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요즘 평론가들 이 과대해석도 만만치 않죠. 한 작품이나 현상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라는거죠. 자의적인 해석은 금물입니다.물론 다양성은 인정되어야
합니다만 예를 들어 지극히 대중적인 작품에 포스트 모더니즘따위를 논하면 안되겠죠.
그리고 또 평론가들이 자주쓰는 정치적인 해석도 좀 자제해줬으면 바랍니다.
감독이 분명히 정치적인 의도로 만든 작품도 있고 아닌것도 있습니다.
지극히 단순한 작품에까지 억지로 정치적인 해석을 끼워마추는거 보면
이사람이 영화 평론가인지 정치 평론가인지 의심될떄가 많더군요.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알튀세르 라는 사람이
"모든 문화적 텍스트의 해석은 정치적이어야 한다"
이라고 했다던데 요즘작품들 보면 아마 생각이 바뀔것이라고 장담합니다.
막말로 김삼순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석할껀가요? 뭐 무슨주의 무슨주의 써가면서
또 끼워마추면 가능이야 하겠죠. 하지만 그런방법으로 작품의 본질을 찾을수있을까요?
결론적으로 영화,문학,음악등를 비롯한 "작품"을 구심점으로 사회,정치,문화적인
해석이 들어가야지 요즘은 이것이 거꾸로 되가는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하지만 이건 다른말이고 위에도말했듯이 평론가는 필요한 직업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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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게님들도 nba매냐사이트 함께 활동하시는 님들 많이계시죠?
간만에 매냐사이트가봤더니 어떠님이 쓰신 영화이야기의 댓글에
위와같은 내용을 써주신 님이 계시더군요. 유심히 보니 얼마전에
제가 스필버그에 대해 쓰면서 인용했던 글이 그대로 재인용되어있는
걸로봐서 제 글을 염두에두고 하신 말씀같아 그 반론같은 성격의 글을
비스게에 올립니다. 저번주에 회사가 바빠서 '글써야지'하면서도
이제서야 쓰네요.(에구 졸린거..^^;;)
'한 작품이나 현상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라는거죠.'
'자의적인 해석은 금물입니다.'
우선 있는 그대로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도대체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흡사 이 이야기는 감독이 의도하는 데로
혹은 모든 문화창작물의 구조자가 '내 하고픈 말은 a,b,c 라오'라고 선언한
그 부분까지만 이해하라는 식의 이야기입니까?
그 밑에 쓰인 '자의적인 해석은 금물입니다.'라는 말은
텍스트에 대해서 일정하게 사회적인 합의를 보자는 건지요?
지극히 대중적인 작품에 보통의 사람들이 느낄만한 적당한 수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평론가의 몫이 아닙니다. 그런 “~카더라”성의 이야기는 홍보물에
흘러넘치는 수많은 20자평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1시간 반짜리
데이트용으로 극장가는 사람들이 언제라도 해줄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무릇 영화평론가라면 자신의 “입장”과 함께
관련분야에 대한 탁월한 혜안을 가지고 자신만의 영화읽기와 평가가 가능해야
합니다. 평론가는 일종의 해설가이자 창조자입니다. 혜안을 가지고 보석같은
옥석을 골라내고 그것이 명작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잘 전달하는 것은 분명 좋은 능력입니다.
또한 그것은 평론계에서 지향해야할 미덕이구요.
평론하는 사람들도 사람인지라 그들 역시 일종의 성향을 갖게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심영섭은 심리학을 유지나는 여성의 목소리를 정성일은 사회과학을
이진경은 철학을 끌어다가 영화를 설명합니다.(과학자도 건축학자도 음악평론가도
있습니다) 참 다양도하죠. 이것은 의미하는 바는 뭘까요?
영화는 그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문화적인
창작물(그것이 영화건 음악이건 미술이건간에)은 그 시대의 사회, 정치, 문화가
어떤식으로든 베어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순수예술과는 다르게 영화가 세상에
관여하는 방식이며 실제로 감독에게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장뤽고다르가 말한것처럼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펜처럼 말이죠.
감독은(적어도 작가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화를 온전히 자신의 세상으로
구축하고 싶을 겁니다. 자기의 이름으로 나가는 영화를 자기가 찍고 싶은 데로
찍는 건 욕망이자 의무일테니까요. 그런데 어떤 감독이 어떤 주제를 어떤 소재로
어떤 배경에 가져다놓고 이야기할 것인가는 철저히 선택의 문제입니다.
창작자는 이미 사회속에 존재하는 한 인간입니다. 그 역시 자기식의 문화적 토양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고 열광하는 음악이 있고 젊은 날 깊이 빠졌던
영화가 있었을 겁니다. 감독은 혹은 저자라는 것은 ‘그 자신을 관통한 모든
문화적인 창작물로부터 영향을 받고’ 훗날 자신이 작품을 할때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걸 창조적으로 사용할 겁니다. 이 생각을 좀더 밀고 나간 롤랑바르트는
그러한 의미에서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습니다.
스노비즘이라고 비난하진 마십시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끌어다 쓴건 바로 하나의 예술작품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외부와의 관계속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이진경의 외부의
철학을 함 읽어보시면 더욱 참고가 되실겁니다.) 따라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쌓아온 참조목록중에 어떤 선택을 수반하며 이뤄질 것입니다.
박찬욱과 류승완의 리스트가 강제규나 강우석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스탠리 큐브릭과 같은 지독한 완벽주의자는 철저히 자신의 스타일을
관철시켜 유기적인 영화적 구조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지만
어떤 감독들은 자신의 말하고자 의도하지 않았던 것도 비판의 대상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레이더스에서 주연배우인 해리슨 포드가 칼휘둘르는게 너무 힘들어 총으로 바꾸었다는
에피소드는 스필버그가 사상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어떤 류의 사람인지를 잘알게해주는
기가막힌 반증이 아닐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가 노엄 촘스키가 말한 political correctness를 가진 사려깊은 유대인이었다면 해리슨 포드가 칼대신 총을 잡겠다고
했을때 자신의 작품을 주조하는 감독으로써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역사를 통해 수많은 분쟁과 전쟁으로 점철된 유대인과 이슬람을 생각했다면 또는
혹시라도 의도하지않았는데 이슬람관객들로부터 받게될 오해를 생각이 있었다면
그걸 승인하지 않았을겁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승인한 셈이고 이것은 그가
‘아무 생각이 없거나’ 혹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은연중에 습득한 나쁜 이슬람세계에 대한 처벌’을
영화속에서 전혀 차원이 다른 권총 한자루로으로 응징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만약 같은 “영화의 자식”중의 한명인 마틴 스콜세지나 스파이크 리같은
의식있는 감독이었다면 결코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영화의 자식들 :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한 일군의 세대로
주로 뉴욕 영화과 출신들. 폴슈레이더, 마틴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브라이언 드팔마 등의 감독들)
저는 정치평론가가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진중권씨가 영화를 이야기했다면 가능한 말이긴 합니다.) 제가 말하는
정치적이란 말은 바로 위의 이야기처럼 작가가 혹은 감독이 그의 작품속에서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문화적 질서와 인간군상들의 권력관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살펴본다는 의미입니다. 스티븐 시걸이나 장클로드 반담, 이연결이
나오는 강한 남성상을 제시하는 액션영화와 토드헤인즈의 벨벳골드마인이나
존 카메론 미첼의 헤드윅과 같은 영화속의 남성상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같은 락스타라도 전형적인 마초적 남성상인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로즈와
학창시절에 ‘호모섹슈얼이 세상을 지배한다’란 낙서와 함께 퇴학당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김삼순을 한번인가봐서 잘모르겠습니다만
(드라마는 삼류다=>이런 마인드는 전혀 아닙니다.) 시청자들도 뻔히 다아는
스토리를 다시설명할까요! 아니면 김선아의 출연작들을 열거할까요!
그건 단순정보에 불과합니다.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해설이라면 20대후반의
미혼여성들이 김삼순이라는 캐릭터에 열광하는 이유라던지(마치 섹스앤시티처럼)
신데렐라 스토리의 변주로서 현실감이 결여된 미모의 여배우가 아닌 보다
현실적인(일반인의 모습과 가까운) 통통한 여주인공을 통해 더 폭넒은 관객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젊은 여성들이 자신을 김삼순처럼 생각한다는 점 혹은
역으로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예쁘지도않고 부자도 아닌데 잘생기고 부자를
만난다!) 가장 큰 환상을 가져다준다는 점등을 짚어낼 것입니다.
혹은 페미니스트라면 더나아가 별다른 기술도 없고 예쁘지도 않은 여성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법은 오로지 백마탄 왕자라는 식의 환상을 답습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고 통렬히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작업들이
단순정보제공보다 더 의미있고 읽을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의 현장인 현실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에이젠슈타인의 영화가
혁명을 말하고 있고 40년대 창궐한 필름누아르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속에
사는 부패한 인간군상을 그리며 70년대 뉴아메리칸 시네마가 개인의 자유를 외치듯
항상 영화는 항상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결국 작품의 본질은(만약 본질이라는게 있다면) 그 작품의 배출한 세계와의
맥락속에서 논의되어져야 합니다.
모든 예술분야에서 가장 늦게 출발한 영화가 제7의 예술로서 인정받게 된 것은
100년이 채 못됩니다.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모두 사랑받은 럭키가이가 있기도 했지만
늘 그랬다는듯이 시대를 앞서간 비범한 사람들은 살아생전 정당한 평가를 못받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오히려 영화는 그런 사람들의 의해 영역을 넓혀갔고
마침내 자신을 예술로 승격시켜놓았습니다.
영화는 최초의 동영상제조기였으며 예민한 다큐멘타리작가의 훌륭한 눈이 되어주기도
했고 혁명을 선동하는 확성기가 되어 군중을 자극하기도했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실현해주는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박스오피스에 못올라도 훌륭한 비즈니스맨은
못되어도 자기만의 비전으로 꿋꿋히 목소리를 내는 그런 카메라를 가진 감독들이
그립습니다.
첫댓글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평론가니 감독의 말이든간에 일단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재미가 없는데, 느끼질 못하겠는데 평론가나 감독들이 재미있다고,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해봤자 쓸데없는 것이죠. 다만 자신이 그 영화에 흥미를 느꼈을 경우나 깊이있게 곱씹어 볼때 그런 평론글이 의미가 있다고
영화 비평이나 평론글은 대중이 좀더 좋은 것을 찾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의 목적이 강합니다. 하지만 굳이 안내하지 않아도 자신이 영화 보고 재미있다고 느꼈다면 그것에 대해 재미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모든 대중이 굳이 영화평론서를 일일이 찾아봐야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베르캄프님의 말씀은 마치 영화학도나 매니아에게서는 충분히 나올법 한 것이긴 하지만, 역시 대중을 상대로한 영화 혹은 소설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개나 쏟아져 나오는 이 막대한 물량, 대중의 한정된 시간에 그렇게 해야 말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이상적이며 예술지상적인 관점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선택을 하는 건 그러한 일에 게으른 '소프트'한 일반 대중입니다. 평론글 찾아가며 다채로운 의견 관점 찾는 '하드코어'한 매니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론글 안 찾아보고 자신이 보고 느낀 감정 솔직히 말했다고 어지간히 나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몇이나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모든작품에 깊이있는 생각을하긴 불가능하죠. 하지만 김삼순이나, 스필버그정도의 주류중의 주류라고 할수있는것들은 충분히 담론의 대상이 될만하죠. 엄청난 다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할수있으니까요. 그래서 스필버그정도위치의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나, 행동에 비판이 가해지는건 당연하죠.
뜻이 약간 어긋나게 전달된 것 같아 죄송스럽군요. 각종 평들을 찾아보라는 의미는 아니었고,(우연한 기회로든) 접해놓고도 애써 무시하며 치부해버리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드렸던 말씀입니다. 다른 의견들을 보아놓고도 이해하기를 거부하며,단순한 자신의 감상을 마치 평론급인양 거만하게 들이대는건 진짜...
ps. '영화 비평이나 평론글은 대중이 좀더 좋은 것을 찾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의 목적이 강합니다.' --- 이 멘트에는 솔직히 완전히 동감하기는 힘드네요. 물론 표면적인 목적은 그러하겠지만, 그런 '문화에 대한 고찰' 자체가 그렇게 단순하게만 간주될 문제는 아니라 봅니다. 설사 일종의 대중문화라 할지라두요
흠, 제가 잘못 이해했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평론글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본인의 자유니 뭐라할 건 없다고 봅니다.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글도 비판의 여지가 있는 마당에 영화 평론글이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게다가 모니터에서 긴글은 가독성에 문제가 일단 있으니까요.)
다만 자신이 올린 감상문을 평론급이라 여긴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지요. 만일 전에 팀버튼의 배트맨에 관한 제 글에 관한 것으로 쓰신 말이라면, 제가 드릴 말은 소프트 유저가 쓴 감상문이었으며, 굳이 평론글에 휘둘려 내가 영화를 보며 느낀 감정 이상을 강요당하기 싫었다..라고 답해드릴 수 밖에 없겠군요.
영화를 인간으로 대치시키고 한 인간에 대해 평론한다고 말을 변환시켜 보면 그 사람이 딴에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어머니 젖꼭지에 대한 대용물 이라느니 선험적 인식에 의한 행위라느니 물질로서 기계적인 인과관계에 불과하다느니 해석은 가지가지 일 것입니다.
있는 그래로 받아들인 다는 것에 대한 의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셨는데요 사실 원래 가장 순수한 예술인 음악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죠 도대체 누가 보아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 여자는 카프카 적이야 혹은 니체의 저작을 통해서 난 보아의 음악을 이해하게 되었어 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리고 영화로 넘어오면 영화는 일단 모든 예술을 종합시켜 놓고 볼때 받아들여지는 순수성에 있어서 가장 하위의 단계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예술에 비해 사용해야 하는 감각도 많을 뿐더러 일단 상영이 시작되면 프레임은 쉬지않고 돌아가니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따라서 관객들은 영화를 볼 당시에는 그 어떤 예술보
다 수동적인 위치에 놓여있죠 사유가 시작되는 것은 극장 안이 밝아지고 출구를 통해 나갈때 부터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혹은 문학 같은 장르 에술은 객관의 시간과 주관의 시간이 공존하기에 사유도 주관의 흐름에 따라 작품의 흐름에서와는 달리 나아갈 수 있죠 그저 미술 작품을 끈질기게 바라보며 그림과는 상관 없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거나 소설책의 페이지를 고정시켜 놓은 채 과거의 이야기를 숙고해 볼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영화는 상영될 당시에는 절대 그런것을 수행하기 힘듭니다.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흐름에 간격이 생기게 되죠 따라서 영화 평론가들은 다른 평론가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모호했던 관객들은 평론가의 이야기를 통해 확고함을 찾으려 하고 이와는 반대로 정보가 선행하는 경우도 있죠 어찌되었건 관객들의 주관적인 감정의 자유로움에 대해 이 두가지가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찌보면 다른 평론가들 보다 영화 평론가들이 대중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영화 자체의
거대한 시장성에 입각한 원인도 있겠지만 이러한 영화 매체의 속성 때문에 해답을 얻으려는 대중들이 많이 떄문일 겁니다. 따라서 평론가의 존재의 필연성은 입증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영화 자체와는 관계없이 행하여 지는 경우에 문제가 되겠죠 평론가는 그 자체 자의적인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첫댓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평론가니 감독의 말이든간에 일단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재미가 없는데, 느끼질 못하겠는데 평론가나 감독들이 재미있다고,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해봤자 쓸데없는 것이죠. 다만 자신이 그 영화에 흥미를 느꼈을 경우나 깊이있게 곱씹어 볼때 그런 평론글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마다 보고 자란게 틀린 이상 느끼는 것도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상, 평론글이나 평론가들의 말들은 부수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면 되는 것이지, 이 사람들의 글을 맹신하거나 타인에게 강요하는 걸 보면 참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조던황제님 단 저또한 '맹신하거나 강요'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평론가들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의견/관점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으며 일부러 등돌리려는 분들을 보면 '어지간히 잘 나셨나보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처구니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말이죠.
찬성을 하든 반박을 하든, 여러가지 평가들에 대해 '깊이 파고들 줄 알아야'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영화 비평이나 평론글은 대중이 좀더 좋은 것을 찾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의 목적이 강합니다. 하지만 굳이 안내하지 않아도 자신이 영화 보고 재미있다고 느꼈다면 그것에 대해 재미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모든 대중이 굳이 영화평론서를 일일이 찾아봐야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베르캄프님의 말씀은 마치 영화학도나 매니아에게서는 충분히 나올법 한 것이긴 하지만, 역시 대중을 상대로한 영화 혹은 소설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개나 쏟아져 나오는 이 막대한 물량, 대중의 한정된 시간에 그렇게 해야 말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이상적이며 예술지상적인 관점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선택을 하는 건 그러한 일에 게으른 '소프트'한 일반 대중입니다. 평론글 찾아가며 다채로운 의견 관점 찾는 '하드코어'한 매니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론글 안 찾아보고 자신이 보고 느낀 감정 솔직히 말했다고 어지간히 나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몇이나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자기가 봐서 재미있고 없고를 쓴, 자기 생각을 말한 감상문을 올렸다고 나 잘났다고, 혹은 일부러 평론가들 글에 등 돌렸다고 생각하시는 베르캄프님의 관점은 참 납득하기 힘들군요. 그것은 '감상문이지 평론글'이 아닙니다.
모든작품에 깊이있는 생각을하긴 불가능하죠. 하지만 김삼순이나, 스필버그정도의 주류중의 주류라고 할수있는것들은 충분히 담론의 대상이 될만하죠. 엄청난 다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할수있으니까요. 그래서 스필버그정도위치의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나, 행동에 비판이 가해지는건 당연하죠.
네 맞습니다. 스필버그 작품 정도 되면 담론이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평론이나 그것에 대한 깊은 통찰을 찾는 것은 어디까지나 '옵션'이겠지요.
뜻이 약간 어긋나게 전달된 것 같아 죄송스럽군요. 각종 평들을 찾아보라는 의미는 아니었고,(우연한 기회로든) 접해놓고도 애써 무시하며 치부해버리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드렸던 말씀입니다. 다른 의견들을 보아놓고도 이해하기를 거부하며,단순한 자신의 감상을 마치 평론급인양 거만하게 들이대는건 진짜...
제가 했던 '일부러 등돌린다','그것(평가)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면, 제가 덜 죄송스러울 것 같습니다.
ps. '영화 비평이나 평론글은 대중이 좀더 좋은 것을 찾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의 목적이 강합니다.' --- 이 멘트에는 솔직히 완전히 동감하기는 힘드네요. 물론 표면적인 목적은 그러하겠지만, 그런 '문화에 대한 고찰' 자체가 그렇게 단순하게만 간주될 문제는 아니라 봅니다. 설사 일종의 대중문화라 할지라두요
아, 저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실제 평론가가 한 말을 인용한 겁니다. 물론 저게 다는 아니겠지만요. 아마 가장 기본적인 베이스가 되는 부분이고, 소프트 유저에겐 가장 알맞은 말이기도 해서 쓴 듯 싶습니다.
흠, 제가 잘못 이해했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평론글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본인의 자유니 뭐라할 건 없다고 봅니다.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글도 비판의 여지가 있는 마당에 영화 평론글이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게다가 모니터에서 긴글은 가독성에 문제가 일단 있으니까요.)
다만 자신이 올린 감상문을 평론급이라 여긴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지요. 만일 전에 팀버튼의 배트맨에 관한 제 글에 관한 것으로 쓰신 말이라면, 제가 드릴 말은 소프트 유저가 쓴 감상문이었으며, 굳이 평론글에 휘둘려 내가 영화를 보며 느낀 감정 이상을 강요당하기 싫었다..라고 답해드릴 수 밖에 없겠군요.
아뇨아뇨, 조던황제님도 별로 안 좋아하셨으리라 생각되는 모 회원이 생각이 나서 드린 말씀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대단히 다재다능한 분이셨는데,최근에 카페에서 보이지 않은지가 꽤 된 것 같지요?
흠 누군지 대충 알것 같군요. 그러한 경향이 확실히 있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날 더운데 좋은 오후 보내시길 바랍니다.
팀버튼의 배트맨은 제가 극장가서 봤다면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릅니다만, 일단 조악한 환경의 비디오로 봤고 제가 기대한 것과는 다른 방향성을 지닌 작품이라 저로선 그다지 크게 감흥이 오질 않았다는 것 뿐입니다. 다른 분들의 감상을 굳이 부정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영화를 인간으로 대치시키고 한 인간에 대해 평론한다고 말을 변환시켜 보면 그 사람이 딴에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어머니 젖꼭지에 대한 대용물 이라느니 선험적 인식에 의한 행위라느니 물질로서 기계적인 인과관계에 불과하다느니 해석은 가지가지 일 것입니다.
있는 그래로 받아들인 다는 것에 대한 의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셨는데요 사실 원래 가장 순수한 예술인 음악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죠 도대체 누가 보아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 여자는 카프카 적이야 혹은 니체의 저작을 통해서 난 보아의 음악을 이해하게 되었어 라고 말하겠습니까?
그것은 음악은 받아들여지는 작용에 있어서 두뇌나 다른 감각기관의 장애를 가장 덜 받기 때문이죠 쉽게 말하자면 해석할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예술적으로 엄청나게 고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다른 예술에 비해 그 정도가 더하죠.
하지만 음악 평론가들은 우리가 당시에 느꼈던 그러한 감정이 잊혀질 만큼 현란한 글솜씨로 우리들을 인도합니다. 우리는 생각하죠 '아 맞아 난 저때 그런 느낌이었어'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오히려 그건 글로써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 겁니다.
그리고 영화로 넘어오면 영화는 일단 모든 예술을 종합시켜 놓고 볼때 받아들여지는 순수성에 있어서 가장 하위의 단계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예술에 비해 사용해야 하는 감각도 많을 뿐더러 일단 상영이 시작되면 프레임은 쉬지않고 돌아가니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따라서 관객들은 영화를 볼 당시에는 그 어떤 예술보
다 수동적인 위치에 놓여있죠 사유가 시작되는 것은 극장 안이 밝아지고 출구를 통해 나갈때 부터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혹은 문학 같은 장르 에술은 객관의 시간과 주관의 시간이 공존하기에 사유도 주관의 흐름에 따라 작품의 흐름에서와는 달리 나아갈 수 있죠 그저 미술 작품을 끈질기게 바라보며 그림과는 상관 없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거나 소설책의 페이지를 고정시켜 놓은 채 과거의 이야기를 숙고해 볼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영화는 상영될 당시에는 절대 그런것을 수행하기 힘듭니다.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흐름에 간격이 생기게 되죠 따라서 영화 평론가들은 다른 평론가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모호했던 관객들은 평론가의 이야기를 통해 확고함을 찾으려 하고 이와는 반대로 정보가 선행하는 경우도 있죠 어찌되었건 관객들의 주관적인 감정의 자유로움에 대해 이 두가지가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찌보면 다른 평론가들 보다 영화 평론가들이 대중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영화 자체의
거대한 시장성에 입각한 원인도 있겠지만 이러한 영화 매체의 속성 때문에 해답을 얻으려는 대중들이 많이 떄문일 겁니다. 따라서 평론가의 존재의 필연성은 입증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영화 자체와는 관계없이 행하여 지는 경우에 문제가 되겠죠 평론가는 그 자체 자의적인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와 대중이라는 관객의 상호 관계에 의해 필요한 것이므로 말이죠
조커님이야 말로 영화부분 전문가 같으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