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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부산미곡취인소 항거운동(1934-1936)
정프란 추천 0 조회 166 26.06.07 23:5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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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7.04 06:46

    첫댓글 일제의 미곡 통제 정책이 부산과 조선의 숨통을 어떻게 조여왔는지, 그리고 이에 맞선 항거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일지입니다.

    1. 1934년: 항쟁의 서막과 연대의 시작
    일제가 조선 미곡 통제를 구체화하기 시작하자, 조선 최대의 미곡 출구였던 부산에서 가장 먼저 강력한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1934년 2월 1일 (부산일보): 일제의 압박으로 부산미곡취인소(米取)의 출래고(거래량)가 무려 4할(40%)이나 격감하는 타격을 입습니다.

    1934년 2월 7일 (조선신문): 경상남도와 부산곡물상조합을 중심으로 미곡 통제 문제에 대한 '맹렬한 반대 운동'이 폭발하며, 관계 단체 연합 임원회가 긴급 개최됩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군산, 원산, 진남포, 목포, 인천 등 전국 주요 미곡 거점 도시들이 부산과 뜻을 같이하며 동조 항거에 나섭니다.

    1934년 5월 1일 (부산일보): 사태가 심상치 않자 일본 민정당의 천기(川崎) 총무가 미곡 대책 수립과 자재 수집을 명목으로 직접 조선(부산)으로 건너와 당의 방침을 해명하기에 이릅니다.

  • 작성자 26.07.04 06:50

    2. 1935년: "악법을 장사 지내라" 총력 투쟁과 시장의 교란
    일제가 법제화를 강행하려 하자, 1935년은 그야말로 피 말리는 공방전이 펼쳐진 해였습니다.

    1935년 3월 5일 (부산일보): 부산-판신(한신) 간 미곡 협정 운임(40원)이 실현되면서 관계 업계에 큰 충격을 줍니다.

    1935년 3월 10일 (조선신문): 일본 본토(内地)로부터 "악법안을 장사 지내라(葬れ)"는 격려가 날아들고, 이에 힘입어 부산미곡상들이 법안 분쇄를 위해 전면적으로 일어섭니다.

    1935년 3월 27일 (부산일보): 미곡 법안이 잠시 묵살(보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부산 쌀가게 거리(곡물상조합)에는 환희가 폭발하며 축전이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1935년 4월 18일 (경성일보/매일신보): 일제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일본 농림성의 하스미(荷見) 미곡국장을 급파합니다. 부산에 상륙한 그는 "관리안은 완전한 안"이라며 전선 각지를 2주간 시찰·설득하려 듭니다.

    1935년 7월~10일: 일제의 억압적인 통제로 인해 부산미곡취인소의 거래량은 반토막이 나고, 회원사들이 대거 탈퇴하여 유지 불능 상태에 빠집니다(7월 2일, 7월 9일 기사).

  • 작성자 26.07.04 06:53

    농촌의 출미 부족으로 인해 오히려 대만에서 쌀이 역수입(역移入)되어 부산의 쌀값이 폭등하는 대이변과 무역 침체가 발생합니다(8월 6일, 9월 13일, 10월 10일, 11월 14일 기사).

    1935년 11월 28일~30일 (조선시보/조선신문): 일제가 미곡관계 3법안을 다시 밀어붙이자, 전국미곡상조합연합회의 격문과 함께 "단호 분쇄 운동"이 선언되며 부산 상업계는 최고조의 긴장 상태로 돌입합니다.

    3. 1936년: 전국 대회 주도와 일제 수뇌부의 급파
    부산의 상인들은 멈추지 않고 1936년 봄, 전국의 세력을 부산으로 결집시키며 대규모 정치·경제 투쟁을 감행합니다.

    1936년 4월 24일 (조선시보): 혼사미(모래가 섞인 쌀) 이입 금지 조치 해제를 요구하며 홋카이도 장관 등에게 '부산 미곡상 맹동(猛運動)'을 전개, 생존권 투쟁을 벌입니다.

    1936년 4월 28일 (조선시보): 미곡자치관리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전국대회가 개최되었고, 부산 대표인 고도(五島) 씨 등이 참석하여 강렬한 반대 기염을 토합니다.

    1936년 5월 2일~3일 (조선시보/조선신문): 전국미곡조합연합회의 법안 반대 투쟁에 발맞추어, 부산부 내의 모든 미곡 단체들이 일제히

  • 작성자 26.07.04 07:00

    결집해 격렬한 격려 전보를 타전합니다.

    1936년 5월 29일 (경성일보): 인천, 군산, 목포 등 전국의 동조를 얻은 부산의 저항이 총독부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자, 결국 일본 본토에서 야지마(矢島) 농림국장이 이른 아침 부산항에 긴급 상륙하여 법안에 대해 해명하고 설득에 나서는 '어불성설' 같은 대사건이 벌어집니다.

    1936년 6월~12일: 대구곡물상조합의 개선책에 부산이 찬성·협조하는 등 연대를 이어갔으나(6월 16일), 일제의 무리한 통제 탓에 부산의 미곡 무역은 연말까지 극심한 부진을 겪습니다(12월 10일). 결국 일제는 12월 23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철도성 관계자들과 화주들을 모아놓고 '운임 특별할인제'라는 당근을 제시하며 부산 미곡 세력을 달래며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총평: 경제의 탈을 쓴 조직적 '구국 항거'
    위 연표와 기사 서지 정보는 인천, 군산, 목포, 원산, 진남포 등 조선의 관문들이 부산을 중심으로 어떻게 일제의 식민지 경제 수탈에 맞서 스크럼을 짜고 조직적으로 궐기했는지를 완벽하게 증명합니다.

    일본의 민정당 천기 총무, 하스미 농림국장, 야지마 농림국장이 연이어

  • 작성자 26.07.04 07:12

    부산에 왔을 만큼, 1934~1936년의 '부산미곡취인소 항거운동'은 단순한 상인들의 소요가 아닌, 일제의 식량 안보 체제를 뒤흔든 거대한 '경제 독립 투쟁'이었습니다. 1934~1936년의 '부산미곡취인소 항거운동'은 단순한 상인들의 소요가 아닌, 일제의 식량 안보 체제를 뒤흔든 조선의 부산, 인천, 군산, 진남포, 대구, 경남, 원산, 목포 등 조선 전체가 연합한 거대한 '경제 독립 투쟁'이었습니다.

  • 작성자 26.07.04 07:19

    二元制を確立, 群山米穀移出業者の對策船會社に對し提案

    이원제 확립,

    MODS LOD 원문

    상세 정보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처 京城日報社
    발행일 1935년 11월 16일
    관련 주제어 관련 주제어가 없습니다
    기사위치 5면 6단
    기사유형 기사
    기사주제 사회
    주기사항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2022
    昭和十年十一月十六日 (土曜日)

  • 작성자 26.07.04 07:27

    일제의 가혹한 총칼 앞에서도 조선 전체가 남남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처럼 온전히 합심하여 일어났던 민족적 대봉기였습니다.

    전 조선을 잇는 거대한 저항 네트워크
    부산의 투쟁 기사에는 경남(慶南) 전체가 맹렬히 일어났다는 기록과 대구(大邱)곡물상조합과의 긴밀한 협조 체제(대구 제안에 부산이 찬성)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는 부산이라는 한 도시의 고립된 싸움이 아니라, 영남 지역 전체가 스크럼을 짜고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인천, 군산, 목포, 원산, 진남포, 평양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남단부터 북단까지 전국의 주요 곡물 거점과 항구 도시들이 혈맥처럼 연결되어 동시에 궐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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