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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피하기 (욘1)
찬양 : 공감하시네
본문 : 욘1:1-3절 ☞ https://youtu.be/zEfdVe6_uSQ
오늘 찬양의 가사 중 이 부분이 나를 감동시킨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상황에 공감하시네’
삶의 모든 자리를 공감하시는 주님이 계셔서 답답한 내 마음을 주님 앞에 오늘도 토설하며 주 앞으로 나아가 주 품에 안긴다. 주님 ~ 받아주소서.
어제는 코로나로 취소된 2020년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송년파티를 작은교회와 동행하는 다른 대안을 찾는 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한 분 목사님께서 작은교회 사역자들을 위해 130만원을 모금하여 후원하시면서 어려운 작은교회 사역자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하셨다. 그 전화를 받으며 <작은교회와 동행하기 제3탄>을 시작하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회의를 통해 우리는 작은교회 100교회에 신문지 한 장의 작은 동행을 위해 목회자들에게 2021년을 준비할 수 있는 도서와 13가정을 선별하여 따뜻한 식사비를 지원하고 또 작은교회에 아직 강대상 가림막을 설치하지 못한 교회들에게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결정하고 크리스마스 전에 전해드리고자 한다. 주님, 이 어려운 때 작은교회를 붙잡아 주소서.
이제 설계가 완성되어 대금이 지불되고, 본격적인 작업을 위한 준비들이 시작되어 다음주 본 계약을 하고 공사가 시작된다. 늦었지만 이제는 시간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련다.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들의 신문지 한 장이 되기 위해서만 오늘도 충성을 다하며 나아가기를 다짐한다. 필요한 인력과 재정을 주여 인도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이제 38번째 책 요나서를 묵상한다. 너무 유명한 책이고 요나란 선지자의 인간됨에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그런 성경이라 그 어떤 성경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성경이다.
본문에는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름과 그 부름에 대항하는 선지자를 보여줌으로 일반적인 선지자의 반응과 다른 면을 처음부터 보여준다. 3절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기 두 번에 걸쳐 반복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란 단어가 요나 선지자의 캐릭터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다시스로 하나님이 명령한 느니웨에서 가장 먼 곳으로 도망을 시도한 것이다.
아니 선지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가? 무시하려면 그냥 외면하고 이스라엘 땅에 있지 왜 다시스로 도망가는가? 그는 하나님을 알고 있기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고, 도저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지 않아 순종이 불가능한 자리를 찾아 당시 니느웨에서 가장 먼 곳으로 알려진 다시스로 가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는 장소적으로 멀리 가면 하나님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모두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는 존재이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또 환경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뜻에 요나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에 대한 오해가 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육체적 한계안에 갇혀 있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에 자유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100세의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의 계보를 마느셨고, 80의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당대 최대의 나라 애굽을 대항하여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분이시며, 처녀를 통해 아들을 낳음으로 인류 구원을 시작하신 분이시다. 아멘.
전능하신 분의 부르심은 그렇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그분의 부르심은 순종이 답이다. 그러나 인간은 복잡하다. 선지자인 요나가 그러면 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이런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한 것일까?
본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2절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은 니느웨가 너무 악독함을 하나님이 다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심판하시면 되는데 하나님은 그 사실을 그들에게 외치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에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간 것이다.
요나서 전체를 통해 아는 것은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므로 저들이 구원받을 것이란 사실을 믿고 있었다. 실제로 하나님은 니느웨에 온역과 일식을 통한 징조로 마음이 녹여놓은 상황이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해도 하나님은 가능하심을 요나 선지자는 믿고 있었다. 그래서 <재앙을 내리지 않을 줄 알았음이니이다.>라고 4장3절에 고백하고 있다.
요나 입장에서 니느웨 백성은 구원받아야 할 백성이 아니라 심판을 속히 받아야 할 백성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요나의 생각은 당대 모든 신앙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선지자 입장에서도 도저히 이런 인간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외면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간 것이다.
인생을 살면 이런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의 충돌이 일어난다. 죄된 인생의 생각이고 편협한 인간의 생각이 넓고 크신 하나님의 생각을 어찌 다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나는 매번 요나가 되어 하나님의 생각을 외면하고 다시스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매번 요나처럼 다시 니느웨로 돌아오는 사건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요나서는 우리에게 친근하다.
오늘 주님은 말씀을 통해 내 생각을 진단하신다.
공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내 생각을 주장하고 싶은 자리들이 많다. <내 생각에는 ~>
북왕국 이스라엘의 기원전 8세기 세계의 지형이 요동하던 시대, 전 세계를 힘으로 정복하며 모두의 근심이 되었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이제 힘이 약화되어 망해야 하는데 거기에 가서 복음을 전하란 하나님의 명령은 요나의 입장에서 싫은 것은 당연하다.
저들은 회개가 아니라 심판을 먼저 받아야 하기에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요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오늘 나에게도 있음을 주님은 아시고 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신다.
이제는 과거처럼 매를 맞고 돌아서는 요나가 아니라 이젠 철이난 요나로 내 생각과 달라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면서 나아가는 자가 되고, 더 나아가 이젠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니느웨를 향해 울어줄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자로 서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니느웨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란 내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에게 느니웨는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문득 매우 큰 울림을 주는 묵상의 제목이 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요나는 가족을 떠나고, 고국을 떠나며, 사명을 떠난다.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위해 이런 일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울림으로 묵상 된다.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
내 안에도 이런 죄성이 발동하여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기보다는 다시스를 찾고 있는 내 모습을 주님은 보게 하신다. 주님 이 종을 여기까지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고백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시며 왕이신 주님을 고백하고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기를 다짐합니다.
이 종이 이제는 도망가기 위해 요나처럼 다시스를 찾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외에 다른 대안이 없이 오직 주님께만 복종된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왕이신 주님의 종으로 온전히 살아가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변화와 이전을 위한 중보기도 2차 기도회 50>
1. 본 공사의 현장에서도 돈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를 품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으로 세워져 가도록
3. 모든 상황과 변수에도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드러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