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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영토 확장 역사(키예프루스, 표트르 대제)
키예프 루스 등장과 몽골 지배 후 분열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러시아인. 이 러시아인의 기원은 동슬라브족의 기원하고 맥을 같이합니다. 원래 러시아인들의 전신 동슬라브족들은 원래 북쪽 그러니까 지금의 발트해 근처에서 살았고 이 사람들은 바이킹들하고 통혼하면서 거주지를 형성하다가 862년경 바이킹의 지도자 류릭이 조금 아래로 내려옵니다. 지금의 벨라루스 근처에 있는 노보고로드로 들어옵니다. 이곳에 정하면서 자기들 스스로를 루스라고 했고 그 루스인이 만든 작은 건국을 루비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따듯한 남쪽을 찾아서 더 내려옵니다. 노보고로드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와서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남북을 관통하는 드네프르강 중류에 자기들의 삶의 거처를 만듭니다. 마치 우리 한반도에 사는 우리 한민족들이 위쪽에서 내려오면서 일부 사람들은 청천강 유역, 대동강 유역, 한강 유역, 금강 유역, 영산강 유역까지 축차적으로 내려온 것처럼 이 동슬라브족들도 아래로 내려오면서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 옆을 통과하는 드네프르강 중류에 자기들 삶의 터전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동슬라브족의 역사가 시작되고 이 공동체를 키예프 루스라고 불렀습니다.
키예프 루스는 범력이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모스크바까지 광활한 큰 영토로 여기는 동슬라브족에 해당하는 여러 족속이 살면서 이 사람들이 느슨한 정치연합체를 구성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키예프 루스 범위가 점차 10세기 12세기경 확대되고 더 아래쪽으로 확대가 되고 그러면서 당시 아래에 있었던 비잔틴제국과 교류하고 비잔틴제국의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동슬라브족 문화와 비잔틴 문화가 융합된 고유한 러시아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그 중심지는 지금의 모스크바 아래쪽 우크라이나 드네프르강 일대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모스크바 중심 사람들은 자기들의 척박한 토양, 혹독한 기후 이 조건을 피하기 위해서 좀 더 비옥한 좀 더 혹독하지 않은 기후를 찾아서 남쪽 볼가강 유역의 남쪽 스텝 초원까지 내려옵니다. 그러면서 일정한 영역은 확보합니다. 그런데 13세기 몽골족의 침입을 받고 그리고 오랫동안 몽골족의 후신인 금장 황국의 지배를 서부지방의 같은 경우는 100년 동부지방은 거의 길게는 300년 동안 몽골 지배하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이 몽골족이 동슬라브족 특히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러시아에 끼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합니다. 러시아인들은 몽골제국과 후속제국들 지배를 받으면서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키예프 루스의 문화와 그 유산들이 많이 파괴됩니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그 칸국이 지금의 러시아의 문화 당시는 키예프 루스의 문화였죠. 이것을 말살시킨 것, 이것을 자기들은 뭐라고 부르냐면 타타르의 멍에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타타르인은 지금의 터키 쪽에 타타르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 유럽에서는 타타르 인도 유목민족이거든요, 그래서 몽골족도 유목민들이니까 몽골계의 유목민족 그리고 트루크계의 유목민족을 다 총칭해서 당시 유럽 사람들은 타타르라고 불렀습니다.
몽골과 유목민족 타타르족이 워낙 키예프 루스의 문화를 많이 말살시키고 파괴하고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타타르의 멍에라고 합니다. 그 멍에 때문에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은 동양인에 대해서 아주 차별적이고 배타적이고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300년의 몽골 지배의 유산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러시아 영토 팽창과 다민족 국가 등장
타타르 멍에라고 할 정도로 몽골제국의 후손들에게 300년 동안 핍박을 받고 몽골제국의 후손들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자기들이 살고 있었던 지금의 러시아인들이 본격적으로 타타르 지배에서 벗어가게 된 것은 대략 1480년 경입니다. 1480년 경이면 이베리아반도에 있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아프리카 동쪽 대서양을 탐험하던 시기인데 그때까지 러시아는 몽골제국에 후손들이 만든 나라에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480년 이반 3세가 타타르 지배에서 벗어나서 모스크바 공국을 만들어냅니다. 모스크바 공국이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키예프 루스 특히 우크라이나, 벨라루스가 같이 함께해서 만들었던 키예프 루스가 이제 분화가 됩니다. 그리고 이반 3세 손자인 폭군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반 4세가 강력한 리더십과 군사력으로 러시아 영토를 동쪽과 남쪽으로 확대시킵니다. 실제로 이반 4세 이전에 러시아는 많이 막혀있었습니다.
동쪽은 타이가로 남쪽은 스텝으로 스텝의 아래에는 몽골과 트루크 쪽으로 서쪽 발트해에는 폴란드, 스웨덴으로 막혀있었습니다. 남진 정책의 일환으로 볼가강 중류에 있는 타타르족의 카잔한국을 병합시키고 1556년경에는 볼가강 하류에 있는 하스트라한국까지 차지하면서 카스트로 나가는 길목을 확보합니다. 러시아 영역이 모스크바 중심에서 남쪽으로 엄청 넓어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반 4세는 흑해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 또 캅카스 근처에 있는 노가이 한국까지 침공하고 그렇게 해서 1577년경 노가이 한국 전역이 완전한 러시아 영토로 편입이 됩니다. 그리고 이반 4세는 동쪽으로도 눈을 돌립니다. 그래서 몽골의 북서쪽에 있는 이르티슈 강 부근에 있는 몽골계의 시비르한국을 차지합니다. 이 시비르한국이 이제 이쪽을 시베리아라고 하는 지명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반 4세가 몽골계가 만든 시비르한국을 차지하면서 동쪽으로 나가는 발판을 확보했었고 동쪽의 땅을 시비르한국의 이름을 따서 시베리아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반 4세 때 동쪽 시비르로 영토를 확대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코자크 전사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크라이나에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반 4세는 남쪽으로 동쪽으로 영역을 꽤 많이 확대하고 그러고 나서 발트해 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가려고 하려는데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당시 한자 동맹국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에 막혀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반 4세는 남쪽과 동쪽으로 러시아의 영토를 확대한 아주 유명하고 강력한 황제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폭군이고 야만적이고 해괴망측한 그러한 정책을 취했지만 이반 4세의 영토 확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이반 4세 이후에 또 하나의 강력한 리더가 등장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표트르 1세입니다.
우리가 흔히 표트르 대제라고 하죠.황제 중에서도 좀 특별하다고 해서 Great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제라고 합니다. 이 표트르 대제의 리더십을 통해서 스웨덴과 싸워서 발트해로 나가는 길목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1703년에 확보하고 지금의 발트 3국을 다 자기들의 영역으로 확대합니다. 표트르 대제는 평소에 후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할 수 있다고 하면 콘스탄티노플과 인도 가까이 접근하라. 누가 되든 그곳을 통치하는 자야말로 세계의 진정한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꾸준히 싸움을 도발하라. 터키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 페르시아만까지 깊숙이 들어가고 할 수 있다고 하면 인도까지 들어가라. “ 이런 이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표트르 대제의 남진 정책입니다.
표트르 대제는 그동안 멀지 않은 항구를 찾기 위해서 흑해, 카스피해 더 깊숙이 페르시아만까지 인도까지 내려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표트르 대제의 남진 정책을 충실히 따른 또 하나의 유명한 여자 황제가 있습니다. 그 여자 황제를 우리는 예카테리나 2세라고 합니다.이 예카테리나 2세는 크림반도를 장악하고 흑해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확보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땅인 알래스카까지 코자크 인들을 보내서 1784년에 알래스카도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확보를 합니다. 물론 알래스카는 미국에 양도를 합니다마는 예카테리나 여제는 흑해 쪽 또 동쪽의 베링해를 넘어서 알래스카까지 간 정말 대단한 영토를 넓힌 정말 추앙받는 여자 황제였던 것입니다. 예카테리나 여제 이후에도 또 계속해서 후임 황제들은 남진 정책과 동진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습니다. 알렉산더 1세는 스웨덴으로부터 지금의 핀란드를 차지하고 또 오스만튀르크 제국과 싸움을 해서 베세라비아도 확보하고 그다음에 1860년에는 두만강 위쪽에 있는 우수리강 동쪽까지 진출하고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연해주와 그 옆에 있는 사할린섬까지도 차지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 1세 때 두만강 위에 있는 두만강 위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 항구를 만들고 극동함대 기지를 만들고 태평양 정복의 야심을 불태웁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시베리아 철도가 완성됩니다. 그게 1904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1904년 이것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해였습니다.
러일전쟁까지는 러시아의 영토 확장은 정말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러일전쟁이 패배로 끝나고 그 뒤에 러시아 혁명 이렇게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러시아에서 만들어지면서 러시아의 서쪽으로 남쪽으로 동쪽으로 영토 확장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됩니다. 이렇게 14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영토 확장 정책은 오늘날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느냐면 특히 러시아의 남부 국경지방에서 크고 작은 영토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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