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이맘때쯤 단톡방에서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많이 보셨겠지만
다시 한번 일독을 권합니다.
어버이 마음
(조용한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님이 물었어요.
"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 거유? "
" 가긴 어딜 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
아버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어요
" 그래 내일은 무얼 할 거유? "
" 하긴 무얼 해? 고 추모나 심어야지 "
" 내일이 무슨 날인 지나 아시우? "
" 날은 무신 날! 맨날 그날이 그날이지~ "
" 어버이날이라고 옆집 창식이 창길이는 벌써 왔습디다."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댕겼지요.
" 다른 집 자식들은 철되고 때 되면 다들 찾아오는데,
우리 집 자식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원~"
어머님은 긴 한숨을 몰아쉬며 푸념을 하셨지요.
" 오지도 않는 자식놈들 얘긴 왜 해? "
" 왜 하긴? 하도 서운해서 그러지요. 서운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유? "
" 어험~ " 아버님은 할 말이 없으니 헛기침만 하셨지요.
" 세상일을 모두 우리 자식들만 하는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자식 잘못 기른 내 죄지 내 죄야! "
어머님은 밥상을 치우시며 푸념 아닌 푸념을 하였지요"
"어험!! 안 오는 자식 기다리면 뭘 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아버님은 어머님의 푸념이 듣기 싫은지 휭하니 밖으로 나가셨어요.
다음 날, 어버이날이 밝았지요.
조용하던 마을에 아침부터 이집 저집 승용차가 들락거렸어요.
" 아니 이 양반이 아침밥도 안 드시고 어딜 가셨나?
고추모를 심겠다더니 비닐하우스에 고추 모도 안 뽑고.."
어머님은 이곳저곳 아버님을 찾아봐도 간 곳이 없었지요.
" 혹시 광에서 무얼 하고 계시나? "
광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거기엔 바리바리 싸 놓은 낯설은 보따리가 2개 있었어요.
보따리를 풀어보니 참기름 한 병에 고춧가루 1봉지, 또 엄나무 껍질이
가득 담겨 있었지요.
큰아들이 늘 관절염 신경통에 고생하는 걸 알고 준비해 두었던 것이지요.
또 다른 보따리를 풀자.. 거기에도 참기름 한 병에 고춧가루 1봉지,
민들레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지요.
작은 아들이 늘 간이 안 좋아 고생하는 걸 알고 미리 준비해 두셨나 봐요.
어머님은 그걸 보시고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언제 이렇게 준비해 두셨는지..
엄나무 껍질을 구하려면 높은 산엘 가야 하는데, 언제 높은 산을 다녀왔는지..
요즘엔 민들레도 구하기 힘들어 며칠을 캐야 저만치 되는데..
어젠 하루 종일 안 보이시더니, 읍내에 나가 참기름을 짜 오셨던 거지요.
자식 놈들이 이 마음을 알려는지.. 어머님은 천천히 발을 옮겼어요.
동네 어귀 장승박이에 아버님이 홀로 앉아 있었지요.
구부러진 허리에 초췌한 모습으로 저 멀리 동네 입구만 바라보고 계셨어요.
어머님은 아버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시치미를 뚝 떼고,
" 아니 여기서 뭘 하시우? 고추모는 안 뽑고? "
" ......... "
" 청승 떨지 말고 어서 갑시다. 작년에도 안 오던 자식놈들이 금년이라고 오겠소? "
어머님이 손을 잡고 이끌자, 그제서야 아버님은 못 이기는 척 일어났지요.
" 오늘 날씨 왜 이리 좋은 기여? 어서 가서 아침 먹고 고추모나 심읍시다 "
" ..... "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따라오면서도 자꾸 동네 어귀만 쳐다보셨지요.
" 없는 자식복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 다우? 그냥 없는 듯 잊고 삽시다 "
" 험험 ... "
헛기침을 하며 따라오는 아버님이 애처로워 보였지요.
집에 돌아와 아들 오면 잡아주려고 애지중지 길러왔던 씨암탉을 보고..
"오늘은 어버이날이니 우리 둘이 씨암탉이나 잡아먹읍시다.
까짓것 아끼면 무얼 하겠수? 자식 복두 없는데.. "
" ...... ",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 오늘은 고추 모고 뭐고 그냥 하루 편히 쉽시다.
괜히 마음도 안 좋은데 억지로 일하다 병나면 큰일 아니우?
다른 집들은 아들딸들이 와서 좋은 음식점에 외식이다
뭐다 하는데.. 우린 씨암탉 잡아 술이나 한잔합시다 "
" 험험 ... ", 그때였어요.
아침상을 마주하고 한술 뜨려 하는데, " 아브이 어므이~ "
하면서 재 너머 막내딸과 사위가 들이닥쳤지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심하게 저는 딸이라
늘 구박만 주었던 딸인데, 사위랑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들어왔어요. 깜짝 놀라며~!
" 아니 니가 어떻게.. 제 몸 하나 잘 가누지 못하는 니가 어떻게 왔니? "
" 어므이 아브이 !! 오늘 어브이날 이라 왔어.
아브이 좋아하는 쑥 버므리떡 해가지고 왔어. "
그러면서 아직 따끈따끈한 쑥 버무리떡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 아니 이 아침에 어떻게 이 떡을 만들었니? "
" 저이하고 나하고 오늘 새벽부터 만들었어 맛이 있을는지 몰라 히히 "
" 이보게! 박서방!! 어떻게 된 건가? "
" 네! 장모님 저 사람이 어제부터 난리를 쳤어요.
장인어른께서 쑥버무리떡 좋아하신다고 쑥 뜯으러 가자고
난리를 치고, 또 밤새 울거내고 새벽부터 만들었어요. "
" 그랬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왔어? 천천히 오지? "
" 저 사람이 쑥 버무리떡은 따끈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식기 전에
아버님께 드려야 한다고 뛰다시피 해서 가지고 왔어요~ "
" 에이구 몸도 성치 않은 자식인데.. "
소아마비로 인해 딸이 몸이 성치 않아 몇 년 전 한쪽 다리가 불구인
사위를 얻어 시집을 보냈던 딸이었지요.
언제나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자리했던 딸이었기에
그저 두 내외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지요.
어느 사이 어머님의 눈가엔 눈물이 배어 나왔어요.
" 참! 아브이 어므이 이거!! " 하면서 카네이션 두 송이를
꺼내어 내미는 거였지요.
" 저 이가 어제 장터에 가서 사 왔어! 이쁘지? 히히 "
" 내가 달아 드릴게!! " 하면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었지요.
" 아브이 어므이 오래오래 살아야 돼!! 알았지? 히히 "
" 그래 알았다 오래 살으마!!
너희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 박서방 정말 고맙네!! "
" 아니에요 장모님!! 두 분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유 "
" 그려 그려 정말 고맙네!! "
" 아브이 어므이 어서 이 쑥떡 먹어봐!! 맛이 어떨는지 몰라 히히 "
" 그래 알았다 "
아버님과 어머님은 쑥 버무리떡을 입에 넣으며
목젖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지요.
눈가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참으며..
" 그래 참 맛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쑥떡은 처음 먹어 보는구나~
당신도 그렇지요? " " 흠흠 으응.. "
아버님은 목이 메어 더 이 상 말을 하지 못하셨지요.
" 참!! 술 술.. "
사위가 잊었다는 듯 보따리에서 술병을 꺼냈어요.
" 이거 아브이 어므이 드린다고 박서방이 산에서 캔 산삼주야.
작년에 산에 갔다 캤는데, 팔자고 해도 장인어른 드린다고
안 팔고 술 담은 거야 "
" 박서방이 산삼을 캤구먼 "
" 네! 작년에 매봉산에서 한 뿌리 캤시유 "
" 에구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
산삼주를 받아든 아버님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요.
" 평생 홀아비로 늙어갈 몸인데,
저렇게 이쁜 색시를 주셔서 넘 고마워유 "
" 무슨 소린가? 몸도 성치 않는 자식을 받아 준 자네가 고맙지!! "
" 아녀유?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색시구먼 유 "
" 그려 그려 앞으로도 못난 자식 잘 부탁하네!! "
" 장인 장모 어르신 오래오래 사세유~ "
아버님은 눈시울이 뜨거워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슬며시 일어나 나가셨지요.
병신자식이라 불쌍하게만 여겼지,
아들처럼 공부도 안 시키고 결혼식도 안 올리고,
그냥 시집을 보낸 딸자식이었는데..
그저 시집보냈으니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안 쓰던 그 자식이
어버이날이라고 이렇게 불쑥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지요.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쑥 버무리떡을 밤을 새워가며 해가지고 올 줄이야..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떡을 먹어 본 적이 있었던가?
무엇이든 아들 형제만 주려고 생각했지, 병신 딸은 언제나 안중에 없었지요.
행여 병신자식이라고 업신여겼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어요.
불구의 몸이지만, 딸의 마음이 저렇게 깊은 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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