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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만든 규칙을 처음부터 어기느냐는 것이었죠. 저는 당시 모 대학교의 연구원으로 근무중이었는데 출근 도중 이 해프닝에 대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충격이었던 것은 한 학생의 말이었는데요. 그 말을 정확히 옮기면,
"씨X, 한국사람들 정 존X 싫어" 였습니다.
사회적 약속을 깨고 그들만의 기득권을 연장해 가는 한국의 병폐가 바로 정(情)이라는 게 그 학생의 인식이었던 듯합니다. 가슴 아프긴 하지만 정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들 중에는 부정적인 면들도 적지 않습니다.
정을 나눈다는 명목으로 오갔던 수많은 뇌물들, 일단 받고 나면 입을 씻기 곤란한 그 관계 속에서 한국사회의 부정과 부패는 몸통을 키워왔을 것입니다. 이런 면들은 우리가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갈 문제입니다.
이렇듯 정에 대한 문화적 맥락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것이 진짜 정이냐를 따지는 것은 정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쯤에서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정을 한국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정이라는 감정의 '방향'에 있습니다. 제 지난 글('이 글을 쓴 사람의 글' -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적 차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6)에 보시면, 한국인들은 우세한 주체성 자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기 자신을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로 보는 것이죠.
따라서 친밀한 관계에서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도 자신으로부터 상대방에게 표출되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는 중국학생들에게 '한국에 와서 가장 한국적이라고 느꼈던 것이 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한 학생이 한국에 와서 어떤 하숙집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이사 온 첫날부터 주인 아주머니는 '고향이 어디냐, 부모님 뭐하시냐, 형제가 어떻게 되냐, 생일은 언제냐' 등등 여러 가지를 꼬치꼬치 캐묻더랍니다. 집단주의 문화로 분류되지만 꽤나 개인적인 중국인인 이 학생은 처음 만난 사람이 개인사를 묻는 것이 불편했다는군요.
그렇게 얼마를 살다가 어느 날 아침 아침밥을 먹으러 나갔는데 식탁에 미역국과 작은 케익이 올라와 있더라는 겁니다. 영문을 몰랐던 학생이 이게 웬 거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오늘이 네 생일이라 준비했다"며 생일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답니다.
만리타향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생일상을 받은 이 학생은 감동했고 '이것이 한국인의 정이구나'라고 느꼈다는 이야긴데요. 여러분이 주목하실 점은 하숙집 아주머니의 행동입니다. 아주머니는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 학생의 생일을 챙겨준 것일까요?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아주머니의 주관적 판단 때문입니다. 아주머니는 중국 유학생이 자신의 하숙집으로 들어온 순간 그 학생을 매우 친밀한 관계로 인식했으며, 고향과 이름, 나이 등을 물어보면서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타국에 딸을 보내고 생일에 따뜻한 밥도 못 챙겨줄 중국 부모님의 심정을 떠올리며 그녀의 생일상을 차려준 것이죠.
이 주관성이야말로 정(情)의 한국적 성격입니다.
자신이 인식하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그리고 자신이 상대방에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우선하는 친밀하고 따뜻한 감정이 정입니다. 국민과자 초코파이의 광고카피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인 것은 정의 주관성을 강조합니다.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안다고'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이 주관성은 한국인 심리의 핵심적인 특징입니다. 그리고 주관성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한국적인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정(情)의 경우에서만 예를 들어도 많은 사례가 있지요.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오랜만에 온 손주가 예쁘고 반가워서 뭘 그렇게 챙겨주십니다. 고봉밥에 국에 전에 고기에 나물에.. 배가 터지게 먹고나면 할머니는 과일, 떡, 약과, 수정과 등을 계속 내오십니다. 이쯤되면 손주 배를 터뜨리실 작정 같습니다. 더 못 먹겠다고 손사래를 쳐도 할머니의 손주사랑은 그칠 줄 모르죠.
클로이도 한국사람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정입니다. 손주의 의견이나 상태보다는 주고 싶은 당신 마음이 앞서는 것.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는 쪽으로 동기화된 마음인 것이죠. 명절이 끝난 후, 할머니는 아마 돌아가는 손주의 가방에 남은 전이며 참기름이며 과일 등을 바리바리 챙겨주셨을 겁니다. 손주의 의지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이런 속성 때문에, 정은 때때로 지나친 참견이나 오지랖, 사생활 침해 등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정을 받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정을 주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가 오히려 야속한 상황입니다.
최근, 한국은 예로부터 지속되어 오던 모든 일들이 변화하는 시간의 물결 속에서 그 의미를 달리해가고 있습니다. 정과 정을 주고받는 방식도 마찬가지겠지요. 문화는 당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필요에 의해 변화합니다. 참견과 오지랖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전에 사람들과의 관계의 질 자체가 이미 달라지고 있겠지요.
그러나 점차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서 한국인들의 정(情)은 대단한 심리적 자원입니다. 세상이 달라지면서 서로의 정을 의심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 서로 더 조심하고 신경써야 할 부분도 늘어났겠지만 모쪼록 정(情)과 이상적인 관계 사이에서 지혜로운 접점이 발견되기를 바래봅니다.
댓글
이재국
정ㅡ도 좋지만,
공적인 일은 이성ㅡ이 우선되어야죠.
한국인의 정ㅡ은 권력으로 핍박받은 민중들의 역지사지의 감정이라고 봅니다.
학연, 지연, 등의 끼리끼리 챙겨주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우리사회 시스템이 그 만큼 후진적이다 ㅡ에 저는 한 표를 던지고 싶네요.
한민
정은 이성과 댜른 차원의 감정이 아닙니다. 문화에는 양면성이 있고 생각하시는 건 자유입니다만 결국 문화가 후진적이라는 결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