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4)
공칠이 서울에 혼자 가서 일년 동안 재수생활을 한 것은 정말 혼돈상태였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정육점과 식당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었지만, 공칠에게는 매우 인색했다.
공칠 아버지의 인생관이 그랬기 때문이다. 자식이 돈가치를 모르고 제멋대로 쓰면 나중에 나이 들어 반드시 망하고 고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공칠에게 꼭 필요한 돈만 보내주었다.
그 흔한 신용카드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싸구려 고시원에서 생활하도록 했고, 용돈은 아주 적게 주었다. 공칠은 아버지의 생활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소를 많이 죽이면서 벌고 있는 돈을 아끼지 않고, 흥청망청 쓴다면 소들이 언젠가는 무자비한 복수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상하게 공칠은 꿈에 소를 많이 보았다. 꿈에서 소들은 아주 무서운 형상으로 공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떤 소들은 스페인 같은 곳에서 싸움터로 나가기 직전에 몸을 풀고 있다가 공칠을 무섭게 째려보았다.
어떤 소는 투우장에서 상대 투사가 공칠로 생각하고 반드시 공칠을 뿔로 쳐서 짓밟아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다. 공칠은 강제로 붙잡혀가서 그 소와 투우장에서 싸워야했다.
경기장에서 주는 붉은 천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었다. 공칠이 받아서 가지고 나가는 붉은 천은 소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천의 빨간 색 때문에 오히려 공칠은 벌벌 떨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고 나가자마자 소와 싸우기도 전에 그 천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천속에는 무슨 피인지 가득 들어있었다.
공칠은 벌벌 떨면서 소와 마주섰다. 소의 눈은 공칠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공칠도 하는 수 없었다. 소를 노려보았다. 왜 자신이 소와 싸워야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공칠은 아버지와 스페인여행을 간 것이었다.
그것도 꿈속에서 생전 처음 아버지와 해외여행을 간 것인데, 공칠은 스페인에 간다는 아버지의 말에 자신은 절대로 스페인에 가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스페인에 가서 반드시 투우장에 가서 소와 사람이 싸우는 경기를 구경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래야 아버지가 경영하는 정육점과 정육식당이 불처럼 번창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꿈속에서 스페인을 가게 된 것인데, 단체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44명이었는데, 그중 아버지와 공칠을 빼고는 나머지 42명은 모두 여자관광객이었다.
아버지와 공칠은 아주 새하얀 옷을 입었는데, 여자관광객 42명은 모두 아주 빨간 옷으로 통일해서 입고 있었다. 핸드백과 하이힐까지 모두 붉은 색이었다. 심지어 여자들이 사용하는 손수건도 붉은 천으로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칠은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스페인에 입국심사를 할 때 공칠은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여자들은 모두 소띠였다.
12살 차이, 24살 차이, 36살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소띠에 해당하는 것을 알았다. 공칠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공칠이 스페인 남자들에게 붙잡혀서 투우장에 투우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호텔에서 자고 있었다. 같이 간 42명의 여자들은 경기장에 같이 갔는데, 경기장에 들어서자 모두 얼굴이 소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공칠과 소가 싸움을 시작했을 때, 그 여자들은 모두 소를 응원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의 언어로 소를 응원하고 있었다. “으으으매에매, 으음, 음매음매매, 음음!!!‘ 그것은 소들이 몇만년전부터 사용해오던 전세계 공통의 소의 언어였다.
그 뜻은, ‘저 놈을 죽여라. 저 나쁜 악마를, 저 놈을 무자비하게 죽여라. 저 나쁜 우리의 적을 없애라.’ 이런 의미였다. 공칠은 경기장에서 누군가 확성기로 소의 언어를 한국말로 통역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경기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투우사와 소가 하는 말, 그리고 투우사를 응원하는 팀과 소를 응원하는 팀의 말을 공평하게 국제통역이 통역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중석에서 공칠을 응원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소가 이기고 공칠이 패배하여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공칠은 배수진을 쳤다.
이곳에서 약하게 마음 먹으면 자신은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열심히 배우고 익힌 무술을 떠올렸다. 태권도와 권투였다. 공칠은 5분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집어던졌다.
그 칼을 같이 간 여자관광객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행해 세게 던졌다. 그 칼은 순간 아주 샛빨간 색으로 변한 다음 창공을 몇 바퀴 세게 돌았다.
그리고 그 여자관광객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칼 혼자 여자들은 찌르고 베고 있었다. 여자들은 소의 언어로 난리를 치고 있었다. 공칠은 경기를 하다 말고 칼이 죽음의 광란을 벌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칼은 다시 창공으로 치솟더니 경기장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자들이 모두 죽었는 줄 알았는데, 칼이 사라지자 그 여자들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두 말짱한 상태로 더욱 흥분하여 공칠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공칠은 칼을 버린 상태에서 들고 있던 붉은 유인천도 땅에 버리고 맨주먹으로 소와 격투를 벌였다. 태권도 발차기와 주먹치기, 이단점프 발차기, 뒤돌려차기로 소를 괴롭혔다.
소는 스페인 소라 그런지 대한민국의 태권도 실력 앞에서 맥을 못추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공칠의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태권도복에 매고 있는 검은 띠 앞에서 소는 심한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칠은 오른 주먹으로 소의 심장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소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군중들이 공칠을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공칠은 무서워서 경기장을 도망쳐 빠져나왔다.
묵고 있던 호텔로 뛰어갔다. 호텔 앞에 이르자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공칠과 싸우다가 죽은 소를 싼값에 사왔다고 좋아하면서 그 소를 한국으로 가지고 가서 비싸게 팔려고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