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토모 그룹(SUMITOMO GROUP)
미쓰비시, 미쓰이와 더불어 일본 전전을 이끌었던 3대 재벌 기업 집단 중 하나이다. 다른 재벌과 같이 2차대전 후 해체되었으나, 이후 스미토모은행, 스미토모금속 등을 중심으로 중역 모임이 구성되어 현재에 이른다. 업종 구성상 소비재가 적어 셋 중에 가장 대외 인지도가 낮지만, 생각지도 못한 기업들이 속해있는 경우가 많다.
20세기말 불황에 따른 재계 재편에서는 스미토모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미토모은행, 스미토모금속 등 주요 계열사가 인수합병에 휘말리기도 했다. 묘하게 금융 계열사 다수가 미쓰이 계열 기업과 합병한 게 특징이다.
로고는 우물을 형상화한 CI로 스미토모 이름이 붙지 않은 기업은 기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창업자는 스미토모 마사토모로 에치젠 출신이며 원래 승려였으나 직업에 큰 애정을 가지지 않았던 스미토모는 1630년대 교토의 한 사찰에 책과 약을 파는 상점 후지야(富士屋)를 세우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스미토모 가문은 오사카로 본거지를 옮기고 구리 제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제련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에도시대(1603~1867) 일본의 제련 사업을 사실상 독점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한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1868~1912) 초반까지 직접 구리광산 개발을 하여 관련 사업들을 키우며 성장하기 시작하며 기업의 틀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재벌과 마찬가지로 GHQ의 재벌 해체 정책에 의거해서 1946년 1월에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후 1949년 거꾸로 다른 재벌보다도 빠르게 비공개 사장 모임 백수회(白水会, はくすいかい 하쿠스이카이)를 결성해 재결집에 들어갔다. 1951년 4월 공식적으로 발족했으며 전전 마지막 스미토모합자회사 총이사 후루타 슌노스케, 스미토모 상사의 토우지 슌야, 스미토모화학공업의 도이 마사하루를 주축으로 재결집했다.
일본의 기업집단이 대체로 그렇듯 엄밀하게 범위가 규정되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스미토모그룹 홍보위원회 (33개사) 및 사장회인 학스이카이 (19개사) 소속 회사와 그 자회사 그룹을 계열사로 친다. 학스이카이 소속사는 모두 홍보위원회에도 들어 있다. 이들 기업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스미토모 집안의 경영철학인 ‘스미토모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공통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 회사도 일본 3대 기업 가운데 하나인 만큼 군수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데, 어딘가가 문제가 있다. 산하의 코마츠 제작소에서 만들어진 82식 장갑차는 조종성 문제와 정비하기 불편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으며 최근 스미토모 중공업에서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62식 기관총, FN 미니미, 74식 차체기관총을 제조할때 문제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처벌은 5개월 간 방위산업체 지정정지와 62,474,916엔(한화로 약 6.2억)내고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