할 수 있고, 동절기에도 운영한다.
그밖에 스카이 라운지 레스토랑, 고급 스파, 오락실, 코인세탁실 등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강문도라 불리는 곳에 지어진 현대 씨마크 호텔 벽면의 담쟁이넝쿨...
씨마크(SEAMARQ)는 바다를 뜻하는 영어 'SEA'와 최고급, 일류를 뜻하는 불어식 단어 'MARQ'의 합성어로
'바다를 품고 있는 최고의 휴식 공간'이라는 호텔의 본질을 나타내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씨마크 호텔은 강릉솔올미술관을 설계한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작품이다.
江門島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의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
‘강문(江門)’은 ‘강이 흐르는 입구’라는 뜻으로 ‘경포대를 품고 있는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을 의미한다.
강릉부 동북쪽 10리 되는 북일리면에 있으며, 경포호수의 동쪽 출구이다.
해안이 우뚝 솟은 봉우리는 견조도와 서로 마주 바라보고 섰으며,
읍을 호위하고 있는 관문으로 위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다.
죽도와 맞닿은 강문은 야간에 나룻배로 작업 시 사용되는 횃불이
바다와 호수면에 비치는 아름다움을 보는 광경이 일품이어서
경포 8경 중 하나인 ‘강문어화(江門漁火)’로 유명하다.
또한 이 강문도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는 아름다움으로 ‘죽도명월(竹島明月)’도 역시 경포 8경에 속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경포호 동쪽 입구에는 나무다리[板橋]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강문교이고,
다리 밖은 죽도가 있고 이 섬 북쪽에는 5리나 되는 백사장이 있다.
백사장 밖은 창해(滄海) 만리인데, 해돋이를 바라볼 수 있어 가장 기이한 경치이다.”라고
기술된 내용으로 보아 지금의 호텔 현대가 자리 잡은 곳으로 지금은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강문도는 행정구역상 강릉시 강문동으로 해발고도는 31.1m이다.
초희길의 끝자락 강문 솟대다리에 도착해서...(15:30)
강문 솟대 다리
강문 해변에 있는 강문 솟대다리는 이 다리를 기점으로 강문 해변과 경포 해변으로 나누어진다.
솟대는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볍씨를 주머니를 넣어 장대를 높이 달아맨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기도 하고 민간신앙의 상징물로 장대 끝에 새를 나무로 깎아서 달기도 했던 장대를 말한다.
강릉에서는 이 솟대를 옛날에는 진또배기라고 불렀다.
강문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 4월 보름, 8월 보름 세 번에 걸쳐 서낭제를 모신다고 한다.
진또배기는 서낭신을 보필하고 삼재(수재, 화재, 풍재)를 막아 마을의 안녕과 풍어, 풍년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강문동 동제 江門洞洞祭
동제 - [민속] 마을의 수호신인 동신(洞神)에게 지내는 제사.
마을 사람들의 무병(無病)과 무재(無災), 풍년을 빌며 정월 대보름날에 서낭당, 산신당, 당산 따위에서 지낸다.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서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행하는 마을제사.
강문동은 현재 초당동에 편입되어 있으며 4통과 5통에 약 19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동제는 5통 86세대 가운데 어촌계원으로 등록된 33명이 매년 행사를 집행하고 있다.
강문동 제당의 명칭은 강문 여성황당, 진또배기골맥이성황, 남성황당이라 부르며 세 군데에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춘계예축제, 8월 보름에는 추수제라 하여 여성황당과 진또배기성황에서 동제를 지내고
4월 보름에는 풍어제라 하여 풍어굿을 5년마다 하고 남성황당을 포함하여 세 군데에서 제를 지낸다.
마을제사로 특별히 진또배기제사가 들어간다.
[연원]
강문진또배기 안내 설명문에는 “강문진또배기는 옛날 삼한시대 솟대(소도)의 한 형태로
강문 부락의 삼재 풍재·수재·화재를 막아 마을의 안녕과 풍년·풍어를 지켜주는 수살간(守殺竿)이다.”고 적어 놓았다.
이 마을에서는 진또배기는 음운변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진도박이’로 보아서 진도(津渡)의 경계 즉 나루의 경계표로 보기도 하는데
진또는 진대 또는 긴대, 배기는 박이로 볼 수 있어 ‘진대를 박아놓은 곳’이라는 낱말로도 볼 수 있다.
진대는 짐(荷)과 대(竿)의 복합어로 고려가요 청산별곡 제 7연에도
‘짊대’가 등장하고 나옹화상의 서왕가에도 ‘짐대’가 쓰였다.
이 마을에서는 이것을 신성시하여 ‘짐대성황님’이라고도 부른다.
[변천]
강릉시에는 강문마을 이외에도 안목마을, 월호평동, 송정동에도 진또배기가 세워져 있으나
현재는 강문동과 월호평동만 그 모습을 유지하고 동제가 치러진다.
이 마을 진또배기는 오랫동안 살아온 김기호가 3년마다
풍어제 때 깎아서 새로 세우고 있는데 도구는 주로 낫과 톱을 이용한다.
나무오리의 부리는 길게 만들고 눈은 나뭇가지의 잘라낸 자국에 생긴 자체를 이용한다.
남성황당은 사방 1m 정도의 기와집으로 태풍 루사로 허물어져 2005년에 새로 지었다.
동제는 어촌계장의 주도하여 운영한다. 어촌계의 비축금으로 매년 세 차례 마을제사를 지낸다.
정월 보름, 4월 보름, 8월 보름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제를 올리며
선주들이 중심이 되고 횟집을 운영하는 회원들도 있다.
4월 보름은 단오제 영신제 때 행해지므로 빈순애 단오굿 기능보유자 등
10명 내외의 단오무당이 이곳의 풍어제 열두 마당을 이틀에 걸쳐 지내준다.
'난설헌 蘭雪軒' - 심규선 습했던 것은 이내 메말라지고 가벼운 것은 차츰 무거워지네 꽃에게서 향기를 바다에서 파도를 나에게서 임의 이름을 떼어놓지 못하네 소란한 대기 아래 산개한 눈설레 범람에 지친 강이 바다로 향하네 들판아 펼쳐져라 산도 바위도 일어서라 골짜기로 굽이쳐 강물도 들이쳐라 임은 아실까 저 숲새의 둥지가 제 가슴에서 뽑은 깃털로 엮인 것을 얼어버린 듯 하다 터져 번지는 눈서리 그 속에 핀 꽃 내가 바라는 건 닿을 수 없는 꿈 내가 부르는 건 들리지 않는 노래 내가 원하는 건 천 번의 입맞춤이 아니라 나로서 나인 것뿐이외다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어런더런 안채에서 요란 피우던 나비 둘 물빛 푸르러지더라도 돌아오지를 못하네 황금 비녀 꽃아봐도 꽃술 저고리 걸쳐도 향불 연기만 자욱하고 거울 속 난세 신세라 거울 속 난세 신세라 임은 아실까 저 숲새의 둥지가 제 가슴에서 뽑은 깃털로 엮인 것을 얼어버린 듯 하다 터져 번지는 눈서리 그 속에 핀 꽃 내가 토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숨 내가 키우는 건 여물지 않는 열매 내가 원하는 건 천 번의 입맞춤이 아니라 나로서 나인 것뿐이외다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아니라 나로서 그저 나임을 아니라 아니라 나로서 그저 나임을 오늘 연꽃이 서리를 맞아 붉게 떨어졌노라 * 당신 안에서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시화가 터져 나옵니다. 그 열망의 원천은 씨앗 같은 당신의 심부와 그 안을 휘몰아치는 근원에서부터 발화합니다. 아득히 먼 옛날의 노래를 현재로 데려와 꽃피웁니다. 봉오리에 머금은 향기가 터트려질 때 대기도 시간도 함께 물이 듭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시절에도 '원한다'는 감각 자체가 당신을 살아있게 하였습니다. 사회의 직간접적인 강제나 세상이 원하는 모습에 당신은 도저히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따른 이유는, 당신이 삶을 사랑에 근거하였기 때문입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도 꽃을 피우는 한란寒蘭의 성정을 당신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떠났습니다. 당신은 살아있지만 곧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로써 당신 일생의 유일한 벗이었던 예술이, 가장 최후에 당신에게서 분리되며 떠날 시간이 다가왔음을 예감합니다. 생은 서리를 맞은 연꽃처럼 붉게 떨어졌으나, 당신은 영원히 지지 않을 이름을 피웠습니다. 우리는 당신 노래의 그림자에서 눈 속에 피어나는 난꽃의 향기를, 부드럽게 일깨워진 감각의 잔향 속에서 아득히 먼 과거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당신과 우리의 희원希願이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도 그 시대의 당신과 같습니다. 오직 '나로서 나인 것'뿐.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초희에게, 난설헌의 생애를 빌려 쓰고 부르다. /심규선
첫댓글 [오직 '나로서 나인 것'뿐.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세상의 모든 초희에게,난설헌의 생애를 빌려 쓰고 부르다.]
걷자님의 열의에
감사의 😉를 ~~~~~~~~
멋진 사진에 글 거기다 걷자님 아니면 있는 지도 몰랐을 노래까지~~~~~~~
심규선의 노래를 찾아 보다 우연히 '난설헌'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반가움이란...
퓨전 국악을 노래하는 상당히 인기가 있는 젊은 가수입니다.
그러네요~
맨발걷기를 즐겨하시던 님~
초희길에서 완주를 마치셨군요~
축하드리구요~
"맨발의 청춘"
딱~어울리는 닉인데요~?ㅋ
왕눈이님 아내이신 하니님~
첫 리딩이셨을텐데 업무로 인해
함께 못했습니다~
봉수대에서의 바우님들 미소에
저도 입꼬리 스윽~^^
걷자님~수고 많으셨어요~
다음 구간인 15구간에서 뵐게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곁에 와 있는데....
바쁜 건 좋은 거지만...얼굴 잊어 버릴 것 같다고 말 하려고 했는데....
15 구간에 볼 수 있다니.....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살 좀 팍~팍 찌고...건강 잘 챙기시길...^^
지난 두 번의 초희길 걸음 때 마다 일이 생겨, 저는 어제 처음으로 초희길을 걸었답니다. 시내를 걷는다고 들어서 그냥 스탬프를 찍기 위한 의무감으로 출석하였는데
날씨도 좋고 제가 좋아하는 적당한 높이의 오솔길 같은 산길로 연결되어 있어서 징말 좋았어요. 오랜만에 국장님의 진실인듯 거짓같은 거짓아닌 말씀을 듣고 깔깔 웃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역시 오랜만에 뵙게 된 왕눈이 구간지기님 넘 반가웠습니다.
걷자님, 멋진 후기 감사합니다.
단, 저~우에 제가 인상쓰는 사진 경고! 강퇴 대상이예용.
함께 걸으신 모든 바우님들, 수고많으셨어요~넘 즐거웠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담주 수목원길에서 또 뵈어요.^^
초희길은 도심을 가로 질러 걸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 길 이여서 좋은 것 같습니다.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부디 강퇴는 말아 주시길....^^
가을 햇살에 더 반갑게 빛이 나는 우리 바우님들!!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걷자님의 후기 ^^
억지로라도 열공 할 수 밖에 없는 걷자님의 후기 !!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머물다 갑니다~
늘 감사합니다~걷자님 ^^♡ 👍👍👍😍
완연히 깊어 가고 있는 가을...
걷기에 좋은 계절...
두 분을 자주 뵐 수 없어 조금은 아쉽습니다.
늦더위에 땀좀흘렸습니다.감동적인 후기에 늘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
보면 볼수록 소리 없이 화이팅 넘치는 실땅님.....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