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서 받은 은혜의 글 모음(66)
1. 낙조사색(落照思索
낙조사색(落照思索)은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로 널리 쓰이는 표현이라기보다, 한자어를 조합해 만든
문어적 표현입니다.
한자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落(낙) : 지다, 떨어지다.
照(조) : 햇빛, 비치다. **낙조(落照)**는 '지는 해', '석양(夕陽)'을 뜻합니다.
思(사) : 생각하다.
索(색) : 찾다, 더듬다. **사색(思索)**은 깊이 생각하고 탐구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낙조사색(落照思索)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깊이 생각에 잠긴다." 또는 "석양 속에서 인생을 되돌아보며 사색한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낙조사색'은 '낙조(落照)'와 '사색(思索)'을 결합한 표현으로,
특정 고전이나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는 아닙니다.
중국의 한시(漢詩)나 우리나라의 한문 문학에서 석양(낙조)을 인생의 황혼, 회고, 무상함의 상징으로 즐겨
노래한 전통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표현입니다.
동아시아 문학에서는 석양을 다음과 같은 상징으로 자주 사용합니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상. 인생의 무상함. 고향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 깊은 성찰과 명상을 말할 때
사용하지요.
2. 본립 도생 (本立道生)
우리는 종종 눈앞에 보이는 화려한 열매를 맺기 위해 마음을 졸입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가고 싶어서, 혹은 지름길을 찾고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하곤 합니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칠 때 거목(巨木)을 지탱하는 것은 밖으로 뻗은 '가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이 단단하게 내린 '뿌리'입니다.
본립도생(本立道生), 뿌리가 튼튼하게 서면 나아갈 길은 자연스럽게 열린다는 뜻입니다.
삶이 막막하고 길이 보이지 않아 불안할 때일수록, 우리는 밖을 헤매기보다 내 안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묵묵히 나의 토양을 다지고 뿌리를 깊게 내리다 보면, 어느새 막혀 있던 안개는 걷히고
내가 걸어가야 할 선명한 길(道)이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결국 가장 기본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단단한 뿌리가 마침내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내기를 응원합니다.
3.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말하는 철부지
명심보감에서 말하는 철부지는 오늘날의 "생각이 어린 사람"이라는 뜻과는 다소 다릅니다.
명심보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인불통고금 마우이금 거)
"사람이 고금(古今)의 이치를 알지 못하면 옷을 입은 말과 소에 불과하다."
또한 '철(철을 안다)'는 의미는 시절(時節), 때, 사리, 분별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명심보감에서 직접 '철부지(철을 모르는 사람)'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후대에서는 명심보감의 처세(處世)와 수양 사상을 바탕으로,
철이 들다 : 사람의 도리와 때를 알고 분별력이 생기다.
철부지 : 때와 분별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연결하여 이해해 왔습니다.
즉, 명심보감에서 말하는 '철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알고, 때를 분별하며, 예의를 지키고, 자신의 행동을 절제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명심보감에 '철부지'라는 표현이 직접 실려 있는 것은 아니며, 후대에 "철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우리말이 명심보감의 수양 사상과 결부되어 지금의 의미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凡事 有人情이면 後來 好相見이니라"(범사 유인정이면 후래 호상견이니라)는
명심보감의 「계성 편(戒性篇)」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凡事 有人情이면 後來 好相見이니라.
凡事(범사) : 모든 일에
有人情(유인정) : 인정(人情), 즉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과 배려를 남겨두면
後來(후래) : 훗날
好相見(호상견) : 서로 좋은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다 즉,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인정과 여지를 남겨두면, 훗날 다시 만났을 때 서로 좋은 얼굴로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말이라기보다, 명심보감 편찬자가 여러 중국의 유교 경전과
격언집(예: 경행록(景行錄) 등)에 실린 교훈을 모아 엮으면서 전해진 처세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어떤 한 사람의 일화'에서 나온 말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동아시아의 인간관계를
다루는 처세 철학을 압축한 격언으로 이해됩니다.
오늘날의 의미
이 말은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뜻을 넘어, 협상이나 거래에서 상대를 궁지로 몰지 말고,
관계를 끝낼 때도 예의를 지키며, 훗날 다시 만날 가능성을 생각해 여지를 남겨두라는 실용적인 처세의
지혜로 자주 인용됩니다.
글 주신 분 : 김종승
<옮긴 글>
첫댓글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는 보통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라는 구절의 앞부분을 말합니다.
이 말은 중국의 전통 관상서인 『마의상서(麻衣相書)』와 관련되어 전해집니다.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相好不如身好 — 얼굴이 좋은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身好不如心好 — 몸이 좋은 것은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
즉, 외모보다 건강이 중요하고, 건강보다 마음가짐과 인품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 구절이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데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일화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젊은 시절 과거시험에 낙방한 뒤 아버지의 권유로 『마의상서』를 공부했습니다. 자신의 관상을 살펴보니 좋은 관상이 아니라며 크게 낙담했는데, 책에서 이 구절을 발견하고 “얼굴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백범일지』에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단순한 관상학의 문구라기보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외모가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의미의 인생 격언으로 많이 인용됩니다.
참고로 뒤에 “심호불여덕호(心好不如德好)”, 즉 “마음이 좋은 것은 덕이 훌륭한 것만 못하다”라는 형태까지 덧붙여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상호불여신호 → 신호불여심호 = “얼굴보다 몸, 몸보다 마음.”
백범 김구 선생에게는 이것이 외모에 대한 좌절을 넘어 평생의 자기수양을 결심하게 한 문구였던 셈입니다.
김종승 선생님! 돌샘 님의 글 속에 선생님이 '시인'이라시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룻 님의 퐁당 퐁당 카페 회원 님이 주로 시인이셨던 분들이시요. 제가 이룻 님을 알게 된 것도 이룻 님의 시를 보고
댓글을 올리다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삶을 보고 참으로 '성공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간 선생님이 제가 올리는 글에 답글을 주시는 것을 보고 저는 선생님이 어느 철학 교수 님이나 한학자(漢學者)이신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오늘 '시인'이시라는 말씀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시인이신 분이 그 많은 지식 보유자라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시인이시면서 그 많은 지식을 익히시다니 선생님이 그간 얼마나 시를 떠난 분야에도 심혈을 기울여
배우셨는지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선생님의 서재에 꽂힌 책들이 무엇인가 짐작이 갑니다.감탄이고 감동입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선생님의 한평생 삶이 어떻게 살아오셨을 가를 가늠해 봅니다. 존경스럽고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