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의혹과 관련해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돈을 받은 시기와 인지 사실, 그리고 실제 수령인 등의 문제를 놓고 검찰과 노무현 일가의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와 관련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잘못은 잘못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르다" "구차한 변명은 않겠으나 해명은 해야겠다"는 등의 즉각적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평소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내는 그의 스타일대로다.
여전히 공방을 벌이고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만약 박연차의 진술대로 그가 직접 전화해 100만달러를 요구했다면 그의 죄질은 상당히 불량하다. 본인은 20여년을 알고 지내며 어려울 때마다 흔쾌히 도와준 맘 좋고 손 큰 고향 형님에게 평소에 하던대로 돈을 요구했을테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개인으로서의 노무현을 버려야하는 위치다. 즉, 그가 돈을 달라고 말했다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잘 나가는 고향후배의 부탁이 아니라 대통령의 명령이 된다.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의 요구에 "요즘 사정이 안좋아서 힘들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가 말하는 '프레임의 차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점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그렇다. 대가라는 것은 반드시 반대급부의 이익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발생할 지 모르는 불이익을 차단하는 것도 대가가 될 수 있다. 100만달러를 주는 대가로 당장 어떤 이익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해도, 100만달러를 주지 않았을 경우에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불이익은 차단한 셈이다. 사실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처사의 대부분은 이와 동일한 논리에서 파생한다. 장자연이 성상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한국정부가 이라크에 파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권력자의 전횡으로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불이익을 막기 위해서였다.
진실관계는 앞으로 검찰 수사에서 양측이 다퉈볼 일이고, 또 그의 죄가 역대 어느 정권의 부패보다 심각한 수준인지는 섣불리 말하기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금껏 비리에 연루됐던 어느 대통령보다 욕을 먹는 이유는, 바로 그가 이전에 뱉어놓았던 말 때문이다. 언론들은 그가 '깨끗한 정치'와 관련해 발언한 내역을 정리해 보도하면서 그의 언행불일치를 꼬집고 있다. 이권개입시키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했고 (2002년 당선자 시절) 권력형 비리가 사라진 것이 노무현 정권의 최대 자랑거리라고도 했다 (2007년 신년연설). 평소 청렴함과 도덕성을 본인은 물론 정권의 최고 자산으로 내세웠던 그가 죄질이 불량한 범죄에 연루되었으니 국민들의 배신감은 당연히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사실 도덕성이라는 것은 자랑할만한 것이 못된다. 도덕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지 정치적 인기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렴함이 자연스레 대중의 인기를 가져오는 것과 대중의 인기를 얻을 목적으로 청렴해지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더구나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청렴함은 매우 불안정한 정치적 자산이다. 청렴함이라는 자산은 유지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설령 일이 잘못되면 두 배 세 배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점에서 그는 수년전 입국금지를 당한 가수 유승준과 닮아있다. 그는 2002년 입대를 앞두고 돌연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이완용에 버금가는 매국노로 낙인찍혔다. 사실 유승준의 죄질이 괄약근 조절로 병역을 면제하려 했던 연예인들의 죄질보다 더 나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승준은 적어도 범법을 저지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유승준의 행동이 국민들(특히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이해하는 바이지만, 이러한 감정적 대응이 법적인 제재로까지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사실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비이성적인 분노는 사실 유승준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 재미교포로 자라 영주권자였던 그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언론은 그를 "아름다운 청년" 운운하며 치켜세웠다. 그 역시 이런 칭찬들이 싫지 않은 듯 온갖 인터뷰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선언했고 그의 발언은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정서와 묘하게 맞아떨어져 그에게 엄청난 인기를 가져다주었다. 그 인기는 단지 팬층 확보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그의 이미지가 좋아지자 수많은 곳에서 광고모델로 기용했고 심지어 공익광고에까지 출연했다.
게다가 그는 그냥 군대도 아닌 해병대에 자원입대 하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다 많은 댄스가수들이 그렇듯, 무대에서 펄펄날던 사람들도 신검만 받으면 걸린다는 척추디스크 판정을 받아 공익으로 군대를 가게됐고, 그마저도 입대 직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병역이 면제됐다. 그가 평소에 그렇게 입방정만 떨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사건 이후로 7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일부 연예인들이 유승준에 대한 온정적 발언을 할 때마다 국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심지어 자료화면으로 그의 얼굴을 내보내도 방송사에 항의가 빗발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보면서, 나는 그가 조금만 말을 아꼈더라도 지금처럼 '패가망신시키겠다더니 패가망신하는구나, 꼴좋다'는 식의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도 그가 홈페이지를 통해 보여주는 반응들을 보면, 그는 잘못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불필요한 비난들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그 비난의 절반정도는, 스스로가 묻어놓은 지뢰에 제 발목 잘린 격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