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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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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통광장 스크랩 고대사의 무지로 가야(김해)를 일본에 속박시켰다(김해 대성동박물관)
庭光散人 추천 0 조회 854 10.10.15 08:4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경악 금치 못하는 것, 임나 지명이 가야지명으로 둔갑>

 

 

 <가야의 소국이라고 표기한 것 중에 일본서기에 만 나오는 임나 소국들이 게시되어

 가야소국으로 둔갑되어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 지명은 분명 왜곡임이 틀림없다>사진 필자.

 

 필자가 김해 대성동고분 박물관을 찾은 것은 1990년 경성대학 고고학 팀이 대성동 고분 발굴현장 취재차

다녀온 후 이래 처음이니 꼭 16년 만의 나들이이었다.

 

 잘 꾸며놓은 전시장을 보면서 가야 역사의 공부장소로서 역할을 크게 기대하였다.

  안내와 해설을 맡은 해설사를 따라 박물관을 전시물을 소개 받으며 가야연맹체 소국 안내판에 왔다.

 해설사: 옛날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6가야 연맹체였습니다

지금은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소국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비사벌” “남가라” “탁순국(탁국)”“안라”“다라”“기문” "산반해(임나10국중하나)""다사"등입니다.

       이제 6가야가 아니라 십여개의 가야랍니다.

 

  해설사:이 박물관은 가야사 학습장으로 활용하여 경남을 비롯한 여러 초등학교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아동들이 잃어버린 가야를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줄 믿습니다.


난 정말 아연실색하였다. 일본인들이 조선을 집어 삼키기 위해 가야연맹체를

 “임나”라는 등식으로 역사를 왜곡하여 140년 동안 집요하게 부르짖은 임나10국의 지명이

 가야소국으로 둔갑한 현장에서.....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하였다.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단군조선,고구려,부여,발해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시점에서

 먼 훗날에도 이와같이 우리민족의 역사는 실종될 것이 분명해 진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일본서기 속에 나오는 [임나]는 야마토 정권이 있는 일본국에 조공을 바치는 적은 나라이다.

일본 효덕천황때 비로서 임나를 폐한다. 그 때가 서기642년이다.

 

임나가 가야연맹체라 한다면 금관가야는 법흥왕19년(532년)에 멸망과 더불어 진흥왕23년(562년)에 대가야 망하므로 가야는 사라진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가야 연맹체였건만  일본서기에는 임나가 642년 까지 일본야마토정권에 조공을 바치는 상식이하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로 임나는 가야연맹체가 아니다. 일본역사학자들도 알고 있지만 정한론을 부르짖는 그들이기에 역사왜곡도 서슴치 않고 있었다.

무려 140년간 이 왜곡된 학설을 이어 받은 강단사학자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들중에 한사람은 가야 중심인 경남 모 대학에서 가야사를 가르키는 모 교수,일본 명문대학에서 고대사 박사학위를 수여 받고 지금 가야사의 전문가로 온갖 방송매체에 나와서 13가야? 주장을 펼치는 학자. 

 

그들의 주장을 펴놓은 박물관의 게시물, 그들이 벌리고 있는 역사왜곡은 백년전 가야사를

 임나사로 둔갑시킨 식민학자들과 별반 학설이 다름없다. 또 한사람 김**(H대교수)은

<6세기 전반 가야남부제국의 소멸과정 고찰>이란 논문에서 일본학자들의 주장하는

<일본서기>의 任那 지명들을 무조건 한반도 내의 지명들로 인식하는 점에서는 일본인들과 별 다르지 않다.

 

<탁기탄>을 창원으로 수정 주장한 분이다.   작금 이 사태를,

단재 신채호 같은 민족사학자가 살아계셨다면 정말 어림없는 일일 것이라 생각하니

그분이 더욱 그리워지는 현실이다.


비사벌,남가라,탁기탄(탁국),안라,다라,가라,탁순,이런 소국은 <일본서기>속에만 존재하는 소국들이다.

 

이 소국을 가야소국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일본왜국 여왕 신공에게 249년(이주갑인하 369년) <신공기 49년조>

이른바 신라 7국을 정복하는 기사가 일본서기에 나온다. 신공여왕이 신라(시라기)7국을 차례로 정벌하는 기사가 나온다.

일본사학자들이 이 대목에서 신라7국을 임나7국으로 둔갑왜곡시켜 한반도 침략설을 정당화시키기에 혈안이었다.

 

신라를 임나로 이중 둔갑시켰다. 이 것은 또 광개토왕비로 이어진다.

391년 조 “왜가 바다를 건너 신라,백잔,임나가라,를 차례로 격파하고”란 비문의 기록을 맞추기위해 신공49년조 신공황후 신라7국정벌설(비사벌,남가라,탁기탄,안라,다라 ,탁순,가라)을 한반도 임나에 지명을 비정한 것이다. 이주갑까지 인하를 하면서 원래249년인데 391년에 맞추기위해 120년을 인하하였지만 (369년) 22년의 차이가 나니 어쩌지?


 신공황후가 정벌했다는 신라7국의 위치를 기존 설로는 대부분 고대 한국의 남부 지방에 존재했던 가야소국들에 비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문정창은 7국을 대마,일기,남구주 지방의 도서였을 것이라고 하였고,이병선(전 부산대) 모두 대마도 내의 읍락국으로 보아 여기에 비정하였다. 북한의 김석형(김일성대학교수)은 일본내 분국설을 주장하면서 정확한 위치는 모르나 일본 열도 내에 시라기(신라)7국이라고 규정하였다.

 

조희성(북한학자)는 규슈 섬안에서도 명백히 백제의 소국, 백제의 후국으로 자칭했던 한국 계통의 소국과 시라기(신라) 계통이 있었다고 논증하고 있었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꼭 어디라는 규정은 없었다.


  <임나신론/고려원95년>의 책을 낸 김인배,김문배는 신공이 정벌한 신라7국과 임나10국을

모두 규슈에 비정하고 자세한 설명을 곁들어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 남부에 비정한 기존 이설들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末松保和(일본)

今西龍(일본)

김태식

 

김성호

비자발(비사벌)

창녕

창녕

창녕

창녕

남가라

김해

김해

김해

김해

탁국

경산

대구

경산-밀양

창원(덕산리)

안라

함안

함안

함안

함안

다라

합천

진주

합천

사천

탁순(탁기탄)

대구

창원

창원

남해(덕신리)

가라

고령

고령

반파국(고령)

광양

  

 그러나 이와 같은 위치 비정은 거의 대부분<일본서기> 본문을 오독한 데서 유래한 터무니없는 발상에 기인한 것이다. 

 왜냐하면 원문에 [俱集于卓淳,擊新羅而破之.因以,平定...7국] 이라 하여,   

 신라를 격파함으로써 이로 말미암아(因以) 7국이 평정되었다고 했는데,

이때의 7국을 한국 땅에 비정했을 때는 신라7국이 아니라 가야계의 소국들이 되어 버린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요컨대 기존 설에 따를 때,안라(함안),남가라(김해).비사벌(창녕).가라(고령)가 신라에 점령된 것은 각기 지증왕 15년(514년 법흥왕 원년:신라의 첫 小京 설치).

진흥왕 16년(555년:창녕에 下州 설치)<삼국사기>지리지.법흥왕 19년(532년:금관가야 멸망), 진흥왕 23년(562년:대가야 멸망)으로

 

 이 같은 일련의 중대한 사건들이 시차를 두고 차례로 일어나며, 그 연도 또한 아무나 자의적으로 수정할 수 없는 典據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서기>의 위 기사를 韓地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식케 되면,

당시 이들 7국이 신라의 영토가 아닌데 신라7국을 평정했다는 것도 어불성설일 뿐만 아니라,

 

 설령 이들 7국을 가야제국으로 판단하더라도 같은 해에 동시에 정벌당했다는 것도 억지주장이어서 말이 안된다.

일본학자들에 의하여 근 140년 동안 허구로 점철된 소위 임나관련 역사 서술이 허위 날조된 것을 일본에서

고대사 박사학위를 받아서 가야사 전문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한 이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그 차원을 넘어 가야 박물관에 버젓이 당당히 왜곡된 가야소국으로 제시 됨은 먼 훗날 우린 일본의 속국의 영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 될것이 심히 유감이다. 김해지방자치 단체장은 하루 빨리 이 허위 날조된 지명을 지울 것을 촉구한다.

 김해를 구야국이라고 단정한 것도 일본학자들이다.

 

 그 과정을 보면 주먹구구식이라 기가 찰 뿐이다. 위지동이전에 나오는 구야국(원 狗邪國/구사국)을 [구야]는 [가야]의 음차라 하여

그 대표적인 곳이 김해(금관가야)이 [구야]가 김해라 비정하였다. 원래는 [구사국]으로 읽어야한다. [구사]를 읽을 경우보다

[구야]의 독음이 [가야]에 가깝기 때문에 [구야]로 둔갑하였다. 이것도 이 참에 다시 검토하여야한다.

변진구사국이 과연 김해일까? 얼마나 싱겁게 비정한 식민학자들인가. 그들의 곡필에 농락당할 대로 당한 한반도 남부지방의 지명들.

 

  그 세력을 추종하는 학자가 많이 배출되면  이 나라 가야사는 물론 고대사는 일본의 속국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본서기 <계체기>7년(513년)6월 조, 백제는 오경박사 <段楊爾>를 보내

[반파국이 신의 나라인(백제 영토인) 己汶(기문)의 땅을 빼앗았다]고 한 그 [기문]의 위치에 대해

기성 사학계가 각각 전북 남원에 비정한 이래 별 이론을 보이는 이가 없어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물론 대성동 고분박물관에도 남원에 비정되어있다).

 

  그러나 일본의 <신찬성씨록>의 吉田連條에서는 [기문]을 任那의 동북방이라 했는데,

이 말은 곧 [기문]이 전라도 남원 쪽이라면 ,임나는 그 반대쪽인 남원의 서남방인 지금의 전남 지방이라는 모순이 발생한다.

일본.한국의 강단 사학계의 기존설인 임나 즉 가야연방이 전남 지방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나오므로,

이 또한 역사의 실상과 어긋나는 명백한 허위이다.


 결론적으로 일차적인 것은 <일본서기> 임나 관련 고대 지명들에 대한 위치 비정의 철저한 엉터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한번 뒤틀린 판단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음 논지 전개의 발단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과 사실 아닌 것 사이에서 혼란은 끝없는 왜곡과 판단착오의 악순환을 가져와, 마침내 고대사의 인식체계 전반을 터무니 없는 방향으로 끌고가 거짓 위에 설정케 한 심각한 현상을 초래한 셈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강단사학을 통해 배워온 한일고대 관계사는 이처럼 거의 다 사실이 아니다.!

  이 충격적 깨달음으로부터 완전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하고 잘못된 과거의 고정관념의 틀을 과감히 깨야 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사의 난문제 중 하나인 가야사의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고 이 지역에 산재한 감추어진 유적. 유물을 발굴하고 이를 기반으로 史實을 再構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역사를 실증적으로 조명하는 방법론의 전부는 아니다.

 

특히 가야사에 관한 문헌기록의 부족을 메운다는 명분 밑에 <일본서기>의 임나 관련 기사를 그대로 가야관련 기사로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 역시 그렇다. 게다가 일본 사학계가 설정해 놓은, 논리에 근거하지 않은 私見 내지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 들여 땜질하는 방식의 구태의연한 학문태도에 의존하고 임나사를 가야사의 인식체계로 대체하는 한, 유적,유물의 발굴 자체가 역사의 보편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한국과 일본에서 출토된 유물의 비교우위론적 측면에서 논하더라도, 일본보다 훨씬 선진적이고 문명화했음을 증거하는 우수한 가야 출토 유물을 눈앞에 놓고서 당시에 후진적인 왜의 무력으로 한반도 남부를 제 집 안방처럼 넘나들며 정복한 것처럼 기술된 <일본서기> 기사의 신빙성을 어떻게 입증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면 당장 고대 가야 지역의 출토 유물보다 낙후된 왜의 武具類를 증거물로 삼아 이를 설명해야 하는 자가 당착에 스스로 빠지고 말 따름이다. 김태식(홍익대 가야사)은 후기 가야 남부제국의 소멸과정을 논했지만(그의 논문에서) 주로 <일본서기> 임나 관련 기사를 바탕으로 출발,소위 <임나흥망사>를 韓地의 남부지역 <가야사>에 적용함으로써 사실과 그 해석에서 상치되는 오류가 필연적으로 발생하였다.

 

더욱이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일본서기> 속의 <임나일본부>의 실체는 부정하면서, 그 임나일본부를 활동 근거로 삼아 임나에서 활약한 것으로 기록된 왜 조정의 파견 사신 및 왜장들의 활약상은 인정하는 모순된 견해를 보이는 것도 아직까지 <임나사>와 <가야사>를 혼동한 연구자 스스로의 이론 정립이 미처 덜 된 상태의 반영으로 보인다.

 

 따라서 논리에 근거하기보다 다분히 주관적인 추정과 편의주의적인 역사 해석에 대해 불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루 빨리 김해 시는 대성동 박물관의 자료를 삭제하길 부탁드린다.(자료:임나신론/고려원95년: 글돋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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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0.15 10:20

    첫댓글 ㅋㅋㅋ 역사학계에 이완영의 후손이 존재 하자나요 임나 일본설은 택도 없는 소리 이며 누가 뭐라도 독도는 우리땅

  • 10.10.15 12:49

    허허 참내 , 이렇게 거짓역사를 만들려면 머리 많이 아팠쓸것인데.. 역시 대단 한 일본임니다.. ㅊㅊ

  • 10.10.16 00:57

    1만년에 이르는 훌륭한 인류문명의 기원을 연 자기나라역사를 식민사관에 찌들어 왜곡 축소를 시키며 그걸로 밥벌이하는 관변사학자들은 매국노중에 매국노임이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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