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보문학> 수필방에 '곡간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초포 황규환 님의 수필이 올랐다.
- 나한테는 엄청나게 많은 글감이 떠오르기 시작.
나는 위 글에서 '곡간'이란 단어를 보았다.
서해안 산골마을 농가에서 자랐던 나한테는 '곡간('穀間)이란 말은 귀에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그런 말을 쓰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가난한 산골마을이었기에 논은 다랑이논이었다. 큰 부자가 없고 가난한 집이 대부분이었다.
인터넷 어학사전 등으로 검색해서 '곡간'의 뜻을 명확하게 알고자 한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곡간, 곳간 차이'에 관한 글이 떴다.
곡간(穀間) : 곡식을 넣어 보관해 두는 곳간
곳간 : 식량이나 물건 따위를 간직해 보관하는 곳
용어를 알려고 여기에 옮긴 뒤에 내용을 대폭 삭감하고 있다.
더 축약하고 삭제해야 할 터(남의 글이기에....)
곡물을 비롯한 각종 물건을 넣어두는 방 또는 집을 일컫는 ‘곳간’이 있다.
다른 말로는 ‘광, ’고방‘이며, 따로 독립하여 있는 경우에는 '곳집, 곳간채'라 부른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는 “집집마다 작은 창고가 있는데, 그것을 부경이라고 한다”.
‘부경’이 곳간과 같은 것으로 문헌상으로는 처음 나온다.
‘북사 北史’ 백제전 직관조와 ‘삼국사기’ 신라 직관조에 나오는 ‘경부’도 역시 곳간을 말한다.
집의 일부(주로 행랑채)를 칸막이해서 곳간으로 쓰거나 독립된 건물을 마당의 적당한 곳에 세운다.
물건에 따라 창고·곡간·찬광(반찬이나 반찬거리를 넣어 두는 광)·골방·서고로 나눈다.
문짝이 없는 광인 ‘헛간’은 따로 독립된 건물을 이루나 보통은 행랑채나 안채의 일부로 부속된다.
행랑채에 부속된 헛간은 가마·수레 따위를 놓아두거나 작업용 기물을 두는 방으로 쓰이며, 안채에 부속된 것은 곡물창고로 쓰인다.
'곡간'은 보통 나락을 가마니 따위에 포장한 채로 보관하는 큰 건물이다.
'곳간'에는 마루를 깔고 세간을 보관할 수 있도록 선반과 시렁을 설치한다.
'곡간'은 그런 시설을 만들지 않으며, 곡간의 크기는 그 집안의 규모를 짐작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의 곡간은 800석을 저장한다.
////////////////////
보완 예정....
1957년도에 초가를 부순 뒤에 함석집을 새로 지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을 터.
내 시골집에는 여러 광이 있었다. '볏광, 헛광, 안광, 작은 창고간' 등이 있었다.
'볏광'에는 오로지 벼를 저장했다.
-볏광 바닥은 판자이며, 오로지 벼를 쏟아부어서 쟁였다. 벼 백 가마니가 들어갈 크기.
볏광 곁에는 외양간이 있어서 소를 키웠다.
안채 헛광은 부엌살림 가운데 별로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저장했다.
안광은 부엌살림 살림을 저장했다. 즉시 꺼낼 수 있는 물품이다.
부엌 곁에 붙은 작은 창고에는 술단지, 막걸리 단지, 쌀단지 등을 보관했다. 규모가 작았다.
바깥마당에는 큰 광이 두 칸이 있었다. 쟁기, 풍구 등 엄청나게 큰 농기구를 보관하며,
작은 광에는 농기구 등을 보관했다.
돼지우리간도 있었고, 재를 저장하는 잿간, 일꾼들의 변소깐도 겻들였다.
이들은 나중에 헐었다. 작은 창고로 개조했다.
일꾼도 떠났고, 돼지와 소를 더 이상 키우지도 않았다.
기름보일러를 설치한 뒤로는 나무 연료를 사용하지 않기에 잿간도 필요없었다.
부순 뒤에는 바깥창고를 지었다.
큰대문, 작은대문, 중문(소가 들락거리는 문).
안채, 일꾼사랑채(안사랑방, 일꾼사랑방은 따로 있고)가 있고,
글감이다.
1956년의 시골 초가, 1957년의 함석집 등으로 변화했다.
위 글 대폭 수정 예정.
자료 수집 중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