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내일 화요일(1/21)은 본 교회가 속한 시찰회 행사 및 2부 진행 등으로 인해 '21세기 두란노서원' 등을 중심으로 하는 페이스북과 홈페이지와 유튜브 상의 게시 및 공유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참 죄송스럽고 미리 양해를 구하며..
혹 다양한 이유들로 그와 유사한 내용들이 필요한 분들은 페이스북('양범주' 검색), 홈페이지(Daum검색에서 '행복카페교회' 들어가서 '리바이벌 센터' 게시판), 유튜브('양범주목사의 두란노서원' 검색) 등에 대략 3년 정도 분량(예를 들면 1년 전의 동일한 해당일을 참조하면 내용이나 흐름은 다르더라도 접근 용이)이 잘 보관되어 있고, 그 누구든, 그 어디서든, 그 어느 부분이든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게 되어 있으니 활용 및 참조해 주시길 원하고 부탁드리며,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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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증거되어 있고,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의 세계, 복음의 세계, 구원의 세계에 있어 믿음이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이라는 것은 조금만 통찰해 봐도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말씀대로 의지하고 구하면서 말씀에 약속된 일들을 그대로 누리고 맛보며, 말씀과 함께 나타나고 이뤄지게 되는 것으로..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믿음은 말씀인 것이고, 전적으로 말씀대로의 믿음인 것이며,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완전히 직결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아래 본문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보통의 믿음이 아니었고, 하나님께 있어 보통의 기뻐 역사하심일 수 없었던 자들인 것으로 그들은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진정 그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신다면 맹렬한 풀무불에서도 능히 건지실 수 있다고 실제로 믿고 고백하며 의지할 정도로, 다시 말해 어떤 면에서는 말로 안 되고 인간적으로는 극히 비상식적이며 세상적으로 심히 황당할 수도 있어 보일 정도이기까지의 믿음,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었던 것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어떤 뜻이 있으셔서 원래는 정말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로 인해 실제로 죽게 된다고 할지라도 기꺼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행실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정말 그대로 실천했을 정도로, 참으로 그렇듯 목숨까지 온전히 걸 정도의 믿음,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정도까지의 믿음, 그렇게까지의 말씀의 신앙과 함께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만든 풀무불에서도 실상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더군다나 불 탄 냄새도 안 날 정도로까지 하나님께서 생생하고 강렬하며 기적 이상으로 역사하신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그와 같은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는 분이자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그렇게까지 합당했던 것이고, 뿐만 아니라 다니엘이나 그의 세 친구들과 같은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도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오늘날의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구원을 위한 다른 통로나 방법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사실 그 외에는 달리 구원에 참예케 된다거나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고 간구함과 함께 응답을 누릴 수는 없는 것인데,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창세기 3장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회막, 지성소, 성전, 제사장, 선지자,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주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 하는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인데 어쨌든 바로 그러한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에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그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 그 이름으로 올려 드리는 기도에 있어서도 가장 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열정이야 말로 그러한 성령님의 직접적, 현실적인 힘과 실제들, 누림과 나타남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 가장 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실제로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그와 같은 성령님께서 그 정도까지의 믿음, 말씀의 신앙과 함께 칠 배의 풀무불에서도 머리털 하나 그을리지 않도록 하기까지의 실제와 누림이 되게 하실 정도로 생생하고 강렬하게 주장하셨던 것입니다..
잠시만 살펴봐도 아래 본문의 다니엘의 세 친구들 뿐 아니라 사자굴에서의 다니엘도, 믿음의 선조 노아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애굽에 팔렸던 요셉도, 골리앗 앞에서의 다윗도, 갈멜산에서의 엘리야도, 무너진 성벽을 재건했던 느헤미야도, 돌에 맞아 순교했던 스데반도, 도망치면서 까지도 복음을 전했던 빌립도,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외쳤던 베드로와 요한도, 빌립보 성 감옥에서의 바울과 실라 등도 하나같이 그러한 믿음,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이었던 것으로 바로 그러한 믿음의 선배들, 그 정도까지의 신실하고 절실하며 치열하고 뜨거웠던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서 저를 비롯한 오늘날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오늘날 우리들은 그러한 믿음, 말씀의 신앙은커녕 조금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에 말씀 한 번도 제대로 읽거나 묵상하지 못하는 정도의 믿음조차도 안 되어서는, 진정 그 정도 수준의 말씀의 신앙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따지고 보면 바로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믿음, 그 정도만큼의 영성이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과 실정인 것으로, 곧 기도라는 것이 단순하게 말해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며 그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자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힘과 실제가 누림과 응답이 되는 것이기에 결코 상관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3:16~18)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5년 1월 20일(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