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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다녀왔던던 곳이 부암동이죠
자하문 터널 공사로 없어진 거대한 바위에 풍혈(風穴ㆍ타포니)이 생겨 돌을 문질러서 붙으면 아들 낳는다는 전설의 바위로 인해 이 동네가 부암동이랍니다
附__붙을 부
岩__바위 암
___<백사실계곡>
북악팔경(北岳八景)중의 육각정 (1935년)
____<삼각산 현통사>
비 많이 오면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장관인데,
많이 아쉽지요
___<제월당(齊月堂>
月이 피곤하신가 누워계시죠
서산으로 넘어가는 달을 잘 보려면
몸을 수그려야 잘 보인답니다
재치가 만점.
___<세검정ㆍ洗劍亭>
1940년대 불에 탄 세검정을
1970년대 복원할때 참조한 겸재 정선이 부채에 그린 그림.
1623년 仁祖(능양군)가 광해군을 몰아내기 위해 그 부하들과 이 계곡에서 칼을 씻고 결의를 다졌다는 곳이 세검정(洗劍亭)이라고 전해져옵니다
저 너럭바위를 차일암(遮日巖)이랍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완성하고 나면 그 자료들을 깨끗한 이곳 계곡물에 씻어( =세초, 洗草) 바위에 말려서 종이를 재활용 했다고 합니다.
___1892년 조지서(造紙署ㆍ종이공장)
지금의 세검정 초등학교 근처.
종이공장 조지서(造紙署)
또한 이곳에서는 실록이 완성되면 집필에 참여한 관리들을 초대해서 잔치를(세초연,洗草宴) 베풀었다고도 합니다.
잔치 모습(세초연 洗草宴)
저 너럭바위의 깊은 역사, 재밌네요.
___<홍지문과 탕춘대성ㆍ蕩春臺城>
홍지문(=漢北門)과 오간수문,
오른쪽으로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성벽이 보입니다.
인왕산의 한양도성과 북한산의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홍제천의 홍지문.
가정에서 땔감으로 죄다 짜르고 뽑아갔으니
온통 민둥산입니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의 견고함에 비해 홍제천 이 부분이 적군 침입에 노출되어있어
숙종때 도성방어를 위한 城을 쌓고(西城_지금은 탕춘대성으로 명명) 홍지문과 오간수문을 건축했는데, 200년후인 1925년 올해부터 100년전 <을축대홍수>때 무너지고 떠내려가 완전소실된것을 1970년대 복원한 것입니다
을축대홍수때 몽땅 떠 내려가고,
그때 100년전 떠내려 간 북한산성의 행궁모습
지금은 그 터에 주춧돌만 남아있습니다.
100년전인 1925년
무서운 폭우가 내렸습니다.
홍지문에서 북한산쪽으로 연결된 탕춘대성(=西城)의 일부구간.
___<옥천암과 보도각>
태조 이성계와
흥선대원군이 子 낳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던 옥천암(玉川庵)
백불(白佛)__백의관세음보살
___<포방터 시장>
일산시장ㆍ금촌시장도 아니고
웬 포방터 시장___?
웬 대포___?
인조때 총융청과 수어청이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서 포 훈련을 하던곳 이라 하고,
6_25 한국전쟁 당시 퇴각하는 북괴군을 공격하기 위하여 포를 설치했던 곳이라 해서 이름이 붙여진 시장
아가들도 안 무서워 할 대포
누구 차가 전복됐을가
내 차는 분명 아닌디~~~
가게 샷다에도_앉아 쏴_!
이완용을 찜쪄먹을
친일의 숨은 대부 __ 윤덕영
이완용 땅의 두배인 윤덕영의 땅
조선 마지막 왕 순종의 부인인 순정효황후 윤씨의 큰아버지.
일제에 받은 은사금으로 프랑스에서 설계한 아방궁을 지어놓고 옥인동 땅의 반을 소유한 친일 역적.
벽수산장은 70년대 화재로 전소됐지만
그 일대 흔적은 지금도 여럿 남아있고 소실에게 지어준 대 저택은 서울시에서 사들여 보수공사중,
박노수 미술관은 윤덕영이 딸에게 지어준 집인데
종로구에서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중.
___<백사실 가다가 만난 그 집>
⬆️ 작년 이맘때
⬆️ 어제 (花이팅)
가시밭길도 꽃길이 되어줄 힘__당신
감사합니다__⚘️
(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