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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보다 하느님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 이유
2024년 나해 연중 제31주일
복음: 마르코 12,28ㄱㄷ-3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 학자에게 율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계명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그러면 계명은 왜 주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자녀들에게 이런저런 것을 가르치는 이유와도 같습니다. 그래야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이 세상에서부터 행복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2023년 38년 동안 중증 장애인인 딸을 돌보다가 수면제를 먹인 뒤에 살해한 60대 어머니에게 법원이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선처했습니다. 검찰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는데, 어머니는 최후 진술에서 “버틸 힘이 없었고 끝내자는 생각이었다.”라면서, “딸과 같이 갔어야 했는데 혼자 살아남아서 정말 미안하다.”라고 오열했습니다.
분명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저절로 솟아나면 부모에게 키워질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리 사랑은 실체가 없고 개념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더라도 그들도 부모에게 사랑받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받아야만 줄 수 있는 실체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실 때 중요한 부분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입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면 이웃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만큼만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그 부족한 부분을 이웃에게 채우려 해서 나중에 본인은 사랑했다고 말하겠지만, 자녀들에게나 이웃에게 원망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최고야 원장의 『벼랑 끝, 상담』에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20대 중반에 무역회사에 다니며 이미 팀장의 자리까지 오른 능력 있는 여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자매는 어렸을 때 항상 부모의 싸움만 보며 자랐습니다. 그중에서도 피해의식이 컸던 엄마가 큰 문제였습니다. 엄마는 모든 분풀이를 딸에게 해대고 있었습니다. 딸이 수학 95점을 받아 반에서 1등을 하고 기뻐서 엄마에게 내밀었을 때 엄마는 그 시험지를 찢어버리며 “내가 이런 점수 보자고 이 고생하며 키웠냐?”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딸은 엄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죽도록 공부만 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직장에 취직해서 독립했을 때도 딸을 찾아와 괴롭혔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런 스트레스가 폭발할 때면 자해하며 풀었습니다.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능력도 있어서 남자친구는 쉽게 사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하던 똑같은 방식으로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했고 그렇게 많은 남자가 떠나갔습니다. 남자가 떠나려는 기미가 보이면 자해하며 피 흘리는 모습의 사진을 보냈습니다. 유일하게 지금 이 남자만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었기에 여자는 이 남자를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고야 원장은 그녀에게 남자를 위한 공간을 제공해 달라고 했습니다. 집 안에 텐트를 하나 마련해서 그 안에 남자친구가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자유를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잘 됐을까요? 나중에 다 부숴버렸습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면 남자친구에게 사랑받아야 합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것에 에덴동산에 있었던 선악과이고 지금으로 말하면 ‘십일조’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자녀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행복한 아내가 되어야 가정이 천국이 됩니다.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에 ‘아내의 겨울’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막노동으로 하루살이 하던 정호는 경기 침체로 넉 달째 일을 못 나갑니다. 그 남편을 위해 고깃집에서 일하다가 사장이 줬다며 아내가 불고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보다 먼저 남편에게 주었고 그 안에 씹다 버린 껌이 노란 종이에 싸여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자녀 몰래 그 껌을 집어삼켰습니다.
남편은 숫기 없는 아내가 몰래 남들이 먹다 남긴 고기를 모으느라 고생했을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배부르다며 밖으로 나온 남편은 아내의 구두를 닦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존재로서 자녀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랑이기에 순수한 사랑이고 그 사랑은 자녀들의 자존감을 높여줄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이고 그 나라의 행복입니다.
- 전삼용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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