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에 가는 전철에서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이 문화일보를 들고 있는데, 요 책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더란 말입니다. 평소에 전철에서 신문 집어오지 않는데...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의자에 신문 내리고 일어서는 순간... 잽싸게 가서 집어왔죠...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구여... 흐흐... 보고싶다.
2년전 새천년을 목전에 둔 당시, 무심히 인터넷 서핑을 하던 20대의 두 여자가 있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인터넷 배너광고 '공짜로 세계여행할 기회'. 눈이 번쩍 뜨인 여자들은 사력을 다해 여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0년 1월 1일, 576일간의 '길위의 인생'이 시작된다. 다니던 회사는 '물론' 때려치웠다.
과감하다면 과감한 결단을 내린 주인공은 강영숙(28), 박수정(26)씨. 강씨는 영화일을 하고 싶어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다른 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현재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박씨는 자칭 타칭 ‘오지여행전문가’로 유명 인터넷여행클럽인 ‘5불 생활자에게 오지는 없다’의 운영자이지만 현재는 무역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이들이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자신들의 자리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떠났다. 이런 이들을 보고 ‘어른’들은 ‘도대체 왜 세계 여행을 해야만 하는지’를 묻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향해 이들은 자신있게 ‘그냥’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1년7개월, 70개국을 방문하며 적게는 하루 5달러로 생존에 성공한 이들이 써내려간 이 ‘헐벗은 여행기’는 이들이 그저 ‘그냥’ 여행하고 있지 않음을, ‘그냥’살아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아울러 평범한듯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절대 놓치지 않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들이 세운 여행 전략은 꼼꼼하면서도 저돌적이고, 엉뚱하다. 각종 비행기 서비스를 이용한 최저가의 비행루트를 짜는가 하면 배낭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수건 대신 면티를 이용하는 등 놀라운 노하우를 축적하지만, 멕시코시티 인근의 대표적 유적지인 ‘테오티와칸’을 한밤중에 방문해 ‘달의 신전’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달의 정기를 들이마시는 엉뚱한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뉴질랜드 와이헤케 섬에서 렌트한 차가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져 ‘죽음의 공포라는 것이 그토록 또렷이 각인되는 순간’을 체험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와서는 형편없이 찌그러진 차에 기념이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정말 ‘못말리는 여행객’들이다.
이 못말리는 여행기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남극방문기. 세계 여행중 뉴질랜드의 캘리타튼에서 비운의 영국 남극 탐험가 스코트의 탐험 일기를 읽고 남극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생각은 점점 거세지고 하고 싶은 일을 꼭 해야하는 이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결국 ‘남극사람들이 뭘 먹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너무나 궁금해’ 남극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남극행의 기점이 되는 칠레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한 이들은 방문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청와대등 여러 기관에 보내는 한편, 한국의 남극기지인 세종기지에도 수십통의 e메일을 보낸다. 시원하게 오라는 답장은 안 왔지만, 오지말라는 소리도 없었기에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선 가장 문제가 되는 교통편을 해결하기 위해 남극에 기지를 두고 있는 다른 나라들을 조사했다. 푼타아레나스에 한달을 머물며 세계각국의 남극 사무실을 찾아 다녔으며 길에서라도 남극마크를 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쫓아가 무작정 문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푼타아레나스 시내에 어느 나라의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 어느 가게가 어디 있는지 눈을 감고도 지도를 그릴 정도가 될 무렵 이들은 탐험가 스코트의 좌절을 떠올리며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약 1년뒤. 이들은 다시 남극행을 준비한다. 여름에 남극 대원 교체가 이루어지며 물자수송이 주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된 이들은 A4 용지 20장에 이르는 못말리게 긴 편지를 한국 극지연구본부로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남극에 꼭 가야하는 이유와 남극에 가다 목숨을 잃어도 상관 없다는 것. 이들은 이 계획서를 쓰기 위해 남극에 관한 책을 5권이나 읽었다. 간절한 편지에 감화된듯 승낙이 떨어졌고 이들은 다시 푼타아레나스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보급품 수송기에 남은 좌석은 단 한개. 결국 비행기 대신 유조선을 타고 6일만에 남극 입성에 성공한다.
이들이 이렇게 세계를 보고난 소감. 강영숙씨는 “처음, 한 8개국 정도를 보았을 때는 이것도 이색적이고 저것도 이색적이라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방문하는 나라가 늘수록 점점 ‘이것도 우리와 같고 저것도 우리와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세계에서 본 것은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이들은 떠나기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결코 같지는 않다. “여행을 하며 나의 한계, 나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느꼈다.”는 강씨의 다부진 말. 여행은 역시 내면을 한뼘씩 키우는 과정임을 실감케하는 말이다. (작품성★★★ 대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