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주야 별일 없냐? 아빠가 꿈을 꾸다 깨서 좌판을 두들기는 것은 너와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간난아이를 부등 켜
앉고 부비 부비 하는데 너의 앙증맞은 냄새와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구나.
바이러스의 습격 때문에 고생 많이 했지? 연애하고 일하고 철학하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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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피지 컬 대비 에너지를 과다 쓴 것 아니냐? 조심하려무나. ‘좋은 게
다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것이 다 나쁜 것이 아니라는’ 철학적 물음이 맞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 전이 11월 이후로 미뤄졌으니 봄 학기
등록을 하고 학업과 수-랩 티-칭 일을 계속 하겠구나. 대대로 오손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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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네 sns를 둘러 보니 욕심 많은 네 캐릭터가 고스란히 읽히더구나.
아빠는 욕망을 에너지로 본다. 시간 사용에 있어 이보다 더 잘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운이란 그것을 준비하고 발견하고 활용하는 자에게만
찾아오게 돼 있다'고 보고 하는 잔소리이니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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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의 삶을 위해 학부-대학원(석 박사)코스로 진입한 것을 가문의 영광
으로 보고 너의 기대 이상의 선전을 칭찬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그 길을 가고 있는가? 일 것이야(성공과 직결되는
물음). 성인이 되었으니 너 스스로 용량을 키우고 삶을 즐기는 선택을 끊임
없이 해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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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회화를 하지만 회화에 국한하지 말고 스펙트럼을 더 넓히는
도전을 계속해야 해. 서양화 같은 동양화를 해야 하고 동영상과 설치미술
조소 그리고 영화(배우) 연출까지 섭렵할 필요가 있어요. 마치 세익스피어
시절 무대를 올리기 위해 글도 쓰고 인맥도 쌓고 직접 단역 배우를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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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처럼 말이야. 그때가 되면 포트폴리오를 강조 했는지를 실감할 것이다.
네 글 중 아빠가 가장 인상 깊은 글은 초딩 떼 쓴 일기와 ‘이태원1.2’이란다.
최근 일취월장 하고 있는 네 포스팅에 대한 코멘트를 하자면 글을 짧고
연속해서 쓰는 것이 필요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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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을 ‘작업 노트’처럼 쓰려고 하기 때문에 '확장성'과' 연속성'에 미달될
수 밖에 없단다. 아빠 생각에는 작업 노트만 오픈을 하고 네 수필은 비공개로
쓰면 어떻겠니? 아빠가 성현이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는데 네 블로그를 벤치
마킹한 것처럼 보였어. 그럼에도불구하고 정제되지 않은 글과 사진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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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 글의 제1 기능은 ‘공감대’인데 진정성은 민낯
일 때 발휘되는 것 같아. 언니의 글 속에 ‘씹 새끼’나 ‘흡연’ 같은 단어들이 가끔
발견되고 성현의 허 당 끼 같은 것들을 독자들은 좋아한다는 뜻이야. 그렇다고
일부러 욕을 쓰고 되바라진 글을 쓰란다면 애비는 비정상인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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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를 여과 없이 표현하는 정도가 되려면 좀 더 연륜이 쌓여야 할 테지만
그렇더라도 일기처럼 비공개로 쓰면 욕도 쓸 수 있고 좀 더 디테일한 사건이나
생각들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야. 네가 보고 듣고 일어나는 모든 일은 쓸 수
있어야 하거든. 박완서 선생님도 성애 장면을 소설 속에 적나라 하게 묘사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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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번에 철학사를 스스로 공부하고 가는 것은 아주 잘한 일이야.
공부란 학점이나 돈과 상관없이 스스로 할 때 가성비가 최고로 오른단다.
미술사를 공부해 놓으면 네가 큐레이터나 포스 팅, 전시회 인트로 할 때
매우 쓸모가 있을 것이다. 진로 관련 1년 동안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있을
텐데 조만간 네 계획을 듣고 싶구나. 너의 칸트를 기대하고 있어.
2023.2.6.mon.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