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시인의 낭독입니다.
멀리 경기도 안성에서 초대시인 조현광 시인과 함께 오셨네요.
대합실(待合室)
누구를 기다리나
각양각색 여행 가방들
매표소 안 매표원은 손길 바쁜데
연인들은 벌써 바닷가에 닿은 양
밀려오는 파도와
솔숲 백사장 걷는 이야기 나누다
잠시 머리 맞대고 조는 시간
밤새 뒤척였을 서늘한 바닥
매표도 출발시간도 잊은 덥수룩한 수염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느린 발걸음
어디로 가야하나
북적되던 하루 썰물도 빠져나가고
구내매점들 불빛 꺼지면
아무도 배웅할 사람 없을 대합실
어두운 구석에서 대낮부터
빈 소라껍데기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
소라게 같은 사내
박숙경 시인의 낭독입니다
들판을 적시는 강물처럼
버들가지 흐드러진 물가
봄바람도 종종걸음으로
그리운 마음 강물에 젖게 한다
겨우내 흐느끼던 마른 갈대는
목놓아 그대를 부르고
다리 걷어 물 위에 떠다니던 새벽안개도
두근거리는 여울 속으로 자맥질한다
언제나 기다리는 나를 남겨놓고
산을 넘는 뻐꾸기 울음처럼
움트는 계곡마다 메아리는
환한 산벚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그대여
그대 그리는 내 가슴에 넘치는 강물
지금은 어느 들판을 적셔
푸른 아우성은 목마른 수로마다 넘쳐나는지
내 그리움은 오늘도 거친 벌판을 지나
그대를 향해 끝없이 흐르는 강물이다
김명희 낭송가님의 순서입니다
가을 벚나무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
옹이를 안고 기우뚱 서 있다
바람 불 때마다
밀물처럼 다가오는 통증
환한 벚꽃도 버찌도 버리고
단풍 물드는 이파리들
마디마디 녹물이 번져간다
병원 문에 기대어 잠시 서 있는 그녀
길 건너 벚나무 응시하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쉰을 지나 넘어 온 먼 길
마디마다 도사린 관절염은
처방전을 나뭇잎처럼 매달고 있다
가야 할 길은 먼데
옷깃을 당기는 그녀의 관절들
기울어진 가로수만큼
같은 위도에서 기울어진 어깨
낡은 구두 뒷굽은 벌써 알았다는 듯
그렇게 닳아가고 있다
박창기 시인의 낭독입니다
민들레 집
민들레 집에 가면
민들레는 없고
소주 맥주 막걸리와 파전
술 취한 사람들과 알전구만 흔들거린다
안주인 이름이 민들레였던가
바람에 밀리며 민들레처럼 낮게 살다
민들레 씨앗처럼 날아와
이곳을 고향처럼 드나드는 사람들
탁자 위에 풀어놓는
그들만의 은어로 풀어놓는 힘겨운 말 말
소주 맥주 막걸리와
뻔한 안주지만
한때의 풍류와 서러운 푸념들
밟혀도 밟혀도 돋아나던 푸른 꽃대처럼
말과 말들이 뒤섞여 푸른 민들레밭이 된 집
민들레 집에는
떠돌이 씨앗들이 날아들어
저마다 안질뱅이로 뿌리 내리고
갓털 달고 날아갈 씨앗을 키우며
젖은 달빛을 말리고 있다
곽도경 시인이 요청한 노래를
즉석에서 불러주셨네요.
멋진 노래 감사드립니다.
♬
달 밝은 가을밤을 꿈인듯이 세우며
시들은 풀잎 헤쳐 산 너머 가리
달그림자 없으면은 귀또리 울음따라
이대로 나는 가리 아주 멀리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