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는 이런 마음은 불신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에게도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악인들의 번성을 보면서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 튀어 나온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1절)는 것이 바로 이런 심성을 가진 자들을 향한 질책이다.
그러면 불평과 투기가 왜 발생하는가 하는 점을 좀 생각해 보자. 우선 불평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인데, 이것은 ‘신자인 나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불신자인 저들은 풍족하고 넉넉하며 여러 면에서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안락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삶이 부럽고 투기하는 마음도 생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2절 말씀에 나와 있는데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이란 사실이다. 그러니 그들의 임시적인 번성을 부러워하거나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악인의 번성이 영원한 것이고, 성도의 고난 또한 끝없이 지속될 것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나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잠깐의 것이라면 그런 마음은 어리석은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라. 그래도 악인의 임시적인 번성이 투기의 대상이 되겠는가?
여하간 어리석인 인간들은 이 땅이 전부이고 여기에 모든 것이 있다는 착각 속에 산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3절)는 말씀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아리송한 이야기다.
육신의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땅의 소산물을 먹고 마셔야 한다. 그래서 이것들을 확보하는 일을 위해 평생을 소진하며 지내고, 이 일에 성공한 사람은 승리자요, 그렇지 못한 자는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세상인데, 성경은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산다”(요6장)고 하시니 이 어찌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으랴!
하나님의 약속(그의 성실), 즉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게 하시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죄와 함께 영생을 얻게 되는데, 이것만이 성도에게는 영원한 양식(식물)이 된다는 말씀이다.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4절)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구절은 많은 이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 오해를 낳는 구절이다. 앞부분에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씀은, 여호와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가 그로 인해 기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뒷부분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는 대목에 가서는 혼선이 빚어진다. ‘네 마음의 소원을 이뤄주신다면 무엇이든지 내 소원을 말하면 주께서 들어 주시는구나.’ 라고.
성령 받은 성도의 소원은 악인들의 소원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영원한 것을 소망하지 이 땅의 임시적인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기에 성도의 소원은 주님과 더불어 영생하는 것이요, 이 땅에서도 그 이름을 지속적으로 경배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이런 성도의 마음을 주께서 외면하실 리 있겠는가?
우리는 항상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내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산다. 그런 탓에 주님의 말씀도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려든다. 그렇게 되니 성경 말씀을 육적으로 해석하게 되고, 전혀 하나님의 뜻과 별개의 해석이 발생한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허락하셔서 이런 육적인 해석을 포기하게 하시고, 영으로 기록한 말씀을 영으로 이해하고 깨닫게 하신다. 그렇게 될 경우, 모든 것이 그분의 약속에 의해 성취될 것들이며, 그것은 그 아들 예수를 통해 완성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 앞에 세워져서 모든 죄와 허물이 노출되는 식으로 일하신다.
우리는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는 자요,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는 자이다. 이런 우리가 어찌 의를 빛같이 나타내며,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드러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주께서 자기 피로 우리를 이런 상태가 몰아가시겠다고 하신다.
성도는 여호와의 말씀이 믿어진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 선물은 받은 자만이 아는 것이다. 학습하고, 반복하고, 세뇌시켜서 믿음이 생겼다면 이것은 주께서 주신 믿음은 아니다. 이런 가짜 믿음은 말씀을 영으로 받지 못할뿐더러 영생과도 거리가 멀다.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여 복되어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그리고 그 주를 영원히 찬양하자. | |