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이기영 지음 『작은 사람 권정생』
권정생
은 일제 강점기에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전쟁과 굶주림 속에 살았고 조국으로 돌아와서는 한국전쟁을 경험한다. 그의 현실은 아프고 외롭고 가난했다. 무엇보다도 아픈 몸은 그에게 슬프과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었다. 인생을 설계하며 꿈을 꾸어야 할 19살에 결핵이라는 병을 얻고 30살에는 2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권정생은 ≪강아지 똥≫을 쓰는 동안 그 2년을 넘겼고, 그 2년을 스무 번이나 넘겨 40년을 살았다. 그 사이 그는 동화작가가 되어 꾸준히 글을 썼다. 그의 몸으로는 글쓰기가 힘에 벅찬 노동이었지만 누워서라도 글을 썼다. 그는 제가 먹을 것은 제 손으로 농사를 지어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에게 글쓰기는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권정생은 ≪강아지 똥≫을 시작으로 40년 동안 세상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 버려진 것들과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당시 동화작가들이 반공 동화를 쓰고 있을 때 이를 부끄러워하며 북한도 우리와 한 핏줄 한 민족임을 드러내는 동화를 썼다. 그가 반공을 반대하는 것은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세상을 거꾸로 보며 일관되게 현상과 싸웠으며 고된 현실 속에서도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책익는 마을 김은수님 글 인용)
작은 사람
사람은 지나 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세계 역사의 위인들을 보면 생전 외롭게 살다가 죽어 주목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정생도 그러하다. 지독한 가난과 소변줄을 꽂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을 갖고 당시 주류가 인정하지 않는 동화와 동시를 써냈던 권정생. 그는 30살 즈음에 일직교회 문간방 종지기가 되어 16년을 살았고, 이후 빌뱅이 언덕에 8평짜리 초가집을 짓고 25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해학과 재기 넘치는 유언장을 남기고 2007년 5월 17일 오후 2시 17분에 눈을 감았다. 그의 통장에는 10억이 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이 돈을 ‘전쟁과 가난에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고 했다.
그가 죽자 사람들은 그를 성자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냐고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성자가 되는 순간 박제가 된다. 따라 본 받는 것이 아니라 우러러 받들어 모셔야 하는 분이 되면, 그는 나와 다른 영역의 사람이라고 선을 긋기 때문이다. 저자도 권정생 일대기를 바라보면서 세 가지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그는 치열하게 살았다. 따라서 그의 삶은 ‘현실’속에서 이야기 되어야 한다. 둘째, 그는 ‘아동문학 작가’라는 것. 셋째, 그의 ‘거꾸로 세계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저자는 가난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면에서 그를 성자로 받들어 모실 존재로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살았는지, 살 수 밖에 없었는지를 그의 구체적 삶을 들여다 보며 맥락을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이렇다. 1부는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 권정생의 출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 2부는 10살에서 30살 까지. 귀국 후 병을 얻고 시한부 인생이 된 시절이야기. 3부는 '거꾸로' 세계관을 갖게 되는 과정과 '동화작가 권정생'이 평생 만나게 될 친구와 동료들 이야기. 4부는 교회 문간방에서 살았던 16년 이야기. 빌뱅이 언덕 작은 집에서의 25년간 삶의 이야기. 우리는 책을 통해 그가 쓴 대표적인 작품이 언제 어떻게 구상되고 쓰여지고 발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를 알고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 본다면 그 감동이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정생의 사랑
곰곰이 따져 보면 권정생이 살았던 시대에는 수 많은 권정생같은 처지의 삶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권정생은 어떻게 똥이 꽃보다 아름답다. 가난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세계관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 것은 순간 순간 경험하는 사건에 대해 자기 정리를 하며 넘어가는 축적의 과정을 통해 가능했을 것이다. 17살에 고구마 가게 점원을 하며 주인의 눈속임 판매 지시에 ‘돈의 힘’을 느끼고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한 결심을 현대 정주영이라면 했었을까? 거지 생활 3개월 하면서 자신을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가지면서 동시에, 거지 나사로처럼 살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렇다. 우리는 권정생의 이러한 삶을 성찰하는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나를 보고 둘을 경험해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각 자의 몫이지 않겠는가.
또 하나는 분투다. 그는 죽는 힘을 다해 글을 썼다. 글을 쓰고 몇 날 며칠을 앓아 누워 있었다. 누워 있으면서도 글을 쓸 힘이 생기면 또 글을 썼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했다. 권정생의 삶을 굳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사람과 세상,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정생 사랑의 구체적 모습은 이렇게 분투하는 것이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권정생의 사랑을 담아 보자.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볼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하늘에 계신 권정생이 미소 지으며 우리의 삶을 격려하고 있다고 믿는다. 분투하며 성찰하기를.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첫댓글 좋습니다. ... 저토 얼굴 못봐서 아쉬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