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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바쁜 연말이라고 하지만
사실 일 년 내내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사이 지구는 태양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어딘가로 달려간 것 같은 지난 1년이
그저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이었군요....
마치 모든 생각의 회귀가
당신을 향하는 것처럼....
정열....... 그것은 달뜬 감정인데, 그렇게
고열이 휩쓸고 지나가면
평온이 찾아올까요.....
연애는 정열이고,
결혼은 심심함이라는데,
그 심심함이 인생을 지킨다고 합니다....
성하(盛夏)의 무성함이 지나가고
평온이 남긴 묵묵함이
나무를 지키듯이...
산책은 심심함의 선물입니다.
걷다보면 바삐 살면서
집나간 내 정신과 마음과 혼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듯합니다.
언젠가부터 산책을 잊었는데,
오늘 새벽, 잘못 세워둔 차를 빼러 가느라고
족히 세 정거장을 걸었습니다.
외출했던 나의 혼이
밖의 것들에게, 혹은 생채기를 주었던 사람들의 말 같은 것에
골몰해 있던 내 생각의 세포들이
온전히 안으로 돌아오는 시간.........
도시의 잿빛 건물이지만,
새벽 선바람 불어와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아직 빛살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태양이 떠오를 것을 우리는 압니다.
마음이 잦아진 그 가운데 자리,
당신이 피어오릅니다.
가로수 아직 떨구지 못한 이파리 몇 장이 펄럭이면서
내 마음도 따라 춤을 춥니다.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도시의 각진 건물 숲을 휘돌아가지만,
나는 마음 길을 또렷이 그려봅니다.
왜 그리 바빴는가....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한 해가
저 나뭇가지 끝의 나뭇잎보다도 가볍게 느껴집니다.
현재와 미래의 삶....
그리 분주했지만,
실바람 따라 외투깃 세우고 걸었던 이 아침의
간절한 당신 생각만큼,
이 심심함의 황홀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백두대간,
황병산에서 대관령을 향해 그 완만한 능선자락을 걸을 때였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하얀 눈길이 아름다웠습니다.
거기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 뒤돌아보니,
그것은 내 삶의 열정이었을까....
그 능선에 찍힌 발자국이 당신께 가는 정열이라면,
당신께 향함, 그 발자국의 자취뿐이겠지만,
발자국 없는 눈길에
당신을 둔다면, 그것은
더 큰 일상의 아름다움이 되지 않을까......
열정보다,
어쩌면 평상심의 넓은 일상의 잔잔함이
긴 여정을 돌아서 온 지구의 한 해 여행처럼
그런 일상의 빛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과 영혼의 무게는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무게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재볼 수는 없겠지요...
굳이 있다면, 감동...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당신의 존재,
그것을 깨닫는 일이 아닐까......
당신에게 깃든 신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그대의 신은
우주의 눈부신 수많은 빛의 기운을 지나왔습니다.
그대의 신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 당신을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일은
그대의 눈부신 신에게 경배하는 일입니다.
<2007년 12월 21일>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당신을 기다리면서
가슴 설렘 진정하기 힘들었습니다.
카드를 썼다가는
지우고, 다시 써보고,
다른 이들의 송년인사는 마음 속 이야기 다 잘 써지는데,
당신에게는 왜 하얀 종이위에 잉크조차 묻히기 힘든
언어의 무뇌증이 시작되는지....
그 꽃들은
왜 모두 마음에 안 드는지....
나의 서툴음...
내 스스로도 참 당황스럽습니다.
진정으로 궁극에 이르면,
마음의 극지, 그 궁극의 아름다움으로
생각조차 사라진다는데,
나의 이 무뇌증은 그 아름다움에 이르러
말이 길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고 침묵으로는 마음 전할 길 없어
그 표면에 그치는 한계일망정
마음 길을 찾아가 봅니다.
나의 마음, 생각,
의식과 궁극의 존재로서
순수의식을 담아 보내고 싶었는데,
여전히 에고에 갇혀 내민 손이 부끄럽습니다.
언젠가 도자기 공방에서
흙을 다듬다가 구멍을 냈습니다.
그 구멍이 만들어낸 공간은 원래 있던 공간이었을 텐데,
내가 흙에서 파냈다고 새로 공간이 생긴 것은 아니지요...
당신을 알기 전에 내 가슴에는 온갖 잡동사니 가득했지요.
거기에 당신 자리 만들고 공간을 만들었다고
생경한 자리가 아니지요...
그 자리는 원래부터 당신의 자리였던 거지요...
오랫동안 쌓인 잡동사니의 에고를 치우고 나면
홀로 빛나는 자아처럼,
그렇게 당신을 향한 빛남 피어나듯이
당신을 알기 전부터,
항상 있었던 자존자(自存者), 그 궁극의 실재처럼
모든 것이 당신에게 무너진 하루였습니다.
<2007년 12월 24일 새벽>
불러보고 싶은 당신
어떤 방법, 어떤 위안도
마음의 고요함, 그 평정이 지속되지 않으면
참된 평화를 얻지 못하는 법,
순수한 침묵이 때론
빛도 어둠도 아닌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말이나 글은 에고의 산물이랍니다.
침묵은 영원의 언어이며
말없는 말, 말을 초월한 언어라고 하지만,
아직 무르익지 않은, 때 묻은 마음으로 말하고 싶음....
당신은 내 마음 안에 머물 뿐 아니라
내 상념의 근원이고,
내 시간의 유지이며,
내 사유의 거주처이고,
나의 존재에 대한 목적지입니다.
오늘,
모든 것이 당신에게서 나와
당신의 이름 안에 머물다가
당신의 눈빛으로 녹아듭니다.
그러므로 이순간 당신은
분리되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직 있나요...
아니면 회귀도정인가요...
아픕니다... 괜히 열병을 지니고,
홀로 트리에 불 밝혔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07년 12월 25일>
글루미 더스데이
영화 <원스>에서는 체코출신 아일랜드인인 여자주인공에게
남자가 말합니다.
-당신은 남편을 사랑해요?
그러자 체코말로 대답하죠...
-밀루에 떼베(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체코말을 못알아 듣고 남편을 사랑한다는 말로 알아들은 남자는
끝내 엇갈린 길을 걷고
남자는 런던으로 떠나고, 여자는 다시 남편과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비익연리(比翼連里).......
엇갈림과 담담한 인연의 흐름이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남는 장면이지만,
나는 그들이 끝내 만나야만 한다는 당위적 재회의 속편을 봅니다.
영화에서 그들은 엇갈려 갔지만,
실재, 그들은 영화를 찍은 후에
결혼을 했답니다...
<예언자>에서 <칼릴지브란>은 이렇게 말합니다.
알미트라가 말했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예언자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은 영원히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죽어서 하느님의 고요한 추억 속에서도
같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사랑 가운데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로 춤을 출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구속을 만들지 말라.
그대들의 영혼의 해변에 출렁이는 바다가 있게 하라.
상대방의 잔을 채워 주되, 한 잔으로 마시지 말라.
당신의 빵을 상대에게 주되, 같은 빵을 먹지 말라.
같이 노래하고 춤추되,
그러나 각자 혼자 있도록 하라.
마치 기타의 줄들이 같은 음악을 따라 움직이면서도
혼자 있는 것과 같이...
너의 마음을 주되 상대방이 소유하지 않게 하라...
생명의 손만이 너의 마음을 소유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이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지 말라.
성전의 두 기둥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사이프러스 나무는
상대방의 그늘에서 자랄 수 없다.....
당신과의 이 거리,
사이프러스 나무와 같이
필연적인 영혼의 사랑인가요.
당신이 그리운데,
그것이 겨워서, 말이 지나쳤습니다.
혹여 당신께 살갗에 스치는 상처가 되었어도
스스로의 가벼움
침묵 속에서 부끄러워 합니다.
어느 화가는 고흐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답니다.
그런데, 결국 고흐처럼 살고 있더랍니다.
그러나 빵조차 좋은 것을 먹지 못했던 그가
물감을 그리 두껍게 아낌없이 칠한 것은
또 다른 의미의 부자였겠지요.
고흐전에서 느낀 감상, 그것은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의 달금질,
그 정열의 붓질이었다고 그냥 위안했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밀밭이 있다.
나는 감히 슬픔과 극한에 이른 고독을 표현하고 싶었다.
너에게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고독을,
전원에서 생활하면서 바라본 것을,
내 내면의 고독을 딛고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
사이프러스 나무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고흐-<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2007년 12월 27일>
책을 고르면서
교보엘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교보데이를 정하고
점심시간부터 밥먹고 두어시간 책방에서
책도 고르고, 이것저것 구경하다 오는 겁니다.
직원들하고 매주 금요일로 약속하고
예전엔 꼭 시간을 지켰는데,
이젠 직원들도 하나 둘 떠나고,
나도 다른 일들로 분주해지면서
교보데이가 멀어졌습니다.
책방엘 가면, 참 많은 이야기와 사연들이
저마다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오늘, 당신을 위해서 책을 골랐습니다.
새로 나온 책을 중심으로,
혹은 소설과 수필집, 간간히
마음공부하기 좋은 영혼의 스승들 이야기도 함께....
당신을 위해 책을 고른다고 생각하니,
그 책들도 예사롭지 않은거 있죠...
이 책들이 당신의 손길이 머물고,
그 글들이 당신의 정신과 마음에 담길 것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한 때 책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함량미달이거나, 상업주의적인 서적이 많고,
또 이기적 관점에서 지어진 책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에서.
그러나 그러한 집필의도조차,
글 쓰는 이들의 영혼의 정제가 조금은 묻어있다고 생각하고,
또 새털처럼 가벼운 이야기도
내 스스로의 승화를 돕는 찰나의 느낌만 준다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신간들로
당신께 보낼 책을 골랐습니다.
장서에 꽃아 두고 오후의 차 한잔의 여유로움으로
글자들을 가볍게 마셔봐요...
당신의 허허로움과 닫혀있던 여유의 창이
조금은 열릴지 모르니까요....
인터넷이 발전하고, 전자책이 나오고
휴대폰으로 모든 일을 다하는 세상이 와도
책은 책이니까요....
내 사주에는 책만 가득 쌓여있다는데,
그렇다면 그 책을 사랑하듯이
당신을 생각하면 되는 일이지 싶습니다.....
<2007년 12월 28일>
남이섬 가는 길
두물머리 지나 청평으로 해서
가평 남이섬 가는 길은
강을 따라 드라이브 길이 아름답기도 합니다.
고1때 가본 후 오랜만에
문득 남이섬이 보고 싶었습니다.
운길산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에
전망 좋은 수종사를 품고 있어서
경치도 아름답거니와,
철따라 계절의 변화를 조망하는
시절의 파노라마가 많은 상념을 가져다주기에
늘 그리운 곳입니다.
팔당을 거쳐 운길산 자락엔
언젠가부터, 한때 세상을 온통 구해보겠다고
팔십년대 정열을 바쳐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던 이들이
지금은 침잠 속에 저마다 생태, 환경, 생명운동을 한다고
마음수련을 하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기도 합니다.
그들의 판타지가 나는 언젠가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미래는 꿈꾸는 자들의 것이기 때문에.
큰 길을 버리고 옛길을 돌아
청평호반을 따라 가는 길은
자동차는 물론, 인적이 드물어
당신 생각하기에 참 좋았습니다.
어느날 당신이 마음 안에 들어오고
그 안에 지핀 당신, 맑은 씨앗이
벌써 많이 자랐는지, 그 존재감이
꽃송이로 피어오릅니다.
한송이도 아니고 마구마구 피어올라서 수북해지면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강물따라
산등성이와 땅자락의 끝무리가 강속으로 빠져들고
그 강은 또 어찌 그리 담담히 흐르는지,
그 강이 흘러 당신이 바라보고 있을
그 바다와 이어져 있음을 생각하면서
그 강물이 또 정겨웠습니다.
남이섬은 거기 그 자리에 있었을 테지만,
나는 이제야 찾았습니다.
메타세콰이어 그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의 강한 기운처럼
나는 이제야 당신을 그리지만, 당신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았겠지요...
당신의 섬을 이제 불러보지만,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 전부터
어쩌면 내가 찾아갈 그 섬으로
거기 그렇게 있었겠지요....
남이섬을 거닐며, 당신을 느꼈다고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다완같은 그릇모양의 섬을 싸고
강물의 그 부드러운 흐름이 어루만지듯,
당신의 숨결 느끼고 싶었으니까...
바람이 매섭게 강을 따라 불어왔지만,
차 한 잔에 몸을 녹이고, 나는 찬찬히
곧게 심은 소나무 숲을 따라 거닐었습니다.
당신을 가슴에 담고 어쩔줄 몰라 하는
이 마음의 여울은 어디로 흘러갈지....
고드름이 엉겨서 커다란 성을 이룬
소원의 나무 앞에서
당신 이름 또렷이 새겨두고서
이 잔잔한 열정 지켜달라고 빌었습니다.
늘 마음의 첫 자리,
당신을 두겠다고, 그래서
그 퍼스트(first)가 온리(only)가 되고, 올(all)이 되어
삶의 강물따라 흘러가다가
문득 어느 나루에 내리게 되면,
당신의 나무 정성껏 심어
늘 그리워하는 나무지기 되면 좋겠습니다.
강을 따라 이어진 당신의 마음길 따라
양수리를 돌아 강변북로를 끼고
어둠이 내린 서울에 들어서자
당신이 더욱 그리웠습니다.
도시의 불빛, 망막에 어른거리는 실루엣이
당신의 안경너머 눈동자같이,
온통 보석의 천국입니다.
도시엔 참 불빛도 많습니다.
내 마음 안에 당신의 등불하나 밝히는 일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저 도시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정령들이
살고 있는 것일지...
누군가를 위해 오늘 하루를 분주히 접대했을 당신,
오늘
온종일 나는 당신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공간은 달리, 멀리 있지만,
내 시간은 내내 당신과 함께 있었습니다.
시간 속에서라도
당신과 함께 있음이 행복했습니다.
<2007년 12월 30일>
첫댓글 그리움만이 그대에게 가는 유일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그리움 때문에 살아가는 일이 행복이 될 때도 있죠...^^
길~~~~게 쓴 것보다...딱 두 줄이 정답이네........누군교??
부산송년회에서 만난 아낙임.
금요일엔 가끔 한번씩 사람 찾아봐야겠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방엘 가면, 참 많은 이야기와 사연들이 저마다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나도 교보데이 좋아해요. 우리 거서 데이트 할까요?
아이~~~C~~책하고 데이트 하세요........
글을 잘쓰는 이들을보면...참,부러워요..^^ 사랑이라...혹, 은행나무사랑 아시나요? 멀리 떨어져있어 서로 바라볼수 없지만, 향기와 빛깔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슬픈은행나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