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그리며.
코스 : A조.주차장-휴양림-풍열지대-삼거리-정상석 왕복 -둔덕산-통시바위-떡바위-월영대-원점 (12km/5시간)
B조.주차장-용추계곡-
월영대-떡바위-밀재4거리-대야산왕복-원점.
(10km/5시간)
오늘도 산을찾아....,
"아즈위 (Azwi)"
1964년, 종신형을 선고 받고 절해(絶海)의 고도(孤島) '루벤섬' 감옥으로 투옥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감옥은 다리 뻗고 제대로 누울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으며 변기로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를 감방 구석에 던저 넣어 주었습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번 정도만 허락 되었으며 간수 들은 걸핏하면 그를 끌어다가 고문하고 짓밟고 폭력을 가했습니다.
이미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지위는 상실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끌려간 후,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사는 변두리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감옥살이 4년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듬해 큰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감옥살이 14년이 되던 해에 큰 딸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데리고 할아버지에게 면회를 왔습니다.
그리고 큰 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아버지는 말없이 땟물이 찌들은 윗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꾸겨진 종이 조각 하나를 꺼내어 딸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딸은 그 종이 조각에 쓰여진 글자를 보는 순간 눈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글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아즈위 Azwie' (희망)
그는 그 후로 온갖 치욕을 다 당하면서 13년 간이나 옥살이를 더 하고 나서야 마침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1964년부터 1990년 까지 무려 27년 간이나 감옥살이를 했는데, 44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해서 71세에 풀려난 것입니다.
그는 '남아공 흑백 분리 정책을 철폐'하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 되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자기를 박해하고 고통과 치욕을 주었던 정적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고고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언론은 이를 가리켜 인간의 품격을 한 계단 올려 놓은 사람이라고 존경을 드렸습니다.
그가 바로 '넬슨 만델라' 입니다.
그 오랜 세월, 어떻게 절망의 세월을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위대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 나리라는 아즈위(希望) 를 한 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희망(希望) 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희망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 갑니다.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 입니다.
'보스'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지만, '리더'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모든분들께 희망을 주는 리더로서의 삶으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면,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지지 않은 것을 하늘에 감사하라.
만일 두 다리가 부러졌다면,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
만일 목이 부러졌다면,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라는 유태인 속담이 있습니다.
어떤 고난(苦難)을 당하더라도, 최악(最惡)이 아님을 감사(感謝) 할 줄 알아야 하고, 살아 숨 쉴 수 있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과 남은 것 중에서 늘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며 아쉬워하고 안타까워 합니다.
하지만 내게 무엇인가 남아있고 그걸 바탕으로..
다시 시작(始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요.
비록 모두 다 잃었다고 해도 내 몸이 성하다면 그보다 고마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가난한 처지에 대해 항상 불평을 늘어놓던 청년 에게 어떤 노인이 물었습니다.
"자네는 이미 대단한 재산
(財産)을 가졌으면서 왜 아직도 불평(不平)만 하고 있나?.."
그러자 청년은 노인에게 간절(懇切) 하게 물었습니다.
"대단한 재산(財産) 이라니요?..
아니 그 재산이 어디에 있다는 말씀이세요?.."
"자네의 대단한 재산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은가..?
좋네,
자네의 양쪽 눈을 나한테 주면 자네가 얻고 싶을 것을 주겠네."
'아니, 제 눈을 달라니요 그건 안 됩니다!.."
"그래?..그럼, 그 두 손을 나한테 주게 그럼 내가 황금(黃金)을 주겠네."
"안 됩니다 두 손은 절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눈이 있어 배울 수 있고, 두 손이 있어 일할 수 있지 않은가..?
이제 자네가 얼마나 훌륭한 재산을 가졌는지 알겠구먼."
건강(健康) 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축복(祝福)입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名譽)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健康)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라고 했듯이,우리가 살아가는데 재물(財物)이나 명예(名譽)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건강(健康)입니다.
돈이 없으면 살아가는데 불편하지만 살 수는 있습니다.
또 명예(名譽)를 잃으면 당당하진 못하더라도 살 수가 있습니다.
물론 살 수 있다고 다 기쁘고 행복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살아 숨 쉬며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기쁘고 행복
(幸福) 한 일은 없습니다.
'전분세락(轉糞世樂)'이란 말이 있습니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 보다는 이 세상이 더 즐겁다는 뜻입니다.
살아 있으니 인생(人生)을 논(論) 할 수가 있는 것이고, 희로애락(喜怒哀樂)도 삶을 이어갈 수 있을 때라야 의미 (意味)가 있는 것입니다.
누리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바로 '건강(健康)'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건강,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아무쪼록 숨쉬는 그날까지 '강녕'(康寧)하시길 바랍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희망과 감사"의 메세지를 주변에 전파하기에 좋은 글 입니다.
나 자신 백두대간과 162지맥을 종주하면서 4.160회 산행까지 했었지만
아직도 산에 대해서는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지금이지만 백두대간을 몰랐을 때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보아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어떨 땐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며 자만(自慢)에 빠져 주변사람을 무시하기도 했지만 우연히 산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 세상에선 내가 제일 속 좁고 부족함 많은 찌꺼기 인생이란 것도 느끼면서 부끄러움도 알았고 나보다 주먹이 센 사람도 많으며 주변의 사람이 나와 같거나 아니면 월등 하다는 것도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던 것이다.
산이 바로 한인생의 길을 가르쳐 준 셈이다.
합정역을 출발 산행지로 가면서 바라본 한강건너 여의도.
오늘 나의 모습.
용추계곡 주차장.
A조는 둔덕산으로 가고 B조는
대야산 왕복이다.
둔덕산이 보인다.
용추계곡 입구.(산행 시작)
용추.
피아골 등산로는 폐쇄했지만 대야산가는 코스는 월영대에서 바로 치고 올랐다.
월영대 쉼터.
일부구간 등산로 정비로 인한 통제였던 모양이다.
데크시설 작업중이었다.
아는 길이라 혼자서 쉬엄쉬엄 올랐다. 밀재로 돌아가는길에 비해 약 2km 정도 짧다.
특별한것은 없지만 거리가 많이 단축되고 대신 내려올 때는 밀재로 돌아올 계획이다.
둔덕산이다.
흔들바위.
대야산 정상.
삼각점,
둔덕산.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의 봉우리들.
대야산 정상에서 밀재로 가는 길.
하산을 서둘다보니 바위들 모습을 제대로 확인 못했다.
코끼리바위.
밀재.(백두대간)
월영대.
산행을 마침과 동시 소나기세례.
20여분 온 후 바로 맑아짐.
아침에 떡 준비해주신 황석정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배고품 잊고 산행 잘 했습니다.
마칠무렵(식사중) 많은 비로인해 불편했지만 주차장 정자로 인해 피할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회원 여러분 많은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수고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