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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인마을 문화 지구 내에 위치한 연면적 1587m² 규모(지상 1층)의 도립미술관. 김창열 화백의 업적을 기리고 세계 현대 미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수집, 연구, 전시하기 위해 2016년 9월 24일 설립됐다. 김창열은 6.25전쟁 때 1년 6개월 가량 제주도에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한 이후 이곳을 제 2의 고향으로 여겼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로 초기에는 추상화를 그리다가 1972년부터 물방울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면서 ‘물방울 화가’라 불리고 있다. 1961년 파리비엔날레, 65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출품했고, 69년 파리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한 이후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1972년에는 전위미술 전시회인 살롱 드 메에 <밤의 행사>를 출품하며 유럽에서 데뷔했다. 대표작으로 <기억>, <물방울의 형태>, <물방울의 자욱>, <해체> 등이 있다.
소재지 : 제주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83-5
영업시간 : 09:00 - 18:00
정기휴무 : 매주 월요일
전화번호 : 064-710-4150
관람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어린이 500원
6세 이하 및 65세 이상 : 무료
어른 단체 1,400원
청소년 및 군인 단체 700원
어린이 단체 300원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은 화가 김창열(金昌烈, 1929~)이 제주도에 자신의 대표작 220점을 기증한 것을 기념하여 2016년 9월에 세운 도립미술관이다. 미술관이 소재한 제주는 김창열이 한국전쟁 당시에 머물렀던 곳이다. 주요 소장품은 1960년대 초 앵포르멜 시기부터 1980년대까지 화가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들과 1980~2010년대 회귀 연작 등 그의 대표작들이다. 미술관의 공간 구성은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특별전시실, 교육실, 수장고로 이루어져 있다. 김창열의 예술 세계를 동시대적 문맥으로 재해석하고, 김창열 정신과 관련된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김창열과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한 아카이빙을 하는 것을 미술관의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김창열의 회귀 철학을 건축으로 표현한 미술관,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제주시 수정일 : 2021. 4. 7.
‘물방울 화가’로 널리 알려진 김창열 화백(金昌烈, 1929년 12월 24일 ~ 2021년 1월 5일)이 2021년 1월 별세했다. 그는 세상에 없지만, 그의 주옥같은 작품은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은 2016년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자리 잡았다. 김창열은 미술관 건립을 위해 주요 작품 220점을 기증했다. 홍재승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은 독특하다. 하늘에서 보면 중정을 기준으로 거대한 큐브형 건물 8개가 둘러싼다. 이는 김창열이 추구한 회귀의 철학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관람자의 동선 역시 ‘회(回) 자형’을 따른다. 사각형 전시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로비에 있는 중정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서 미술관 밖으로 나간다. 관람자는 이 동선에 따라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과 설치 작품을 만나고, 작가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현무암 돌담이 이어진다. 호젓한 진입로를 따르다 보면 현무암처럼 검은 사각형 건물이 불쑥 나타난다. 미술관의 이국적인 건물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로비로 들어가니 한쪽 벽면 전체가 창문이고, 그곳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창문 옆 벽면에 김창열의 설치 작품 ‘물의 나라 이야기’가 있다. 작은 무쇠 상자 20개 안에 유리로 만든 물방울이 있고, 바닥에는 모래가 깔렸다. 작품 옆에 붙은 해설을 꼭 읽어봐야 한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해설과 그 옆에서 상영되는 동영상을 살펴보면, 김창열의 삶과 작품 세계를 가늠할 수 있다.
김창열은 1929년 북녘의 맹산에서 태어났다. 맹산은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로, 어린 시절 작가는 강변 모래밭에서 친구들과 뒹굴며 놀았다. 해방 후 월남해 서울대학교 미대에서 그림을 공부했고, 한국전쟁 때 1년 6개월쯤 제주에 살았다. 전쟁의 상처는 스무 살 김창열에게 ‘맹수가 물어뜯는 고통’ 같았지만,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마음을 치유했다. 김창열이 제주를 ‘제2의 고향’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전쟁 후 서울로 돌아와 박서보, 정창섭 등과 현대미술가협회를 창립했다. 1972년 파리의 초대전 〈살롱 드 메(Salon de Mai)〉에 출품한 ‘밤의 행사’를 시작으로 40여 년 동안 물방울을 그렸다.
로비의 다른 쪽 벽면에는 중정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중정은 전시실을 한 바퀴 돈 다음에 나가야 한다. 전시실로 가는 컴컴한 복도 모퉁이를 돌자, 창문 앞에 설치 작품 ‘물방울’이 보인다. 물방울은 밖에서 들어오는 빛과 풍경을 담아 영롱하게 빛난다. 다시 복도 모퉁이를 돌면 2전시실과 3전시실이 나온다.
전시실에는 다양한 물방울 작품이 있다. 김창열은 캔버스, 마포, 목판, 신문, 활자 등 갖가지 소재에 물방울을 그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천자문을 배경으로 한 물방울 시리즈는 김창열 작업의 핵심으로 평가된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배운 천자문을 물방울 작업과 연결했다. 천자문 시리즈의 대표작은 2전시실과 3전시실 사이에 있는 ‘회귀’다. 여러 한자 바탕에 빛나는 물방울 하나가 스며들어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김창열은 왜 그렇게 물방울에 집착했을까. 그는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하고 투명하게 무(無)로 돌려보내기 위한 행위”라고 말했다.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물방울을 영원한 존재로 변화시켰고, 물방울에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 삶의 기쁨을 발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시실을 다 둘러봤으면 중정을 구경할 차례다. 홍재승 건축가의 안목이 빛나는 이곳은 로비에서 유리문을 열고 나가 만나는 ‘빛의 중정’으로, 큐브형 건물 사이에 자리한 야외 공간이다. 중정에는 연못처럼 물이 찰랑찰랑하고, 그 가운데 물방울 3개가 놓여 있다. 김창열의 설치 작품 ‘삼인’이다. 작은 분수에서 물방울이 작품에 떨어지면 무지개가 나타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관람 동선은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중정을 한 바퀴 돌아 옥상으로 올라선다. 오르면서 바라보는 중정의 모습이 다채롭다.
옥상에 서면 비로소 미술관의 전체 모습이 그려진다. 다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미술관 입구다. 관람 동선에 계단이 없다. 시종일관 평지이거나 경사가 완만해, 보행 약자도 어렵지 않게 관람할 수 있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에서 나오면 제주현대미술관을 둘러볼 차례다. 미술관 정문 앞, 관람객에게 손을 뻗은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잡고 싶다. 상설전시관에서 2021년 3월 5일부터 〈김흥수展〉, 야외조각공원에서 2025년 8월까지 이승수 작가의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전시가 이어진다. 특히 곶자왈인 야외조각공원에서 열리는 전시가 볼 만하다. 원시적인 숲에서 만신창이가 된 인간의 형상은 마치 우리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제주현대미술관은 곶자왈 특유의 풍요로운 숲을 품어, 작품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성이시돌목장은 젊은이들에게 핫 플레이스로 통한다. 그들은 푸른 초원과 테쉬폰(Cteshphon), 우유갑 모양 조형물 등에서 인생 사진을 남긴다.
목장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테쉬폰은 아일랜드 출신 패트릭 맥그린치(Patrick J. McGlinchey) 신부가 제주 중산간의 황무지를 목초지로 개간하는 과정에서 도입한 건축물이다. 맥그린치 신부는 1961년 국내 처음으로 성이시돌목장에 테쉬폰을 여러 채 지었다. 테쉬폰은 곡선형으로 연결된 구조로 시공하기 쉽고, 제주의 강한 바람에 잘 견뎠다. 1960∼1970년대 주택과 창고, 돈사 같은 용도로 제주 곳곳에 보급됐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들러본 곳은 알려지지 않은 왕이메오름이다. 아덴힐CC리조트 주차장 입구에서 200m쯤 더 가면 오름 입구가 나온다. 이 오름은 호명목장의 사유지인데, 도민과 관광객을 위해 개방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녀가야 하는 곳이다. 오름에 들어서면 울창한 삼나무 숲이 반긴다. 서늘한 숲을 지나면 길은 오름 꼭대기로 이어진다. 능선에는 활엽수가 가득하다. 능선을 한 바퀴 돌고, 분화구로 내려갈 수 있다. 잔디가 깔린 분화구 바닥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오름의 축복을 한가득 안고 제주 여행을 마무리한다.
여행코스
〈당일 여행 코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제주현대미술관→성이시돌목장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제주현대미술관→성이시돌목장 둘째 날 / 방림원→왕이메오름
여행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 제주현대미술관
○ 문의 전화 - 제주시청 관광진흥과 064)728-2757 -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064)710-4150 - 제주현대미술관 064)710-7801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제주국제공항 정류장에서 151번 급행버스 이용, 동광환승정류장에서 820번 관광지순환버스 환승,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정류장 하차. * 문의 : 극동여객 064)753-0310 관광지순환버스 064)746-7310
○ 자가운전 정보 제주국제공항→노형로→평화로→용금로→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 숙박 정보
- [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늘송파크텔 : 원노형5길, 064-749-3303
- [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제주알(R)호텔 : 서광로14길, 064-757-7734
- [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제주메이플호텔 : 원노형3길, 064-745-6775 ·
한국관광 품질인증 이란? ☞ 숙박, 쇼핑 등 관광시설과 서비스에 대한 품질을 국가에서 인증하는 제도로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되며, 다양한 사후관리를 통해 품질을 유지합니다. ※ 더 많은 품질인증업소가 궁금하시다면? KQ 접속!
- 꽃신민박 : 한경면 용금로, 010-3829-5836
- 이끌림민박 : 한경면 저지1길, 0507-1305-3349
- 제주힐링리조트 : 한림읍 금악서길, 064)796-3533
- 절물자연휴양림 : 제주시 명림로, 064)728-1510
○ 식당 정보
- 웃뜨르항아리 : 보말칼국수·전복비빔밥, 한경면 중산간서로, 010-4917-1124
- 뚱보아저씨 : 갈치구이정식·육개장, 한경면 중산간서로, 064)772-1112
- 한라당몰국수 : 고기국수·멸치국수, 한경면 중산간서로, 064)773-0679
- 뉴저지김밥 : 김밥, 한경면 중산간서로, 064)772-3255
○ 주변 볼거리 금악오름, 낙천아홉굿마을, 수월봉, 환상숲곶자왈공원
※ 위 정보는 2021년 4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물방울의 방'… 김창열 기획전 3월5일 개막
뉴시스 기사 등록 2025.02.26. 14:13:41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3월5일부터 7월20일까지 제1전시실에서 소장품 기획전 '물방울의 방 1972~1983'을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김창열 화백이 기증한 220점의 작품 가운데 물방울 회화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1972년에서 1983년까지 주요 작품 13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김창열이 물방울을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선택한 이후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 1972년에서 1983년까지 물방울 작업을 조명한다.
김창열은 1973년 파리 놀 인터내셔널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에서 물방울 연작을 선보이며 성공리에 프랑스 미술계에 데뷔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물방울은 단순하게 맺혀 있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표면에서 흐르고 흡수되는 가운데 다양한 물리적인 형상을 선보인다. 또한 이 시기에 스프레이 기법에서 벗어나 붓을 이용한 회화적 실험을 시도한 흔적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수많은 고민과 치열함, 조형언어에 대한 도전적인 실험의 결과를 거쳐 김창열은 한국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한편 제2, 3전시실에서는 또 다른 소장품 기획전 '메카닉한 물방울'이 4월9일까지 열린다. 개념 우위에서 회화 우위로 변천해가는 물방울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김창열(金昌烈)
김창열(金昌烈, 1929년 12월 24일 ~ 2021년 1월 5일)은 대한민국의 미술가이다. 오랜 시간 프랑스에서 활동했으며, '물방울 화가'로 알려져 있다.
김창열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군 지덕면 송암리에서 김대권과 안영금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예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와 함께 자라며 붓글씨를 통해 회화를 접했고, 광성보고 시절에는 외삼촌으로부터 데셍을 배웠다.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인 광성고보 4학년 때 해방이 되자 학교에 있던 일본인 선생님들이 모두 빠져나가 학교에서는 매일 자습만 시켰다. 당시 여기저기 붙어있던 "격문(檄文)"이란 방(榜)을 자주 본 터라 김창열은 노트를 펴놓고 '격문'이란 단어를 이런저런 글씨로 연습하며 낙서를 하고 있었다. 선생 대신 자습을 지켜보러 온 보안서원이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끌고 가서 일주일간 구류시켰다. 학교로 돌아오자 또래 사이에서 영웅이 되었고, 상급생으로부터 이런저런 단체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은 김창열은 김구 선생을 따르는 모임에 한번 나갔다가 연락책을 하라는 말을 듣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직 아무 지시도 내려온 적이 없는데, 그 일로 갑자기 수배를 받게 된다. 삼촌이 먼저 알고 뛰어와서 조카를 피신시키며 먼저 월남한 아버지를 찾아 월남하라고 제안한다. 16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가족을 두고 월남한 김창열은 서울에서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찾아냈고, 2년 뒤 남은 가족도 월남을 감행해 기적처럼 우연히 길에서 지나가던 김창열을 만나는 바람에 모두 상봉하게 된다. 김창열은 제1회 대학입학 검정고시에 응시해 졸업 자격을 획득한다.
김창열은 월남 후 서울의 다양한 회화연구소를 다녔다. 처음에는 조각가 이국전 연구소에 다니다가 연구소가 폐쇄되자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2학년 때 발발한 6·25 전쟁으로 1950년 학업이 중단되었고,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가족들과 헤어진 채 김창열은 길거리에서 의용군 모병 반에 끌려갔다. 다행히 전선에 투입되지 않고 후방 부대에 배치되었지만, 김창열은 눈치껏 도중에 도주를 했고 서울수복 때까지 모두가 피난 가서 비어 있던 자기 집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누군가 김창열이 의용군에 있었음을 고자질 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현병대에 끌려갔으나, 김창열 집에 뭐라도 집어갈 게 없나 살피러 들어온 아주머니에게 그의 일기가 발견되어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 일기장을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구제를 해주어 큰 탈 없이 석방되고 다시 피난 중이던 가족을 만난다. 김창열은 이후 강제징용을 피하기 위해 월남 후 경찰관이 된 아버지와 다른 친척들의 귀띔으로 경찰전문학교에 간부 후보생으로 입교해 평생의 친구가 된 수필가 박재식, 정치가 정석모 등을 만나게 된다. 휴전 후 서울대학교에 다시 등록하려고 했으나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 다녔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등록이 거부된다. 계속해서 경찰생활을 하면서 혼자 그림을 그렸다.
1957년 5월 김창열은 평소 친분이 있던 장성순, 하인두, 김서봉, 김청관, 라병재, 조동훈, 이철, 김종휘, 김충선, 김영환, 문우식과 함께 뒤에 <한국현대미술가협회>(약칭 현대미협)이라는 동인회를 결성하고, 5월 1일부터 9일까지 미국 공보원에서 첫 동인전을 개최했다. 뒤에 박서보를 찾아가 협회에 가입시켰고, 그의 제안을 받아 동인전의 이름을 "현대전"이라고 약칭하고 제2회부터 함께 해나갔다. 당시 안국동 동덕여대 건물 2층을 빌려 이봉상회화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박서보가 운영하던 작업실 겸 화실이 현대미협 동료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1958년 개최된 현대전 3회와 4회는 세간의 주목을 유독 많이 받았다. 4회전 이후 현대전은 당시 세계적인 흐름이었던 앵포르멜 운동의 한국판이 되었고, 그런 일색이 싫다고 나가는 동료들이 계속 생겨 현대미협 회원들은 매번 교체되었다. 김창열은 서울 경찰전문학교 도서주임으로 근무하면서 일본에서 들어오는 화집과 미술서적을 통해 당시 세계적 흐름을 읽어냈고, 창작에 전념했다. 하지만 박서보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후배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경찰직을 그만 두었고 성루예고 교사로 근무하며 창작을 계속했으나, 결혼생활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자 괴로움 끝에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1961년 파리 세계청년화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가 있던 박서보가 주선하여 1961년 제2회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이 초청되었고, 김창열이 출품작가 4명 중 한 명이 되었다. 그 다음 1963년에는 제3회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작가를 선정하는 커미셔너가 되었고, 196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도 작품을 출품할 수 있었다. 1961년 파리 비엔날레 이후 해외 전시나 국제 비엔날레에 출품할 기회들이 계속 주어지자 사람들 간에 경쟁이 극심해졌고 마침내는 국제적 출품 작가를 선정하는 문제를 두고 108인의 연대 서명과 같은 일까지 벌어졌다. 김창열은 미국에 가 있던 김환기의 추천으로 1965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청년화가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거기서 다시 김환기의 추천으로 1966년 록펠러 재단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미국에서 한달 동안 연수를 받게 된다. 이후 미국에 남아 김환기와 마찬가지로 넥타이 공장에서 일도 하고 갖은 잡일을 하며 4년을 버티면서 그림을 그린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미국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ue)를 통해 세계미술계에 대한 도전의식을 키우던 중 1969년 백남준의 도움으로 파리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박서보의 추천으로 1971년 제7회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 위해 파리에 온 이우환과도 이 때 만나게 된다.
김창열은 파리 근교 빨레소(Palaiseau)라는 곳에서 마굿간을 아뜰리에로 쓰던 독일의 한 젊은 조각가에게 작업실을 이어 받아 지금의 아내인 마르틴 질롱(Martine Jillon)을 만나 동거하며 그곳에서 주야장천 그림만 그렸다. 마침내 1972년 물방울 그림을 창안하기에 이르렀고, 근처 골동품 가구점에서 연 첫 개인전이 우연히 길을 지나던 파리의 일간지 <콩바(Combat)>의 선임기자 알랭 보스케의 눈에 들어 기사화되고, 이후 다른 신문사들에서도 앞다투어 취재를 해가면서 순식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72년 파리의 권위있는 초대전 살롱 드 메(Salon de Mai)전에서 물방울 그림인 <<Event of Night>>(1972)으로 본격적으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현재까지 물방울을 소재로 전 세계에서 활발한 전시를 계속하고 있다. 2004년 프랑스 국립 쥐드폼미술관 초대전에서는 물방울 예술 30년을 결산하는 전시를 하였다.
2016년 9월 김창열이 한 때 경찰 생활을 했던 제주도에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개관되었다. 현재 김창열은 한국으로 돌아와 성북동 자택에서 살다가 2021년 1월 5일, 91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시신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에서 수목장되었다.
작품세계
그의 작품세계는 '물방울'이라는 소재로 일관된 측면이 있으나, 시대별로 변화한 점들을 고려하여 10년 단위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60년대
1965년~1971년의 작품은 작가 스스로 '서정적 추상'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미국의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받아 반복되는 형태들의 배열로 구성되어 기계적이며 추상적이다. 대표작으로는 《Rite》 시리즈가 있다.
1970년대
작가가 파리로 이주한 이후의 시기로, 물방울의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2년 살롱 드 메에 입선한 이후로 여러 그림들에서 단일한 모티프인 물방울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하나의 혹은 다수의 물방울이 캔버스의 다양한 위치에서 나타난다. 대표작으로는 《Event of Night》(1972), 《Water Drops》(1974) 등이 있다.
1980년대
작가는 마대의 거친 표면에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는 거친 표면이라는 물체의 즉물성(卽物性)을 살리는 반면, 이러한 표면에 맺힐 수 없는 영롱한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바탕과 이질감을 형성하여 실제 물방울이 가진 물질성을 상실하게 한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 단순한 마대에서 나아가 바탕에 천자문을 그려넣음으로써 동양의 철학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마대에 물방울들이 몰려 있는 《Water Drops》(1987), 천자문 위에 물방울들이 그려진 《Recurrence》(1989) 등이 있다.
1990년대
이 시기에 작가는 《Recurrence》(회귀)라는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한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 물방울들은 단지 맺혀있는 것에서 변화되어 일그러지기도 하고, 뭉개지기도 하며, 지워지기도 한다. 또한 물방울의 바탕에는 끊임없이 천자문이 작게 혹은 크게 등장하는데, 이는 오랜 해외생활로 인해 형성된 작가의 향수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 아래에서 쓰던 천자문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작가는 이전 시기까지 계속되었던 채도가 낮은 배경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과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시도한다. 《Bell》(2003)에서는 하늘색 바탕에 천자문을 그려넣고, 《Yellow Earth》(2003)에서는 이전과 달리 채도높고 적극적인 노란색 바탕을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Meditation》(2004)의 경우에는 물방울 모양의 큰 유리병에 물을 담아 천장에 쇠줄로 매달아 늘어뜨린 설치미술도 시도한다.
작품해석
그가 소재로 그리는 물방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동서양의 문화를 함께 접하였던 작가가 서양 미술의 재료를 통해 동양적인 사고의 세계를 표현하려고 하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나, 그 철학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작가의 언급
"파리 가난한 아틀리에에서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유화 색체를 떼어내 재활용하기 위해 캔버스 뒤에 물을 뿌려 놓았는데 물이 방울져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습니다."
"내가 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다 보니, 과연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서양과 다른 나의 차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바로 한 방울의 물방울이었던 것입니다. 물방울은 불교의 공(空)과 도교의 무(無)와도 통하는 것입니다."
평론가의 해석
"투명한 물방울은 일종의 눈속임(trompe l'oeil)으로서, 가상의 빛과 그림자의 유희로 만들어진 환상이다. 바탕을 칠하지 않은 천을 그대로 캔버스로 사용하기 때문에 천 위에 실제로 물방울이 맺힌 듯한 눈속임 효과가 더욱 배가된다."(이일)
"김창열 선배는 물방울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났기 때문에 물방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물방울이라는 하나의 메타포를 가지고 시각적으로 미술사에 남는 일을 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방울은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그림으로 그려진 물방울은 착시현상이지 현실 자체의 물방울은 아니다. 그런데 마대를 거꾸로 해서 그리거나 바탕을 칠하지 않은 캔버스에 그려 물방울이 금방 스며들거나 배어 나오는 듯한 느낌의 착시 현상은 그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냥 하얀 캔버스에 그린 것과는 뜻이 다르다. 마대라는 물질적인 현상과 물방울의 착시현상을 중첩시킨 것이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물질과 환상을 겹침으로써 새로운 시각적인 것을 제시했다. 그래서 하나의 오브제도 아니고, 옛날식의 그림도 아닌 묘한, 어중간한 지점을 포착해낸 대단히 새로운 매체현상을 그는 창안해 낸 것이다. 물방울 하나는 기쁨도 주고 설움도 주고 어떤 추억이나 기억도 되살려 준다. 그리고 우리는 영롱한 물방울 속에서 또 다른 환상도 본다."(이우환)
전시경력
개인전
2006 PYO BEIJING(베이징)
2005 김창렬 중국국가박물관 초대전(베이징)
2004 갤러리 현대(서울), 쥐드폼 국립미술관(파리)
2002 박영덕화랑(서울)
2000 갤러리 현대(서울), 박영덕화랑(서울)
1999 앤드류샤이어갤러리(로스앤젤레스), 앙리코 나바라 갤러리(파리)
1998 MMG 갤러리(동경), 동경화랑(동경), 사카모토 젠조 미술관(구마모또)
1997 박영덕화랑(서울), 갤러리현대(서울), 드라기냥 미술관(드라기냥), 물의나라 미술관 개관 기념전(시마네현)
1996 타이페이 아트페어(타이페이), 앙리코 나바라 갤러리(파리)
1994 선재미술관(경주), 공간화랑(부산)
1993 SAGA(파리),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앙리코 나바라 갤러리(파리), 갤러리 현대(서울)
1991 시그마 갤러리(뉴욕), 스템플리 갤러리(뉴욕), 인공갤러리(대구), 공간화랑(부산)
1990 갤러리 현대(서울)
1989 카사하라 화랑(오사카), 스즈카와 화랑(히로시마), 시카고 아트페어(시카고), LA아트페어(로스앤젤레스),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로스앤젤레스)
1988 갤러리 현대(서울), 동경화랑(동경), 세이부 현대 아트 갤러리(동경)
1987 나비글리오 갤러리(밀라노), 갤러리무(토론토), 갤러리 현대(서울)
1985 FIAC(파리), 스템플리 갤러리(뉴욕)
1984 바젤 아트페어(스위스)
1983 동경화랑(동경), 스템플리 갤러리(뉴욕), 카사하라 화랑(오사카), 베란느망 재단(벨기에), 갤러리 현대(서울), 다카기 화랑(나고야)
1981 갤러리 무스(토론토), FIAC(파리)
1978 스템플리 갤러리(뉴욕), 나비글리오 갤러리(밀라노), 다카기 화랑(나고야), 안쿠럼 갤러리(로스앤젤레스)
1977 앤드워프 갤러리(앤드워프)
1976 갤러리 가레르프(브뤼셀), 동경화랑(동경), 가네코 아트 갤러리(동경), 갤러리 현대(서울), 명동화랑(서울)
1975 INKO 아트페어(로마), 쿤스트하우스(함부르크), 아베이 생-미셀 드 프리골레(생 미셀), 갤러리 노벰버(베를린)
1974 갤러리 스프릭(보쿰), 갤러리 야자(뮌헨), 갤러리 엔겔베르츠(제네바), IKI 아트페어(뒤셀도르프)
1973 크놀 엥테르나쇼날(파리), 갤러리 도뜨(아비뇽)
1963 신문회관(서울)
단체전
연도 전시명 주최 장소
2006 한중현대미술전 굿모닝신한증권&표갤러리 서울
2005 수묵의 시 기메아시아미술관 파리
2004 한국의 평면회화, 어제와 오늘 시립미술관 서울
2002 한국작가 4인전 비쥬츠세카이 갤러리 도쿄
2001 한국모노크롬 회화 코리아 아트 갤러리 부산
한국 현대미술의 현황 비쥬츠세카이 갤러리 도쿄
해변 미술제 앙리코나바라 갤러리 파리
Sharjah 국제아트 비엔날레 Sharjah UAE
KCAF 예술의전당 서울
2000 침묵의 작가들-한국현대작가8인전 니스 동양미술관 니스
시카고 아트페어 시카고 박영덕 화랑 외 다수 시카고
1999 한국미술50년:1950-1999 갤러리현대 서울
침묵의 작가들=한국현대작가8인전 프랑스 몽베리에 시립미술관 몽베리에
1997 메이드 인 프랑스 퐁피두 센터 파리
1996 SIAF 갤러리 현대 서울
문자와 그림 한림미술관 대전
시카고 아트페어 갤러리 현대 시카고
1995 FIAC 갤러리 현대, 앙리코 나바라 갤러리 서울, 파리
1994 해변미술제 앙리코 나바라 갤러리 프랑스 남부
NICAF 갤러리 현대 동경
1992 자연과 더불어 테이트 갤러리 리버풀
에꼴 드 서울 관훈미술관 서울
한글기념 서림화랑 서울
시카고 아트페어 갤러리 현대 시카고
1991 에꼴 드 서울 관훈미술관 서울
1990 에꼴 드 서울 관훈미술관 서울
1989 에꼴 드 서울 관훈미술관 서울
1988 올림픽 국제 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올림픽 판화 국제전 로이드 신 화랑 서울
1987 에꼴 드 서울 관훈미술관 서울
1986 서울-파리 프레스센터,파리국립조형예술센터 서울, 파리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85 휴먼도큐먼트 84/85 동경화랑 동경
1984 한국현대미술전 70년대 후반-하나의 양상 동경, 오사카, 삿포로, 우스노미야, 후쿠오카
오늘의 미술-소장작품에서-파트1
'83콜렉션을 중심으로' 동경도미술관 동경
1982 한국현대미술의 위상 교토시립근대미술관 교토
한국재외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현대종이의 조형, 한국과 일본 국립현대미술관, 교토시립근대미술관, 사아타마시립미술관 서울, 교토, 사아타마
1981 화상의 눈 롱아일랜드미술관 미국
한국현대드로잉 브루클린 미술관 미국
1980 아시아 현대미술
아시아 미술전 제2부 후쿠오카 미술관 후쿠오카
교수단 선택 올버니 대학교 미술관 뉴욕
살롱 "거장과 신인" 파리
1979 에꼴 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착각의 현실 덴버미술관 서울
한국현대미술 4인의 방법 현대화랑 서울
살롱 "거장과 신인" 파리
종이작업 진화랑 서울
1978 살롱 "거장과 신인" 파리
종이작업 견지화랑 서울
1977 제15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브라질
FIAC '77 파리
한국현대미술의 단면 동경 센트럴 미술관 동경
한국 현대화 국립역사미술관 타이페이,대만
한국 서양화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국현대미술 6인전
김환기, 권영우, 윤형근, 김창렬, 박서보, 이우환 보자르 화랑, 무라마스 화랑 나고야, 동경
1976 리얼리즘의 한 측면 위니펙 미술관 캐나다
살롱 드 메 Salon de Mai 파리
1975 살롱 드 메 Salon de Mai 파리
1974 살롱 드 메 Salon de Mai 파리
1973 살롱 드 메 Salon de Mai 파리
살롱 드 레아리떼 누벨 파리
제12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브라질
1972 살롱 드 메 Salon de Mai 파리
살롱 드 레아리떼 누벨 파리
살롱 드 메-50인의 회화 유고슬라비아
카뉴 국제회화전 카뉴, 프랑스
제8회 동경국제 판화전 동경
4인전 생 폴 시립미술관 프랑스
1971 한국현대회화 파리
1969 아방가르드 페스티발 뉴욕
1965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브라질
1961 제2회 파리 비엔날레 파리
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과천, 한국)
국립미술관(도쿄, 일본)
도쿄도 미술관(도쿄, 일본)
물의 나라 미술관(시마네현, 일본)
베란느망 재단 미술관(kruishoutem,벨기에)
보스톤 현대미술관(보스톤)
보이만 현대미술관(로테르담)
보쿰 미술관(보쿰, 독일)
사이타마현 근대미술관(사이타마, 일본)
선경미술관(서울, 한국)
선재미술관(경주, 한국)
알브라이트-녹스 갤러리(버팔로, 미국)
오하라 미술관(오하라, 일본)
위니팩 갤러리(위니팩, 캐나다)
이와키 시립미술관(이와키, 일본
퀼른 아시아 미술관(퀼른, 독일)
타카마츠 시립미술관(타카마츠, 일본)
텍사스 공과대학 미술관(러벅, 미국)
퐁피두 센터(파리, 프랑스)
허션 현대미술관(워싱턴, 미국)
호암미술관(용인, 대한민국)
후쿠오카 미술관(후쿠오카, 일본)
히로시마 현대미술관(히로시마, 일본)
부산시립미술관(부산, 한국)
대전시립미술관(대전, 한국)
대림미술관(서울, 한국)
디트로이트 미술관 (Detroit Institute of Arts, www.dia.org, 디트로이트, 미국)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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