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칼럼] '라인 사태'로 일본이 잃는 것
출처 한국경제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51761631
이해진, 절박함으로 일군 라인
일본 국민 메신저로 '우뚝'
글로벌 빅테크도 못한 일
日, 자유 시장 맞는지 의문
소프트뱅크도 신뢰 저버려
전세계 투자자들 '예의주시'
조미현 금융부 차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네이버를 창업한 이후 20년 동안 딱 한 번 울었다고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다. 당시 그는 일본 도쿄 라인 본사 사무실에 있었다. 고층 빌딩의 휘청거림과 흔들림을 온몸으로 느꼈다. 원전 사태까지 터지자 한국에서 함께 건너온 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일궈온 일본 사업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죽음의 공포와 숨 막히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자신 외에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러웠지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직원 절반을 돌려보내고 잔류를 택했다. 그리고 지금의 라인 서비스를 완성했다. 2019년 네이버 창립 20주년을 맞아 이 GIO가 들려준 라인의 처절한 스토리다.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리는 이 GIO는 공개 석상에 설 때마다 라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2016년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에 직접 나섰는데 라인의 일본 상장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그는 라인의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절박감을 꼽았다. 절박감 때문에 헌신했고, 헌신했기에 성과를 냈다고 했다. 그는 지진 이후 함께 일본에 남았던 직원들에게 각별한 공을 돌리기도 했다. 당시 그의 말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라인은 죽음의 문턱에서 두려움을 딛고 살아남은 이들의 분신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런 라인을 두고 일본 정부의 뻔뻔한 강탈 시도를 마주한 이 GIO의 마음이 어떨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다만 그가 라인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라인은 이해진이라는 개인과 네이버라는 한 기업의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의 무덤이라는 일본에서 우뚝 선 국민 메신저가 라인이다. 구글도 메타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그는 “네이버가 제국주의에 끝까지 버티고 저항한 회사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네이버가 라인야후 지분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뜻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일본 정부의 의도대로 사태가 끌려갈지는 모르겠지만, 경악스러운 건 자유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했다는 일본에서 주주권과 해외 기업의 재산권이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KOTRA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는 홈페이지에 일본에 투자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로 ‘풍요롭고 신뢰할 수 있는 자유 시장’을 꼽았다. 일본이 신규 진입자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는 선진적이고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것이다.
라인 사태는 이런 일본의 공개적인 약속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앞으로 일본 투자를 검토하는 잠재적 글로벌 투자자는 라인 사태와 같은 리스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기업 간 사적 계약에까지 개입하는 일본 정부의 도 넘은 행태는 경제 전체 활력이 떨어져 저성장에 허덕이는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소프트뱅크도 이번 일을 계기로 책임 있는 파트너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라인 사태가 개인정보 유출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보안 사고의 책임은 라인야후 모회사의 지분 절반을 보유한 소프트뱅크에도 없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압박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개인도 신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 GIO에게 파트너십을 제안한 당사자가 손 회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의 인공지능(AI) 우수 인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일본 기업이 아니라 네이버를 선택한 건 AI에 대한 그의 집념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일본은 AI 후진국”이라며 “AI 유망기업이 아직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어서 투자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는 실태”라고 말했다. 손 회장이 협력을 원하는 세계 AI 기술 기업들 역시 이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정부는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어떠한 차별적 조치나 기업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뒤늦은 감도 있지만 지금은 사태 해결에 힘을 모아야 한다.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비루한 방식으로는 엄혹한 글로벌 시장에서 처절하고 절박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과 기업인을 도울 수 없다. 힘을 보태기 싫다면 차라리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낫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빛명상
행복마에스트로 출간일 2012년 5월 18일
2012년 서울국제도서전 행사 스케치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CYwH/515
2007년 05월 18일
일본 후지산이 열리던 날
2007년 5월 18일, 나와 일행이 일본 (주)니칸 월드 사장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대구와 오사카 간 직행 노선 개설을 위한 대구시의 민간 외교 협조 요청과 니칸 월드 대표 취임식에 맞추어 '사단법인 빛명상 셀프 체험투어 조인식'을 위한 여정이었다. 또한 초광력超光力을 통해 건강을 되찾은 데 대한 보은의 이루어진 여행이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니칸월드 사장과 수행비서들이 나와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1시간쯤 호텔 버스를 타고 간 곳은 그린 타워호텔이었다.
우리 일행은 간단히 짐을 풀고 그곳 여행사 개관식 행사에 참석하였다. 그 후 오사카 항공 관계자와 대구-오사칸 간 직항 노선, 또는 전세 노선, 경유 노선에 대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대구시의 협조 사항을 전달하는 공식적인 일정들이 이어졌다.
다음 날 우리는 조찬을 마치고 그 호텔 사장의 각별한 배려로 후지산을 향해 떠나려 할 때였다.
"뉴스를 보니 오늘 후지산 일대에 큰비나 폭설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차라리 학꼬네 온천 쪽으로 가시면 어떨까요?"
전날 함께 가기로 했던 사장 둘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닙니다. 우리는 온천보다는 일본의 명산 후지산을 꼭 보고 싶습니다."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후지산을 고집하였다. 결국 그들은 슬그머니 호텔에 남겠다며 꽁무니를 뺐다. 기상 조건으로 봐서 함께 갔다가 후지산이고 온천이고 모두 갈 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탓이다. 그 대신 사장 비서와 타 관광 업체 사장, 우리 쪽 일본담당자 3명이 함께 했다.
마침내 우리는 호텔에서 마련해준 버스에 올랐다.
"후지산은 호텔에서 3시간 정도 걸립니다. 이곳은 봄이지만 그곳에는 눈이 내려 매우 추울 테니 모두 따뜻한 옷을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인솔자는 두툼한 겉옷을 든 채 단단히 당부하였다. 하지만 이미 봄이 무르익어 화창한 날씨에 추우면 얼마나 추울까 하고는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후지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동안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바람마저 세차게 불었다.
"이거 정말 일기예보가 맞는데요? 어쩌지요?"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일행들은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았다.
"내릴 만큼 내리면 그치겠지요."
나는 내심 걱정이 되긴 했지만 불안해하는 일행에게 말했다.
한참을 달려 후지산이 보이는 근처 호수에 도착했다. 간신히 비는 그쳤지만 후지산은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춘 채 수줍은 듯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검은 구름 위로 눈이 하얗게 덮인 산 정상만 아슴푸레 보일 뿐이었다.
"에고, 여기까지 왔는데 후지산 코빼기도 못 보고 가겠군."
사람들은 실망을 하였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후지산을 향해 빛VIIT을 펼쳤다. 그 순간 후지산의 구름이 마치 손으로 걷어 올린 듯 조금씩, 조금씩 위쪽으로 걷혀갔다. 그 모습은 마치 구름이 어떤 명을 받고 움직이는 듯 보였다.
한참 그렇게 빛VIIT을 펼치자 후지산을 덮고 있던 먹구름이 연기를 피워 올리듯 하늘로 다 퍼져나가고 그 선명한 모습을 나타냈다.
"아니! 후지산이 보여요, 보이기 시작했어요!"
일행들이 깜짝 놀라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나칸월드 소속사 직원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게 어찌 된 일이지요?"
운전을 하던 일본인 운전기사는 두꺼비처럼 눈을 껌뻑였다.
"하하,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면 후지산이 더 선명하게 보일 겁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었다.
마침내 일행은 근처 식당으로 가서 그 지방에서 유명한 우동을 한 그릇씩 먹었다. 그러곤 다시 호수로 돌아오니 아까 내가 말한 대로 후지산이 그 맑고 환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후지산을 향해 올라갔다. 일기예보에서 그렇게 겁을 주더니 산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은 점점 따뜻해졌다.
"이거 일기예보가 엉터리잖아? 무슨 일이지?"
일본인 등산객마저 신기한 듯 저마다 떠들어댔다.
나는 후지산 정상이 잘 올려다보이는 곳에서 일행들과 이곳 후지산 수호신과 함께 양국의 해원상생과 평화를 기원하는 술과 향을 올려 우주근원에 청원과 감사를 올렸다. 그리곤 빛여행을 떠날 때마다 늘 하듯이 후지산의 대표 기(氣) 즉, 신(神)의 에너지를 팔공산 빛VIIT의 터로 연결시켜 놓았다. 머잖아 팔공산 빛VIIT터가 전 세계의 기를 모두 모은 "에너지의 정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일행이 후지산의 정기를 가슴에 품고 천천히 산을 내려올 때였다.
"앗, 저게 어찌 된 일이람?"
누군가가 산을 올려다보며 깜짝 놀라 되물었다. 우리가 산을 내려오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마치 영화의 스크린을 닫아버리듯 후지산이 다시 구름에 가려진 것이다.
호텔로 돌아오자 그곳도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딴 세상을 다녀온 것 같습니다."
일행은 모두 행복한 여운을 안고 이번에는 임승지 대표의 안내로 동경에서 약간 떨어진 그린타워호텔로 갔다. 최고층 전체가 한 객실로 연결되어 있고 왼쪽으로 울창한 푸른 숲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 강물이 보이는 멋진 호텔이었다.
임 대표는 우리 일행을 최고급 스위트룸으로 직접 안내를 해주었다. 그리곤 일본 최고의 시설과 맛을 전통으로 하는 '미도리' 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이윽고 가오리 꼬리를 약간 태워 놓은 '히네'라는 따뜻한 정종이 몇 차례 오가는 사이 붉어진 얼굴만큼이나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임 대표는 '미도리' 에서의 식사가 끝나자 다시 나를 근처 포장마차로 안내하였다.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임 대표는 나를 보며 말했다.
“사실 저는 선생님이 쓰신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일본 번역판을 읽고 늘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했답니다. 오늘 이처럼 뵙게 되니 참으로 기쁘군요. 정원에서 저와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달도 밝은데 그럽시다."
나는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천천히 호텔 뜰로 나온 임 대표는 뜰로 나오자 두 손을 합장한 채 한동안 달을 올려다보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러다간 직원이 찻상을 봐오자 정자에 앉아 달과 바람을 벗 삼아 차를 한 잔 마시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의 지난날을 꺼내놓기 시작하였다.
"저는 고아의 몸으로 겨우 일곱 살 때 동경 뒷골목의 조그만 꼬치집에 들어가 심부름을 하며 지냈답니다. 거기서 몇 년을 밥 세 끼 겨우 얻어먹으며 가계에 놓인 긴 나무의자에 누워 새우잠을 자곤 했습니다. 잠을 자다가 떨어진 게 다반사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 스시집인 '미도리' 식당 사장을 만나면서 운명의 전환점을 맞이했답니다."
"거기선 기술자로 일을 했나요?"
"아니요, 거기서도 뒷간 청소부터 시작해서 식당 청소는 물론 기물 정리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지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으니 그저 내가 기댈 곳은 그곳뿐이라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일을 한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도리 사장님께서 제게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달이 뜰 무렵 달님에게 소원을 빌어보렴. 언젠가는 그 소원이 이루어질 테니.'라고 말입니다. 그리곤 제겐 이젠 허드렛일은 다른 아이에게 넘겨주고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부터 일을 배워보렴 하는 게 아니겠어요? 한 단계 승진을 한 셈이었죠. 그것도 무급에서 유급으로 말입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던 제게 월급이 나오는 겁니다."
임 대표는 그 날을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큰 승진이었습니다 그려, 하하! 그래, 그 이후 뭔가 또 달라졌습니까?
나도 임 대표처럼 기뻐하며 물었다.
"그렇고말고요! 저는 그 날부터 매일 달이 뜰 무렵 정화수 한 그릇을 뒷마당 정갈한 곳에, 제 나름대로 마련한 제단 위에 올리며 '언젠가는 저도 작은 초밥집 하나 갖게 해주십시오!' 하고 빌었답니다. 그리곤 단순히 직원이 아니라 주인의 입장에서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찾아 묵묵히 해왔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날 때쯤 사장은 제게 이제 초밥을 만들어도 좋다고 하더군요. 저는 온 정성을 기울여 손님에게 드릴 초밥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자 세월과 함께 저 혼자 틈틈이 공부한 지식들이 쌓여 마침내 남다른 비법이 담긴 저만의 '스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럼 당연히 찾는 손님들도 많았겠지요?"
"그럼요! 손님들이 가게 앞에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자 마침내 번호표를 나눠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문전성시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께서 제게 가게를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며 저를 가게를 이어갈 주인으로 삼았지 뭡니까?"
임 대표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떨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도왔나 봅니다."
"그런가 봅니다. 달님에게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한 지 어언 20년 만에 그런 행운이 제게 찾아왔으니까요."
나는 그의 성공이 내 일처럼 기뻤다.
임 대표는 그 후 가게를 더욱 확장시켜 곳곳에 분점을 내고 그 당시 무명 호텔이던 그린호텔을 인수하여 오늘날처럼 훌륭한 호텔로 탄생시키고 초밥 체인점과 호텔 사업을 더욱 확장시킨 장본인이었다.
"저는 지금도 첫 출발점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새벽 5시면 일어나고 제일 늦게까지 일하며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한답니다. 그리고 제 호텔과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대부분 고아원 아이들을 교육시켜서 일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을 제2, 제3의 '임승지' 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지요."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십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를 축하해주었다.
임 대표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뒤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정 선생님, 정말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제부터 제 남은 인생을 초광력超光力을 통하여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는 마음으로 보낼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임 대표와 그 직원들에게 빛VIIT을 흠뻑 전해주었다. 그 순간 찬란한 한 줄기의 빛VIIT이 그린타워 호텔 지붕 위를 비추고, 그들에게는 빛VIIT향기가 되고, 빛VIIT비가 되어 내렸다.
'우주마음께서도 임 대표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구나.'
그걸 보고 돌아서는 내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기만 했다.
출처 : 나도 기적이 필요해
2017년 5월 3일 초판 3쇄 P. 401~409
후지산의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후지산의 빛이야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빛과함께 늘 감사합니다
후지산 빛역사 감사합니다.
빛역사이야기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글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빛역사 빛과 함께 특은의 무궁한 공경과 감사마음드립니다....
빛역사 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빛의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