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8일(주일) 오후예배
말씀 : 신명기 24:10~22
제목 : 약한 이웃을 돌아보라!
도입 :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라!
하나님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항상 가나한 이웃을 돌아볼 것을 권고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이웃은 항상 네 곁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마음은 약한 그들을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오후의 말씀이 어찌보면 오전의 말씀과 좀 일맥상통하기도 한데, 오늘 오후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도로서 이웃과 더불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일반 성도나 백성이 가난한 이웃에 대해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가를 잘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는 그들에게 돈을 꾸어주었을 때 전당물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과 둘째는 품꾼을 썼을 때 노동비를 제때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곡식 이삭을 많이 흘려 두어서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가 이삭을 거두어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가난한 자의 전당물을 돌려주라!
신명기 24:10에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네 이웃에 무엇을 꾸어줄 때’라고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이웃에게 꾸어줄 수 있는 재력이 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꼭 부자는 아니더라도 땀흘려 열심히 벌어서 그래서 자력이 되고 이웃에게 조금이나 꾸어줄 수 있는 일반 백성 혹은 성도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꾸어주는 자가 되고 꾸는 자가 되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인생사에서 때로는 꾸어서 살아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또 때로는 꾸어줄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특별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주님의 복을 받아 꾸어주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라’ 이 말씀은 돈을 꾸어주면서 전당물을 잡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 너가 직업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폭압적인 인상을 줄 수가 있습니다. 돈을 꾸어주면서 저당물을 잡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꾸어주면 논을 저당 잡고 돈을 꾸어줄 수도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작은 돈일 때 옷이나 가재도구 등을 저당 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 주인이 직접 가지고 나와서 주라고 했습니다. 11절에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돈을 꾸는 사람 자신이 스스로 집에 가서 전당물을 가지고 와서 돈을 꾸어주는 사람에게 주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12절에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내게서 돈을 꾸어간 사람이 어느 정도 사는 사람이면 전당물을 가지고 있어도 됩니다. 그래야 자신의 전당물을 찾으려고 빨리 돈을 벌어서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면 다르다는 것입니다.
13절에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돈을 꾸어준 가난한 사람이 만일 옷을 전당 잡혔다면 해가 질 때는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그 사람은 그 옷을 이불삼고 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가 고마워서 잠을 자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그럴 때 네게 복이 되며 네게 공의로움이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가진 자의 배려입니다. 이사야 58:10~11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0.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여 그들에게 만족함을 줄 때 네 빛이 흑암 중에 떠오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인도하셔서 네 영혼이 만족하며 네 뼈가 견고하고 너는 물댄 동산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복을 주십니다. 아멘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41~42절입니다. [41.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 주님이 상을 주실 것입니다.
둘째, 품꾼을 학대하지 말라!
24:14절에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품꾼이 ‘네 형제 중에 있거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형제는 친형제로 볼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문맥상 동포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동포를 형제라고 합니다. 이웃 중에 가난한 품꾼을 말합니다.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 중에 가난한 객이라도 그를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학대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품삯을 제 때 주는 것입니다. 15절에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일당 노동자는 그날 일하고 그날 받습니다. 간한 자들을 그날 벌어서 그날 먹고 삽니다. 그래서 그날 품삯을 가로채고 주지 않으면 그 일꾼의 가족은 굶게 됩니다. 그러므로 해질 때까지 미루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일이 끝나면 바로 주라는 것입니다.
만일 네가 그에게 품삯을 주지 아니하여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것이 너에게 죄악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부르짖음을 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너희가 애굽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8절에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아주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노예는 자신의 재산이 없습니다. 안 굶어 죽을 정도의 식량만 줍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매일 비참하게 노역을 해야 합니다. 그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의 힘든 생활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노예생활에서, 그 비참함에서 하나님이 전적인 은혜와 능력으로 구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니 너도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을 때 세상 죄악 속에서 살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모든 죄가 다 사함을 받고 이제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의인된 삶을 살아갑니다. 뿐만아니라 이전에 비참하게 살았다면 이제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창대한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고마움을 잊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아량을 베풀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내가 좀 복을 받아서 잘 산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고 품삯도 제대로 안 주고 배려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좋아라 하시겠습니까! 말이 안 되는 것이죠.
예화) 영화 베테랑
우리나라 영화 중에 베테랑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한 운수업자가 임금을 받지 못해서 대모를 합니다. 대기업의 하청업에서 일을 받아서 일을 했는데도 임금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장에게 아무리 말해도 사장이 상부기업에서 돈을 안준다고 임금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대기업 앞에서 데모를 했습니다. 대기업 회장 아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자시 사무실에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청업체 사장도 불러서 임금을 주기는커녕 싸움을 시키고 그 과정에서 운수업자가 기절을 하게 됩니다. 죽은 줄 알고 치료하지 않고 건물에서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휴대폰 문자에 거짓으로 자살하는 의향의 글을 남깁니다.
경찰들이 뇌물로 얽혀서 덮으려고 할 때 한 베테랑 경찰이 이것을 파헤쳐서 결국 범인들을 잡아넣는 것입니다. 임금 몇 백만 원 때문에 살인미수에 많은 사건에 얽히게 됩니다. 포악한 악덕 기업의 처사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한 기업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대기업에 근로자로 일하는데 임금 외에 보너스를 타는데 수천만원을 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익배당을 근로자들과 나눈 것입니다. 오늘날 근로자들은 잘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 중에 사업가가 있다면 공의로운 사업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빛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아멘
셋째, 밭에 이삭을 남겨두라!
하나님의 마음은 자비로 가득차 있습니다. 한 예로 곡식을 거두고 나서 이삭을 거두지 말고 남겨 두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가난한 자나 나그네가 이삭을 주워서 타작을 하여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19절에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뭇’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오메르’인데 ‘곡식더미’를 말합니다. 곡식더미 하나 정도 잊어버리고 왔으면 그냥 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그것으로 연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객은 항상 보호자 없는 약자로 표현됩니다. 보호자도 없고 재산도 없는 가난한 자들이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0절에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라고 했습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인데 그 열매로 기름을 짜서 사용합니다. 처음에 한 번 감람나무 열매를 따낸 후에 나머지는 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객과 고아와 과부가 그 열매를 따서 기름을 짜서 사용하거나 팔아서 산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포도원의 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포도열매를 싹 다 따버리지 말고 적당히 따고 나머지는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가난한 자들이 남은 것을 따서 먹고 사는 것입니다.
22절에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것을 잊지말라는 것입니다. 그 고통의 세월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힘든 자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하셔서 이렇게 땅을 분배하여 주어서 지주가 다 됩니다. 지주가 되어 약한 사람들을 착취하거나 학대하지 말고 아량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아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귀족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도덕적 의무입니다.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을 보살피는 도덕성을 말하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8:6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참된 금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흉악한 결박을 풀어주며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의 멍에의 줄을 풀어주어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부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여 주며 사랑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신앙입니다. 아멘
결론)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아멘
그래서 자비의 정신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흑암 중에 낮 정오와 같은 빛이 우리의 삶에 비치게 하는 일입니다.
또한 지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신앙을 통해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더욱 베푸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