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사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 형 도
시인 '기형도'는 1960년에 '연평도'에서 태어났다.
소싯적에 '광명'으로 이주해 거기서 자랐다.
연세대 입학 후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열정적으로 습작을 연마했다.
대학 4학년 졸업반 때인 1984년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듬 해인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자작시 '안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기자생활과 작품활동을 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던 중 1989년 3월 7일.
종로 '파고다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눈을 감았다.
그 질병은 그의 가족력이었다.
시인의 아버지도, 누이도 그 병으로 떠났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나이였다.
향년 28세.
그의 유고집 '입속의 검은 잎'은 시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하늘나라에서도 많은 작품활동을 하며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고 깊에 확장해 주시길 빈다.
안개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 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 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 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기 형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