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45년전의 1942년, 중국 공산당의 지도하는 항일 전쟁의 근거지의 옌안에서는, 「정풍 운동」이라고 해 당의 작풍을 개선하는 운동을 했다. 모택동 주석이 그 때 「党八股 (공산당의 문장의 결점)에 반대한다」라고 하는 연설을 발표했지만, 그 중으로, 표현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제일로 인민 대중의 말로 배우는 것, 2번째로는 외국어로부터 배우는 것, 제3에는 고전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호소하고 있다. 외국어로부터 배우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번째로는, 외국어 속으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거두어 들인다. 우리는 외국어를 무리하게 수입하거나 남용해선 안 되지만, 외국어 속의, 좋은 것,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거두어 들일 필요가 있다. 중국어는, 어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어휘 속에는, 외국에서 거두어 들인 것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열린, 이 간부회, 이 「간부 幹部」라고 하는 말은, 외국에서 배운 것이다. 우리는, 더 많아, 외국의 신선한 것을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이 진행된 도리를 거두어 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선한 용어도,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간부 幹部」라고 하는 말은 외국에서 배운 것」이란, 의심할 바도 없고 「일본에서」라고 하는 것이다. 일본어가 중국어에 많이 들어갔다고 해도, 주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신어이다. 생활 용어에는, 중국 고유의 것이 많아, 일본에서는 별로 오지 않았다
예를 들어 보자. 고 모택동 주석에게는 유명한 논문 「실천론」이 있다. 다음은 그 일절이다.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唯物綸은, 사람의 사회성社会性을 무시하고, 사람의 역사歴史적 발전을 무시한 것으로, 인식 문제問題를 관찰했다. 그것 때문에, 인식과 사회社会 실천과의 의존관계関係(dependencies), 즉, 생산生産과 계급 투쟁階級闘에 대한 인식의 의존관계関係(dependencies)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마르크스주의主義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 인류의 생산 활동生産活動은, 가장 기본적인 실천 활동活動이며, 그 외의 모든 활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사람의 인식은, 주로, 물질物質의 생산 활동에 의존해, 차츰, 자연의 현상・자연의 성질・자연의 법칙성・인과 자연과의 관계를 이해한다, 게다가, 생산 활동을 통하여, 각종의, 다른 정도로, 차츰, 사람과 사람과의, 일정한 상호 관계를 인식한다. 이것들 모두의 지식은, 생산 활동을은 될 수 있어서는, 얻는 것이, 할 수 없다. 계급階級이 없는 사회에서는, 어느 사람도, 사회의 일원이라고 하는 자격으로, 그 외의 사회의 멤버와 협력해, 일정한 생산 관계를 묶어, 생산 활동에 종사하고, 인류의 물질 생활의 문제를 해결解決한다. 여러가지 계급 사회階級社会에서는, 각층급 사회의 멤버는, 역시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일정한 생산 관계를 이어, 생산 활동에 종사하고, 인류의 물질 생활의 문제를 해결한다. , 이것이, 사람의 인식 발전의 기본적인, 근원이다」.
밑줄친 말은 일본 기원의 것이다. 4 분의1정도의 말이 일본으로부터 온 것이다. 중국의 헌법에도 일본 기원의 말이 많이 있고, 그 외의 사회과학, 자연과학 관계의 논문에도 대개 같은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있으니까, 중국인이 일본어를 공부하는 경우, 발음 단계를 끝내고, 기본적 문법을 일단 학습하면, 모택동의 「실천론」과 같은 이론문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이론문안에 중국어에 정착한 일본어가 가득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 고유의 말이 많은 일본의 초등 학생의 국어 교과서나 동화를 읽는 것은 어렵다. 중국어를 배우는 일본인에도 같은 케이스가 있다고 듣고 있다. 이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보통, 외국어, 예를 들면 영어를 공부하는 경우는, 생활문보다 이론문이 훨씬 어렵기 때문에이다. 현대 중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영향에 대해 高名凱씨는 「현대 한어 속의 외래어 연구」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대 한문어의 어휘에 대한 일본어의 영향은 매우 크다. 현대 한어에 있어서의 외래어의 주요한 것은 일본어로부터 와있다. 일본어는 한어 외래어의 최대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엄청난 수에 달하는 서양어의 대부분은, 일본어를 통해서 현대 한어안에 도입되었던 것이다」. 그 영향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의 세가지를 들 수 있다.
(1) , 중국어의 어휘의 複音화의 템포를 앞당겼다. 중국의 고대어(일본에서 말하는 한문)에도, 둘 또는 둘 이상의 문자로 완성된 어휘도 조금 있는 것은 있지만, 매우 적다. 대부분은 하나의 문자가 하나의 어휘가 되는 것이다. 어휘의 복음화, 즉 둘 또는 둘 이상의 문자로 하나의 말을 만드는 것은, 중국어가 고대어로부터 현대어에 탈피하는 과정으로의 추세이지만, 일본어를 시작으로 하는 외래어의 진출에 의해서 그 탈피의 템포를 앞당길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2) , 말의 복음화에 의해서 어의가 세분화되어, 표현이 한층 더 치밀하게 되어, 정확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行」이라고 하는 말은 고어에서는 「간다」 「달린다」 「행위」 「행동」 「행진」등의 뜻을 가지는 다의어였지만, 현대 한문어에서는 복음화에 의해서, 몇개의 말을 할 수 있어 표현이 더 적확하게 되었다.
(3) , 서양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가, 중국어의 문장이 길어졌다. 신어의 대량 도입, 말의 복음화와 표현의 치밀화, 장문의 활용 등, 이것들은 모두 고대 한문어로부터 현대 한문어에의 탈피이며, 중국어의 진보이다. 이러한 중국어의 진보는, 세계 각국으로 나아간 문화의 흡수, 심지어 중국의 현대화 실현에 도움이 되는 것일 것이다.
1896년 제일진 13명의 중국 유학생이 일본 방문했을 때로부터 따지면, 금년은 정확히 백 주년에 해당되어, 칸사이등에서는 일본 체제중의 중국인 유학생을 중심으로 「중국인 일본 유학백 주년」의 기념 행사를 했다. 그리고 천 단어 남짓의 일본어는 완전히 중국어 속에 정착해, 귀화하고, 현대 중국어 속의 불가결의 구성 부분이 되고 있다. 「공산당, 간부, 사회주의, 경제, 수속 共産党、幹部、社会主義、経済、手続」등의 말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잘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더이상 그 와 근원을 의식하지 않고,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일본어의 경우도 같은 일이 있다. 사전에 의해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일본어의 어휘는, 지금도 반정도는 한문어 어휘라고 한다. 그 대부분은 고대 중국어로부터 온 것이어, 그 일부분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중국 와 근원의 한문어 어휘를 외래어라고, 전혀 보지 않고, 그것이 중국으로부터의 말이라고 의식하는 사람도, 매우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이상한 현상일 것이다. 하나 더 재미있는 것이 있다. 같이 쓰는 딘어에서도, 그 읽는 법은 중국인과 일본인으로 전혀 다르다. 예를 들면 「철학」이라고 하는 말-이것은 희랍어 「Philosophia」의 의역어이지만, 중국인은 「zheque」라고 읽어, 일본인은 「Tetugaku」이라고 읽는다. 읽는 법이 각각 차이가 나도,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 그리고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그것을 외래어라고 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아마 한자문화권내, 특별히 중일 양국간 밖에 없는 것으로 있을것이다. 이상 말한 것은, 중일 양국간의 문화 교류의 역사의 긴 일과 영향의 깊은 것을, 남기는 것 없이 입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끝)
(1) 고명개・류정 왕염 「현대 한어 속의 외래어 연구」(1958년 2월 중국문자 개혁 출판사) (2) 왕립달 「현대 한어중, 일본어로부터 빌려 온 어휘」(1958년 2월 잡지 「중국어문」) (3) 북경 사범 대학 중문과 한어教研組 「54 이래 한문어 서면어의 변천과 발전」(1959 년 상무인서관) (4) 주조모 「한어 어휘」(1959년 8월 인민 교육 출판사) (5) 사네토 게이슈 「중국인・일본 유학사」(1970년 쿠로시오 출판사) (6) 사네토 게이슈 「근대 일중 교섭 사화」(1973년 춘추사) (7) 담여겸 「중국어 속의 일본어・보유」(사네토 게이슈 「근대 일중 교섭 사화」의 부록 (8) 류정왕염・고명개・맥영건・사 유위 「한어 외래어 사전」(1984년 12 월 상해 사전 출판사) (9) 부회청 「현대 한어 어휘」(1985년 북경대 출판사) (10) 왕능 「중국에 있어서의 일본 근대문학의 번역」( 「랴오닝 대학 학보」1981년 제 3호) (11) 무전훈・고분달 「노신의 작품 속의 일본어에 대해」( 「산동 사범 학원 학보」1981년 제5호) (12) 북경 대학 아시아・아프리카 연구소 「중국에 있어서의 일본 문학 번역 편목」(1979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