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씩씩한 인사말 과 함께 싱그러운 푸른 자연의 모습을 닮은 아이들을 배웅하면서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면서 학교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입가엔 어느새 행복의 웃음이 머금고 있습니다. 언제 저 녀석들이 저렇게 씩씩하고 예쁘게 자랐지? 유난히도 병 차례를 자주 했던 아이들이기에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학교 다니는 모습만 보아도 나의 마음은 사춘기 소녀처럼 가슴이 콩닥 콩닥 거립니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평소에도 편식을 잘하던 녀석이기에 체력이 떨어지고 창백한 모습으로 유치원에 갔다가 수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되돌아오곤 하던 녀석이였습니다. 그 언제부턴가 얼굴에는 하얗게 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엔 영양 부족으로 인해 오는 버짐인 줄 알고 밥 잘 먹는 한약도 먹여보고 약국에서 영양제도 사다 열심히 먹여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꽃은 자기의 존재를 알아주길 바란 듯이 조금씩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 피부과를 방문하였는지 "백반증" 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몇 번의 치료 끝에도 별 호전 반응이 없어 아이를 데리고 연대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하여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였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80% 치료를 한다고 하여도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확실한 답변을 해 주시지 않은 것이였습니다. 노화가 되면 걸리는 그런 병인 줄만 알았는데 어린아이들부터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같은 병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세상에는 저도 모르는 수많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인생을 터득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은 우물 안의 개구리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잠이 덜 깬 아이를 데리고 살갗이 아릴 정도로 매서운 바람을 안고 유치원이 아닌 병원으로 1주일에 한번씩 방사선 치료와 약물 치료를 동시에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치료를 할 때뿐이지 마치 미꾸라지 한 마리가 헤엄치듯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상처는 점점 번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잘 아시는 분이 우리 집을 방문하여 약물치료에 들어갔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이야기 해 주면서 약물치료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전 믿지 않았고 그냥 사람들의 생각이나 착각일 뿐이겠지 하는 그런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이에 아이와 저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약물 치료를 받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처음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약물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처음엔 그냥 약물을 내려주시니까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갔을 때는 약물을 먹고 난 후 느낌 증상들을 설명해야 한다고 하길래 전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나 봅니다. 제가 깜박 잊고 약물을 먹이지 않으면 아이는 "엄마! 약물 먹을 시간인데 왜 안 주세요." 그때서야 제 생각이 짧음을 아이로 인해 저를 깨우쳐 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 엄마 이렇게 귀한 물인데 엄마는 왜 그것을 모르고 의심만 하세요." 하고 나를 마치 꾸짖고 있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전 그때부터 정말 정성껏 약물을 먹이면서 상처 부위에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상처는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더 이상 번지지 않고 호전되었고 약물을 바를 때마다 나의 손가락은 청양 고추를 만지는 것처럼 화끈거렸지만 손가락이 아프면 어떠하리 신명의 덕화로 선택받은 행운아인데 . .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는 완전히 깨끗이 나아 완쾌가 되어서 더 이상의 재발이 되질 않았습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차 한잔을 마시러 집에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아줌마가 어머! 인수가 갑자기 왜 이렇게 예뻐졌어 활짝 피었네. 하시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죠? 정말 건강하고 예뻐졌죠? 라고 하면서 저는 활짝 웃을 수 있었습니다. 티없이 맑은 아이의 깨끗한 마음처럼 나의 마음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겨 흘러갔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믿지 못하고 의심만 했던 제 자신이 아이로부터 받은 깨달음으로 부끄럽기만 하였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신을 부정하고 확신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 신명의 덕화가 아니었으면 막내 아이(인수)의 백반증을 고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막내 아이 인수뿐만 아니라 둘째 아이(인후) 또한 신명의 덕화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인후는 고질병으로 음식을 취하고 나면 온몸에 독기가 올라 가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저 또한 두려웠고 약은 먹을 때뿐이지 증상은 더욱 악화되어 낮에도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던 아이에게 약물을 먹이기 시작하였고 두드러기가 심한 부위는 약물을 적신 화장 솜으로 붙여 놓았더니 갑자기 아이가 "앗! 뜨거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제 느낌은 "이젠 됐구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변비가 있다고 하던 녀석은 하루에 화장실을 2∼3번씩 몇 일을 들락거리더니 더 이상의 병은 재발하지 않았고 천식으로 고생한 것도 가래로 뭉쳐서 모두 나왔습니다.
현재는 중 1 큰 딸(서연)도 약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갔었는데 "위염" 이라는 진단이 나와 약을 복용했지만 더욱 심해지자 의사 선생님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지켜보자는 말씀 밖에는 안 계셨습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아이인데 약물을 먹고 난 후 음식도 맛있게 먹으면서 " 엄마! 약물 먹었다. 크! 크!" 라고 문자도 보내옵니다. 전 아이들을 통해서 약물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앞니가 빠진 천방지축 개구쟁이 모습이지만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막내 아이 인수는 "형아! 약물 정말로 맛있지!"라고 하면 둘째 아이 인후는 "응" 하며 대답을 하고 제가 얼음물을 가지고 갈 때면 "약물이니까 버리면 안 돼." 라고 하면 "엄마! 걱정 마세요. 아이들이 달라고 해도 저 안 줘요. 아까우니까요."라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도 약물의 소중함을 알고 나 또한 아이들로 인해서 깨달음을 주신 신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너무 가까이 있어도 소중한 것을 모르고, 너무 많아도 귀중한 것을 모르며, 너무 잘 해주어도 고마움을 모른다고 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야 그 사람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되며 가까이 에서 잘 해 주었던 그 시간들을 끌어안고 추억으로 산다고 합니다. 저 또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소중함과 고마움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다음 카페 생명수 기적의 물 한번 방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