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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로여는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시여세
젊은 시인의 특집대담
“시는 결국 우리의 무엇을 발설하려 하는가!”
박성준(사회) · 김승일 · 송승언
생활과 시, 그리고 자기 규칙들
박성준: 안녕하세요. 2015년 신년을 맞아 시로 여는 세상 봄호에서 특집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2015년은 나름 유의미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정권의 중반기이기도 하고요. 의례 10년 주기로 문학적 경향을 구분할 때의 이야기이지만, 2010년대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수행해야할 시점이기도 할 겁니다. 그건 늘 반복되는 신세대론일 수도 있겠지요. 10년전 이 시기에는 ‘미래파’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2014년 한 해 동안 굵직한 현실 사안들이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채 방치되고 있는 면도 없지 않아 보이고요. 2000년대 후반에 데뷔한 80년대생 시인들의 시집들이 2012년부터 시작해서 연달아 출간되고 있고, 새로이 데뷔하는 신인들 상당수가 또 80년대생들로 유입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주목받는 젊은 시인 두 분을 모시고 가감 없이 편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두 분 모두 사석에서는 더 편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이렇게 대담 진행을 하다 보니 약간 어색하기도 하네요.(웃음) 우선 서로 근황부터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지요. 김승일 시인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김승일: 어제 운전하다가 좌회전하면서 기침했는데 허리에 담이 들어 결렸어요. 힘들어요. 지금 여기 앉아있는 것도요. 항상 어디 대담 갈 때마다 그 전날에 다치는 것 같아요.
박성준: 왜 대담 갈 때마다 다칠까요? 김승일 시인과는 서너 번 대담을 같이했던 것 같은데요. 매번 다쳐서 오시네요.(웃음)
김승일: 왜냐하면 대담은 거의 겨울에 하니까요.
송승언: 담 결리면 어떻게 되나요?
김승일: 아, 어제 하루 종일 누워서 ‘군대 안가면 좋겠다.’ 이런 생각했어요.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 이번 연도에 군대 가거든요.
박성준: 군대를 가게 되면 시집 계획 같은 건 어떻게 되는 건지 근황을 좀 더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김승일: 저는 지금 대학원에 다니고 있고, 수료했고, 논문 써야 하고, 시도 열심히 써야 하고, 그래서 지금 연희 창작촌에 살고 있고, 친구들이랑 작업실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엄마 아 빠 나이가 많이 들었고, 압박이 심해지고, 여자 친구랑 헤어졌고, 시 쓰는 게 제일 좋아 요. 요즘에는.
박성준: 지난 계절 세계의 문학에 발표한 시를 보니까 심경 변화가 보이던데….
김승일: 헤어지기 전에 쓴 거예요
박성준: 아, 그렇구나(웃음) 김승일 시인 말을 축약해보면 우리가 서른 살, 스물아홉이 된 시인들인데 현실이 만만치 않다, 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송승언 시인은 군필자이고 저랑 김승일 시인은 미필자이니까 김승일 시인 말처럼 부모님께 효도는 해야 하는데 군대는 끌려갈 것 같고, 나이는 서른이 되어가고, 대학원 과정은 끝났고, 또 소속도 없어지고, 학자금 대출도 끔찍하게 남아 있고……. 이건 뭐 화병이라고 생각해야 되나요.(웃음) 사실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화가 나죠. 요즘 젊은 세대들을 ‘5포 세대’라고 부른다는데, 그러니까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구입을 포기하는 세대라는 거죠. 사실 저는 시를 쓰는 일이 이것들을 다 포기하는 가운데 시작해야하는 것이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시인으로 이 사회를 산다는 게 결함투성이로 사는 거랑 다르지가 않지요. 그래도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죠.(웃음) 직업을 가진 또래 친구들은 1년에 천만 원 씩은 모으고 있는데 저는 학교에 있으면서 그 만큼씩 소비하고 있었으니까. 소속이 없어지고 나니 더 불안하기도 합니다.
김승일: 그래서 행복했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학교를 다녔어요. 사실 학교 다니는 거 싫지 않았어요. 오히려 학교에 있으면 저절로 똑똑해 지는 것 같고, 대학 사회라는 것도 꽤 즐거웠고. 사람 만나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학교 친구 같은 거 생기는 것도 외롭지 않아 좋았어요. 근데 이제 잠시 동안은 학교 안 가거든요 졸업해서. 대학 좋았는데…… 이상하게 다시는 안 갔으면 좋겠네요.
박성준: 그렇죠. 꼭 제도권 안에 들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울타리 밖으로 나온다는 게 뭔가 불안한 건 있을 겁니다. 송승언 시인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일을 그만 두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송승언: 저는 작년까지 출판사에 다니다가, 그만둬버렸습니다. (웃음) 청년실업 10만 시대인데 4대 보험 되고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퇴직금까지 챙겨주는 회사 나왔으니까 미친 거죠.
박성준: 그런데 왜 나오신 거예요?
송승언: 음, 개인적인 부분만 말씀드리자면 놀고 싶어서요. 조금이라도 놀 수 있을 때 더 놀고 싶었어요. 또 출판업은 사양 산업인데 거기에 얼마나 더 몸을 담고 내 미래를 꾸려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고민이 되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뾰족한 수를 궁리하고 나온 건 아니지만요. 많은 또래 친구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것 같아요. 대학원으로 진학한 친구들도 많은데, 그 친구들은 변변한 수입 없이 부모님의 재산에 의지해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제 대학도 교수와 강사의 규모를 줄이고 있으니, 그것만 바라보고 학업을 계속하는 이들은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해 보여요. 저는 부모님의 재산에 의지하며 대학원을 다닐 형편이 아니라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은 경우인데, 대학원에 가지 않아서 그나마 마이너스 인생은 면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일터에 있는 친구들의 경우도 자기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고, 그런 일터가 점점 없어지거나 혹은 그 노동에 대한 대가를 온당히 지불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 세대들이 보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겠군요. 어쨌든 아버지 세대들 다수에게는 나라가, 가정이, ‘너무 어려워서’ 경제 발전을 위해 한 몸 희생해야 한다는 희생 논리가 있었겠고, 그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처소들도 있었죠. 그리고 몸을 희생하면 자신과 가정을 그럭저럭 책임질 수 있는 보상도 주어졌고요. 그런데 우리 세대는 그렇지가 않아요. 희생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희생할 수 있는 처소가 있는 것도 아녜요. 대부분에게는 제대로 된 일터가 주어지지 않거나, 일터에 나가도 이 도시에서 제 한 몸 건사하기가 힘든 수준의 임금을 지불받죠. 집이 없는데 집을 못 사니까요. 그런 와중에 위 세대가 자신들이 희생한 ‘영웅담’을 늘어놓으며, 그것을 계승하라고 훈계하는 걸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러기 싫고 그럴 수도 없죠.
박성준: 그런데 이런 논리들이 이 시대의 청년들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시인이라고 해서 그런 논리를 대변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오히려 그와 반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승언 시인이 말씀하신 것 중에 저한테 꽂혀서 들리는 게 ‘불안’이라든가 오히려 ‘권태를 즐기고 싶다’ 정도로 들리는데요. 맞나요?
송승언: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지만, 저는 지금 좋아요. 일할 때는 저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제가 불필요한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게 견디기 어려웠어요. 지금은 텅 빈 시간이 많고, 내 생각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어 좋습니다. 불안 속의 평화라니 아이러니하지만요.
박성준: 그러나 그만큼의 불안을 가지고 갈 수 밖에 없고, 단지 우리의 고민거리라기보다는 우리 세대가 가진 공통분모들인데, 시인들에게는 좀 더 가혹한 것이요.
김승일: 시인으로서의 고민을 말하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직업이나 신분 때문에 괴롭다는 말은 다른 걸 하면 괜찮을 거라는 건데, 세상에 자기 직업 때문에 괴로운 사람 얼마나 많은가요? 물론 과거에는 시인만의 고통이 있다고 생각했죠. 뭔가 조금 더 낭만적이고, 가난과 사랑과 연민과 시마, 창작의 고통…… 그런 슬픔은 시인에게 당연한 것이고 시인이라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동경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고통이 존재했던 시대가 정말 역사 속에 있었던 것일까? 정말 사회적 고통보다 더 고귀한 고통이 존재했던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제가 느끼는 고통의 대부분은 사회적 고통입니다. 그건 시인이어서 느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박성준: 대신, 모두가 바쁠 때 조금 느리게 시를 쓰고 있다는 로망도 있지 않나요?(웃음)
김승일: 저는 오히려 시를 쓰면서는 고통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를 쓸 때는 슬프지도 않아요. 다 쓰고 나서도 슬프지 않습니다. 나중에 내가 그런 시를 썼던가 싶을 때 읽으면 슬픕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고통스럽기도 하고. 시를 쓰며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는 시 쓰는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말고, 돈 버는 거, 유명해 지는 거, 수지타산 떨어뜨려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예전에 누가 이렇게 말했으면 분노했겠지만. 시 쓰는 것을 취미의 수준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기도 해요. 시 써서 돈 벌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데 어떻게든 문단에 비비고, 국가에 비비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나 싶고요. 그래도 할 줄 아는 게 그럴싸한 거 창작하는 일이니까…… 시는 시대로 쓰고 돈 버는 일은 돈 버는 일대로 하겠다고 결심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박성준: 예, 대체로 동의해요. 우리가 단순히 전공한 과만 보더라도 송승언 시인은 문창과를 나왔고 김승일 시인은 극작과를 나왔고 저는 국문과를 나왔잖아요. 저는 예술고 문창과에서부터 학부, 대학원까지 줄곧 현대문학만 전공한 셈이라서, 사실 이 안에서 자꾸 더 고지식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출판사에서 근무하거나 창작 강의를 한다거나 하는 몇 가지 정해진 루트밖에 없잖아요. 어쩌면 시를 쓴다는 건 다양해지고 멋진 일인데, 반대로 생활은 단조롭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승일: 사실 저는 대학원에서 문화연구를 할 때 신문사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녀서 돈은 쓰지 않았는데요. 대학 사회가 개판이 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됐습니다. 기업 학교가 순수학문 다 때려잡는 시대에, 반평생을 예술 창작 배우는 학교 다니다가 별안간 순수학문 하겠다고 대학원엘 갔네요. 내 진로나 사회생활 같은 거 신경 쓰지 않고 뭔가를 선택해보고 싶었어요. 이번에 수료를 했는데 미래가 무척 어둡고 캄캄하네요. 그래도 아까 말한 것처럼 학교에 있으면 과제 같은 거 좀 빼먹고 그래도 약간 똑똑해지는 것 같더군요.(웃음)
박성준: 그렇죠. 귀동냥을 하고 누가 발제를 해오면 그 많은 양의 책을 내가 다 읽은 것 같고 그런 기분이 들지요.(웃음) 그때는 문예지를 보면서도 무슨 말인가? 했고, 뭐 지금도 늘 그렇습니다만, 시와 인문학을 취미로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학교를 다니는 것도 교육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데 그 소비를 다 마친 상태에서 우리가 얼마나 다르게 향유할 수 있는 주체가 되었는가 하는 건 각자의 몫이겠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셋 다 백수네요.
김승일: 아녜요. 전 사업가예요. (웃음)
박성준: (웃음)그럼 사업에 대해 말해 주세요.
김승일: 말만 사업가지 아무것도 안 합니다. 그냥 내 시간을 너무 많이 뺏는 직업은 갖기 싫었어요. 기존 문화산업에 대한 불만도 있고,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면서 불만만 너무 많아가지고 어린 애들이 늘상 그렇게 하듯이 새로운 판을 짜보고 싶었습니다. 문학이 상품성을 가지지 못하고 연줄이 모든 것을 흔들고 있는 사회를 바꿔보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했고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으니 뭘 구체적으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웃음) 이십대 후반 친구들 가만히 보면 다들 자기 할 일 바쁘고, 자존심은 높아져서 서로 흩어지기만 하잖아요. 사회 초년병일 때는 사회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인 양 굴죠. 과연 그게 모든 것일까. 정말 그럴까? 인정할 수가 없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돈 많이 벌어서 회사라는 이름의 텅 빈 공간에 격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회사에서 하려던 게 죄다 줄줄이 망해서요. 저는 지금 파산 상태이고 카드값도 못 갚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아요. 오히려 대차게 망하니까 마음도 편하고, 나 좋은 일만 하다가 군대나 가야겠다. 그런 생각 합니다. 누가 이 대담 보고 저한테 작은 아르바이트 거리라도 주겠죠. 제발 주세요.
박성준: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우리 셋 다 무척 조용하게 힘들군요. 권태라고 할까요?
김승일: 아니 난 행복해요. 죽고 싶기는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아요. 세상에 할 게임도 많구요.
박성준: 아, 게임 이야기 좀 해볼까요? 게이머잖아요.(웃음)
송승언: 권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놀면서도 막 지내려고 하지는 않아요. 전날 술을 마신 게 아니면 가급적 아침에 일어나요. 시간표도 있어요. 굉장히 단순한 시간표예요. 12시부터 18시까지는 ‘뭔가를 한다.’ 18시부터 24시까지는 ‘아무거나 한다.’ 그리고 24시부터 2시까지는 쓰고 읽는다. 이런 이상한 시간표인데요.(웃음) ‘뭔가를 한다’ 시간은 원고를 쓰든 요리를 하든 내가 생활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일들을 하는 시간이고, ‘아무거나 한다’ 시간은 내키는 뭐라도 가능한 시간이에요. 게임하며 놀아도 좋고, 뭔가 읽고 싶다면 그냥 읽어도 되고요. 바쁜 일이 있다면 그걸 해도 돼요. 24시부터 2시까지는 제 개인적인 글쓰기와 읽기를 하는 시간이고요. 제가 아침에 일어난다고 그랬는데,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는 ‘아무것도 안 한다’ 시간이에요. 깨어 있으면서도 일부러 제 바깥으로 향하는 일은 아무것도 안 하죠. 주로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가만히 있어요. 저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아요.
박성준: 보통 그 시간에 자고 있지 않나요? 10시 정도 일어나면 가장 맑은 시간 아닌가요? 보통 새벽에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김승일: 저도 8시에 일어나요. 저도 승언이 형처럼 비슷하게 살아요. 논문도 써야하고 아무 것 도 안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뭔가 해요. 9명이 공동으로 쓰는 사무실 겸 작업실 설거지를 내가 해야 되고, 난로에 기름도 사와야 하고 청소도 해야 돼요. 그리고 나면 12시 쯤 돼요.
박성준: 정일근 시인의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이 생각나네요. 저는 오늘 3일 만에 집에서 나왔어요. 마감은 계속 갱신되는 거라서, 뭐 지옥에 있었죠.(웃음)
김승일: 3일 만에 나왔다구요? 박성준 시인이 지금 제일 문제네요. 햇빛을 창문으로 받으면 비타민 D가 발생이 안 된대요. 나가서 걸어야 해요. 제가 너무 안 걸어서 지금 기침하는데 담이 걸렸잖아요. 그래서 이제 배드민턴을 치려구요. 이거 끝나면 저 배드민턴 등록하러 갈 거예요.
박성준: 그래요. 생활과 시에 대한 이야기는 이걸로 정리하죠. 저도 나름에 규칙이 있는데 두 분보다 제가 좀 느슨한 것 같군요.
김승일: 규칙이 없는 삶 보다는 규칙이 있는 삶이 최근엔 더 재밌어요. 그래서 학교 다니는 것도 조금 좋아했나 싶고요. 왜냐면 학교 가기 싫은 날에는 학교를 가지 않으니까 뭔가 더 내가 주도적으로 사는 것 같기도 했고. 자기 삶을 규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유는 없고, 자유라는 단어도 그런 식으로 사고되어서는 안 되고요.
송승언: 저도 교회나 성당 이런 곳을 다니지는 않지만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신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기능할 수 있는 법이나 규칙들을 내가 지킴으로써 얻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무의미한 오전을 보내는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은 분명 무언가 잉여를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그게 전체적인 자기 체계 속에 놓여야 유의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은 다른 무언가를 하는 시간들 사이에 놓인 여백 기능을 하는 셈인데요. 이것이 제 생활이라는 하나의 규칙 안에서 작동해야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그렇잖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만이 끝없이 지속되면 그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 해요.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겠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의 끝없음, 그건 죽음과 같으니까요. 많은 백수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텐데, 그건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자체의 무게에 짓눌리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살려면, 자신이 삶 속에 놓여 있으려면 규칙이 있는 게 좋아요. 전체적인 자기 체계를 지키면서 자신이 만든 규칙을 지키는 순간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지, 규칙이 아예 없거나 남들이 만든 규칙 속에만 놓여 있다면 그건 자신이 아닌 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자기가 없다’, 라거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 말을 저는 그렇게 받아들여요. ‘자기 준규가 없다’, ‘자기 준규를 만들어야 한다.’
김승일: 그래서 저는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은 평양냉면을 먹어요. 돈이 없어도요.
박성준: 그 이유가 있나요?
김승일: 그게 제 규칙이에요.
박성준: 아, 그렇게 치자면 저도 규칙 있어요. 저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참치회를 먹어요.(웃음)
김승일: 그래요. 그게 규칙이에요. 그게 박성준 시인이에요. 박성준 시인을 생각하면 참치회 밖에 생각나지 않아요. 황인찬 시인이 박성준 생각하면 참치가 떠오른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송승언: 박성준 시인이 참치회 먹으러 간다고 말하는 걸 자주 듣게 되는데, 보통 이 정도 벌면서 참치회 자주 먹기는 힘들잖아요? (웃음)
박성준: (웃음)뭐 저는 참치에 대한 어떤 즐거움들이 있으니까요. 근데 우리 좀 불쌍하네요.
김승일: 저는 아녜요. 저는 제가 안 불쌍하다니까요. 군대 빼고는 다 괜찮아요.
송승언: 그래요. 군대 가는 일은 이 시대의 가장 불행한 일 중 하나죠.
박성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러네요. 자기 규칙을 만들어 놓고 살아가기 어려운 게 있지요. 사실 우리가 사는 동안 자기 규칙을 세우는 것보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규칙 속으로 편입되거나 귀속될 때가 더 많잖아요. 저도 소소한 규칙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루에 일정시간은 뭘 좀 해야겠다고 억지로 컴퓨터 앞에 있거나 책을 뒤적이곤 합니다. 마감이 아니라 쓰고 싶을 때 쓰자는 생각도 늘 가지고 있고요. 물론 잘 못 지키지요.(웃음) 매번 여러 가지 곤궁들이 있으니까요. 내 규칙과 바깥에 규칙을 대치시키는 일이 어쩌면 참 무모하지만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승일: 저는 시 쓰는 일도 비슷한 거라고 봐요. 저는 그냥 나를 시 쓰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거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도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 중2병과 얼마나 많은 예술병과 얼마나 많은 대책 없음이 나로 하여금 시를 써라, 시인이 되어라, 시집을 내면 좋을 것이다. 부추겼던지 몰라요. 이제 그런 거짓 숙명이 저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에게 시는 사이비 종교와 같습니다. 저는 시를 믿지 않지만 다른 어떤 것들보다는 시를 믿어요. 그렇게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믿어보기로 저는 저와 약속했습니다. 그게 저와 시의 협약이고, 제 삶의 규칙입니다.
시적 발언에 대한 사회적 의미와 역할
박성준: 예전에는 나에 대한 생활이나 질서들, 그러니까 그 소소한 것들을 지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바깥과 나를 단절하면 불편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자꾸만 바깥의 질서가 우리를 위협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제가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고 이 이야기를 좀 키웠습니다.(웃음) ‘세월호 이후 통진당 이후의 시’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습니다. 여름호 이후 거의 대부분의 문예지에서 세월호 특집 기획을 했었고, 시인들이 참여해서 추모시집도 내고 그랬었지요. 올해 봄호에는 또 통진당 사태에 대한 관심이 쏟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과 정치’, ‘문학과 사회’라는 과제는 늘 우리에게 가까운 평행선인 동시에, 언제든지 우리 시의 교차점이 될 수 있는 ‘기울기’라고 생각합니다. 송 시인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세월호 추모시집에 참여하시지 않으셨나요?
송승언: 아뇨, 시집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청탁도 없었어요. (웃음) 아마 청탁이 있어도 거절했겠지만요. ‘304 낭독회’가 계속되고 있는데, 거기에는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통해서 잊지 않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중요해보였기 때문이에요. 애도라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애도 아닌가 싶습니다. 거대한 죽음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도하는 ‘시’와 ‘언어’가 나오시는 분들,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되고요.
올 포지션 봄호에 젊은 시인들 대상으로 ‘자신의 시의 핵심은 무엇인가’라는 주제 청탁을 주셔서 짧은 시론을 보냈는데요. 저는 “내 시의 핵심은 재미이다.”라고 약간은 장난스럽게 말했어요. ‘나는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에 대해 쓰려고 하며, 내가 싫어하는 시는 내가 보기에 재미가 없는 시이다.’ 대략 이런 요지의 글을 썼습니다. 최근 몇몇 지면에서 ‘왜 시인 지망생들과 젊은 시인들은 세월호에 대한 시를 쓰지 않는가’라는 애탄의 글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에 대해 저는 약간 비꼬듯이 ‘그 분들이 사회문제에 직접적인 발언을 하는 시를 원하는 것은 그 분들이 그런 시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고, 나는 그런 것에 재미를 느끼지 않는다.’라고도 썼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런 것들에 대해 ‘노골적인 단어’들로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사회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느냐, 영향 받지 않느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니거든요.
아까도 말하려고 했던 거지만 실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틀로 보면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일제강점기 독립과 한국전쟁 전후로 하여 만들어진 나라잖아요? 새로 만들어진 나라에서 새로운 사회를 굴려야 하다 보니까 할아버지 세대들이 일차적으로 사회 구성의 동력원이 된 셈이고요. 그러한 건국 과정에서 자기희생과 양보가 있었어요. 즉, 그것은 국가라는 처소에 나를 투신하는 거죠. 우리 문학으로 치면 초기에는 ‘나’가 ‘작품’에 투신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인의 삶과 시를 등호화시키고, 작품에 자신을 날것으로 투영시키는 것이 가능했는데, 우리 세대는 일단 그런 시기를 지나왔다 봅니다. 정확히 말해 우리는 시를 쓰고 있긴 하지만, 이 사회에 ‘작가로서의 책무’를 느끼고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세대는 아니에요. 김승일 시인은 시 쓰기를 취미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되지는 않고, 하지만 무슨 심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돼요. 유사한 의미에서, 저는 시인으로 살고는 있지만 제가 시인인지는 모르겠어요. 정확히 하면 저는(또한 많은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시인’이 아니에요. 예컨대 저는 서울시를 살아가는 시민이고 대한민국의 삐딱한 국민이지만 그러한 ‘사실’을 왜 저의 시에 언급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시민으로 살건 시인으로 살건 말이죠. 왜 당신들이 바라는 그런 시를 써야 하죠? 할 말이 생기지 않으면 언급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혹은 내가 만든 세계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써도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착각들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시의 표면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아 얘들은 사회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서 쯧쯧 혀를 차는 거죠. 정말로 큰 착각이 아닐 수가 없어요. 인간인 이상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 수는 없는 거고요, 사회로부터 오는 음울한 힘이 분명 우리에게도 전해져오고 그런 것들이 우리의 쓰기에 영향을 미치게 돼요. 세월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어도 그 죽음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러면 죽음에 대해 접근하는 태도가 확실히 생기거든요. 동세대 시인들의 그러한 태도들이 모이면 그게 한 세대의 태도로 비로소 작동하게 되는 것이지, 한 개인들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시를 평가 절하하고 문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건 좀 아니라고 봐요. 텍스트의 표면적인 부분만 읽으려고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박성준: 저 같은 경우도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고 지난여름 현대시에 「물」이라는 시를 발표했는데 그 시를 다른 지면들에서 세월호에 관한 시라고 해석을 하더라고요. 물론 시인으로서 현실 사태를 메타포로 사용하거나 어떤 목소리를 발언하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요. 그런데 뭐랄까요. 그 당시의 비평적 시선이 너무 과하다고 할까요. 현실 사건이 먼저고 그 기간에 생산된 시편들을 다 그 쪽으로 몰아간다는 인상이 있기는 했습니다. 평론이라는 게 어쩌면 이 작품의 작품됨의 자질을 읽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작품의 생산조건이나 옹호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지, 이런 식으로 이미 설정된 어떤 것에 제 시를 귀속시키는 건 그리 기분 좋은 평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평론은 하는 마음은 좀 단순한데요. 왜 옹호를 받아야하는가 하는 물음보다는 읽는 이가 어떻게 반응했고, 감흥 했는지를 판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제론을 잘 못쓰기도 하는데요. 내가 사랑하는 시인들을 쓰고 싶다는 근본적인 생각은 절충이 잘 안 되더라고요. 더구나 시에서 현실태를 인식/직관하는 시적 정념 자체를 기술이나 하나의 방법론으로 택하는 전략적 태도를 보이는 몇몇 시편들이나 시인들에 대해서도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 문제 참여하는 태도 자체를 무슨 ‘포인트 쌓기’ 정도로 바라보는 시선에도 굉장한 징그러움을 느낍니다. 너무 과한가요?(웃음)
김승일: 사람들이 정치적 체념에 빠졌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쉬운가요. 저는 벤야민의 수집가 개념을 매우 좋아하는데요. 기억과 흔적을 발굴하고 그것을 자의적으로 묶어 알레고리로, 새로운 역사로, 성좌로 재탄생시키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도 벤야민이 낙관했던 수집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세월호 사건에 있어서도, 애도가 수반되지 않은 수집과 알레고리 만들기 행위는 실상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만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 저는 논객들이 세월호에 대해 떠들면서 자기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심취하는 꼴을 종종 봅니다. 너무 괴로워요. 어떻게 이들은 이렇게 쉬울까? 세월호에 대해서 내가 지금 당장 무엇을 수집할 수 있을까?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언론, 거리, 법을 통해 세월호는 엄청나게 많은 파편들을 이 사회에 뿌리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 자의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남들이 다 하는 말 그대로 옮겨 적는 건 쉽죠.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솔직하게 내 생각을 밝힌다고 그게 정말 내 생각인 것도 아니잖아요. 사후판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걸 지금 시로 쓸 수는 없는 겁니다. 저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요. 분명히 나중에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무슨 W.G. 제발트라도 된 양, 제대로 애도가 되지 않아! 떠들고 싶지도 않아요. 정치적 체념으로 얼마나 세상이 공허한지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여기 이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충분히 큰 영향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시를 쓰고 있고요. 방금전에 아직 나는 세월호에 대한 시를 쓸 수 없다고 밝혔지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시들이 정말 그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일까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다만, 세월호 사건을 너무 성급하게 상징으로 치환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상징이 싫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어째서 세월호 피해자들을 세월호 희생자라고 부르는가요? 피해자 아닌가요?
송승언: 희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감정적인 힘을 정치적 도구로 쓰려는 사람들이 쓴 말이라고 봅니다. 애초에 이 정부에 불만이 많은 이들의 시각에는 그것조차 ‘이 썩은 정부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희생하는’ 걸로 보이는 걸까요? 비슷한 맥락에서 ‘열사’라는 단어도 정치적 도구로 남용되고 있죠. 그러한 잘못된 단어 사용들이 오히려 사건의 진상을 현실 정치의 뒤로 은폐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바로 쓸 일이죠.
김승일: 시 쓰는 사람들에게 너네 시가 왜 그렇니?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 그렇게 말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신 차리고 사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까? 내 전집을 읽어보신 것도 아니고.
박성준 : 그래도 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특집들이 애도를 하는 과정으로 지속되는 것에 대해는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데 이것이 갑자기 문학적 윤리 안으로 들어와서 혹은 정치 윤리가 되고, 다시 담론상품의 윤리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할 부분이지요. 어쨌든 정서나 정념적인 부분을 이슈나 기획 논리에 사용하는 것을 지양해야할 것입니다. 세월호의 경우, 애도를 수행해야할 공동 장에서, 그러니까 사회 역사적 채무와 책무의 측면에서 고려되어야할 부분이니까요. 김승일 시인의 말처럼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닌데, 아직 파편화 되어있는데, 사건 자체를 총체적으로 해안할 눈과 귀가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에서 서둘러 어떤 포즈를 교양적으로 잡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과연 이 사건이 무엇인가. 계속 반문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져야할 ‘진행 중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김승일: 문학을 언론하고 똑같이 보면 안 되죠. 언론처럼 새로운 사건 터지면 보도하는 것 하 고는 다르죠. 새로움 또 새로움. 이런 것만 추구하면 안 되죠. 최근에 시인들 시 보면서 요즘 너무 힘들어요. 오로지 새로운 뭔가를 쓰려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당당하진 않아요. 문예지가 집에 오면 펼쳐봅니다. 불면 다 날아갈 것 같습니다. 괴롭습니다.
송승언: 몇몇 분들이 ‘신인들이 형식적으로 다 엇비슷하거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안 갖고 기술적으로만 단련이 되어 있다’고 비판을 하시는데,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당대 사회 문제만을 좇는 시와 유행하는 형식만 추구하는 시가 보여주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나타나는 표면 양상은 다르지만 그 속의 저의가 같다는 겁니다. 그런 시들은 대개 특정 단어들을 통해 ‘나 그 문제에 지금 반응하는 중이야’, 또는 ‘너희들이 읽은 그거 나도 읽었어’라고 노골적으로 환기되죠. 지난 여러 유행들 중 특히 크게 느껴졌던 건 바틀비 유행, 또 양자역학 등의 과학 이론 같은 거 들고 와서 과학과 문학의 교접이라며 사이비처럼 엮는 시들.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되던가요? 그 흐름이 지나고 나면 그것에 대해 깨끗이 잊어버려요.
김승일: 그렇습니다. 애도라는 게 과거의 애도를 묻어버리기만 하면 그게 진짜 애도인가 싶네요. 2013년에 무슨 일이 있었죠?
박성준: 2013년에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죠.
김승일: 2012년에는요?
박성준: 2012년에는?
김승일: 제 시집이 나왔죠.(웃음) 무슨 말이냐면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야기 안 해 요.
박성준: 네, 2012년에는 제 시집도 나왔었네요.(웃음) 송승언 시인은 2012년에 뭐 있었죠?
송승언: 지긋지긋한 학교를 졸업했었습니다. (웃음)
2010년대의 시와 반복되는 세대론 문제
박성준: 저는 시집 묶는 일과 석사 논문을 같이 썼답니다. 그때는 서로 다른 작업이 부딪혀서 그런지 정말로 힘들었던 것 같네요. 그럼 우리 2012년으로 돌아가 볼까요?(웃음) 2012년에 젊은 시인들의 시집들이 한꺼번에 출간되면서 너무 이르게 세대론을 소비해버린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 1월호 원고 중에 ‘현대시와 딕션 문제’라는 주체로 쓴 글이 있는데요. 사실 새로운 딕션을 출현에 초점을 두고 쓴 글이라 세대론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그간에 나왔던 80년대생 시인들의 시를 대상으로 한 기획 원고들을 거의 모두 살펴보았는데요. 호명에 있어서 가장 많이 됐던 시인은 황인찬 시인이더라고요. 물론 황인찬의 시가 2000년대의 시와 70년대생의 시편들과의 변별점이 되는 부분이 강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지만 말이지요. 여기 있는 김승일 시인과 송승언 시인도 있었습니다. 그 평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부분은 자기 주체로 돌아오는 시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약간 서운한 점은 너무 나이로 축약해서 따지고 있는 형태도 그렇고, 바로 전 세대와 변별점을 이야기하려는 태도도 그렇고요. 미래파의 파괴(단절) 윤리를 비평적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신화로 만들려고 했던 평론가들이 우리 세대 시인들에게 와서는 상속이니, 수혜니 하는 관점으로 돌아서는 태도도 불편하기는 했습니다.
김승일: 많은 사람들이 파괴하는 힘과 윤리를 엮어서 설명하곤 하는데요. 저는 과거에 박상수 평론가가 시와반시에 발표한 「무한(無限)의 주인-신형철의 ‘윤리 비평’과 2천년대 “뉴웨이브”를 둘러싼 외설적 보충물에 관하여」라는 글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제 마음을 다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고요. 현대 시인들의 시가 무한히 팽창하고 싶어 하는 자아의 외설적 욕구일 수도 있는데, 그걸 죄다 주체의 윤리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런 얘기였는데요. 갈증이 해소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파괴를 위한 파괴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 상품을 위한 상품일 수 있습니다. 그저 그것들에 불과하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들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에 윤리를 붙여서 판매할 수 있었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들의 새로움은 더 이상 상품성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박성준: 그 윤리라는 개념도 사실은 느슨했지요. 박상수 선배의 그 비평도 상당히 유의미한 글이었고, 약간 통쾌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당시 세대론 자체가 느슨한 개념에서부터 출발했는지도 몰라요. 다만 90년대의 다양한 시적 양태들 중에서 서정시가 차지하는 지분이 너무도 강력해서 그걸 무너뜨려야한다는 당위가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저도 부정과 파괴는 무엇보다 중요한 시 정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마땅히 부숴야 할 장소와 시간들이 시 바깥과 도처에 낭자하게 있지요. 그러나 시 안에서 부수는 것들에 대해서는 선택의 문제이지 강요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위, 부정의 정신을 가르치려는 태도들은 이제 평단에서 버려졌으면 좋겠고, 그러니까 우리 세대들이 너무 쉽게 시집 출간부터 호명까지 이루어졌다는 색안경도 흐려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물론 이전 세대의 시인들과 비교해보면 우리 세대는 다른 조건 아래 있었지요. 전 세대 시인들은 파라21이나 포에지, 시와 사상과 같은 잡지들을 통해서 등단하는 등 데뷔 경로도 주요지에만 치중되지 않았고, 몇 년씩 묵혀 온 원고들이었다는 점이나 문지, 창비 시선이 아니라 랜덤하우스나 열림원, 시작 등의 신생 시선에서 시집을 출간했다는 점만 고려해보아도 알 수 있지요. 당대 선배들의 목소리가 문단에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현재와 당대의 조건들이 다른 것이지 시에서 정언윤리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우리에게는 다른 조건에서 다른 방식이 있을 터인데, 한 세대가 신화가 되고, 다시 그게 폭력으로 내려온다는 건 너무 과한 거 아닙니까?
김승일: 단순히 신화이고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냥 상품에 불과한 것 아닌가요? 이제 시라는 상품은 다시 가치가 없는 상품이 된 것이고요. 그렇다고 뭐 짜다시리 미래파 시절에 시집들이 그렇게 많이 팔린 것도 아니죠.
박성준: 담론으로 팔렸다는 건가요?
김승일: 담론 생성을 비평가가 한다고 그게 비평가의 농간이었다, 시에다가 어쭙잖은 윤리 붙여가며 외판원처럼 시 판매하고 다녔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왜냐면 담론의 최대 수혜자는 시인들이 아니라 평론가를 고용하고 결탁하여 자신들이 이렇게 사회나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섹시하게 어필할 수 있었던 거대 출판사들이며, 사실상 출판사들이 돈 벌려고 출판하지도 않죠. 근데 젊은 시인 중년 시인 가릴 것 없이 시집 내는 데 그렇게들 목을 매고 다니니 거대 출판사가 갑이 됩니다. 시인들은 자기가 노예라는 것도 모르고 희희낙락이고. 저보고 전 세대들이 ‘너는 너무 쉽게 가져갔다’고 하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거 다시 줄게. 나 이거 가져가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너나 다 가져라. 교수도 하고 다 해라. 내가 가지고 싶은 건 그딴 게 아니야. 내가 가지고 싶은 건 훨씬 더 멋진 거고 비싼 거야.’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저는 시 쓰려고 앉을 때마다 세상을 바꿔야지 결심합니다. 근데 한낮 김승일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어요? 그래도 빛나는 아이디어로 담론에 맥을 이어야지. 그딴 생각 버리려고 저렇게 터무니없는 결심 많이 많이 합니다. 책상에 앉을 때마다. 세상을 바꿔야지…… 박성준 시인은 평론가니까 담론의 맥을 잘 이어주셔야 하겠지만(웃음)
박성준: 저를 공격하는 건가요?(웃음) 뭐 아까도 이야기했었지만 저는 엄밀히 말하면 평론을 한다기보다는, 시인으로서 하는 고백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제가 사회를 보다보니 비평적 시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고 하는 게 없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든 시인이 먼저라는 겁니다. 제가 쓰는 평이 지나친 감성 논리에 기우는 것도 어쩌면 시인을 이해하겠다는 노력 때문이에요. 그리고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밖에 없어요. 아카데믹하지 못하죠. 어떤 잣대를 대는 것보다 내가 사랑했던/하는 시인들을 지지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을 때가 있지요. 그래서 제 글이 상당히 누추해 보일 때가 있고요. 하지만 역으로 그게 다행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시를 억압하지 않으니까요. 어떤 현상이나 판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쓰고 있는 시를 이곳에서 탈거하는 가운데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하는데 그게 시인으로서 불편한 겁니다. 아까 언급했던 원고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제 시가 새로운 딕션이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시를 쓰고 있는데 저를 빼두고 평론을 시작해야하니까요. 자꾸 글쓰기 자아가 부딪히지요. 그래서 또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거죠. 저는 우선 시 쓸 때 더 살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니까요. 송승언 시인께 질문하고 싶었던 걸 놓쳤는데. 뭐 이런 겁니다. 어쨌든 또래 시인들의 시집들이 앞서 출간되었고 이제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지요. 작년 같은 경우 저는 유병록과 김현의 첫 시집이 특히 좋았고요. 임경섭, 성동혁의 경우도 세대를 떠나 다른 부분에서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김승일: 이런 말하니까 이준규 시인이 생각나네요. 대담에서 이런 말 하는 거 싫어하던데. 무슨 시인 좋더라 무슨 시인 구리더라 이런 얘기요. 저는 누가 좋고 누가 싫고가 없어요. 그냥 다 싫어요.
박성준: 뭐 어쨌든, 김승일 시인 나 송 시인한테 질문 좀 할게요.(웃음) 이번 실천문학에서 젊은 시인 특집을 한다고 하는데요. 거기서 김승일이나 황인찬 같은 시인들을 앞 세대라고 생각을 하고, 송승언 시인을 비롯한 아직 미출간 시인들은 다음 세대로 보는 시각도 있나 봐요. 저는 이런 기준도 조금 무리수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느끼세요?
송승언: 세대론 자체를 폐기하기는 어렵겠죠. 그러나 저는 요즘의 지면을 채우는 세대론 일반이 좀 탐탁찮게 읽히는데요. 과거의 세대론은 좀 장르론 같이 읽혔었거든요. 그러니까 기성의 시와는 구분되는 시가 목전에 있고, 그 시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이 있으면 그 특질들을 묶어보려는 게 보였는데, 작금의 ‘젊은 시인’이라는 타이틀로 묶이는 것들을 보면, 우선은 시인들의 실제 나이로 묶고 봐요. 요즘 사회가 이런데, 이 또래들은 이런 사회에서 이렇게 살았으니까 그러면 어떤 시를 쓰는지 보자, 이런 식인 거죠. 그러니까 시가 세대 앞에 있는 게 아니라, 세대가 시 앞에 있는 겁니다. 완전히 반대인 거예요. 묶이지 않는 걸 억지로 묶다가 보니(기획 단계에서 이미 시가 아닌 나이로 묶어놨으니까) 전혀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기도 하고, 나이에 따라 소외되는 시인들도 나오고 그러지요. 신인인데도 서른을 넘겼다, 마흔이나 쉰이다, 그러면 시를 볼 것도 없이 세대론에서 제외, 웃긴데 실제로 이러고 있잖아요.
저는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제 밥그릇을 잃어가는 문학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 분들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심증이니 ‘이게 맞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대로 가다간 문학이 상품성을 완전히 잃고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귀퉁이 자리마저 잃을까 하는 위기의식? 그래서 상품이 될 만한 나이가 젊은 시인들을 계속 상품화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고요. 말이 웃깁니다만, 문학도 아이돌 상품 만들고 싶어서 계속 해보는 거죠. 팔려야 사니까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궁극적으로 유지가 되는 거니까. 기분은 찜찜하나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고, 좀 복잡한 기분이죠.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식으로 ‘젊은 시인’과 ‘세대’들을 소비하면 상품으로서의 문학적 가치는 훨씬 더 빨리 소모될 겁니다. 사실 거의 마지막 카드라고 봐요.
박성준: 그렇죠. 마지막 카드라는 말이 맞네요. 그런데 그걸 서둘러 꺼내 들려고 하니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세대론을 보고 새롭게 유입되는 시인들이 또 거기에 맞춰서 쓰려고 하는 노력 같은 게 있는 것도 같아요. 이건 일종의 기시감을 유발하기도 하지요. 그런 그릇된 포즈가 저는 더 불편합니다.
송승언: 하여튼 이거 정말 별로예요. 생물학적인 나이로 나누고 본다는 거요. 물론 시대 상황, 경제와 문화, 주거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생활의 풍경으로 보면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삶의 경험들은 있죠. 물론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다만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거지, 우리가 그런 것들 자체에 대해 시로 쓰지는 않잖아요. 세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면 시를 먼저 읽었으면 좋겠어요. 시인들도 시를 안 읽는데, 누가 시집을 사주겠어요? 자기 시집 자기가 사서 자기만 읽는 거죠.
김승일: 성급히 세대론이 나온 이유는 그 전 세대에 세대론으로 재미를 좀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문학만 세대론으로 재미를 봤나요? 여기저기서 세대론 장사가 잘 됐으니까 문학도 세대론 장사 다시 해보려고 했던 거죠. 근데 어때요?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야, 파토스도 줄어들었어, 수사력도 떨어지지, 솔직히 얘네 시 읽었을 때보다 미래파 시 읽었을 때가 좋았다는 거죠. 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세상 속도 따라가면서 장사 좀 해보려다가 자기들이 말려놓고 왜 저희들 탓을 합니까? 저는 여러분이 순수문학으로 세상 속도 따라가려고 했다는 게 믿을 수가 없군요. 순수문학으로 장사 하시려면 머리를 많이 쓰셔야 합니다. 토렌트도 있고 시인광장도 있는데 이걸 누가 삽니까?
박성준: 우리 약간 격앙이 되어 있는데요.(웃음) 저는 이런 생각도 있어요. 저랑 여기 두 분들은 좀 이른 나이에 데뷔를 해서인지 문단에서 우리가 우선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단지 상품성이라고 몰아서 판단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고요. 우리 또래들이 이르고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데뷔해서 나오니까 1차적으로는 새로운 것에 대해 궁금하고 매혹을 가졌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매혹에 대해서 서둘러 지분을 확보하려고 하다보니까 상품 논리로 경도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요즘 등단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또 우리 또래들인데, 이 친구들에게도 너희는 어떤 새로움을 보여줄 것이냐, 하고 다시 강요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조금 거짓말 보테자면 김승일, 박성준, 송승언을 읽었으니까 그들과 또 다른 젊음을 요구하는 시선이 있고 그로인해 신인들도 어떤 경향에 휩쓸리게 된다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젊음을 보여주려고 쓴 적은 없었거든요. 내가 해결이 안 되니까 쓰게 되는 거지, 그리고 쓰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쓰는 거지, 말이에요. 그런데 역으로 이런 경우도 다반사에요. 일테면 작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공모기간에 특집 인터뷰를 보니까 굉장히 화가 나더라고요. 근래 신춘출신 시인들에게 인터뷰를 한 내용이 있었는데 나는 시로 돈을 못 버니까 다른 거 하겠다는 식의 사례를 모아둔 겁니다. 신춘을 발판 삼아 방송 PD가 되거나 문화콘텐츠 제작을 한다거나 하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보게 되는 것이지요. 무슨 자격증 시험처럼 말이에요.
김승일: 스펙이 되는 거지요.
송승언: 특히 평론이 그런 게 많다고 들었어요. 등단하고 나서 평론 활동 안 하고 교수 임용이나 다른 데 취직할 때 한 줄 써 넣고 하는 거죠. 그래선지 현장 평론하는 분들 많이 안 계시잖아요.
박성준: 왜 나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하지?(웃음) 무튼 문학이 스펙이 된다는 건 좀 무서운 일이예요. 엄청 섭섭하기도 하고요. 저는 다음 시들이 계속 궁금하거든요. 어떨 때는 내가 쓰는 시들보다 다음 시들이 궁금해요. 이렇게 궁금해 하다가 어느 순간 6년차가 된 거예요. 조금 두리번거리다가 6년! 그렇지 않나요? 김승일 시인은 6년차 같아요?
김승일: 예. 6년차 같아요.
송승언: 어쨌든 이 땅의 모든 게 다 시장논리로 굴러가니까 판을 유지시키려면 상품을 만들어야 하고, 그중에 새로운 세대가 상품화시키기 가장 좋은 건 맞는데요. 그런 상품을 만드는 평론가, 편집자 분들의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장 급하다고 대충 만들지 말고, 상품을 잘 만들어서 잘 팔면 문학도 그만큼 오래 생명 유지를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좀 더 오래 살면 좋잖아요? 그러면 잘 보살펴야죠. 과거에 미래파 풍의 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근과거의 시장은 서정시 시장이었는데요. 그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고 안 팔리니까 미래파 시장을 만든 거죠. 제가 스무 살에 대학 입학하고 나서 어떤 선생님이 강의 시간에 『여장남자 시코쿠』를 들고 강의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듣고 재미있어한 적이 있어요. 요즘 사람들이 다시 시를 읽기 시작한다며, 자신은 황병승의 시가 잘 이해되지 않지만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블로그에 그의 시를 올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거예요. 그게 결국은 시가 다시 어느 정도 수요층이 생겼다는 말과 같은 거고, 시가 읽히는(즉, 팔리는)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섞인 말로 들렸는데, 그 기대만큼 현대시 시장이 커졌느냐면 그건 보시다시피 아니네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명맥 유지는 될 정도라고 봐요. 이야기하다 보니 보들레르가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 라는 글에 썼던 글의 일부가 생각나요. “결코 시를 버리지 마라. 시는 예금의 일종으로, 나중에서야 그 이자를 맛보게 된다. 물론 대단한 이득이다.” 그 말은 시를 오래 꾸준히 쓰면 실제로 인세든 원고료든 들어오고, 조금 더 열심히 쓰다가 운이 따라주면 상금도 받고…… 이렇게 실제적인 돈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시는 예금의 일종”이라는 대목은 이렇게 읽히기도 해요. 시는 오랫동안 기억되고 누적된 후에 빛을 보는 시간의 장르다, 라는 거죠. 쉼보르스카의 인터뷰도 생각납니다. 생전에 한 기자가 시인에게 질문했어요. ‘당신은 사회적인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왜 그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시들은 잘 쓰지 않느냐’라고요. 그는 ‘그런 시는 오래 못 가니까.’라고 대답했죠.
세월호 사건 직후에 세월호에 대해서 쓸 수도 있겠죠. 기사를 통해, 문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얻은 말들과 받은 감정들로 시를 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런 즉각적인 반응들이 얼마나 생명력을 가지고 오래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물론 사건 속에서 활활 불타올라 그 사건과 함께 산화하는 듯한 시들 중 뛰어난 것들이 많음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결코 그 시들이 가진 힘들에 대해서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저는 시인들이라면 그런 시를 써야 한다고 훈계하는 목소리에는 반대하고 싶습니다. ‘애도’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소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세월호 사건은 터졌고 되돌릴 수는 없잖아요. 그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을 거라는 말이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는 말이죠. 시간 속에서 축적되는 그 영향력이 우리에게 ‘이후의 시’를 줄 수도 있겠죠. 당장은 실어증에 걸린 듯이 세월에 대한 말을 할 수 없는 시인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많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후의 시들은 당장 현재의 사안들에 대한 스포츠 같은 반응, 새로운 형식의 소비 같은 것들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잊지 않고 잊히지 않으려는 강박 속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 새로움을 당장 표면에 드러나는 형식이나 내용만으로 읽고 소비하려는 태도는 경계하고 싶어요. 차라리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고, 다만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승일: 첫 시집 내고 마음에 화가 너무 많았습니다. 말도 참 많이 하고요. 오늘도 참 많이 한 것 같은데요. 근데 이제 호들갑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참 편해요. 오늘 우리도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지만요. 우리가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요. 나만 안다고 생각하면 외롭다고 봅니다. 갓 등단한 시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아직 데뷔한지 6년이나 됐는데요. 그렇게 용 쓰셔도 여러분의 시나 시인으로서의 여러분의 상품가치는 문화산업 안에서만 보더라도 굉장히 저질입니다. 그러니까 시를 쓸 때는 자기 시를 시장가치로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스트레스만 받습니다. 유명해지고 싶다. 관심 받았으면 좋겠다. 유명한 사람이랑 술이라도 한잔 더 마셔야겠다. 그러다가 공허한 인생이 펼쳐지고, 성격 더러워지면 고치기 어렵습니다. 원래 그게 당신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송승언: 그렇지요. 될 놈은 되는 거죠.
김승일: 될 놈은 되는 거죠. 저는 예전에 재능을 아예 안 믿었어요.
송승언: 재능이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래요. 재능은 ‘타고 나는 것’만을 일컫는 단어가 아니에요. 훈련을 통해 습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르는 단어죠. 그러니까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자기 깜냥으로 잘 알 수 있겠죠. (웃음)
김승일: 깜냥은 믿지 않겠습니다. 될 놈은 깜냥 같은 거 알아서 잘 쌓더군요. 저는 아직 제가 될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겠습니다. 벌써 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믿음이라.
송승언: 저는 제가 될 놈이 될 거라는 기대는 살면서 가져본 적이 없네요. (웃음) 그런데 우리 이 대담 이대로 나가도 되는 걸까요? 이래도 혼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도 될까요?
박성준: 아닙니다.(웃음) 오히려 솔직하고 진솔한 말들이 많아서 사회를 보는 저 또한 즐겁고 편했습니다. 정작 창작 주체자인 시인이 문학시장 전반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다른 향유 주체들이 개입되고 있는 작금의 형국을 다시 한 번 되묻게 되는 것 같네요. 물론 다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있어 그 가치를 더 하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동료 시인들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무슨 직무유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소박하지만, 그 팔리지 않는 시를 쓰면서 갖는 후련함만으로도 저는 괜찮은 게 많아서 참 다행입니다.(웃음) 진솔한 말씀해주신 두 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