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없다면 자유로워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지식의 동지가 서로 격려하고 촉발하며 절차탁마해야 신심이 성장한다.
더욱이 야마모토 신이치(이케다 선생님)는 학회의 모든 회합이 깨끗한 '물 같은 신심'을 관철
하기 위한 중요한 장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서 간부의 자세에 관해 말했다. 왜냐하면
모든 참석자에게 간부가 지녀야 할 올바른 모습을 밝혀서 에히메에 모범적인 조직을 구축
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회원 여러분은 학회 회합에 늦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장 일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아무래도 제시간에 오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간부는 그러한 분의 사정도 고려하지 않고, 엄하게 주의를 주거나 감정적으로 꾸짖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늦게라도 회합에 달려온 그 진지한 행동과 신심의 모습을
최대로 칭찬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이치는 간부가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공사 구분에 관해 말했다.
"간부 여러분은, 동지라고 해서 후배의 사적인 일까지 깊숙이 개입하거나, 생활상 문제 등에
관여하지 않도록 유의해서 신심 지도에 전념하기 바랍니다. 또 간부라는 위치를 이용해
후배를 개인적인 용건으로 부리면 안 됩니다. 그러한 풍조가 있으면, 본디 성장해야 할
소중한 인재가 불신을 일으키게 되고 그러면 성장의 싹을 잘라버리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광포 제2장의 '지부제'가 새롭게 시작하는 때다. 신이치는 모두가 미래를 향해 상쾌하게
출발할 수 있도록, 궁금해 할만한 일을 모두 말해 두고 싶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지구나 지부에서 협의하면, 여러가지 의견이 나와 대립할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신이치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의견이 다른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고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학회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인간공화를 형성하고 있습
니다. 남녀노소가 있어 세대도 다릅니다. 직업도 다릅니다. 성장 과정도 다릅니다.
출신지조차 다릅니다. 그런데도 모두가 의견이 똑같다면 오히려 무섭지 않겠습니까!"
웃음이 일었다. "그러나 신심을 근본으로 '광선유포를 위해'라는 큰 목적에 되돌아간다면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활동을 추진하는 방안을 놓고 다소 의견이
달라도, 서로 상대를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습니다. 자주 사회 조직에서는 방법론을 놓고
의견이 엇갈려 서로 미워하고 분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심을 근본으로
한다면 그것을 타고 넘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체동심으로 단결하는 학회의 강함입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되거나 서로 미워한다면, 그것은 생명이 마(魔)에게
파괴된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으면 바로 어본존이라는 신심의 원점으로 되돌아
갑시다!"
장내를 둘러보던 신이치는 어제 간담한 부인부원에게 눈길을 멈췄다.
"제가 홍교하고 입회시킨 멤버가 퇴전해버려서 정말로 속상합니다" 하고 말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 문제도 꼭 말해 두자고 생각했다. "학회에는 실로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퇴전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왜냐하면 말법에 정법을 끝까지 신수하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성인은 '수행의 가지를 잘리고 구부러뜨려지는 것은 의심이 없느니라' (어서 1136쪽)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 다쓰노구치 법난 뒤에 사도유죄에 처해졌을 때에는 '천중 구백구십구인이
퇴전했는데' (어서 907쪽) 하고 말씀하셨듯이 많은 문하가 퇴전했습니다."
자신이 홍교한 사람을 인재로 키우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돌보아도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신이치는, 한 사람을 제 몫을 하는 신앙자로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홍교한 상대가 퇴전했다고 해서 자신을 책망하고 괴로워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싶었다. "힘껏 애쓰며 정성을 다했지만, 그래도 퇴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홍교한 연고자의 책임이 아닙니다. 가령 열심히 다리를 만든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다리를 건너면 행복에 이른다고 알려주는데도 건너다 말고 도중에 돌아가 버린다면,
그것은 건너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나쁜 것입니다. 본인 자신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러한 일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의 사자로서 해야 할 사명을 완수
하려고 고생하며 절복한 사실은, 생명에 영원히 새겨져 공덕의 꽃을 피웁니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궤도는 틀림없이 열려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것을 강하게 확신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상쾌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홍교에 매진해주십시오."
광선유포를 목표로 활기차게 활동하는 벗이, 마음의 짐을 없애고 즐겁게 난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격려가 있다.
"끝으로 사랑하는 소중한 에히메 여러분을 기려 시를 선사하고 인사로 대신하겠습니다.
성불하는
행복의 길이 있다
묘법(妙法)의
천리나 되는 산도
공덕이라 여기고 자, 나아가라"
그러고 나서 신이치는 "여러분이 기뻐하신다면" 하고 피아노로 몇곡을 연주했다.
또 행사진행요원과 뜰로 나가 기념촬영을 한 뒤, 출발 직전까지 동지를 격려하고 오후 1시
50분, 에히메회관을 뒤로했다.
신이치는 마쓰야마역에서 오후 2시 23분에 출발하는 요산본선(현재의 요산선) 특급 '시오카제
2호'를 타고 가가와현 다카마쓰로 갔다. 차창에는 구름이 낀 하늘 아래 조용한 세토 앞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짙은 녹음으로 물든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자, 다음은 가가와다!' 신이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생각했다.
'인생은 한권의 노트와 같다. 하루하루 노트를 넘기면 새하얀 공백이 새로 펼쳐진다.
그곳에 대서사시를, 있는 힘껏 써 내려가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 사람에게,
저 사람에게 격려의 말을 건넨다. 어깨를 두드리고 감싸 안으며, 그 가슴에 생명의 공명음을
울리게 한다. 행복의 길을 가리키고, 함께 걷는다. 그것이 광선유포다!
그것이 내 인생이다!' 동시에 신이치는 광포 제2장의 '지부제' 발족이라는 때를 계기로,
모든 동지가 새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 노트에 함께 승리의 대서사시를 쓰기를 바랐다.
신이치는 저도 모르게 사랑하는 모든 법우(法友)들에게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보고 있습니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약하다면 강해지면 됩니다. 겁쟁이라면 용감해지면
됩니다. 알몸 그대로, 지금 모습 그대로의 자신이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법기(法旗)를 들고
엄연히 일어서기에, 무엇보다도 존귀하고 공감이 크게 넓혀집니다. 고난은 드라마의 시작
입니다. 망설임은 도전을 향한 첫 단계입니다. 고투는 감동을 낳기 위해 있습니다.
가슴을 펴고 팔을 흔들며,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때는 지금입니다!'
신이치의 눈에, 사명의 법기를 휘날리며 광포 제2장의 결전장으로 달려가는 사자(師子)들의
용감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이 도다 조세이가 읊은 시를 떠올렸다.
깃발 들고
앞장서라는
가르침을
유사시에
꿈엔들 잊지 마라
<제26권 제2장 '법기' 끝>
용장 1
매서운 겨울 하늘에 웃음 짓는 별들이 아름다웠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리는 어둠의 장막이 내린 바다에는 띄엄띄엄 배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1978년 1월 19일 오후 5시가 넘어, 신이치는 다카마쓰역에서 차로 갈아타고 가가와현 아지초에
개원한 시코쿠연수원으로 갔다. 연수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지만, 그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뜰에 섰다. "좋은 곳이군요……." 신이치가 시코쿠총합장인 모리카와 가즈
마사에게 말했다. "예, 날이 밝으면 왼편으로 겐페이 야시마 전투의 무대인 야시마도 보입니다.
또 이 부근은 '후나카쿠시'라고도 하는데, 곶(串) 뒤편이라 잘 보이지 않아 헤이시(平氏)가
많은 배를 숨긴 곳이라고 합니다." "아, 야시마 전투요. 용장 미나모토노 요리쓰네의 용기와
영지가 빛난 싸움이었지요. 무사에서 고관 귀족인 공경(公卿)이 되어 '헤이케(平家)'라 자칭
하고 '헤이케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권세를 누리던 헤이시가, 마지막에는
멸망하고 맙니다. 그때의 사람들 대부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교만한 헤이시는 오래 가지 못한다'였지요. 헤이시가 패배한 근본 요인은, 민중의
마음을 잊어버린 교만과 방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세를 손에 넣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이기적이고 사치스러워져, 민중의 고통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때에 인심이 떠나고,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실은 그곳에 만심이라는 함정이
있습니다." 모리카와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먼 옛날 일이 아니라 모든 것에 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리더는 늘 민중의 마음을 잊지 않고, 민중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늘 홀로 일어서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겐지(源氏)가 헤이시 타도에
일어서도록 돌파구를 연 사람은, 헤이시를 묵묵히 참고 따르다 결연히 일어선 70대 중반의
늙은 무장 미나모토노 요리마사였습니다."
용장 2
1180년, 미나모토노 요리마사는 고시라카와법황의 황자인 모치히토왕에게서 헤이시를 토벌
하라는 영지(令旨)를 받고 군사를 일으켰다. 요리마사는 과감하게 싸웠지만, 우지뵤도원 싸움
에서 패해 자살한다. 그러나 목숨을 건 그의 궐기로 이즈 지방에 유배되어 있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요리토모의 사촌동생으로 시나노 지방 기소 계곡에 있던 미나모토노 요시나카 등이
잇따라 거병한다. 헤이시의 횡포에, 무사를 비롯한 사람들의 불만은 심해져 토벌의 때가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겐지의 봉기에는 계기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한 사람이 요리마사였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결단이, 시대전환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역사의 흐름을 바꿨던 것이다.
1181년에 헤이시의 총수인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병사한다. 요시나카가 헤이시를 무너뜨리고
도읍인 교토를 손에 넣자 온갖 방약무인한 짓을 일삼는다. 결국 세이이타이쇼군이 되지만,
요리토모의 명령을 받은 요시쓰네 일파에게 공격 당하고 만다.
고시라카와법황이 겐지에게 헤이시를 쫓아가서 치라는 선지(宣旨)를 내리자, 요시쓰네는
헤이시가 진을 치고 있는 셋쓰 지방 후쿠하라를 공격한다. 그리고 1184년 2월, 셋쓰의
이치노타니 합전에서 요도리고에의 절벽을 타고 내려가 공격하는 기습작전으로 헤이시를
무찔렀다. 헤이시는 서쪽 지방으로 도망쳐 사누키 지방(가가와현)의 야마시에 본거지를
마련해 세토 내해를 점령하고 대군으로 바다 방비를 강화했다. 해전이 되면 요시쓰네에게
승산이 없다. 그래서 그는 먼저 시코쿠로 건너가 육로로 야시마로 진격해 뒤에서 헤이시를
치려고 생각했다. 승리를 향한 집념은 온갖 지혜를 낳는다.
집념이 있는 곳에 지혜의 샘은 마르지 않는다. 폭풍이 세차게 부는 한밤중이었다.
바다는 사납게 일렁이고 성난 파도는 하얀 엄니를 드러냈다. 그러나 순풍이다.
요시쓰네는 즉시 준비해 놓은 배로 시코쿠로 건너가자고 결단을 내린다.
"적은 주의를 태만히 할 것이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라!"
강풍에 망설이는 자들을 호통치며 겨우 배 다섯척으로 거친 파도로 뛰어들었다.
젊은 투장의 용감한 행동이, 무사들의 용기를 고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