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기 – 모든 판단을 유예하십시오
< 질문 >
안녕하세요, 법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올 한 해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지역이 군 단위 시골지방이라 직접 가서 배우고 싶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이렇게 질문게시판에 글을 올립니다. 혹시 충남 지역에서 위빠사나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전에 미얀마 스님께 잠시 위빠사나를 배운 적이 있어서 혼자서 해보려고 하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네요. 모르는 것도 많고 의문점이 생겨 물어보려 해도 주위에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어서 이 카페에 와서 법사님이 쓰셨던 글들을 보고, 전에 구입했던 책들도 보고 하는데 수행이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체험에서 경험하는 것이라 중간에 실수도 많이 하고 모르는 것투성입니다.
아는 마음이 생기고 또 사라지고 그렇다고 하셨는데 사실 그것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띄엄띄엄 그런 거 같다가도 쭉 지속하는 거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여섯 문을 통해 들어온 감각이 있는 그대로 보면 좋으련만 어떤 충동이 일어난 상태에서만 알아차리게 됩니다.
언어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한 게 어떤 강한 신호 혹은 충동 같은 느낌이 일어났다가 바라보면 사라집니다. 아직까지는 저 지점에서밖에 볼 수 없기에 받아들이고자 하는데 처음에는 불만족스럽던지 후회도 되고 화도 나고 그러더군요.
그것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미세한 어떤 신호가 휙 지나갔는데 그게 갈애인지 탐욕인지 욕망인지 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쥐게 되면 괴로운 것으로 봐서는 집착 같은 걸로 추측해봅니다. 거북이 걸어가듯이 수행을 한다고 하는데 답답한 게 많습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바라보다가 긴장 속에 매몰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느껴지는 괴로움들 (긴장이나 가슴 쪽에 열이 올라오는 현상, 혼란스러움 등등)속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마음을 내서 나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무엇보다 요 근래 잘 때나 일어날 때 알아차리며 자고 일어나려고 노력하는데 잠에 들기 직전이나 비몽사몽으로 무의식 같은 상황일 때는 미세한 생각 같은 게 찾아와도 아 이것이 욕심이구나 하면서 흘려보내게 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데 일상생활로 들어서면 알 수 없는 불만족스러운 느낌과 미묘한 긴장이 계속되면서 알아차리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이전에 쌓여왔던 습관에서 나오는 것 같은 성향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서 '그간 엉망진창으로 살아왔구나'하는 느낌이 많이 들고 있습니다. 사실 알아차린다는 게 그냥 놔두는 건지 집중을 해서 봐야하는 것인지도 어떨 때는 아리송해서 헤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수행이 혼자서 하기엔 벅찬 일이구나 느껴지네요.
기본기가 뭐든 중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상태라 질문 드리고 조언을 구해봅니다.
< 답변 >
대전시 유성구 녹야원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위빠사나 수행모임이 있습니다. 주소는 대전시 유성구 현충원로 389-20(구암동 431-30) 녹야원(녹야원 추모관)입니다. 정진녀(010-3406-1080)님께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은 가깝고 먼 거리에 있지 않고 자기 의지에 달렸습니다.
수행은 마음을 계발하는 행위라서 처음에는 읽거나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마음이 고요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씩 지혜가 계발되어 알 수 있습니다. 경전을 읽거나 수행에 관해 들어도 자기 수준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수행과 질문을 병행을 해야 합니다.
궁금한 것이 많으면 발전할 여지도 있지만 장애의 요소도 됩니다. 궁금한 것은 결코 생각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궁금한 것 자체가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은 생각을 끊고 오직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식이 고양되는 단계적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풀립니다. 의식이 고양되는 과정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는 반드시 생각을 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고요함이 생겼을 때 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처음부터 알려고 하지 말고, 단지 알아차리고 말고를 거듭해야 합니다.
이런 기본적 구도가 성립되지 않으면 바른 길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수행자는 단지 알아차리기만 하고 결론은 지도자가 내려야 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추측은 항상 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내가 내리는 결론은 내 생각입니다. 내 생각은 그간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라서 실재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혼자서 갈 수 없습니다.
아는 마음이 생기고 사라지고 하는 것은 집중력이 생겼을 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 하나에 법이 다 숨겨져 있습니다. 마음은 매순간 같은 마음이 아니고 다른 마음이므로 무상한 것입니다.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오며 괴로움을 해결하려고 해도 해결되지 않아서 무아입니다. 마음이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라고 할 것이 없어 무아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혜가 나려면 노력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할 때 모르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야 합니다. 만약 억지로 알려고 하면 수행이 재미가 없어서 포기합니다.
지나고 나서 알아차렸다고 자책해서는 안 됩니다. 지나고 나서 알아차린 것이 제일 빨리 알아차린 것입니다. 누구도 지나고 나서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나서 알아차렸다고 해도 금방 또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자기 힘이 있는 만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수행은 알아차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지 늦고 빠르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수행은 현재 일어난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답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네’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욕심이 느껴질 때는 ‘지금 욕심이 있네’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괴로울 때는 ‘지금 괴로워하고 있네’하고 알아차리십시오. 후회할 때는 ‘지금 후회하고 있네’하고 알아차리십시오.
그간 엉망진창으로 살아왔다고 느낄 때는 ‘지금 엉망진창으로 살아왔다고 자책하고 있네’하고 알아차리십시오. 아리송할 때는 ‘지금 아리송하다고 생각하고 있네’하고 알아차린 뒤에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리거나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무엇이나 현재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 뒤에 가슴의 느낌이나 호흡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결론을 내거나 생각에 빠지지 말고 나타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십시오. 모든 판단을 유예하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유일한 의무입니다. 그 이후는 원인에 따른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묘원 올림
첫댓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할 수 있는 만큼 우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