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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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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오일사의(端午日賜衣) - 두보(杜甫)
端午日에 옷을 下賜받다
宮衣亦有名(宮衣亦有名) : 宮闕서 주는 옷에 내 이름도 있어
端午被恩榮(端午被恩榮) : 端午日에 임금님의 恩惠 입었도다.
細葛含風軟(細葛含風軟) : 가는 베옷은 바람 머금은 듯 부드럽고
香羅疊雪輕(香羅疊雪輕) : 香氣로운 비단(緋緞)은 쌓인 눈처럼 가볍구나.
自天題處濕(自天題處濕) : 皇帝의 하사(下賜)글은 아직 젖어있는데
當暑著來淸(當暑著來淸) : 더위를 當하여 옷을 입어보니 시원하다.
意內稱長短(意內稱長短) : 마음속으로 길이가 맞는다고 여겨서
終身荷聖情(終身荷聖情) : 終身토록 따뜻한 皇帝의 情을 간직하리다.
2
도죽장인(桃竹杖引)/(桃竹杖引贈章留後) - 두보(杜甫)
도죽 지팡이를 노래함
江心蟠石生桃竹(강심반석생도죽) : 강속의 반석(蟠石)에 도죽(桃竹) 자라니
蒼波噴浸尺度足(창파분침척도족) : 푸른 물결 뿜어내고 적셔 지팡이 크기에 족하였네.
斬根削皮如紫玉(참근삭피여자옥) : 뿌리 베고 껍질 벗기자 붉은 옥과 같으니
江妃水仙惜不得(강비수선석부득) : 강물의 여신인 수선(水仙)이 못내 아까워하였네.
梓潼使君開一束(재동사군개일속) : 재주자사(梓州刺史) 장이(章彛)가 도죽(桃竹) 한 다발 풀어놓으니
滿堂賓客皆歎息(만당빈객개탄식) : 당에 가득한 손님들 모두 감탄하였네.
憐我老病贈兩莖(연아로병증량경) : 나의 늙고 병듦 가엾게 여겨 두 개를 주니
出入爪甲鏗有聲(출입조갑갱유성) : 출입할 때에 발톱에서는 쨍그렁 소리 나누나.
老夫複欲東南征(노부복욕동남정) : 늙은 지아비 다시 동남쪽으로 가고자 하니
乘濤鼓枻白帝城(승도고설백제성) : 파도 타고 뱃전 두드리며 백제성(白帝城) 향하리라.
路幽必為鬼神奪(노유필위귀신탈) : 길이 으슥하여 반드시 귀신들이 빼앗으려 할 것이니
拔劍或與蛟龍爭(발검역여교룡쟁) : 칼 빼어들고 혹 교룡(蛟龍)과 다투기도 하리라.
重為告曰(중위고왈):다시 지팡이에게 고하기를
杖兮杖兮(장혜장혜) : 지팡이야! 지팡이야!
爾之生也甚正直(이지생야심정직) : 너의 자람 매우 정직하니
慎勿見水踴躍學變化為龍(신물견수용약학변화위룡) : 부디 물 보고 뛰어올라 변화하여 용 되는 것 배우지 말라.
使我不得爾之扶持(사아부득이지부지) : 나로 하여금 너의 부축을 받지 못하여
滅跡於君山湖上之青峰(멸적어군산호상지청봉) : 군산(君山) 동정호(洞庭湖) 위 푸른 봉우리에서 실종되게 하지 말라.
噫 風塵澒洞兮豺虎咬人(희 풍진홍동혜시호교인) : 아! 풍진(風塵) 자욱하고 승냥이와 호랑이 사람 물으니
忽失雙杖兮吾將曷從(홀실쌍장혜오장갈종) : 내 갑자기 두 지팡이 잃으면 장차 누구에게 부축 받을까?
* 桃竹(도죽) : 도죽(桃竹)은 도지죽(桃枝竹)이라고 한다. 《杜少陵集(두소릉집)》에는 제목 아래에 “贈章留後(증장유후)”라고 자주(自註)하였는 바, 장유후는 장이(章彛)로 그가 도죽(桃竹杖)을 보내 준 것에 대한 답례로 이 詩를 지은 것이다.
* 강비(江妃) 水仙(수선): 강의 여신 수선. 하백은 황하신의 전칭으로 낙수(落水)에 낙신(落神)이 있고, 강수(江水)에 강비(江妃)가 있고, 상수(湘水)에 상군(湘君), 상부인(湘夫人)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황하를 주재하는 하신(河神)으로 알려져 왔다.
* 梓潼使君(재동사군) : 두보에게 도죽장(桃竹杖)을 보내준 재주자사(梓州刺史) 장이(章彛)를 가리킨다. 재주(梓州)는 재동군(梓潼郡)인데 동쪽에 재림(梓林)이 있고 서쪽에 동수(潼水)가 있기 때문에 이름한 것이다.
* 爪甲(조갑) : 손톱과 발톱
* 白帝城(백제성) : 쓰촨 성 충칭 시 펑제 현의 장강삼협에 위치한 지명이다. 원명은 자양성(子陽城)이며, 장강 삼협 중 구당협(瞿塘峽)의 입구에 있다. 일찍이 공손술이 이 지역에 성을 쌓고 백제성으로 부른 것이 그 유래이다. 삼국시대 촉한의 건국자 유비가 이릉 전투에서 오나라에 패해 도주한 곳이 백제성이다. 유비는 후사를 제갈량에 맡긴 후 이 성에서 죽었다
* 蛟龍(교룡) : 뱀과 비슷한 몸에 비늘과 사지가 있고, 머리에 흰 혹이 있는 전설상의 용.물 속에 산다고 한다.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한(漢)나라 때에 걸쳐서 그 모양이 청동기(靑銅器)에 사용되었다.
* 使我不得爾之扶持(사아부득이지부지) 滅跡於君山湖上之靑峰(멸적어군산호상지청봉): 김륭(金隆)의 《勿巖集(물암집)》4권에 “지팡이가 용(龍)으로 변화해 떠나가서 부지할 기력이 없으니, 이는 나로 하여금 군산(君山) 등지(等地)에서 종적을 잃게 만든 것이다.” 하였다.
* 군산(君山): 상산[湘山] 또는 동정산[洞庭山]이라고도 함.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악양현[岳陽縣] 서남쪽에 있는 동정호[洞庭湖] 가운데에 위치해 있음. 전설에 따르면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남쪽을 순수할 때 이곳에 머물렀다고 해서 군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함.
* 豺虎(시호) : 승냥이와 호랑이
3
백제성최고루(白帝城最高樓) - 두보(杜甫)
백제성 가장 높은 누대에서
城尖徑昃旌旆愁(성첨경측정패수) : 성은 뾰족하고 길은 구불구불 깃발은 시름겨운데
獨立縹緲之飛樓(독립표묘지비루) : 아스라이 높이 나는 듯한 누각에 홀로 섰노라.
峽坼雲霾龍虎臥(협탁운매룡호와) : 탁 트인 골짜기에 구름은 흙비를 내려 용과 범이 누워있는 듯하고
江清日抱黿鼉遊(강청일포원타유) : 맑은 강은 햇빛이 감싸 자라와 악어가 노니는 듯하여라.
扶桑西枝對斷石(부상서지대단석) : 부상나무 서쪽 가지가 벼랑을 마주하는 듯하고
弱水東影隨長流(약수동영수장류) : 약수 동쪽 그림자가 장강을 따라 흘러가는구나.
杖藜歎世者誰子(장려탄세자수자) : 명아주 지팡이 짚고 세상을 한탄하는 자 누구인가.
泣血迸空回白頭(읍혈병공회백두) : 피눈물 허공에 뿌리며 흰머리 돌린다네.
당 대력 원년에 지은 시로 지팡이를 짚고 가파른 길을 올라 촉한의 유비가 최후를 맞았던 백제성에 서서 정면에 있는 구당협을 바라보며 그 수려한 경치를 읊고 자신의 처지와 나라의 현 상황을 한탄하였다.
* 白帝城(백제성) : 쓰촨 성 충칭 시 펑제 현의 장강삼협에 위치한 지명이다. 원명은 자양성(子陽城)이며, 장강 삼협 중 구당협(瞿塘峽)의 입구에 있다. 일찍이 공손술이 이 지역에 성을 쌓고 백제성으로 부른 것이 그 유래이다. 삼국시대 촉한의 건국자 유비가 이릉 전투에서 오나라에 패해 도주한 곳이 백제성이다. 유비는 후사를 제갈량에 맡긴 후 이 성에서 죽었다.
* 縹渺(표묘) : 끝없이 넓거나 멀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렴풋함. * 黿鼉(원타) : 자라와 악어
* 扶桑(부상) : 해가 돋는 동쪽 바다. 전설(傳說)에서, 동쪽 바다 속에 해가 뜨는 곳에 있다고 하는 나무
* 弱水(약수) : 신선(神仙)이 살았다는 서쪽의 전설적(傳說的)인 강. 길이가 3,000리나 되며, 부력이 매우 약하여 기러기의 털도 가라앉는다고 함 * 杖藜(장려) : 명아주 지팡이.
4
독작(獨酌) -혼자 술을 마심
步屧深林晩(보섭심림만) : 해질녘 깊은 숲속 짚신 신고 유유자적 거닐며
開樽獨酌遲(개준독작지) : 술 단지 열어 홀로 느긋하게 마시네.
仰蜂粘落絮(앙봉점락서) : 흩날려 떨어지는 버들 솜이 날아오르는 벌들에 붙고
行蟻上枯梨(항의상고리) : 줄지어 가는 개미떼들 말라붙은 배나무에 기어오르네.
薄劣慚眞隱(박렬참진은) : 얄팍하고 졸렬하여 참된 隱者(은자)에겐 부끄러워도
幽偏得自怡(유편득자이) : 그윽하고 외진 곳에 있으니 저절로 즐겁구나.
本無軒冕意(본무헌면의) : 본시 수레 타고 면류관 쓰고 잔 뜻이 없었지만
不是傲當時(불시오당시) : 그렇다고 지금 세상을 무시하지도 않는다네.
5
독작성시(獨酌成詩) -홀로 술 마시며 시를 쓰다
燈花何太喜(등화하태희) : 등불의 불꽃에 어찌 그리 반가웠던가!
酒綠正相親(주록정상친) : 푸른 술 마시려고 그랬나 보네.
醉裡從爲客(취리종위객) : 취한 중에 나그네 신세 무던히 여기고
詩成覺有神(시성각유신) : 시를 이루니 신의 도움이 있는데
兵戈猶在眼(병과유재안) : 난리가 아직도 눈앞에 있으니
儒術豈謀身(유슬기모신) : 유술로 어찌 이 한 몸 도모할 수 있으랴
苦被微官縛(고피미관박) : 괴롭게도 작은 벼슬에 묶여 있으니
低頭傀野人(저두괴야인) : 고개 숙여 야인에게 부끄러울 따름.
6
동리태수등력하고성원외신정정대작호(同李太守登歷下古城員外新亭亭對鵲湖)(745年) – 두보(杜甫)
새 정자 동리태수 및 고성원외 시 화답
(濟南太守 李之芳과 함께 역산 아래 옛 성곽 밖 새로 지은 정자에 올라, 정자는 작산호(鵲山湖)를 마주하고)
新亭結搆罷(신정결구파) : 새로 지은 정자 묶고 얽기 마치고
隱見清湖陰(은견청호음) : 맑은 호수 그늘에 숨었다 보였다 하네.
跡籍臺觀舊(적적대관구) : 적적대(跡籍臺)에서 옛것 보는데
氣溟海嶽深(기명해악심) : 날씨 어둑하여 바다 산악 깊숙하네.
圓荷想自昔(원하상자석) : 둥근 연잎에 예전일 떠오르고
遺堞感至今(유첩감지금) : 남은 성가퀴에 지금을 느끼네.
芳宴此時具(방연차시구) : 향기로운 연회 마련된 이때
哀絲千古心(애사천고심) : 애달픈 거문고 소리 옛 마음이네.
主稱壽尊客(주칭수존객) : 주인 잔 들어 귀한손님에게 祝壽하고
筵秩宴北林(연질연북림) : 술자리 차례 북쪽 숲에서 잔치 벌리네.
不阻蓬蓽興(부조봉필흥) : 가난한 집도 흥을 억누를 수 없어
得兼梁甫吟(득겸량보음) : 덩달아 양보산(梁甫山) 읊게 되네.
* 李之芳이 尚書郎에서 나와 齊州司馬가 되어 이 정자를 세운다.
* 鵲湖(작호) : (=鵲山湖=蓮子湖)는 山東省 濟南市 북서쪽 鵲山앞에 있는 호수다.
* 蓬蓽 : 쑥대 가시덤불로 지붕 덮은 집
* 梁甫山 : 齊나라 山東省 泰山 아래 있는 산
* 郭茂倩《樂府詩集》解題云:“按梁甫,山名,在泰山下。《梁甫吟》蓋言人死葬此山,亦葬歌也。”
곽무천《악부시집》의 제목 해설에 따르면, “梁甫란 말을 생각하면 산 이름 이고 齊나라 泰山 아래 있다. 대개 사람이 죽으면 이산에 장사를 지내므로, 《梁甫吟》은 장례 치르는 노래다.”
7
동심(冬深)/즉일(即日) -겨울 깊어가네/그날
* 두보(杜甫)의 동심(冬深)은 전당시(全唐詩)에 실려 있으며 즉일(卽日:그날)이라고도 한다. 당(唐) 대종(代宗) 영태(永泰) 원년(元年:765년) 두보의 54세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두보가 중경에서 선상생활을 할 때 겨울이 깊어감에 머물 곳이 없는 슬픔을 표현한 시이다.
花葉隨天意(화엽수천의) : 꽃잎은 하늘 뜻을 따라 가버렸고
江溪共石根(강계공석근) : 시냇물은 얕아져 돌 뿌리가 드러났네.
早霞隨類影(조하수류영) : 아침노을은 서로의 그림자를 따르고
寒水各依痕(한수각의흔) : 차가운 물은 각자의 흔적을 따라 흐르네.
易下楊朱淚(이하양주루) : 갈 곳 몰라 양주(楊朱)처럼 쉽게 눈물 흘리니
難招楚客魂(난초초객혼) : 초객(楚客)의 혼을 불러오기 어려워라.
風濤暮不穩(풍도모불은) : 바람과 파도가 저녁에도 잔잔해지지 않으니
舍棹宿誰門(사도숙수문) : 배를 놓아두고 누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을까?
* 楊朱淚(양주루) : 양주(楊朱)는 갈림길에서 눈물을 흘리다. 여기서는 갈 곳을 몰라 슬퍼하는 자신의 모습을 말한다.
* 多岐亡羊(다기망양) : 여러 갈래로 갈린 길에서 양을 잃는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많아 진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양주(楊朱)는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 자(字)는 자거(子居). 위(衛) 사람. 극단적 개인주의 사상인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하였다.
* 楚客魂(초객혼) : 언제나 나그네가 된 자기 자신을 슬퍼하는 뜻이다.
초객(楚客)은 초 지방으로 유배되어 객지를 떠돌다 자살한 굴원(屈原)을 뜻하기도 하며 고향을 떠난 나그네로 비유한다. 또한 초나라의 시인 송옥(宋玉)은 구변(九辯)에서 “고향을 버리고 집을 떠나 먼 곳에서 나그네 되어 멀리로 떠돌다가 지금은 어느 곳에 멈추리오?(去鄕離家兮徠遠客,超逍遙兮今焉薄?)”라고 하였다. 송옥(宋玉)은 중국 고대의 시인으로 굴원의 후계자로 대표작으로 구변(九辯), 초혼(招魂) 등이 있으며 초혼은 굴원의 작품이라고도 한다.
* 舍棹(사도) : 노를 버리다. 즉, 배를 정박하다.
* 두보(杜甫)는 대종(代宗) 영태(永泰) 원년(元年:765년) 1월 엄무(嚴武) 막하의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을 사직하였는데, 4월에 엄무가 죽자 이에 두보(杜甫)는 5월 가족을 데리고 성도의 초당을 떠나 배를 타고 중경으로 갔다. 이후 몇 년간 정처 없는 선상생활을 계속하였으며, 결국 동정호 근처까지 배를 타고 갔다가 5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8
투증가서개부이십운(投贈哥舒開府二十韻) -가서한(哥舒翰) 개부(開府)에게 올린 이십운(二十韻)
* 이 시는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 가서한(哥舒翰)에게 올린 시로, 천보(天寶) 13년(754) 장안(長安)에서 지었으며 《杜少陵集(두소릉집)》 3권에 실려 있다. 가서한(哥舒翰)은 돌궐(突厥) 출신의 장군으로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협기(俠氣)가 있는 인물이었으나, 안록산의 난에 적에게 항복하여 적중에서 죽었다. 이 시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두보가 장안에 있을 때에 가서한에게 의탁하고자 하여 올린 것으로 보인다.
1~5운
今代麒麟閣(금대기린각) : 지금 시대의 공신(功臣) 그린 기린각(麒麟閣)에
何人第一功(하인제일공) : 어느 사람이 제일가는 공(功) 세웠는가.
君王自神武(군왕자신무) : 군왕(君王)은 절로 무용이 뛰어나시니
駕馭必英雄(가어필영웅) : 부리시는 사람들 반드시 영웅이라오.
開府當朝傑(개부당조걸) : 개부(開府)는 지금 조정의 영웅이니
論兵邁古風(논병매고풍) : 병사(兵事)를 논함에 옛사람의 풍도(風度) 뛰어 넘네.
先鋒百勝在(선봉백승재) : 선봉으로 나가 백 번 싸워 승리하니
略地兩隅空(약지양우공) : 땅을 공략하여 서북쪽 양 귀퉁이 비었네.
青海無傳箭(청해무전전) : 청해(靑海) 지방에는 적의 침략이 없고
天山早掛弓(천산조괘궁) : 천산(天山)에는 일찍 활 거두어 들였다네.
* 哥舒(가서) : 哥舒翰(가서한)으로 투르크족(돌궐족) 투르기시[突騎施] 가서(哥舒) 부족의 후예이다. 안서부도호(安西副都護)의 아들로서 하서(河西) 절도사인 왕충사(王忠嗣)의 막하 무장으로 토번(吐蕃)의 침입을 격파하였다. 나중에 현종 임금의 총애를 받아 농우절도부대사에 임명되어 다시 토번을 토벌하여 공을 세워 서평군왕(西平郡王)에 봉해졌다. 755년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황태자의 선봉 병마원수(兵馬元帥)로서 동관(潼關)을 지켜 분전하였으나 패하여 살해되었다.
* 開府(개부) : 당나라 직제 개부는 삼사와 법도가 같으니 삼공이며 종1품의 벼슬이다.
* 麒麟閣(기린각) : 전한(前漢)의 선제(宣帝)가 중흥공신(中興功臣) 11명의 화상(畵像)을 그려 모신 누각으로 후대에는 모든 공신각(功臣閣)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기린각은 상위좌상 단청 주석 아래에 볼 수 있다.
* 神武(신무): 뛰어난 무용(武勇)
* 略地兩隅空(약지양격공) ; 가서한(哥舒翰)이 북쪽으로 돌궐(突厥)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토번(吐藩)을 정벌하여 이들 지역을 공략하여 점령하였으므로 양 귀퉁이가 비었다고 한 것이다.
* 靑海無傳箭(청해무전전) : 가서한(哥舒翰)이 청해(靑海)에 성(城)을 쌓으니, 토번(吐蕃)이 감히 근접하지 못하였다.
* 天山(천산): 일명 기련산(祈連山)으로 영산(靈山)ㆍ백산(白山)이라고도 칭하는 바, 지금의 신강성(新疆省)에 있으며 고대(古代) 흉노(匈奴)와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가 있던 곳이다.
6~10운
廉頗仍走敵(염파잉주적) : 염파(廉頗)처럼 그대로 적을 패주시키고
魏絳已和戎(위강이화융) : 위강(魏絳)처럼 이미 오랑캐를 조화시켰네.
每惜河湟棄(매석하황기) : 매번 하황(河湟) 지방을 버려서 애석해 하여
新兼節制通(신겸절제통) : 새로 절도사를 겸하여 길 통하게 제재하였네.
智謀垂睿想(지모수예상) : 지혜로운 계책은 황제의 생각도 따르게 하니
出入冠諸公(출입관제공) : 조정에 출입함에 제공(諸公)들 중 으뜸이라오.
日月低秦樹(일월저진수) : 공을 논하면 해와 달도 낮게 장안의 나무에 걸리고
乾坤繞漢宮(건곤요한궁) : 하늘과 땅도 겨우 한(漢)나라 궁궐을 에워쌀 뿐이라오.
胡人愁逐北(호인수축북) : 오랑캐 인들은 북으로 쫓기는것을 걱정하고
宛馬又從東(완마우종동) : 완(宛)땅의 말 또한 동쪽을 쫒아오네.
* 廉頗仍走敵(염파잉주적) 魏絳已和戎(위강이화융): 염파(廉頗)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명장으로 진(秦)ㆍ위(魏) 등과 싸워 여러 차례 적을 물리쳤으며 위강(魏絳)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 사람으로 신군(新軍)의 장수가 되어 많은 전공을 세우고 군주인 도공(悼公)에게 융족(戎族)과 화친할 것을 청하여 이들을 복속시켰는 바, 가서한(哥舒翰)의 공로가 이들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 魏絳已和戎(위강이화융) : 위강이 진후에게 오랑캐와 화평하여 다섯 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권하니 공이 그것을 따랐다.
* 河湟(하황) : 황하 유역인 하곡(河曲)으로 토번(吐藩)들이 침입하여 머물던 곳이다.
* 新兼節制通(신겸절제통) : 이덕홍(李德弘)의 《艮齋集(간재집)》 속집 4권에 “이미 이 직책을 겸하였다면 마땅히 이 직사(職事)를 총괄하여 다스릴 뿐이다.” 하였다.
* 日月低秦樹(일월저진수) 乾坤繞漢宮(건곤요한궁): 이덕홍(李德弘)은 “이는 가서한(哥舒翰)의 공을 극언한 것이니, 해와 달로 하여금 장안의 나무보다 낮게 만들 수 있고 건곤으로 하여금 한나라 궁궐을 에워싸도록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低字(저자)는 친미(親媚)의 뜻이 있고 繞字(요자)는 옹호의 뜻이 있다.” 하였다.
이는 수복한 공을 말한 것이다. 이른바 ‘해와 달의 임하는 바가 다만 진(秦)나라 나무처럼 낮고 건곤(乾坤)의 싸는 바가 홀로 한(漢)나라 궁궐을 감돌 뿐’이라는 것이다.
* 宛馬又從東(완마우종동): 대완(大宛)은 서역의 나라 이름이니, 좋은 말이 나온다. 가서한(哥舒翰)의 위무(威武)에 오랑캐들이 공격과 추격을 당하여 패배할까 근심하여 대완국의 말을 다시 가지고 와서 조공한 것이다.
11~15운
受命邊沙遠(수명변사원) : 명령 받고 변방 사막으로 멀리 가더니
歸來禦席同(귀래어석동) : 돌아와서는 황제와 자리를 함께 하였네.
軒墀曾寵鶴(헌지증총학) : 수레와 뜰에 올랐던 학처럼 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畋獵舊非熊(전렵구비웅) : 그 옛날 사냥 나가 곰이 아닌 태공망(太公望) 얻은 것 같다오.
茅土加名數(모토가명수) : 땅과 벼슬을 받아 진봉(進奉) 되었고
山河誓始終(산하서시종) : 산과 강에 처음과 끝을 함께 할 것 맹세하네.
策行遺戰伐(책행유전벌) : 가 개부의 계책이 행해져 전쟁에 이기니
契合動昭融(계합동소융) : 마음이 합하여져 군주의 마음 감동시킨다오.
勳業青冥上(훈업청명상) : 이룬 업적은 푸른 하늘 위에 높이 솟고
交親氣概中(교친기개중) : 황제와 친분은 기개 속에 있었네.
* 軒墀曾寵鶴(헌지증총학) : (일찍이 헌지(軒墀)의 학(鶴)처럼 총애 받고) 《左傳(좌전)》에 “위(衛)나라 의공(懿公)이 학(鶴)을 좋아하여 학으로서 초헌(軺軒:대부의 수레)을 탄 자가 있었다.” 하였다. * 軒墀(헌지) : 수레와 뜰
* 畋獵舊非熊(전렵구비웅) : 옛날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가자, 태복관(太卜官)이 점을 쳐보고 말하기를 “오늘에 얻을 것은 큰 곰도 아니요 범도 아니요 패왕(覇王)이 되도록 도울 인물입니다.” 하였는데, 마침내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하는 강태공(姜太公)을 만났는 바, 가서한(哥舒翰)을 강태공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 茅土加名數(모토가명수) : 옛날 천자(天子)가 제후(諸侯)를 봉할 때에 방위의 색깔에 따라 흙을 나누어 주되 이것을 황토로 덮고 흰 띠 풀로 싸서 주었는바, 방위의 색깔이란 동(東)은 청색(靑色), 서(西)는 백색(白色), 남(南)은 적색(赤色), 북(北)은 흑색(黑色)을 이르고 명수(名數)는 백성의 숫자로 삼천호(三千戶)를 봉해주는 따위를 이른다. 여기서는 가서한(哥舒翰)이 서평군왕(西平郡王)에 진봉(進封)됨을 말한 것이다.
* 山河誓始終(산하서시종) : 한(漢) 고조(高祖)가 즉위하고는 공신(功臣)을 봉할 적에 맹세하기를 “황하(黃河)가 말라 띠처럼 되고 태산(太山)이 닳아 숫돌처럼 되도록 나라가 길이 보존되어 후손들에게 미칠 것이다.” 하였다.
* 策行遺戰伐(책행유전벌) 契合動昭融(계합동소융) : 소융(昭融)은 매우 밝은 것으로 성명(聖明)한 군주를 지칭한다. 이덕홍(李德弘)은 “군대를 출동할 때에 책략이 이미 행해지면 전벌(戰伐)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전벌을 버린다고 말한 것이다. 군신 간에 마음이 이미 합하였으므로 모든 조처가 언제나 임금과 합치되어 서로 어긋나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근심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
16~20운
未為珠履客(미위주리객) : 진주로 꾸민 신발을 신은 손님 되지 못하고
已見白頭翁(이견백두옹) : 이미 백발의 늙은이 되었구나.
壯節初題柱(장절초제주) : 장한 뜻 처음에는 기둥에 글 썼었는데
生涯獨轉蓬(생애독전봉) : 생애가 굴러다니는 쑥대처럼 정처 없네.
幾年春草歇(기년춘초헐) : 몇 년이나 봄풀이 시들었나.
今日暮途窮(금일모도궁) : 오늘은 해 저문데 갈 곳 없는 신세 되었다오.
軍事留孫楚(군사류손초) : 손초(孫楚)처럼 군사(軍事)로 머물게 하고
行間識呂蒙(행간식여몽) : 군대 대열 사이에서 여몽(呂蒙)같이 보았다면
防身一長劍(방신일장검) : 몸을 막을 한 자루 장검으로
將欲倚崆峒(장욕의공동) : 장차 공동산(崆峒山)에 의탁하고 싶다오.
* 未爲珠履客(미위주리객) : 주리객(珠履客)은 신발을 진주로 꾸민 상객(上客)으로,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은 문객이 3천 여명이었는데, 그중에 최상의 대우를 받는 문객들은 모두 진주로 신발을 꾸몄다 한다. 여기서는 두보(杜甫)가 가서한(哥舒翰)의 문객이 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壯節初題柱(장절초제주) :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처음 성도(成都)의 승선교(昇仙橋)를 지나면서 다리의 기둥에 쓰기를 “사마(駟馬)의 수레를 타지 않으면 내 다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 하였다.
* 生涯獨轉蓬(생애독전봉) :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자신을 바람에 이리저리 구르는 쑥대에 비유한 것이다.
* 今日暮途窮(금일모도궁) : 진(晉)나라 손초(孫楚)는 자가 자형(子荊)인데 재주와 조감(照鑑)이 뛰어났었는 바, 나이 40이 넘어서야 비로소 진동군사(鎭東軍事)에 참여되었다.
* 行間識呂蒙(행간식여몽) : 《吳志(오지)》에 “여몽(呂蒙)은 자가 자명(子明)이니, 나이 16세에 칼을 뽑아 행오(行伍) 사이에서 관리를 죽이고는 손책(孫策)에게 인정을 받아 등용되었다.” 하였다.
* 將欲倚崆峒(장욕의공동) : 공동산(崆峒山)은 서쪽에 있으니, 바로 토번(吐藩)이 침입하는 길이다. 두자미(杜子美:두보)가 이르기를 “장차 칼을 잡고 공동산에 가서 가서한(哥舒翰)을 따라 절도(節度)의 진(鎭)을 지키고자 한다.”고 하였다.
9
이조팔분소전가(李潮八分小篆歌) -이조의 팔분서와 소전을 읊은 노래
* 이 시는 《杜少陵集(두소릉집)》 18권에 실려 있는 바, 작자의 생질(甥姪)인 이조(李潮)가 팔분서(八分書)와 소전체(小篆體)에 뛰어남을 노래한 것으로, 대력(大曆) 원년(元年:766)에 기주(夔州)에서 지은 것이다. 이조는 이사(李斯)의 역산비(嶧山碑)를 본받았다고 하며, 팔분서(八分書)로 쓴 것으로는 〈唐慧義寺彌勒像碑(당혜의사미륵상비)〉와 〈彭元曜墓誌(팽원요묘지)〉가 있다고 한다.
蒼頡鳥跡既茫昧(창힐조적기망매) : 창힐의 새 발자국은 이미 아득하니
字體變化如浮雲(자체변화여부운) : 글자체의 변화 뜬 구름 같아 알 수 없네.
陳倉石鼓又已訛(진창석고우이와) : 진창(陳倉)의 석고문(石鼓文)도 이미 와전되니
大小二篆生八分(대소이전생팔분) :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에서 팔분서(八分書)가 나왔다네.
秦有李斯漢蔡邕(진유이사한채옹) : 진(秦)나라에는 이사(李斯) 한(漢)나라에는 채옹(蔡邕)이 있었는데
中間作者寂不聞(중간작자적불문) : 중간에는 작자가 적막하여 알려지지 않았다오.
嶧山之碑野火焚(역산지비야화분) : 역산의 비(碑)는 들불에 타버렸고
棗木傳刻肥失真(조목전각비실진) : 대추나무에 전각한 것은 자획이 살쪄 참모습 잃었네.
* 이조(李潮): 성당(盛唐)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능했던 서예가. 송(宋) 조명성(趙明誠)의《금석록(金石錄)·당이조미륵상비(唐李潮彌勒像碑)》에 “이조의 글씨는 처음에는 극히 적어서 오직 이 비석과 《팽원요묘지》 뿐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구했다. 그 필법 또한 빼어난 것이 아니어서 한택목(韓擇木)이나 채유린(蔡有鄰)과 비교할 수 없다.(潮書初絶少, 惟此碑與《彭元曜墓志》爾, 余得之. 其筆法亦不絶工, 非韓蔡比也.)”라고 하였다. 일설에 이조는 당대 전서의 대가인 이양빙(李陽冰)이라고 한다.
* 八分書(팔분서) : 넓은 의미로 말한다면 고예(古隸)를 제외한 예서(隸書)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팔분서와 예서는 소전(小篆)과 대전(大篆)의 관계와 같으며, 고예의 연변에서 생겨난 것으로 필세상의 구별이 있을 뿐 짜임새에 있어서는 어떠한 차이점도 없다. 왜냐하면 팔분(八分)이란 고예에서 점점 파책(왼쪽으로 삐치는 획을 파라 하고 오른쪽으로 삐치는 획을 책이라고 한다.)이 생기고 글자의 팔면이 모두 충분히 배치되고 정제한 모습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팔분서의 대표작으로는 <예기비(禮器碑)>, 을영비(乙瑛碑)>, <서악화산묘비(西嶽華山廟碑)>등이 있다.
* 창힐(蒼頡 혹은 倉頡): 한자를 창제했다고 전해지는 중국 고대의 인물이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의 사관(史官)으로서, 눈이 네 개 달려있었다고 한다. 중화민국의 타자 입력법 중 하나인 창힐수입법은 이 인물의 이름을 딴 것이다.<위키백과>
* 蒼頡鳥跡(창힐조적) : 창힐은 황제의 신하이니, 새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다
* 陳倉(진창) : 섬서성(陝西省) 寶雞縣 동쪽의 지명으로 원래 석고(石鼓)가 이곳에 흩어져 있었다.
* 大小二篆生八分(대소이전생팔분) : 주(周)나라 태사인 籒(주)가 처음으로 대전을 만들고 진(秦)나라의 승상인 이사(李斯)가 소전을 만들고 왕차중(王次中)이 예서를 줄여 팔분서(八分書)를 만들었다. 채옹이 말하기를 “신의 아비가 일찍이 말하기를 ‘팔분서는 정막의 예서법을 줄여서 팔분을 제거하고 이사의 소전을 본받아 이 분을 제거하여 팔분을 취하였으므로 팔분서라 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전서(篆書) : 전서(篆書)는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으로 나뉜다. 대전은 주문(籒文)이라고도 하는데 주나라 때 사주(史籒)가 문자의 짜임을 실용적으로 간소화시켰으므로 붙여졌다. 대표적으로 대전에 속하는 주대의 석고문(石鼓文)이 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문자의 통일을 꾀할 때에 이사(李斯)가 대전의 서체를 더 간략하게 만들었는데 그 서체가 소전(小篆)이다. 소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진시황의 공적을 기록한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역산비가 있다. 소전은 모두가 원필이며 자형이 아래위로 길다.
* 嶧山之碑(역산지비) : 진시황(秦始皇)이 동쪽으로 순행(巡行)할 적에 추역산에 올라 돌에 새겨 공덕을 칭송하니, 이 글은 이사(李斯)의 소전이다.
* 棗木傳刻肥失真(조목전각비실진) : 추역산(鄒嶧山)의 비석이 들불에 타버리자, 이것을 다시 대추나무에 옮겨 새겼는데, 원래보다 글자체가 두꺼워졌으므로 자획이 살쪄 참모습을 잃었다고 한 것이다.
苦縣光和尚骨立(고현광화상골립) : 고현(苦縣)에 있는 광화(光和)의 노자비(老子碑) 아직도 뼈대가 서 있으니
書貴瘦硬方通神(서귀수경방통신) : 글씨는 야위고 굳셈 귀하니 신(神)을 통할 수 있네.
惜哉李蔡不復得(석재이채불부득) : 애석하다 이사(李斯)와 채옹(蔡邕) 다시 얻을 수 없는데
吾甥李潮下筆親(오생이조하필친) : 우리 생질 이조(李潮) 붓을 놀리면 이들과 가깝다오.
尚書韓擇木(상서한택목) : 상서(尙書)인 한택목(韓擇木)과
騎曹蔡有鄰(기조채유린) : 기조(騎曹)인 채유린(蔡有隣)은
開元已來數八分(개원이래수팔분) : 개원(開元) 이래로 팔분(八分)을 잘 쓴다고 꼽아오는데
潮也奄有二子成三人(조야엄유이자성삼인) : 이조(李潮)는 두 사람의 경지 소유하여 셋이 되었다오.
況潮小篆逼秦相(황조소전핍진상) : 더구나 이조(李潮)의 소전(小篆)은 진(秦)나라 승상 이사(李斯)와 가까워
快劍長戟森相向(쾌검장극삼상향) : 예리한 칼과 긴 창이 삼엄하게 서로 향한 듯하여라.
八分一字直百金(팔분일자직백금) : 팔분(八分) 한 글자는 백금(百金)의 값이 나가니
蛟龍盤拏肉屈強(교룡반나육굴강) : 교룡이 서려 있는 듯 근육이 억세어 보이누나.
* 苦縣光和(고현광화) : 苦는 하남성(河南省) 녹읍현(鹿邑縣) 동쪽의 옛 땅 이름으로 노자(老子)의 고향이고, 광화(光和)는 동한(東漢) 영제(靈帝)의 연호이다. 호현의 노자비(老子碑)는 광화년간(光和年間)에 세운 것으로 채옹(蔡邕)이 썼다.
* 瘦硬(수경) : 필획이 여윈듯하면서도 강하고 곧으며 힘이 있는 것을 말한다.
* 李蔡(이채) : 이사(李斯)와 채옹(蔡邕).
* 騎曹(기조): 병부(兵部)를 가리킨다.
* 韓擇木(한택목) : 당나라 양주(揚州) 광릉(廣陵) 사람. 사유칙(史維則), 채유린(蔡有隣), 이조(李潮)와 함께 ‘예서사가(隷書四家)’로 불린다. 한유(韓愈)의 숙부다. 현종(玄宗) 때 국자사문박사(國子四門博士)와 국자사업(國子司業)을 지냈다. 팔분(八分)과 정서(正書)에 능했다. 천보(天寶) 초에 제왕시서(諸王侍書)와 경왕부속(慶王府屬), 영왕부사마(榮王府司馬),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등을 지냈다.
* 蔡有鄰(채유린) : 당대의 서예가로서 예서에 능하였다. 당 현종(玄宗) 개원(開元)·천보(天寶) 연간에 주로 활동하였다.
* 快劍長戟森相向(쾌검장극삼상향) : 서체의 빠르기와 날카로움이 칼과 창같이 잘 정제되었다는 뜻이다.
* 一字直百金(일자직백금) : 直는 値와 같은 뜻이다.《서경잡기(西京雜記)》에는 “회남왕 유안(劉安)이《회남자(淮南子)》를 짓자 양웅(揚雄)은 매 글자에 출입이 있다 하여 한 자에 백금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는 말이 있고, 《사기(史記)·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에 “여불위는 식객을 시켜 그 들은 바를 저술하여 논집을 내고 그것을 《여씨춘추(呂氏春秋)》라 불렀다. 이것을 함양의 시문(市門)에 진열하여 놓고 천금을 그 위에 달아 놓은 뒤에 제후의 유사(游士)와 빈객들을 맞아들여 ‘단 한 글자라도 더 보태거나 빼버리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고 하였다.”는 말이 있다. 정막(程邈)이 이사의 글씨를 보고 “이는 한 자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此一字直千金)”고 했다 한다.
* 蛟龍盤拏(교룡반나) : 반나는 필획이 굽이돌아 끌어당기는 상태를 말한다. 교룡반나는 필적이 기괴하고 굳세어 용이 서리어 끌어당기는 듯하다는 뜻이다.
* 屈强(굴강) : 고집이 세다. 강직하고 순종하지 않는 모양.
吳郡張顛誇草書(오군장전과초서) : 오군(吳郡)의 장전(張顚)이 초서(草書) 과시하나
草書非古空雄壯(초서비고공웅장) : 초서(草書)는 옛것 아니니 부질없이 웅장하기만 하다오.
豈如吾甥不流宕(기여오생불류탕) : 어찌 우리 생질이 방탕한 데로 흐르지 아니하여
丞相中郎丈人行(승상중랑장인항) : 승상(丞相)과 중랑(中郞)의 장인(丈人) 항렬이 됨만 하겠는가.
巴東逢李潮(파동봉이조) : 파동(巴東)에서 이조(李潮) 만나니
逾月求我歌(유월구아가) : 한 달이 넘도록 나에게 노래 지어주기 청하였네.
我今衰老才力薄(아금쇠로재력박) : 내 이제 노쇠하고 재주와 힘도 부족하니
潮乎潮乎奈汝何(조호조호내여하) : 이조(李潮)여! 이조(李潮)여! 너에게 어찌하리.
* 張顚(장전) : 전(顚)은 미치광이라는 뜻으로, 당(唐)나라 때 서가(書家)인 장욱(張旭)의 이칭(異稱)이다. 자가 백고(伯高)인데 초서(草書)를 잘 써 초성(草聖)으로 알려졌는 바, 특히 술에 취하면 큰소리로 고함치고 미친듯이 달리며 초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 丞相中郞(승상중랑) : 승상은 관명으로 진(秦)나라 승상을 지낸 이사(李斯)를 가리키고, 중랑 또한 관명(官名)으로 후한(後漢) 때에 이 벼슬을 지낸 채옹(蔡邕)을 가리킨다.
* 丈人行(장인항) : 아내의 아버지인 장인뻘이라는 뜻으로, 장자(長者)에 대한 존칭. 이사·채옹은 이조의 스승임을 이르는 말이다.
* 파동(巴東) : 현(縣) 이름으로, 후한 때 파군(巴郡: 지금의 사천성 동부)을 셋으로 나누어 삼파(三巴)라 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로 호북성(湖北省)에 속한다. 파수(巴水)의 동쪽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
ㅡ이백 연관 시 6수의 1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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