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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주미공사로 파견된 박정양 일행이 샌프란시스코의 팰리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우리의 조상님들은 '지진이다!'라고 외쳤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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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다른 호텔에서는 항상 '엘리베이터'라는 가마를 이용할 필요가 없는 낮은 층의 방을 달라고 이야기했다는 후문이 있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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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놓치면서 계획에 없던 세계여행을 했다는 얘기, 들어봤나요?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조선 대표로 파견된 민영환은 원래 중국에서 러시아로 가려 했는데요,
출처 : 위시빈 | 데구르르
배를 놓치게 되면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캐나다(!)도 가보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서 온 유럽을 지나 모스크바에 이르렀다고 해요. 돌아올 땐 시베리아 열차를 탔다고 하네요.
출처 : 위시빈 | 데구르르
민영환의 <해천추범>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요. 아마도 여행 중 영화관에 들렀던 모양이에요. 민영환은 이후 개혁 정책을 추진하다 을사조약으로 인해 실패하고, 자결로 삶을 마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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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의 사람들도 우리처럼 일본을 여행했어요. 일본을 한 번 방문하는데 보통 120원가량이 들었다고 하는데, 현재 가치로는 5-600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
출처 : 위시빈 | 데구르르
위 그림은 가장 일반적인 1920년대의 일본 여행 코스예요. 의외인 것은 우리도 잘 가보지 못하는 지역인 시모노세키나 나라, 닛꼬와 같은 곳들도 필수 관광 코스로 꼭 끼여 있었다는 것!
출처 : wikimedia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여성운동가, 그리고 ‘조선 최초로 구미 여행에 오른 여성’으로 유명해요. 1920년대 후반, 파리에서 혼자 8개월 정도 머물면서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법을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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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은 '아아 파리가 그리워'라는 칼럼을 쓰면서 위와 같은 말을 남겼어요. 그녀가 했던 여행은 100년 뒤를 사는 우리가 봐도 근사하고 멋진 것 같아요.
출처 : 위시빈 | 데구르르
'려행' '째팬 투리스트 쀼로'... 옛날스러움이 폭발하는 위의 문장은 1932년의 신문 기사 내용이에요. 185원은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700만원~900만원 가량의 거금!
출처 : tistory | sonsang4
1930년대엔 사설 여행사나 단체여행상품이 많이 생겼지만,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하기에는 많은 부담이 있었죠.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파리까지 1등석으로 가면 약 5000만 원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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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학교의 경제학과 교수였던 이순탁은 안식년을 맞아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어요. 그리고 여행기를 조선일보에 기고하며 ‘최근 세계일주기’라는 한국인 최초의 세계여행기를 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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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탁 교수의 여행 기간은 총 9개월. 콜롬보, 카이로, 케임브리지, 리버풀, 더블린, 보스턴 등등 지금 들어도 생소한 많은 나라들을 둘러보았어요.
출처 : pixabay
그의 책을 보면 식민지 지식인이자 경제학자였던 저자가 1930년대의 서구의 문화 및 대공황기의 세계사 현장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느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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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게시글
엄지척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해외여행"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우리 선조님들께서도 해외의 높은 여행벽을 깨뜨리는 분들이 계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