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露맞이 도산서원길.
코스: 월천서당-산림문화
휴양촌-도산서원-퇴계종택-이육사 문학관. (4시간)
백로(白露)는 ?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시기로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侯)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한다.
백로 무렵에는 장마가 걷힌 후여서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하지만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해일로 곡식의 피해를 겪기도 한다. 백로 다음에 오는 중추는 서리가 내리는 시기이다. 전남에서는 백로 전에 서리가 내리면 시절이 좋지 않다고 한다. 볏논의 나락은 늦어도 백로가 되기 전에 여물어야 한다. 벼는 늦어도 백로 전에 패어야 하는데 서리가 내리면 찬바람이 불어 벼의 수확량이 줄어든다. 백로가 지나서 여문 나락은 결실하기 어렵다.
제주도 속담에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이라고 해서 이때까지 패지 못한 벼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고 전한다. 또한 백로 전에 서리가 오면 농작물이 시들고 말라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충남에서는 늦게 벼를 심었다면 백로 이전ㅡ 이삭이 패어야 그 벼를 먹을 수 있고, 백로가 지나도록 이삭이 패지 않으면 그 나락은 먹을 수 없다고 믿는다. 경남에서는 백로 전에 패는 벼는 잘 익고 그 후에 패는 것은 쭉정이가 된다고 알고 있으며, 백로에 벼 이삭을 유심히 살펴서 그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하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백로 전후에 부는 바람을 유심히 관찰하여 풍흉을 점친다. 이때 바람이 불면 벼농사에 해가 많다고 여기며, 비록 나락이 여물지라도 색깔이 검게 된다고 한다.
백로는 대개 음력 8월 초순에 들지만 간혹 7월 말에 들기도 한다. 7월에 든 백로는 계절이 빨라 참외나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한편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대풍이라고 생각한다. 경남 섬지방에서는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늘린다.”라는 말이 전하면서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시작하고, 고된 여름농사를 다 짓고 추수할 때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이므로 부녀자들은 근친을 가기도 한다.
회원여러분!
어제 보다는 더 나은 오늘을 기대하며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한 이 순간부터 행복을 느낀 하루였길 기대합니다.
길을 가도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야 멋지고 사람을 걱정해 주는이가 있어야 행복하고 아침에도 문안인사가 있으면 그날 하루도 따뜻한 하루가 된다고 합니다.
아직도 한낮엔 상당히 덥지만 그래도 버텨낼만하니 우리 회원님들 자주만나 재미나는 즐거움 많이많이 나누시길 바라겠습니다.
살다보면 사람도 하늘처럼 맑아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그사람한테서는 하늘냄새가 나기도 하지요.
텃밭 울타리의 애호박을 보았을때 친구에게 따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산길을 오가다 청초하게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게되면 아름다운 꽃소식을 먼저 전해주고싶은 생각이 날때 그 친구가 바로 내 마음속의 친구임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렇게 메아리가 오가는 친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있어 언제 어디서라도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쓴소리로 나를 간섭해 주는 친구는 나에게 큰 재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 좋은친구가 가장 큰 보배일것이다.
나무를 심으면 숲이되고 그 숲엔 새가 날아와 둥지를 틀기도 할것이다.
오늘 이렇게 만나는 친구들이 바로 나무와 새들같아 날마다 봄날과도 같은 따뜻함에 감사드리는 순간입니다.
내 인생에도 이미 가을은 왔습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끔씩 뒤돌아 보기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
했으며 미워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아요.
결국 사랑한 사람은 있어도 미워한 사람은 없는것 같네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라도 상처 안주고 사랑만 하다 가려고 합니다. 가능할까요?
노력할겁니다.
새벽차로 안동까지 와서 과연 무엇을 얻어가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남에게 불편함은 주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면서 내일은 보다 더 멋지게 살아볼 생각입니다.
오늘 하루 저와 같이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월천서당에 도착 이곳저곳 둘러보고 한국문화 테마파크 엔 행사준비 관계로 입장을 거부해 들어가지 못했다.
450년된 은행나무 보호수.
월천서당앞.
월천서당.
바쁘게 돌아다니는 잽싼돌이 우리 총무님.
서당앞.
한국문화테마파크.
한국국제컨벤션센터.
도산서원입구.
하마비.
이퇴계.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생전에 강학(講學)하던 곳이며, 도산서원이라 함은 선생 사후 후학들이 그의 학덕을 기리고자 지은 서원과 사당을 포함하여 일컫는 말이다.
서원에서 바라본 시사단.
도산서원.
서원앞에서의 셀카.
종택앞에서의 셀카.
이퇴계종택.
퇴계종택이란?
이황(李滉, 1501년 ~ 1570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제3코스 출발점.
도로변의 노거수.
간간이 오던비는 그치고 구름은 하늘로....,
이퇴계 무덤 가는길.
이퇴계선생 묘소.
하계마을 독립운동기적비.
동암종택 수졸당.
진성이씨 수졸당.
동암종택 수졸당.
건지산 입구.
씀바귀꽃.
이 고개 넘어엔 이육사 문학관.
계속되는 데크입니다.
神堂인가 봅니다.
윶판대 가는것은 포기.
생전의 이육사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
《청포도(靑葡萄)》, 《교목(喬木)》 등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육우당.
문학관(경로 무료).
이육사 묘소.(부인과 합장)
금마타리꽃.
문학관 내부.
거창한 나부설계.
텅빈 주차장끝의 우리차.
처음부터 으리부부는 차를타고 따라다니며 걸었기에 트랙은 확실하나 실거리는 6~7km 쯤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