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가 미래를 돕는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의 질문
이제는 현재가 미래를 도울 차례
2025년 새해를 맞은 지 한 달이 훨씬 더 지났는데도
아직 우리는 2024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 벌어진 압도적인 두 풍경에 갇혀 있다.
하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벼락같은 축복이었기에 더없이 놀랍고 기뻤던
노벨문학상 수상이고,
다른 하나 역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비상계엄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의 오랜 염원이자 아시아 최초 여성 작가의 수상이라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축하받아 마땅하다.
그의 작품 세계를 굳이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거대 권력에 의한 참혹한 비극 속의 인간 존엄을 향한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자인 여주인공을 옭아매는 가부장적 유교 사회의 규범과 관습의 폭력을 매혹적으로
담아낸 ‘채식주의자’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사건을 통해
거대 국가권력에 희생된 개인의 연약함을 탁월하게 다룬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로 확장되고 심화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한강의 수상은 실은 한국문학의 수상이기도 하다.
한국문학이 걸어온 길이 우리 근대사에 점철돼 온 완고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
군사독재, 국가폭력 등에 끝없이 응전하며 문학적 성취를 쌓아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계를 군사쿠데타와 광주학살로 이어진 45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한
현직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그로 인한 참담한 좌절과 분노 그리고 그 이후 펼쳐지는 혼돈과 무책임,
극언과 광기로 얼룩진 과정들은 그의 수상과 병치된다.
아니, 한 시대와 사회의 삶과 정신의 결정체가 문학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병존할 수 없어 보이는 이 두 풍경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 직후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한 야학교사의 일기를 보고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는가’
지난겨울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그리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왔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1980년 5월의 광주가 2024년 12월 서울과 대한민국을 도왔기에,
그때의 뼈아픈 경험과 기억이 낳고 기른 시민의식이 있었기에 다행히 일상을 지킬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고 있는 무책임과 선동,
이로 인한 극단적인 대립과 혼돈의 미궁 속에서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가 됐다.
정리는 이름으로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을 만드는 현실
누가 과연 진실을 말할까?
어리썩은 민중들이여!
진실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라
분명한 것은 45년 전의 광주가 2024년 겨울을 도왔다면
이제 현재가 미래를 도울 차례라는 것이다.
과거의 죽은 자들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보편과 상식, 공정과 포용, 도덕과 정의가 뿌리내린 민주주의를 확고히 만들어 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예술 문화의 핵심인 문학은 오늘의 이 과정을 기록할 것이고
그 삶과 정신의 총화인 K컬처는 한층 품이 넓어지고 성숙해져
다시금 세계인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뉘우침
함석헌(1901∼1989)
이렇게 오시는 임 내 되레 버렸으니
임 다시 찾으신들 내 무슨 낯을 들리
임이여 종으로 보고 문간에다 두소서
임 떠나가신 뒤에 밤 어이 길고길고
비바람 무슨 일로 그리도 둘러친지
기다려 참을 보잔 걸 내 모르고 저버려
울고 또 운단들 내 설움 다 하오리
깨물고 깨문단들 내 분이 풀리오리
임이여 내 아픈 마음 그 줄이나 아소서
-이 나라를 어찌할 것인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독립유공자·언론인·사상가로 노년에 더 열심히 활동했기 때문에
‘겨레의 할아버지’함석헌 선생이 광복을 주신 임(하느님)에 대한 참회의 시조다.
함 선생은 저서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광복은 도둑같이 왔다”고 썼다.
빼앗긴 나라의 백성은 훼절(毁節)한 죄인과도 같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시기, 위기 앞에서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이다.
지혜와 단결로 극복한 대한민국 백성의 저력을 믿고 춥지만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을 담아본다.
자신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저마다 빛나는 진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동방을 밝히는 마을
샛별이 반짝반짝 새벽을 밝힌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