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부부 공통 취미부터 갖겠다고? 커다란 착각” [행복한 노후 탐구]
日 노후 전문가 오오에히데키씨 인터뷰 2편
사이좋은 부부 되기 위한 공생(共生) 5계명
“59세까지만 일하고 그 이후부터는 5도 2촌(닷새 도시, 이틀 농촌)을 즐기려 합니다.”
“30년 직장 생활을 정리하면 아내와 함께 취미도 즐기고 여행도 떠날 겁니다.”
은퇴는 직장의 울타리를 떠나 부부가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시기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남편과 아내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부부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자녀들은 다 떠나고, 부부끼리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시집·장가 다 보내놓고 부부 둘이서만 30년 넘게 생활하는 경우도 우리 주변에 흔해지고 있다.
부부에게 은퇴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가 지난 7월 SM C&C 설문조사 플랫폼인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성인 남녀 2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봤다.
‘정년퇴직 이후 부부 사이가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관심 없다’는 응답이 전체의 33%로 가장 많았고, ‘나빠졌다’는 응답은 30%로 뒤를 이었다.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8%에 그쳤다.
긴 인생에서 부부가 가장 잘 지내야 하는 시기는 노년기인데, 태풍처럼 몰아친 퇴직이 관계를 악화시킨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정년퇴직은 남편의 직업과 월급, 명함 등 3가지가 사라지는 인생 최대 이벤트다.
부부 사이도 예전과 달라진다.
일본의 노후 전문가인 오오에히데키(大江英樹)씨는 지난 20일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미 오랜 산 부부니까, 은퇴해도 다 이해해 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곤란하다”며 “불필요한 감정 다툼을 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은퇴 부부의 공생(共生) 법칙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행복한 은퇴 부부로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회사에 매여서 생활했던 남편들은 은퇴하고 나면 그 동안 아내와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겠다고 벼른다. ‘퇴직하면 같이 장기 해외여행을 떠나야지’ 이런 거다. 명백하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다. 아내는 다른 계획을 세워뒀을지도 모른다. 부모나 형제는 혈연관계이면서 다른 인생을 살지만, 부부는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았는데 같은 인생을 걸어야 하는 존재다. 아내는 나와 다른 인격을 가진 인간이다.”
–속 터놓는 대화 말고 또 뭘 하면 좋은가.
“상대방의 세계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배우자에게 맞출 필요는 없다. 각자가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회사를 그만뒀더니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퇴한 남편이 아내 옆에 붙어 있는 것이야말로 최악이다. 노후에 외출하지 않고 집에 오래 머물면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 서로가 어느 정도 거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평소엔 그냥 넘어갈 만한 사소한 습관들도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은퇴 후 사랑받는 남편되기 5계명】
1. 아내만 따라다니는 바둑이는 NO
2. 거리두기가 부부 사랑을 키운다.
3. 갑자기 친한 척 하면 불편하다.
4. 부부 공통취미는 없어도 된다.
5. 아내를 직장상사 대하듯 모셔라.
–부부끼리 거리를 둬야 한다는 얘기인가.
“회사형 남편들은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내의 생활 패턴을 알게 된다. 수십년 회사에 올인하고 가정은 소홀히 했으면서 은퇴했다고 갑자기 친한 척 해봤자 소용없다. 노후 행복을 위한 일종의 ‘부부 연금’이라고 생각하고 평소에 아내에게 애정을 갖고 대할 필요가 있다. 노년에는 부부 둘이서 지내는 시간이 늘기 때문에 상대방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다 눈에 들어온다. 젊을 땐 따로 지내다가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난 뒤에 같이 지내려면 적응하기 어렵다. 은퇴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라는 생각을 갖고 아내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존중하자.”
–금혼식(결혼 50주년) 올리려면 은퇴 고비를 잘 넘겨야겠다.
“정년퇴직 후에는 월급이 끊겨 수입이 줄어들고 생활 리듬은 달라지고, 신체적인 노화 현상도 나타난다. 이런 극심한 변화의 시기에는 부부가 2인3각 경기를 하듯 서로 맞춰나가야 한다. 충분히 대화하고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감정 소통이 안 되어 서먹서먹해지거나 얼굴만 봐도 짜증나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은퇴하면 아내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자가진단 해보세요.】
1. 회사에서 친절하지만 집에선 소파와 한 몸
2. 식구들 먹여 살리는 '좋은 가장' 이라고 생각한다.
3. 회사일 외에는 친구나 취미가 없다.
4. 홧김에 “그럼 나가서 돈 벌어오든가” 말해 봤다.
5. 주말 삼시세끼는 아내표 집밥이면 좋겠다.
6.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지만 간섭은 가끔 한다.
7. '아, 늙어서는 못 얻어먹겠구나.' 느낄 때가 있다.
8. 자식에게 좋은 부모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9.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말에 불끈했다.
10. 차를 운전할 때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결과 체크》
- 3개 이하 : 꽃길 은퇴
- 4~7개 : 황혼이혼 예비군
- 8개 이상 : 황혼이혼
–부부가 공통 취미를 가지면 도움이 되나.
“취미는 굉장히 즐거운 것이다. 인생을 풍요롭게 보내려면 취미를 가지는 편이 확실히 도움 된다. 하지만 하기 싫으면서 괜히 배우자에게 맞춰서 억지 취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취미를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년이 되어 급하게 뭔가 취미를 시작하기 보다는 가급적 50대부터 조금씩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찾는 것이 좋겠다.”
–지역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히 해야 하나.
“은퇴하면 사회생활이 사라지게 되니, 적극적으로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하고 싶다면 해도 되지만. 다만 퇴직 전 회사에서 아무리 높은 직위에 있었다고 해도 지역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순간, 평범한 일반 사원으로 바뀐다. 아주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 뭔가 내가 아직도 상사인 것처럼 행동하면 거부감만 줄 뿐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봉사하겠다.’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워킹맘의 지역 데뷔가 위험한 이유는?
“한국은 일본보다 일하는 여성들이 더 많다고 알고 있다. 일하는 여성의 사고 프로세스는 남성과 비슷하다. 남성 위주인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일하면, 아무래도 빨리 결론부터 내고 싶어 하는 합리적 사고방식이 되기 쉽다. 하지만 지역 사회의 여성 커뮤니티는 합리성보다는 ‘공감(共感)’과 ‘합의(合意)’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맹렬히 싸워왔던 용감한 여성 전사들이 은퇴 후에 그 ‘합리성’을 버리지 않고 지역 커뮤니티에 합류하면 트러블을 일으키기 쉽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
이경은 기자 (2022.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