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검.. 여자들의 이야기
<불의 검>에 나오는 여자 중 가장 비중 있는 세 명을 보자. 일단 주인공인 아라, 아무르의 신녀인 소서노, 카르마키의 신녀인 카라... 이 세 명의 공통점이라면, 다들 가라한을 사모한다는 것이다. 음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라와 소서노는 가라한을 좋아한다. 소서노는 신녀는 무녀여야 하고, 무녀는 금혼을 해야 하기에 처녀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라한을 은애할 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말 그대로 아무르를 떠 받쳐주는 만인의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절제한다. 아라의 경우엔 가라한이 기억상실일 무렵 혼례 아닌 혼례... 소위 말하는 그 '사고친다' 란 개념으로 만나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가라한을 찾아 나서지만, 이미 수하이에게 성폭행 당한 상태에서 후실 비슷한 모습으로 망치질을 하며 불칼에 덤벼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라가 개중에 가장 괜찮은 캐릭터인데, 이 역시도 가라한의 몸에 반해(?) 가라한을 탐내한다. 그러다 호되게 한 번 당하지만, 가라한의 몸을 좋아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
일단 이런 메인 캐릭터 말고도 <불의 검>에 나오는 여자들은 은근히 그 수에서 남자들을 압도하고, 그 질에(?) 있어서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김혜린은 <불의 검>에 이름 석자 걸어두고 나오는 여자 캐릭터들에게 그 시대에 살아가는 여성들, 어찌 보면 현대여성들의 모습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럼 한 명씩 어떤 여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 나가는지 살펴 보자.
아라는 들꽃 혹은 풀꽃 혹은 잡초다.
달맞이꽃, 민들레, 질경이풀, 도라지꽃, 억새풀, 쑥부쟁이, 양파꽃, 패랭이꽃... 온갖 야생화들. 내 속에 담겨있던 많은 꽃들의 이미지가 때론 이렇게 때론 저렇게 합쳐진 듯 하다고나 할까. 현재 무지 고생을 시키고 있는 통에 독자들의 원망 내지 협박(?)을 듣고 있지만, 아.. 난들 꽃같은 내 딸을 고생시키고 싶을까!!
지금까지 아라의 일러스트들이 그랬듯 표지의 아라 모습은 순전히 CF 용이다. (세상에!)
나는 가련한 나의 딸에게 한 벌의 비단 옷도 예쁜 거울도 곡옥의 장신구 하나도 주질 못했다. 아라는 그 당시에 혹은 어느 때든-가장 많았던 그 여자들 중의 한 명이기 떄문이다. (물론 사랑은 다소 별나게 하지만.. 이 점은 산마로의 성격도 참고가 돼야 할 것 같다.)
마음은 하늘, 발은 땅. 그러니 순 내 욕심이지만, 나는 아라를 통해 인습과 약육강식의 굴레 속에 있는 여자들의 슬픔과 생명력을, 또한 용기를 표현하고 싶다. 그저 순종하지도, 그저 체념하지도 않는 여자. 글 따윈 몰라도 바람 냄새로 봄을 아는 여자. 작은 손으로 망치도 쥘 수 있고 낡은 앞치마에 돌을 재여 적에게 퍼부을 수도 있는 여자. 역사니 세상이니 거창한 말은 몰라도 뙤약볕 아래 땅을 일굴 줄 아는 여자. 사랑을 위해 세상 끝까지 맨발로 가는 여자. 그것이 내가 그리고픈 아라다... 돼먹지 않은 욕심, 마음은 하늘, 발은 땅.
내가 줄창 그려온 사랑의 절대성과 영원성이란 어쩌면 꿈인지도 모른다. 누구 말마따나,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소유욕에 가까운 사랑이 보다 인간적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오늘도 외길의 사랑을 그린다. 굳세고 착한 사람들에 대한 몽상을 그린다. 못나고 못난 쪽만 보다가 눈이 가재미처럼 돌아가기보단 반쯤 감고 멍청하게라도 앞을 보고 싶다.
이런 점은 아라랑 닮은 것도 같은데... 모전여전인가?! 고생시켜 미안하다. 아라-하지만 먼저 내 마음이 아프지 않고선 너의 아픔도 표현되지 않는다는 건 너도 알겠지?! 우리 함께 좀 더 노력해보자.
김혜린이 댕기네 책들로 나온 <불의 검> 2 권에서 밝힌 아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었다. 그녀의 말보다 더 확실히 아라를 표현 해낼 말이 있을까? 그녀는 잠시 잠깐 봄같은 사랑을 맛봤다. 1 권에서 한겨울 강가에 떠내려 온 가라한을 구해내 그해 겨울 그에게 정을 붙였고, 이듬해 봄 가라한과 짧은 육체의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끝이다. 수하이 바토르에게 끌려가 첩실 자리에 앉은 채로 그녀는 가라한을 위해 불칼에 매달려야 했다. 육체적으로 계속 짓밟히고 또 짓밟혔지만, 그녀는 오로지 가라한을 찾아 나서겠다며 그 끈질김과 함께 강인한 풀꽃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라의 모습은 메마른 내 가슴속에서 '이제 제발 아라를 행복하게 해줘!!' 라며 숨가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10 권, 11 권에서의 짧디 짧은 행복... 단목다루와 가라한의 모습 속에서 아라의 그 행복해 하는 모습과 아라가 단목다루의 동생을 가졌을 때의 짧디 짧은 그 행복의 시간... 아라는 충분히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지금까지 나온 11 권에서 그녀가 행복했던 시간은 채 1 권도 되지 않은 분량이었다. 한 권이 무엇이던가? 채 30 페이지도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잠깐 나눈 일생일대의 사랑에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사랑을 찾아 나서는 그 모습. 그리고 남녀를 떠나 사랑하는 자에게 해 줄수 있는 최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 그것이 아라였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소서노란 이름은 우리 역사상에선 고구려 시조 주몽의 두번째 아내 이름이다(백제 시조 온조의 어머니). 그 이름이 좋아 차용을 한 덕(?)에 몇몇 독자로부터 <불의 검>이 고구려 건국신화와 연관된 얘기냐는 오해까지 받았지만 분명히 나의 소서노는 그 소서노가 아니다.
나의 소서노는 쉽게 말해 나라의 무당, 고대 시대의 여성 지식인이며 의사며 정치가, 아무르인의 대모이며 큰 누님, 초능력자, 아라와는 또 좀 다른 의미로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라고... 표현하고 싶은 혜린의 욕심).
청동기->철기의 교체기, 제정 분리의 과도기, 나라와 신궁을 잃은 신녀로서, 한 남자를 몰래 사모하는 한 여자로서, 그녀는 남몰래 고충이 많은 사람이다. (가끔은 '단지 그녀가 아사를 사랑한단 이유만으로' 아라의 적이니까 밉다는 독자까지!)
나의 소서노는... 상냥한 성품이지만 그 부드러움을 절제해야 하고, 뜨거운 정열이 있으나 초탈한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고, 울며 성질부리고 싶을 때도 무연한 낯으로 등을 똑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고독하고... 때로는 내숭떨고, 잘난 체 한다는 독자의 몰이해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의 소서노는 쉽게 자기 연민이나 과시욕에 빠지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간' 이라는 것에 대한 구도자인 그녀는 삶에 대한 노력을 잊지 않으며 실제로 노력한다.
나의 표현력이 부족해 잘 전달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기품있고 의연한 소서노를 그리고 싶다. 인간의 약은 재능과 자기절제, 보살필 줄 아는 마음... 그것을 알고 노력하는 머언 옛날의 우리 벗, 한 여성을...
역시 <불의 검> 3 권에 나와 있는 김혜린의 '소서노論' 이다. 개인적으로 댕기네 책들 버전으로 나온 <불의 검>이 대원에서 나온 <불의 검>보다 정감이 가는 것은 아마도 이런 작가와 독자의 소통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댕기네 책들로 나온 <불의 검> 앞장에 나와 있는 김혜린의 코멘트 두 페이지가 가지는 무게는 나와 같은 이가 떠드는 <불의 검>에 대한 글 수십 페이지와 맞먹는 내용이 아니던가? 대원판으로 <불의 검>을 접한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댕기네 책들에 나와 있는 김혜린의 코멘트를 전문 다 실어야겠다는 의무감에 불타는 지금이다.
소서노란 이름을 접했을 때 필자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먼저 떠올랐다. 90 년대 들어 심심찮게 고구려 건국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회자되는 분위기 속에 '소서노' 란 특별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재구성되는 분위기였다. 주몽이란 신흥 세력, 비록 당장의 능력은 떨어지나 앞으로의 가능성이 창창한 동부여의 망명자 고주몽을 믿고 졸본부여의 공주인 소서노는 자신과 자신의 부족을 걸고 일생일대의 거래를 하게 된다. 이미 한 번 결혼에 실패한(소서노는 남편이 죽었고, 상처한 남편 사이에 비류란 왕자를 두고 있었다) 소서노는 주몽이 졸본부여의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게 이르자, 주몽과 다시 한 번 거래를 하게 된다. 비류는 주몽의 아들이 아니지만, 온조는 주몽의 아들이니 온조를 고구려의 태자로 삼아달라는 조건이었다. 주몽은 이에 찬성하지만, 동부여에서 부러진 칼자루 하나 들고 온 유리에 의해 온조는 밀려나게 된다. 결국 소서노는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 남하해 백제를 건국하기에 이른다. 역사 속의 소서노는 <불의 검>의 소서노라기 보단 카라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아니 지금 현재의 여성상으로 보기드문 여성이었다. 정치적으로 예민하게 길들여진 정치감각과 과감한 결단성과 실행능력 등은 고대여성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질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소서노의 지위와 능력을 얻기 위해 주몽은 소서노를 이용했고, 결국엔 버린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바라본 소서노는 비운의 여성이지만, 그 마지막 순간까지 비운의 주인공으로 남아있기를 거부하였다. 그녀는 아파하기보다는 그 상처를 지울 그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여성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불의 검>의 소서노와 그 밑의(?) 가라한과 천궁은 비류와 온조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적이 있었다. <불의 검>에서 소서노는 언제나 가라한과 천궁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권력이란 것이 천길칼산 위에 혼자 서 있는 거라는 말이 있듯이 이 두 젊은 부족의 수장과 국가의 왕자는 늘 외롭고 힘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둘은 바로 아무르의 기둥이며 대들보였다. 그러기에 이들은 함부로 자신의 힘듦을 말해선 안되는 위치였다. <불의 검>에서 중국의 사신인 제백이 소서노를 평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르는 두 기둥... 바로 가라한과 천궁에 의해 떠받들여져 있는 나라이지만, 이 둘이 궂은 비를 피하는 것이 바로 소서노란 지붕이라며 말하는 장면이 있다. 제백의 말 그대로 소서노는 두 젊은 영웅의 마지막 안식처와 같은 존재였다. 여자로서의 마음을 거세당한 채 민족의 모주(母主)로서의 소서노란 이름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 없지만, 이 역시도 그녀의 운명임을,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일전 어떤 독자의 편지 중에서 '당신이 카라를 통해 말하고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걸 생각해 보는 것도 <불의 검>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 이란 구절이 있었다. 글쎄... 무엇일까?... 들켰나?!
'카라' 는 (몽골어로는) 검다는 의미다. 실제 그녀는 혈통상 터어키 계열이며 따라서 피부도 검은 편이다. 마음 속까지 검은지는 모르겠지만-그녀 자신은 그렇다고 믿고 있으며, 아마 그렇지 않다하면 그녀는 오히려 화를 낼 것이다. 표현절제상 어느 정도 약화되어 나오기는 하지만, 카라는 고대사회의 무서운 주술사이며 남성의 정기를 흡수하는 색녀 초능력자이며 야심적 정치가다. 또... 좀 비뚤어진 페미니스트다.
균형과 이성의 감각을 잠시만 접어둔 채, 그녀식으로 몇 가지 표현을 해보자면ㅡ여성의 야심이나 야망, 기백에 대해 세상이 기껏 붙여주는 것은 여장부니 여걸이니 하는 웃기는 이름이다. 여성의 권세는 치마바람이 되며 여성의 정열은 드셈, 여성의 비판은 건방짐, 여성의 노여움은 발끈함, 여성의 지적 욕구는 지적 허영심이 된다. 남성의 눈물은 눈물단지에 모실 만큼 장엄하지만 여성의 눈물은 약자의 교활한 무기일 뿐, 청승맞은 소금물이다. 남성의 정조는 전장의 깃발이던가? 찢겨질수록 영광이 되고, 여성의 정조는 쪽박이던가? 한 번 깨어지면 뒤란에 버려진 채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밟히는 사금파리...
어찌보면 이것은 여성의 피해의식이고, 카라는 그런 피해의식과 복수심, 극단적 자존심을 함께 가진 여성이다. 그것은 그녀의 불운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됐고 그녀가 태어나 자란 그 일족의 타락한 환경이 더욱 그것을 키웠고 아마 그 이전 그녀 자신의 핏속에도 그것은 저주처럼 맴돌고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그녀는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카라는 같은 여성에겐 사실은 관대한 편인데, 이와 대비해 남성에겐 무자비할 만큼 가혹하고 피를 불사한다. 현재로선 그게 그녀의 한계이고 정치가로서, 인간으로서의 대 약점이다. 카라는 또한 (몇 살인지도 알 수 없게 나오지만) 그녀 자신의 혈육에 의해 생산 기능을 망친 불모의 여인이다. 여성성으로서 취할 행복의 여지가 애초 그녀에게 없었고... 분출할 곳이 없는 모성, 사랑받지 못하는 자의 굶주림은 그녀를 더욱 공포의 어머니요, 인간애가 메마른 마녀로 몰아가고 있다.
나는 카라를 동정하진 않는다. 입장이 그렇구나 해서 가벼운 동정심을 갖다대기엔 그녀는 분명히 사악하고 몹시도 강하다. 나는 또한 카라를 부러워하거나 그녀를 통해 대리만족 따위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전혀 행복하지 않고, 그런 형태의 자기 성취란 조금도 아름다울 게 없다. 나는 다만-?을 ?에 대해?!- 노여워 하고 좀 슬퍼할 뿐이다.
아라가 그런 것처럼, 소서노가 그런 것처럼, 혹은 또 누군가들이 그런 것처럼, 카라 또한 우리들의 먼 옛날 어떤 자매, 어떤 딸들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역시 <불의 검> 5 권에 나와있는 작가의 코멘트다. 개인적으로 <불의 검>에서 카라만큼 회자되는 인물도 드물 거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판단이다. 마치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90 년대식으로 재해석 했을 때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놀부 같은 캐릭터여야 한다!!' 라는 주장이 나오던 것과 비슷한 관점으로 카라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카라의 존재를 두고, 일각에선 페미니스트이다. 혹은 악녀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이다.. 의견들이 분분하다. 허나 역시 그녀의 어머니(!!)인 김혜린의 이야기가 가장 정통하지 않았을까? 그녀를 페미니스트로, 혹은 악녀로 보는 우리의 시각을 뒤로 하고 그는 아픈 과거를 현재의 복수와 미래의 지배자의 모습으로 치환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단순히 그녀를 바라만 봐도 미워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불의 검>이 매력이 아닐까?
기타의 여자들...
<불의 검>에 등장하는 굵직굵직한 주인공급 여자 세 명 외에도 등장하는 여자들... <불의 검>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들은 전쟁의 한 가운데, 격동의 역사 한 가운데에서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이야기 한다. 아라는 풀꽃같은.. 아니 잡초같은 삶을, 소서노의 관조하며 아파하는 삶을, 카라의 도전하며 쟁취하는 삶을 우리는 봐왔다. 그러나 <불의 검>에는 이런 주도적인 여성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빼앗긴 남편의 정분 한 자락에 목숨 걸고, 남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비파녀의 삶도 있었고, 카르마키 야장귀족에게 몸을 팔아 영달을 구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아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곤지녀.. 그녀는 시대에 순응하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 역시 시대의 피해자인 것을... 그나마 <불의 검> 11 권 중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절우부의 공녀 해조녀를 만났을 때이다. 단순히 정치적 목적에 의해 절우부에서 푸른용부로 넘어간 정략결혼의 희생자 해조녀.. 그녀에게는 피난 시절 에벤키족의 젊은 수장 무타와의 연분이 있었다.
가라한 역시 수많은 여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뭐 그리 큰 허물은 아니라 하겠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만치 그녀의 과거지사는 그 정도 선에서 종결짓고, <바람의 나라>의 '이지' 와 같이 눈물과 회한의 한 시절로 마무리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가라한의 배려와 그녀의 용기가 버무려진 '이혼' 을 결심하게 된다. 그녀는 시대의 혼란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부족도, 오래비도 아닌 해조녀 스스로의 '행복' 을 찾기로 결심한 것이다. 가라한의 합법적인 방기... 아니 묵시적인 동조라 해야 하나? 여하튼 가라한과의 이심전심으로 그녀는 무타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에벤키족의 젊은 수장은 지금까지와의 김혜린식 결말이 아닌 좀 더 색다른 결말을 위한 '히든카드' 와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가라한과의 결의 형제는 12 권을 위한 포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나마 <불의 검> 중에서 가장 건전하고, 가장 순탄한 방식의 삶을 살아가려 하는 해조녀의 모습에 아파하고 괴로워 하며 절망 속에 신음을 토해내는 삶이 아닌 희망섞인 결말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인물의 탄생이라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김혜린이 지금까지 그려왔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행복에 근접한 여성상이 아니었을까?
뒷 이야기...
김혜린의 <불의 검>을 쓰면서 필자는 십여년 전 추억의 책장을 다시 넘겨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 [댕기]가 나오던 날 여고 근처 서점가로 달려가 큰 소리로 여동생이 이런 심부름 시킨다며 애써 변명하던 모습, 댕기네 책들이라는 단행본이 나왔을 때 눈에 젖을까 품안에 <불의 검>을 꼭 껴안고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달려오던 기억. 군에 있던 시절, [댕기]가 폐간되었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들고 멍했던 기억들... <불의 검>은 어찌 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키워드였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필자의 지인들이 내방에 꽂혀있는 4 종류의 <불의 검>을 가리키며, 돈이 썩어난다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할 때마다,
- 손대지 마라 가보로 남길 물건이다.
라며, 애장본과 댕기네 책들 단행본을 숨겨두던 기억(댕기네 책들 버전은 책상 뒤편 구석에 몰래 숨겨 놨다)... <불의 검>은 내게 있어서 그런 책이었다.
이제 그만 <불의 검>에 12 년간 목매단 독자들을 생각해 김혜린씨가 연재를 종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 작품을 12 년간 기다려 온 독자들... 물론 <유리가면>과 같은 작품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이 정도로 길게 끈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가 아닌가? 제발 2004 년에는 이 정도에서 종결되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기억에 남는 대사...
<불의 검> 총 11 권 중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를 꼽는다는 건 말 그대로 고문이다. 작가 김혜린의 엄청난 대사빨(!!) 앞에 무얼 고르고, 무얼 버려야 할지 고르라는 건 고문이다. 자의식의 과잉도, 이은혜식의 감성시 같은 느낌도 없고, 강경옥식의 끝없는 자아탐닉도 없다. 그녀의 글은 담백하며, 가슴 절절하게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독특한 그 무엇이 있는 글이다. 하물며 그녀의 대표작이며, 그녀가 불혹의 나이에 완숙미를 넘어서 농염함까지 보여주는 작품 안에서 고르라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다.
서설이 길었는데, 본 필자가 11 권을 읽고 또 읽는 와중에 가장 와닿았던 대사는 아라녀에게 '행복' 한 시간을 준 장면에서였다. 총 11 권에서 아라녀는 언제나 불행의 그늘에 짓눌려 살아야 했다. 이제 좀 그만 괴롭혀!! 라는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가운데, 드디어 가라한의 부인이 된 아라녀... 그리고 단목다루...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단목다루, 원수의 씨앗임을 알면서도 영웅 가라한에 의해 이름이 지어졌고, 영웅이기에 아무 탈 없이 인정받게 된 단목다루... 하지만 영웅도 사람인 것을... 전투의 와중에 잠시 잠깐 아라와의 짧은 밀회를 즐기던 10 권에서의 대사를 난 <불의 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말하고 싶다.
아라가 가라한의 요기거리를 챙기겠다며 부엌으로 간 순간 가라한은 단목다루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밖에서 듣게 된 아라녀는 가라한의 마음 한 자락을 보게 되고 눈물을 쏟아 낸다...
나를 잘 봐 두어라. 내가 네 아버지다. 너는 자라면서, 뒤에서 수근대는 소리들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상처 받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너한테 얘기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너의 목숨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애쓰고 피흘렸는지… 네가... 왜 자신을 귀중하게 여겨야만 하는지...! 그래... 너를 보며 가끔은 고통스러울 때도 있겠지. 나도 인간 남자니까... 하지만 부디 알아주렴, 널 미워해서가 아니다. 그저... 이것 저것이 아파서다.... 네 그걸 알 수 있는 그런 인간으로 자라다오. 너희가 덜 울어도 되게... 죽임 당하지 않고 예쁘게 살 수 있게... 나도 열심히 애쓸 테니까... 자아- 단목다루! 불러보아라. 아.버.지.
<불의 검> 11 권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대사이다. 고통스러울 때도 있겠지... 나도 인간 남자니까... 영웅에게도 인간의 얼굴이 있었고, 한 사람의 남자로서 당연히 괴로움으로 다가서는 존재이기도 한 내 아이가 아닌 '내 여자의 아이' 를 가라한은 그렇게 자신의 품안으로 보듬었다. 누군가 사랑은 노력하는 거라 했던가? 가라한은 남자로서의 본능마저도 이겨낼 사랑이 있었던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