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다해 한가위 합동위령미사 (9월 10일)
*제1독서: 요엘 2,22-24.26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제2독서: 묵시 14,13-16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복음: 루카 12,15-21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찬미 예수님, 요즘 하늘을 보면 정말이지 높고 푸릅니다. 완연한 가을 날씨입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수확의 계절을 맞아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를 맞았습니다. 오늘 밤에 뜨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이 주님께서 내리시는 풍성한 은총으로 충만하고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모두 한가위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께서 그동안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해 온갖 도움을 주셨던 조상님들과 부모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그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정성 들여 기도합시다. 한가위미사 때는 보통 제대 앞에 다양한 음식을 차려 놓습니다. 그 음식들은 수확의 결실을 직접 보여 주기 때문에 “감사의 제사”라는 미사의 중요한 특성을 잘 알려 줍니다. 그러나 올해에도 코로나로 인해 ‘음식 상차림’을 하지 못해서 몹시 아쉽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정신 만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한가위를 맞아 감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어떤 결실을 얼마나 수확했는지 돌아보고 그것을 하느님께 기쁘게 봉헌하며 살아왔는지 성찰해 보기를 바랍니다.
저는 결실과 수확에 대하여 두 가지 일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첫번째는, 올해 봄철에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사제관 앞의 텃밭에 상추와 쑥갓, 치커리 등을 심었던 것입니다. 모종을 심은 후에 작은 나무막대기에 각자의 이름을 써서 꽂아 두었습니다. 혹시라도 ‘잘 자라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며 은근히 걱정을 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서 몇몇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수확의 기쁨을 누렸습니다(삼겹살 구워서 쌈싸서 먹기). 두번째는, 주일학교 자모회인 모니카회원들이 주일학교 아이들의 간식비를 마련한다고 교육관 앞 화단에 수세미를 심었던 것입니다. 아직 수세미를 따지는 않았는데,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로 제법 여러 개가 보입니다. 나중에 얼마나 굵고 긴 수세미를 몇 자루나 따게 될 지 기대가 큽니다. 천연수세미를 몇 장이나 만들어 팔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을 부탁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1독서에서 “수확”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이는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라는 권고입니다. 2독서 묵시록에서는,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실제 곡식에 대한 수확이 아니라 종말론적 시각에서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이를 대상으로 영적인 수확(사랑의 결실)을 거두실 때가 반드시 있음을 경고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통해 종말론적인 영적인 수확의 때가 자신도 모르게 들이닥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며 우리가 진정으로 거두어 들여야 할 결실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십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그렇습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인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재산을 많이 모아 축적해서 남부럽지 않게 넉넉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만이 아닙니다. 결코 재산 자체가 결실이 돼서는 안 됩니다. 많던 적던 가진 바를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누며 공동선을 위해 기여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이 결실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구원의 계획 안에서 나에게 허락하시어 주신 것이므로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도록 언제든지 봉헌하려는 선한 지향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행여라도 재산에 대한 욕심으로 하느님을 잊고 이웃의 어려운 형편도 모른 척하는 ‘이기적인 무관심’의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재산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재산을 나누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복음에서 부자가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지점은 수확을 많이 거두어 들일 때가 아니라 그 이후 더 커다란 창고를 짓고 자신만의 풍요와 안락을 위해 사용하려고 작정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부자가 그 많은 수확물을 어려운 이웃들과 공동체를 위해 나누고 봉헌했다면 그는 하느님의 뜻을 잘 실천한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정을 특별히 나누는 한가위를 보내며 그간 어리석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고 느닷없이 닥쳐올 수 있는 죽음의 시간을 지혜롭게 맞이하도록 준비합시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