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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입성』 신중혁 선생님 시집을 읽고
<나의 독서 일기-25.3.24>
읽어야 할 책들과 최종 마무리해야 할 내 동화책 『꿈을 빛내는 아이들』 작업이 몰려있어 『서울 입성』 시집을 차근차근 읽을 겨를이 없다. 그래도 ‘공짜 책을 받고 입 뚝딱해서야 쓰랴?’ 머리말도 읽지 않고 차례부터 펼쳤는데 편집이 가나다순이라서 충격이 컸다. 창의성이 놀랍고 재미롭다. <ㄱ- 거미의 입지, 검은 마음 주의보 ㄴ- 나무꾼을 추적하다. 낯선 귀환>순이다. 머리말로 돌아갔다. ‘시집 한 권을 몇 개의 다발로 묶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한글 자음 순을 따라 차례를 정했다.’ 는 신선한 고집에서 교직자 냄새가 언뜻 나서 책날개의 프로필을 펼쳤다. 16년 대선배님이시고, 60년 대구 생활을 접고 2019년 서울로 입성하셨다. 그래서 책 표제가 『서울 입성』이구나.
<서울 입성>
땀 한 방울 한강에 보탠다고 쳐도
풀잎 끝에 맺히는 천만분의 일 소동
발소리 내며 다가가
흠흠 잔기침 놓아도
살갑게 문 열어 줄 이 없다.
맺히는 이슬이 얼마나 오래 달려 있겠느냐
가끔 웃을 일이 있어
소리 내어 웃어도 거기까지만
시골 어디서 왔는지 말씨로서는 경계가 모호하다.
⁜ 표제어가 된 시 일부다. 서울 사람들 특유의 무관심은 차가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청둥오리의 노동>과 <처진 눈발 난만 눈송이> <천변 억새와 갈대>들 마음이 시인의 마음 같았으리라. 밥상 보의 한 귀퉁이가 될 수밖에 없는 <자투리> 시간을 살며 <잔도>가 어지러워 기고 싶어도 <접는다는 말>을 긍정으로 씹으며 <키질>로 자루에 담을 알맹이를 고르며 사시는 노년의 여유로움이 독자들 마음을 훑는다.
특히 이 시집에서 가장 청량한 시구 한 구절은 ‘할머니의 네 번째 스무 살을 축하합니다.` 는 <아내의 팔순> 시였다. 팔순 할머니를 스무 살 처녀로 되돌려놓는 청량함 가득한 사고의 센스! 그만큼 재기 발랄한 시는 또 있다. ‘모자간’이다. 따옴표도 없이 쓴 어머니와 아이의 대화체가 젊고 건강한 기운을 나눠준다.
<모자간>
엄마, 오늘은 일 안 나가
응 안전이 하고 놀 거야
친구들 보고 싶다. 선생님도
코로나가 잡히면 만나게 되겠지
돌봄이 아줌마는 언제 와
시골 내려간다고 했으니 못 올지도 몰라
참, 할아버지는 통 안 오시네
미국 고모네 집에 가셨어, 잘 못 나오실 거야
혼잣말
그리움이 슬픔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엄마 뭐라고 했어
아니, 짜파게티 먹자
<생명력>
새순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봄날,
응달에는 겨우내 덮었던 핫이불을 개키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다람쥐 삐댄 자리 한쪽이 소복하다
도토리를 물어 나를 때 떨어뜨린 몇 개가
핫이불 덕에 겨울을 나고
움이 터서 노란 눈을 달았다.
길옆이라 누군가의 발길에 채이지 않으면
햇빛 등성이에 활착할 것인데
금줄을 달까, 둘레길 초입을 딴 데로 틀까
⁜ 이 시는 장면이 환하게 밝아오는 시다. 동화책을 읽는 듯 스토리도 살아있다. 새순의 활착을 돕고 싶은 따스한 마음마저 나눠주는 시라서 좋다.
내가 가끔 꺼내보며 암송하고 싶은 시들을 적어둔다.
<접는다는 말>
어린이는 놀이방 색종이를 접어/바지저고리를 맞추었다
더 신이 났는지 목줄 없는 강아지를 만들어
허리깨를 잡고 맴을 돈다. 이윽고 놀이를 통째 접고 간식을 먹여 재워야 하는 다른 손/
용기네는 한때 공장에서 종이 뭉텅이를 받아다/봉투를 접어서 목의 풀칠에 보탠 적 있다.
큰 기업은 휴대 전하 허리를 접어/시민의 맘에 기이한 바람을 일으켰다
양탄자를 타고 자오선을 넘나드는 신드바드가 되었다.
혈연을 접을 수 있는가/무촌을 외치며 돌아섰다고 매듭이 풀리는가
자식은 매듭 공예의 정점이다/모처럼 얻은 일자리 쉽게 접어서는 안 된다
접는다는 말을 긍정으로만 들이면 세상은 한결 푸근해질 것이다.
<청둥오리의 노동>
구만 리를 날아와서 날개 죽지가 아파도/마땅히 들 곳이 없다
잠자리 구하기가 힘들다/철새라서 그때마다 계약서에 서명했다
자놓는 식단이 아니기에/돌에 붙은 이끼를 걷어 먹거나
물풀을 뒤져야 하니까 턱이 뻐근하다
먹는 것이 부실해도 알은 크게 낳아야 한다/달걀보다 큰 것, 연장근무를 해야 한다
오리 중에도 갑옷을 두른 압족이 있어/눈치 보는 수가 더러 있다.
잘못하면 미운 털이 박히니까/배고픈 날은/유모차 애기의 뻥튀기
※ 귀농, 감자, 고무줄로 소박한 삶과 사회 단절을 대비시키며 조화로운 삶을 그리고 있다.
<자투리>
땅 한 편 막내를 생각해서 고추를 심으려고 했는데 둘레길을 내면서 뭉개버렸다.
지하도로 다니다 보니 들길이 멀어졌다/그래도 두부전골은 양념 맛이다
소수의 주장도 외면하지 않는다고 해서/보상에 관한 운을 뛰어보니
유실수를 심은 사람이 많다/시간 계획을 따로 세울 수 없고
결국은 밥상보의 한 귀퉁이가 될 수밖에
<잔도를 타다>
늑골 사이 경혈에 침이 간들거린다/ 어지러워 기고 싶다.
건너편 벼랑에는 군데군데 폭포가/혼수 감을 뜰 때 자풀이처럼
두루마리를 감았다 펼쳤다 물보라가 이쪽까지 시원하다.
<연못 가의 매화나무>
가슴에 바람 스밀까 봐 목수건 둘렀다/기다리다 한두 잎 지는 꽃잎의 의미를/
몽당비로는 쉬이 쓸어 담을 수 없지
● 개나리 눈망울이 병아리 부리 같다
<인사법>
볼을 대는 공항 인사가 빨리 등장해야 할 텐데/자주 만나면 층간 시비도 사라지고
눈 오는 날 비질도 먼저 할 거야/이사떡 먹어본 지 오래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가
⁜ 재미있는 표현,
더러 안 보이는 얼굴도 있는데 사람은 넘친다. <긴 다리 더딘 기별>
밥부제(보자기의 경상도 방언) 고리버들 도시락 등
<봄날의 서정>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진 노면을 포크레인 혼사저 고르고 있다
새참도 없이 밭일하시던 어머니 생각/외로움으로 각인된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삶을 짚는 의원은 오늘도 경혈에 침을 꽂는다.
※ 소외와 단절, 자연과의 조화 복원, 삶에 대한 회구 등이 담긴 시들이라,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듯, 시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되돌려보며 자성하고 자위하게도 된다. 나아가. 현대 사회의 삭막한 한 모퉁이에 내 작은 온정의 씨앗을 뿌려 보듬으며 살고 싶다는 마음도 키워보게 된다.
※ 김두한(시인, 문학박사) 선생님의 해설 ‘잃어버린 원형적 삶을 찾아서’ 가 31쪽 실렸다. 원작의 1/3을 차지하는 분량의 친절한 해설이다. 요즈음 해설이나 평론이 이렇게 길어지는 추세다. 그래서 시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국어 시간 시 수업을 듣는 기분으로 읽었다. 이 또한 좋은 공부라 감사하다.
<신중혁 선생님께>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집을 공으로 나눠주셔서.
평생을 교직자로 살았으면 교단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는데 『해맞이 광장의 공정』 시집에 소상한 행적을 시로 풀어 토해내셨군요 ‘그러면 그렇지!’
『서울 입성』 시집 출간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https://m.blog.naver.com/kimy6202/50193684022
<미루나무 숲> 같은 선생님의 인격이 향기로 날아옵니다.
-미루나무숲-
서글서글하여 꽁하지 않는 사람
푸근하고 냉랭하지 않는 사람
냉방보다는 그늘이 되어 주는 사람
눈인사만 보내도 손을 들어 알은척하는 사람
객지에서 만난 고향 사람
허물을 좀 뭉개도 되는 사람
그런 나무가 고향에 가면 숲을 이루고 자란다
큰물 지고 생긴 땅에 발붙이고 사는 나무
기름지고 더불어 살기에 알맞은 땅
사람들은 그곳을 새 숲이라 한다
참외 수박은 물론 김장 채소도 넘치는 곳
바람에 곁가지를 내뻗어 심술을 부릴 때도
술렁술렁 그런 나무와도 이웃하고 사는 나무
밤이면 원두막 불 밝혀 작은 마을을 이루는 곳
학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어깻죽지에 줄 매고 공놀이하던 곳
세상을 돌아 고향에 당도하고 보니
둑을 쌓아 물길을 돌리고 수중보도 만들고
옛 모습 찾을 수 없어도 가슴에 새겨진 숲
PS. 이상남 화백의 ‘세월의 향기’ 표지화에 대한 해설도 한 줄 있었으면? 나무뿌리를 타고 자라난 붉은 꽃 한 송이가 푸른 시공을 가르는 선생님의 인격을 퍼뜨리는 향기인지요?
2025.3.24. 31p
첫댓글 신중혁 작가님,
귀한 시집 『서울 입성』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귀한 시집 잘 받았습니다
서울 입성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