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엘이 돌아오자마자 그를 끌고 계속 달려가고 있는 유리카는 여전 달려가며 크리스티나에게 물었고, 크리스티나 역시 입술이 바짝 마르고 있는 걸 느끼며 급히 대답했다.
"거의 다 왔어! 바로 저 건너편 집이야!"
어느덧 그들은 크리스티나가 가리킨 집으로 도착했고, 카엘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봐, 여기로 온다면 여기로 온다고 말을 했어야지. 그랬다면 내가 공간을 비틀어 이곳으로 단숨에 워프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어.. 그때는 그럴 틈이 없었기 때문에.."
유리카는 어색한 웃음으로 사태를 무마시키려 했고, 카엘은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음인지 말없이 한숨만 땅이 꺼져라 쉬어대고 있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말을 꺼냈다.
"뭐해? 안들어가고."
"아, 맞다!"
유리카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얼굴이 환히 밝아지며 크리스티나의 손을 잡고 들어갈 준비를 하며 ㅡ 얼굴에는 크리스티나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 나타난 상태였다 ㅡ 카엘을 손짓해 불렀고, 카엘은 순간적으로 무너진 분위기 밸런스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들었는지 다시금 분위기를 잡으며 헛기침을 해대며 갑자기 사라졌다(?).
"카엘, 쓸데없이 워프는 왜 했어요? 그냥 문 열고 들어가면 되지."
숲길을 걸으며 유리카가 카엘에게 면박을 주었고, 카엘은 여전 분위기를 잡으려고 노력하며 묵묵히 답했다.
"뫼비우스의 진행자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지."
"쓸데없는 의무군요. 상당히 허구적인 분위기가 풍기는데요.."
카엘은 마치 사레들린 사람처럼 심한 기침을 해댔고, 유리카는 그런 그를 무시한채 앞으로 나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흐음, 그러니까 카이제나크는 정확히 사흘 전에 카디스 쪽으로 떠났고,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재클린드 숲과 웨이크필드(Wakefield)를 경유해 간다고 했다 이거지?"
"응."
재클린드 숲의 짙은 안개를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를 사용해 헤쳐나가며 크리스티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유리카는 골치아프게 됐다는 듯 팔을 쭉 펴며 말했다.
"에이, 하필 이럴 때 파인드(Find) 주문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골치아픈데."
파인드. 4써클의 주문으로 원하는 대상을 어디에 있는 지 찾아내주며 얼마만한 마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범위가 달라지는 주문이다. 일행 중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이는 유리카, 세이나, 크리스티나. 그런데 크리스티나가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은 3써클에 그치니 이 주문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유리카와 세이나 외엔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유리카는 4써클은 커녕 2써클도 간신히 사용할정도로 마나의 양이 간당간당했었는데, 얼마 전 바로 세이나가 덜컥 기억 속에 존재가 잠식되어버렸으니 결국엔 파인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만약 파인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생기는 이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카이제나크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곳의 좌표를 대강 확인한 다음 카엘이 바로 공간을 비틀어 워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렇게 재클린드 숲의 무성한 안개를 헤치고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리고 이렇게..
"..도적들을 만나는 일도 없었을 거고 말이지."
어느새 그들은 도적들에게 포위되어있었고, 유리카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바리사다의 힐트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이 녀석들! 선량한 양민을 괴롭히다니 용서할 수 없다!!"
라는 아주 고전적이고 너무 도덕적인 나머지 심플하기까지 한 대사를 외치고 안개 속에서 나타난 두 인물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은 바로!!
..아직 몰랐다. 밝히려면 빨리 밝혀!
그러나 안개 속에서 나타난 두 낯선 남자는 이름을 밝힐 생각이 별로 없는지 허리에서 검을 날쌔게 뽑아 도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그들 중 한 명의 이상하게 주황색 검신을 지닌 검을 본 유리카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캐롯 블레이드(Carrot Blade)?"
어찌됐건 그 남자들은 상당히 익숙한 자세로 도적들에게 검격을 퍼붓고있었다. 은빛 블레이드와 주홍빛 블레이드가 춤을 추며 밝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 지는 않았지만 ㅡ 당연했다, 온통 안개 투성인데 어디에 밝은 햇빛이 들어와서 반사광을 만들어내겠는가 ㅡ 상당히 매끄럽게 도적들의 브로드소드나 대거(Dagger)를 튕겨내며 우리의 주인공 R모씨와는 달리 되도록 피해를 줄이려고 애쓰며 도적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음. 좋은 일이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저기서 얼빠진 듯한 모습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유리카 일행은 별로 탐탁히는 생각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도적들 중에서도 대장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입술을 깨물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강요된 선택이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자신들은 끝이다. 라는 생각인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적대장(?)의 바스타드 소드를 유연하게 받아치며 외쳤다.
"나 아이트가 이정도로 물러설까보냐! 하아!"
은발의 남자가 그렇게 외치자 자신의 검신빛처럼 주홍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반대편 남자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한껏 외쳤다.
"캐롯 블레이드의 검날은 아직 무디지 않았다구!"
그래요 그래요. 캐롯 블레이드건 뭐건 어쨌든 간에 그 두 남자는 거의 도적두목 ㅡ 이게 더 낫겠군 ㅡ 을 갖고 놀듯이 도적두목을 상대하고 있었다. 은빛 검날과 주홍빛 검날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바스타드 소드를 튕겨내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주홍빛 머리의 남자는 지겨워졌다는 듯 검날을 한번 튕겨내고는 은발의 남자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은발의 남자 역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외쳤다 ㅡ 상당한 연습을 한 모양이었다 ㅡ .
"캐롯 디바이스 블레이드 샤워(Carrot Divice Blade Shawer)!!"
..도통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다.
어쨌든 기술명만큼은 상당히 현란하고 멋지게 지은 전보다 두 배는 빨라졌다고.. 느낄거라고 보이는 그들은 서로 검을 주고받듯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으나, 아무래도 그것을 지켜보는 유리카의 속마음은 '저거, 그냥 겉모습만 멋지게 포장해놓은거 아냐?' 였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화려하고 멋지고 위력이 강해 보이는 기술이긴 했으나, 검의 달인인 그녀가 보기에는 겉포장만큼이나 허점도 대단히 많은 허약하기 이를데 없는 기술이었다.
"..상업용 기술이라는 느낌을 주는군."
..역시 카엘도 그렇게 느낀 것 같았다.
어찌됐든 캐롯 디바이스 블레이드 샤워인지 뭔지 하는 기술은 적어도 그 도적두목에게만큼은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었다. 도적두목은 난생 처음보는 기술에 정신을 못차리며 허둥대고 있었고, 그 사이 그 둘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검을 찔러들어갔다.
툭. 도적두목의 바스타드 소드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얼빠진듯 잠시 자신의 검을 보다 곧 사태를 파악했는지 허둥지둥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 남자는 서로 씨익 미소를 주고받은 다음 유리카 일행에게로 몸을 돌렸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주홍빛 머리의 남자였다.
"안심하십시오. 악인들은 모두 저희가 해치웠으니까요."
그에 질세라 은발 머리의 남자도 앞머리를 한번 손으로 튕긴 뒤 제딴에는 멋있을거라 느끼는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여자분들이시군요. 이런 위험한 시국에 이런 곳을 다니시는건 위험합니다. 저 뒤에 계시는 남자분께서는 별로 실력도 없어보이는데, 저희가 동행해드릴까요?"
'뭐가 어째?' 라고 금방이라도 소리칠것같은 카엘. 그리고 얼빠진 듯한 크리스티나. 금방에라도 토할 것 같은 푸르뎅뎅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유리카. 그러나 저 두 괴인들은 그것을 좋다는 의미로 제멋대로 받아들인 듯 했다.
"네, 그러시다면 동행해드리죠. 제 이름은 유니온(Onion), 이쪽은 캐롯이라고 합니다. 흔히들 저스티스 블레이드(Justice Blade)라고들 하곤 하죠."
그러자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ㅡ 사실은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온 것이었지만 ㅡ 크리스티나가 쿡쿡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유.. 유니온? 캐.. 캐롯? 당근? 양파? 채소잖아 그것들?"
그러자 주홍빛 머리의 남자가 발끈하며 대답했다.
"그.. 그렇긴 하지만 이건 별명이라구요!! 그렇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확실히 그의 주홍빛 머리나 주홍빛 검, 주홍빛 망토등을 봤을때 캐롯(Carrot)이라는 별명은 상당히 어울리는 듯 하긴 하다. 그러나.. 어울리는건 어울리는 거고, 어디까지나 우스운건 우스운 거라는 만고의 진리에 따라!!
결국에는 일행은 약 3분동안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리게 되었다 ㅡ 물론 카엘 제외 ㅡ. 한참을 그렇게 웃던 도중, 유리카가 크리스티나에게 돌연 물었다.
"참, 티나. 레인은 어떻게 된 거지?"
크리스티나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ㅡ 이 시계는 과연 시크로치아스산답게 편리해서, 장소에 따라 시간이 자동적으로 맞춰지게 되어 있었다 ㅡ 답했다.
"음..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지금이 3시니까 아직은 좀 남은 셈이군. 이 근방에서 지금으로부터 10분 후에 만나기로 했어. 표시를 해놓은 곳이 이 주위에 있을텐데.."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티나는 거스트 오브 윈드 대신 라이트(Light)를 사용하며 유리카에게 눈짓했고, 유리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양 손을 움직여 수인(手印)을 맺었다.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였다.
잠시 후, 그들은 껍질이 벗겨진 흰 거목을 찾을 수 있었고, 레인에게서 예기치 않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