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쓸쓸하고 종종 행복하다 / 임정자
3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로 지낸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복 받은 주말부부다. 남편은 내년 하반기에 퇴직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목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광주라서 부담이 없다. 이곳에 일이 생기면 주중이라도 내려와 다음 날 아침이면 올라간다. 거리가 지척인데도 남편의 선택을 존중한다. 나는 지금 이 시각이 참 좋다.
혼자서 지낸다는 것은 끼니마다 뭘 먹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나 먹고 싶은 걸 준비하고,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움직이는 자유가 좋다. 주말부부가 가장 좋은 점은 나를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과 자식에게 쓰던 시간을 오롯이 내 일상으로 생활한다. 친구들과 놀다 밤 늦게 집에 들어와도 잔소리 듣지 않아도 된다. 저절로 흥얼거린다. 남편이 걱정되지만, 그도 운동하고 스스로 관리하는 사람이라 믿음직하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따지지 않고 씩씩하게 누리고 있다. 남편이 곁에 없어서 가끔 쓸쓸하고 종종 행복하다.
금요일이면 주말에 먹을 반찬을 궁리한다. 남편의 밥상을 준비하려고 마트에 갔다. 오늘 저녁은 고등어조림으로, 토요일은 수육, 일요일은 잔반 처리로 남은 음식을 먹을 생각이다. 해서 무, 고등어, 삼겹살을 샀다. 그리고 레몬도 함께 시장바구니에 담았다. 토요일 오후 윗집 승희 씨 텃밭에서 상추, 쑥갓, 시금치를 뜯어 왔다. 든든히 수육을 먹고 원두 갈아 따뜻한 커피를 함께 마셨다. 행복한 시간이다.
여기저기 친구들이 매일 먹는 물이 레몬수라 한다. 몸의 독소를 배출해 피가 맑아지고 간의 해독을 도와준다는 말을 들었다. 마트에서 레몬 스무개를 샀다. 굵은소금으로 박박 문질렀다. 그런 다음 베이킹소다로 레몬 표면을 씻어주고 물을 부어 30분 쯤 담갔다 꺼내 끓는 물에 레몬을 공굴리기했다. 남편에게 레몬 자르는 것을 도와달라 부탁했다. 나는 숭덩숭덩 거칠고 두껍게 잘랐지만, 남편은 반달 모양에 얇게 썰었다. 자기처럼 잘라야 레몬이 잘 우러나온다고 가르쳐준다. 함께 일하니 빨리 끝났다. 설탕을 조금 넣고 골고루 섞어 유리병에 담은 레몬청을 실온에 두고 하루 지나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이뿐이 아니다. 4일 전, 이웃집에서 무 여섯 개를 가지고 왔다. 동치미를 담갔는데 맛이 밍밍하다. 단지 짜고 싱거운 게 아니라 제맛이 나지 않았다. 남편이 수저로 한 숟갈 떠먹더니 찹쌀죽을 걸쭉하게 쑤라 했다. 그 죽과 새우 액젓을 넣더니 맛이 달라졌다. 겨울에 할머니가 쪄준 고구마에 곁들어 먹은 동치미 맛이다. 사이다 음료를 넣지 않아도 그 맛을 냈다.
내가 종종 행복한 것은 순전히 주말부부로 지내기 때문이다.
첫댓글 '가끔 쓸쓸하고 종종 행복하다' 제목이 맘에 쏙 듭니다. 여유로운 생활은 부럽구요. 글도 좋아요.
고맙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들려오는 듯한 선생님 글이 부러워요
'남자들이여 떠나서 살아라'라고 외치는 것 같네요. 하하.
우리네도 결혼 생활 절반쯤을 따로 지냈습니다.
에고, 제가 표현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건 아니고요. 조금의 거리는 약이 되는 것 같아요. 연식이 좀 되는 부부는요. 하하.
댓글, 고맙습니다.
주말만 함께 지내는 부부, 무지 부럽습니다.
다 좋지만은 않습니다만 얼마남지 않아 즐기고 있습니다. 저도 곧.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군요. 하하!
정씨 집안을 구했습니다. 남편이 정씨.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