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대장정을 마쳤다. 내 일생에서 그렇게 긴 대하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아마 앞으론 다시 없을 일 같다. 한 번 책을 잡으면 빨리 읽고 싶은 심정에 잠까지도 사양하는 성미라 32권의 책을 근 한달동안 독파한 것 같다. 매일 한 권씩, 또 어떤날은 2권씩... 센고쿠시대의 문화상과 더불어 경영마인드의 교과서라고 하는 일명 대망의 유혹에 푹 빠져 지낸 한달간... 님들에게 오랫만에 편지를 쓰게 된 변명아닌 변명을 해본다. 대망의 여정이 끝나고 갑자기 생긴 공백기를 어이하지 못해 펄벅의 대지(大地)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물론 그것도 단 하룻만에... 동양적 정서가 깃들인 일본(대망)과 중국의 생활상(대지)을 알 수 있는 책을 읽으면서 정서적으로 일본보다는 중국과 우리민족의 정서가 상통함을 느꼈다. 지고지순한 여인네의 헌신(왕룽의 부인 오란), 땅을 소중히 여기는 왕룽의 삶의 철학이 심금을 울린 책... 미국인이면서도 중국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펄벅의 뛰어난 문체와 자신의 자녀가 장애인이어서일까... 왕룽의 장애를 가진 딸 이야기까지 굉장히 섬세한 감성과 문체가 돋보이는 책으로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의 혁명기가 농민들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중국의 사회상을 광범위하게 터치하는 안목 등 다시 한 번 펄벅에 매료된 계기를 만들어 준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되돌아 가서... 6살에 인질로 잡혀가 18살이 되어서야 고향땅에 돌아가게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의 내용은 그야말로 인내와 불교적 자비, 유교적 인간의 도리가 어우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과 우리 민족의 정서적 차이 때문일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으면서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 일본의 성문화, 가족의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사실... 오늘날 일본의 개방적 성문화는 이처럼 이질적인 그들의 전통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권세가는 많은 소실을 거느리는데 엄마와 딸이 동시에 한 남자의 소실이 되는 상황... 또한 거느리고 있던 소실을 아끼는 부하에게 주면 그 부하는 영광이라 생각하며 결혼하는 경우들... 사촌과의 결혼은 비일비재...한국적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경우들이 많아 썩 유쾌하지 못했지만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면서 100여년간의 전운을 씻고 평화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 영웅들의 삶과 사랑과 애욕의 역사를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의 파벌싸움을 국외로 돌리면서도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그로인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을 보면서 올바른 정세파악이야말로 난세를 헤쳐나가는 지혜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토록 국내평화를 위해 애썼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보다 밑바닥인생에서 일본최고의 권력자가 되어 대외정벌을 천명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인들이 더 영웅시하는 것을 보면 일본인의 심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겠다. 어떻게 하든간에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탐욕과 교활함이 일본인의 근성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러 측면에서 일본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극찬하고 신격화한 측면을 보면서 좀 찌푸려지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평화를 사랑하고 인내와 자비로 주변인을 대하는 모습들은 우리가 나이들어가면서 지향해야할 삶의 내용이라 생각하니 가슴에 와 닿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의 철학을 담은 문장을 쓰면서 마무리를 할까한다. " 자비는 초목의 뿌리, 인화는 그 열매" 항상 이러한 삶의 내용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면서... 정말 화창한 날이다. 삶의 내용도 항상 밝고 행복하기를 소망하면서... 2004년 6월 1일 들꽃향기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