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향여(還鄕女)와 사모바위 이야기(정찬일 기자)♡
1,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7.1.3일 ~2.24일 까지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는
조선 제16대王 인조(仁祖)로 하여금 삼전도 (現 송파구 삼전동)에서
9번 땅에 이마를 찟는 항복을 받고 조선백성
60만명을 포로로 끌고 간 굴욕적인 전쟁입니다.
포로로 만주 심양으로 끌려간 사람들 중 일부는
돈을 주거나 도망을 쳐서 돌아왔으나 여자들은
오랑캐들에게 정조를 더럽혔다하여 시부모나 남편들이
받아드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에 인조는 최명길의 건의를 받아드려
각 지방의 강물을 환향녀들이 발을 씻는 곳으로 지정하고
그곳에서 깨끗이 발을 씻으면 정조를 빼앗긴 것을 눈감아주는 것으로
받아드리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당시 환향녀 20여만명 중 한성과 경기지방 여자들이 제일 많았고
돌아온 여자들도 가장 많았는데 이들은 인조가 지정해 준 홍제천에 와서
발을 씻었는데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여자들을 환향녀라고 불렀는데
그래도 시가나 남편들이 받아들이지 않거나 냉대하여
이들 중 일부는 자결(自決)을 하거나 홍제천 주변에서 주점을 여는 등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환향녀들은 인조가 자기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고마운 곳이라하여
홍제천 주변을 홍은(洪恩) 이라했으니 이것이 오늘 날 홍은동의 유래입니다.
2, 사모바위(김신조 바위)는
북한산 비봉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이 쓰던
모자와 같은 모양의 바위가 있고 이바위를 사모바위라고 부르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옵니다.
병자호란 때 한 젊은이가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와보니
사랑하는 여인이 靑나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북한산에 올라가
北쪽을 바라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그자리에서 바위로 변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바위는
1968년1월21일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한 남파간첩 김신조 일당 31명이
내려오다가 이 바위에서 피신했다고 해서 일명 김신조 바위라고도 부릅니다.
우리 민족은 역사 이래 930여차례나 중국과 일본 등의 침략을 받기만 했는데
그때마다 나라에 힘이 없어서 일방적으로 뼈아픈 희생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보고 있는 고려와 거란전쟁 드라마를 시청하면서도
나라가 못살면 억울하게 당할 수 밖에 없슴을 수없이 곱씹습니다.
부디 정신 바짝차리고 우리의 국방력을 튼튼히 해서
병자호란과 같은 굴욕을 우리 후손들만은
다시는 겪지 않도록 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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