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 여러 강의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책임이 교회 안에서 친일 잔재청산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한국 교회가 친일파청산에서 간과한 것이 무엇인가.
일제하에서 신사참배를 했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 여러 변명을 하며 회개하지 않았다. 마땅히 '그때 본인들이 인간적으로 나약해서 넘어졌다'고 고백하고, 교회와 교우(敎友)에게 용서를 구한 뒤 자기의 거취를 분명히 해야 했다. 하지만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른 사람들은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한 죄를 회개하는 의미에서 적어도 3개월 동안 설교도 하지 않고 자숙하며, 3개월 후 교회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제안했다. 이 정도가 최소한의 제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제안을 거부했다. 그들은 오히려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신사참배를 했다며 자기변명에 열을 올렸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은 셈이다.
일제 강점기 말, 한국 교회의 친일행위는 신사참배로 집약될 수 있다. 신사참배 후 교회에 가미다나(神棚, かみだな) 같은 신단(神壇)을 만들어 숭배하기도 하고, 교회 종을 헌납하기도 했으며, 급기야는 국방헌금을 강요하기도 했다. 당시 교회의 타락을 이해하기 전에는 해방 후 옥에서 나온 사람들이 왜 그렇게 철저하게 회개운동을 외쳤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해방 이후 신사참배 반대투쟁을 한 사람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생겨난 교단이 '고려파'다. 옥에서 나온 성도를 중심으로 한국 교회 개혁을 외치다 기득권 세력에서 밀려나 세워진 교단이다. 그들이 세운 학교가 부산의 고려신학교다.)
만약 당시 교회가 내부의 친일문제를 제대로 정리했다면, 어떤 효과가 있었겠나. 종교의 영적 힘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본다. 교회가 사회를 향해 "우리가 이렇게 친일잔재를 청산했으니 우리 사회도 친일잔재를 청산합시다!"라고 외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친일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향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됐다. 해방 정국에서 교회가 예언자로서 친일청산을 외쳤어야 하데, 외칠 영적 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 오늘날 기독교가 심하게는 '개독교'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신앙인으로, 역사학자로 기독교의 변천사를 지켜본 입장에서 안타까운 심정일 것 같다.
친일 행위로 기득권을 잡은 세력은 이후에도 '교회를 이렇게 이끌어가도 되는 구나'라며 교회 이권화(利權化) 작업을 계속했다. 개혁의 목소리, 소수의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없어져 버렸다. 거기에 교회를 키우기 위해서 온갖 세속적 방법을 동원했다. 이런 문제 모두가 꼭 친일잔재 청산과 관련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회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큰 책임이 있다. 신사참배를 회개하고, 바른 목회 활동에 나선 사람들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해방 후 특히 한국 교회가 양적 성장을 추구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터져 나왔다. 그것이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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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사참배 동벙요배를 햇고 그렇게 가르친 사람들은 지금가지 회개하지 않앗다. 이건 사실이다.
그들이 천국에??? 그리고 그들에게 잘못가르침받고 잘못신앙생활한사람도 마찬가지..그결과는?
한국이 그래서 이모양 이고라지인것이다. 그런데 교회개혁은 가망이 없는것 같다. 안타까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